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34화 (634/656)

제 634화

외전 28화

이낙호에게 안긴 몸이 계속해서 흔들린다. 책이는 이낙호를 조금씩 당기거나 밀면서 방향을 조정했다.

‘이쪽으로 가야 아무도 없는데.’

책이는 이낙호와 엘리엇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렸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궁 가의 하급 무사였다면 나뭇가지라도 쥐고 덤볐을 것이다. 적 앞에서는 절대 달아나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지금 이자들은 그때의 부하들이 아니었다.

낙호와 엘리엇은 헉헉거리면서 숲속을 달려갔다. 흔적을 숨길 생각도 없이, 무성한 수풀을 헤치면서 방향 없이 헤매고 있었다.

겁에 질려 다리 사이에서 소변 냄새를 진하게 풍기면서도 이낙호는 아기를 버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쯧쯧쯧…….’

책이는 기감을 퍼트리며 주변을 살피어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낙호를 인도했다.

‘내가 혼자 가는 게 더 빠를 텐데.’

지금 시점에서 뛰어내려서 경공을 발휘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이낙호는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중이었지만 책이는 아니었다.

‘저 무기가 어떤 건지는 알겠어.’

그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 남궁소천은 남궁가의 검제이자 무림맹주였고, 일당천을 상대할 수 있는 자였다.

지금처럼 일 갑자의 내공이 있는 상태에서 일반 병사라면 이백 명이라도 홀로 쓰러뜨릴 수 있다. 다만 무기가 없고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가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이낙호에게 안겨 있던 책이의 손이 슬금슬금 낙호의 목 뒤로 기어 올라갔다.

수혈을 짚을 필요도 없이, 목 뒤를 쳐서 쓰러뜨려 기절시키기만 하면 된다.

‘아차, 이번에는 이쪽으로.’

책이가 낙호를 기절시키려는 찰나에 뒤쪽에서 새로운 자가 나타났다. 수풀을 헤쳐 나가는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해 다른 사람들이 쉽게 찾아내는 듯싶었다.

『지금!』

책이는 솔방울을 직접 던질까 하고 고개를 뺐다. 하지만 각도가 좋지 않아 뒤에 따라오던 동생에게 지시했다.

『웅!』

명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솔방울을 던졌다.

“악!”

-탕

명이는 또 솔방울을 던졌다. 그리고 연이어 총소리가 들려왔고,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아악!”

『웅!!』

그리고 명이가 즐거워하며 책이를 바라보았다. 칭찬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으음.’

두 번째 살인이었다. 방금 전에 쓰러진 자 역시 죽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실보다 책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동생의 반응이었다.

‘이건 좀.’

남궁소천이 첫 살인을 한 것은 무림에 출두한 이후였다. 약관 즉 스물이 넘어서였다. 인신매매를 하고 인육을 요리해서 먹던 범죄자를 죽이고 나서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첫 살인의 무게감은 그토록 무거웠다.

명이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인의와 도덕, 예법에 대해서 몰랐으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우웅?』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른다. 말은 알아들어도 아직 옹알이밖에 못 한다. 할 줄 아는 말은 아빠와 엄마, 형, 그리고 할부지, 할무니.

경신법과 보법, 금나수법이 뛰어나지만 전음은 아직 ‘웅!’밖에 하지 못한다.

동생의 손을 빌리지 않을 방도는 무엇이 있을까, 책이는 고민했다.

한 살이 갓 넘은 동생이 죄책감도 없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허공섭물만 쓸 수 있으면…….’

보아하니 저 총기라는 것은 화탄을 안에 집어넣어 발사하는 것으로, 안전 고리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서 쏘는 것이었다. 폭발력이 있을 뿐 활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화살이란 한계가 있는 자원이다. 총알도 마찬가지다.

아주 커다란 힘이 아니어도 된다.

아주 조금, 조금만…….

‘그때 어떻게 했더라.’

허공에 떠오르던 달걀.

책은 달걀의 껍질이 깨져 부서지며 흰자와 노른자가 분리되어 그릇에 뛰어들던 모습을 생각했다.

부유하던 밀가루가 바람에 휘날리는 봄날의 벚꽃잎처럼 하늘하늘 버터와 달걀에 섞여 만들던 회오리.

“아아…….”

추적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총 세 명, 죽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총을 든 자들이 총을 겨누며 다가오고 있었다. 책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에 거리를 좁힌 것이다.

‘감히?!’

명이와 자신에게 총을 겨냥하는 모습을 보며 책이는 전생의 적을 떠올렸다.

천마.

일월신교의 종주.

악독한 사교의 주구.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자.

그자와 비교하면 지금 이 애송이들은 너무나도 하찮아서, 굳이 심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었다.

「?!」

갱단의 단원들은 기괴한 경험을 했다. 잡고 있던 총구가 천천히,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팔이 꺾이고 손가락이 비틀리며 멋대로 방아쇠가 당겨졌다.

「으아아아아아!」

서로를 쏘기도 하고, 자신의 총에 맞기도 했다. 세 명이 무력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진혁은 모든 일을 다 내팽개쳐 버리고 그대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필리페 보르헤스에게 급한 일이 생겼으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설명하고, 왕이 비서와 함께 자동차를 탔다.

돌아가는 길은 차가 막혔다.

‘애들은 멀쩡한데.’

책이도, 명이도 상태가 좋았다. 특히 명이는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엘리엇과 이낙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두고 온 박지건은 죽기 직전이었다.

‘제일 튼튼한 놈이 상태가 안 좋다는 건.’

