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3화
외전 27화
임진혁이 차를 타고 출발했을 무렵, 육아 도우미들과 쌍둥이 그리고 경호원들은 자택을 향해 출발했다.
책이는 보육 교사들과 함께 안전한 차량에 탑승해서 해안가를 달리는 이 드라이브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우아한 바다의 파도를 보았다. 파도가 쏴아아 몰아쳐 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륙에서 오래 살았던 그는 호수는 자주 보았지만 ‘바다’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여기서 보는 해안가도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남만에 못지않게 더운걸?’
육아 도우미들이 기내에서 미리 준비해 온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왜 이런 옷으로 갈아입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젠 이게 부끄럽지도 않군. 나도 완전히 이쪽 세계에 적응한 거야.’
처음에는 묘령의 여성이 기저귀를 갈아 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아기 생활 1년 차가 지나자 그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규칙에 의해서 움직였고 임책은 그 일상에 완전히 적응했다.
‘어라?’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날카롭고 뾰족뾰족하며 주변을 찌르는 듯한 살의!
최근에는 거의 느껴 본 적이 없지만 예전에는 매일같이 마주했던 그것.
바로 살기(殺氣)다.
‘대상이 우리는 아닌데. 요새 애들은 살기를 컨트롤할 줄도 모르나?’
책이는 호기심이 생겨 고개를 틀어 보았다. 그는 방탄 차량의 뒤편, 우측에 앉아 있었다.
거리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좌측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너머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우측의 무성한 숲 안쪽에는 고급 별장들이 자리해 있었다. 차량은 그 별장들 중 하나로 향하는 중이었다.
“우리 묭이~ 묭이도 일어났니?”
엘리엇 조가 애칭으로 명이를 부르며 달랬다. 명이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으아우엉우엉.”
분노가 섞여 있었다. 좌측의 유아 시트에 앉아 있는 명이 역시 살기에 반응해서 깬 모양이었다.
“아니, 둘째 도련님이 왜 이러지?”
이낙호가 당황해서 기저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하지만 기저귀는 깨끗했다.
자동차는 점점 더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책이는 생각했다.
‘이 차를 멈춰야 할 텐데.’
책이가 명이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만, 괜찮아.』
명이가 조용해졌다. 마침 눈앞에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엘리엇은 자신이 잘한 덕분에 명이가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다.
“우리 명이는 이 표정을 좋아하는구나?”
‘그거 아닌데.’
책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지적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앞쪽에서 두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소리와, 자동차가 폭발하는 소리. 영화 속에서나 들려 주던 총소리는 폭죽 소리에 불과했다. 실제로 들려오는 총성은 귀를 두들기는 둔탁한 통증에 가깝다.
방탄 차량에 탑승한 성인 세 사람은 모두 실제 총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예비군 이낙호와, 치안이 좋지 않았던 미국에서 총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 엘리엇 조 모두 총소리를 알아들었다.
“……이 총소리는.”
외국인 용병부대 출신의 경호원 겸 운전기사인 박지건은 총의 모델까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조수석에는 이낙호, 뒤편의 유아 시트 옆에는 엘리엇 조가 앉아 있었다.
왕이 비서가 멕시코에서 섭외한 방탄 SUV 차량은 낯선 해외 브랜드였다. 뒷자리에 유아 시트 두 개를 체결하고도 가운데에 성인이 한 명 앉을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남아 있었다.
가운데에 앉아 있던 엘리엇 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낙호는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바깥을 살펴보려 했다.
“무슨 테러라도 벌어지고 있는 건가?!”
운전기사 박지건이 침착하게 말했다.
“방향을 돌리겠습니다.”
- 푸슉.
하지만 이미 늦었다. 투웅 하는 충격이 자동차를 강타했다.
“타이어가 펑크 났어요.”
“방탄 차량인데 왜 타이어가 펑크 나요?!”
“……여기는 멕시코니까요?”
누군가 바퀴를 멋대로 바꿔 놓고 팔아 먹기라도 한 모양이라고, 박지건이 중얼거렸다.
명이가 깩 하고 조그만 비명을 질렀다.
숲 건너편에서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갱단이 총을 쏘고 있었다-고 엘리엇 조는 나중에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패닉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차 안에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이런 사태에 대해 경험이 있는 운전기사가 바로 안전벨트를 풀며 몸을 숙였다. 그가 뒤편을 보면서 말했다.
“도련님들은 괜찮습니까?”
엘리엇 조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러면 안 돼.’
이 아기들을 지켜야 한다. 아이의 시력으로는 보이지 않을 텐데도 책이와 명이 모두 똑바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굉음이 들려온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엘리엇은 얇은 여름 담요를 꺼내서 명이의 위에 덮어 씌웠다. 아기를 지켜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건 더 떠오르지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이낙호와 했던 이야기가 뇌리에 감돌았다.
‘아기들은 너무 어려. 그리고 아무것도