사고가 났을 때에는 제일 약한 생물부터 죽게 마련이다. 진혁이 생각하기에 책이와 명이, 엘리엇과 이낙호, 박지건 중 제일 약한 사람은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이 아니라 박지건이 먼저 리타이어 되었다는 건.’

천재지변? 자동차 사고? 아니면 누군가의 습격인가?

‘아무리 치안이 안 좋다고 해도 그렇지.’

왕이 비서는 부자들만 사는 지역의 치안이 좋은 저택을 구매했다고 했다.

“애들이 갈 저택, 그 저택이 있는 곳은 어떤 위치지?”

진혁은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왕이 비서에게 차갑게 질문했다. 영문을 모르는 왕이 비서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부유한 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고급 주택가입니다. 최상층 부자들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죠.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 뷰와 숲이 있어 나무들의 풍광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좋습니다.”

“부자들이라…….”

“대표님, 사업상 온 연락은 특별히 없는데요. 갑자기 자리를 뜨신 이유는 뭡니까? 필리페 농장주와의 대화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이 근처에서 새로운 카카오 빈 농장을 찾아봐야 할까? 왕이 비서는 긴장하고 있었다. 임진혁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보았다.

“필리페 보르헤스가 꼭 할 얘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왕이 비서가 불안한 듯 스마트폰을 뒤졌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짐작하나?”

“최근 다른 재산을 처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카카오 빈 농장을 사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음.”

“아들과 함께 일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이상한 일이고요.”

진혁은 운전기사인 제럴드를 재촉했다.

“빨리, 좀 더 빨리.”

“지금 최대한 빨리 가고 있습니다.”

120km의 거리.

시속 60km로 달리면 두 시간이 걸리고, 120km로 달리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진혁은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150까지 밟아.”

“네.”

등 뒤에서 오싹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는데, 속도를 내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끼어들어야 했고, 끼어들면서 몇 번이나 다른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지만 제럴드는 기적적으로 사고를 피했다.

“지금.”

“네!”

뒤에서 진혁이 말하는 때마다 끼어들면 무리가 없었다.

자동차가 평소보다 더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미친 듯이 밟는 건 처음이야.’

마침내 숙소와 가까워졌는데, 진혁이 말했다.

“그쪽이 아니라 저쪽이야.”

“예?”

“이쪽에 차 세워. 난 내려서 먼저 가지.”

“예에에에?”

진혁은 차를 아직 세우지도 않았는데 문을 열더니 뛰어내렸다. 그리고 달려갔는데 어찌나 빠른지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뒷좌석에 같이 타고 있던 왕이 비서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대표니이이이이임!!”

경호를 해야 하는 제럴드는 주차를 하던 중이라 차를 내팽개치고 쫓아갈 수가 없었다.

“대표님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저, 저는 모릅니다.”

왕이 비서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황급히 황미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지금 큰일이 났습니다. 대표님이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려서 사라지셨습니다!”

* * *

‘이쪽인가.’

아이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혁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시체를 신경 쓰지 않고 나무를 밟으며 달렸다. 소리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명이가 이 소리를 들으면 진혁이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버석거리며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진혁이 나타났다.

“여긴가.”

책이와 명이, 그리고 엘리엇과 이낙호 모두 건물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성을 닮아 있는 우아한 서양식 저택이었다. 성 안쪽에서 책이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돌담 벽이 서 있었다. 3m는 될 법한 돌담의 위에는 뾰족뾰족한 가시 철사가 박혀 있었다.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담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돌담 안쪽에는 피가 흥건하게 쏟아져 있었다. 사나운 도사견들이 여덟 마리, 인간이 여섯 명. 전부 쓰러져 죽어 있었다.

연쇄 살인범이라도 지나간 듯한 모양새였다.

『나 이제 허공섭물 할 수 있다!』

진혁을 향한 전음이 똑바로 머릿속에 내리꽂혔다. 즐거움에 가득 차 외치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책이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진혁이 물었다. 성 안에서 방 하나하나를 뒤지는 취미는 없었다. 그는 폴짝 뛰어올라 벽에 매달렸다. 거미처럼 옆으로 움직여 창문 하나를 깨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피아노와 악보가 놓여 있었다. 책이는 대답이 없었다. 진혁은 명이에게 전음을 전했다.

『명이야, 괜찮니?』

『웅!』

책이와 명이 둘 다 멀쩡하고 건강했다. 진혁은 비로소 안심했다. 그는 복도로 나와서 계단을 걸어갔다. 이쪽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갱단? 보스? 라고 하는 애 앞에.』

‘책이 얘는 은근히 보면 좀 멍청하단 말이지.’

길치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저런 식으로 대답한다.

『지금 옆에 짜장면 배달하는 오토바이 지나간다.』

눈에 보이는 건물의 간판이나 표지판 등 객관적인 위치를 알려 줘야 하는데 엉뚱한 얘기를 한다. 그럼 찾아가기가 어렵다.

『죽였어?』

진혁은 그를 향해 덤벼드는 남자를 가볍게 제압해, 목 뒤를 쳐서 기절시켰다. 수혈과 아혈을 짚고서 가볍게 발끝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의 아들들은 저 아래쪽에 있었다. 하지만 복도와 숨겨진 방, 그리고 잠긴 자물쇠 따위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 안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이제 죽이려고.』

『너는 아직 살인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 기다려 봐. 내가 가서 대신 할 테니까.』

-푸콰아앙.

폭발물이라도 터트린 것처럼 복도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깔려 있던 붉은 카펫이 산산조각 나서 흩어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진혁은 그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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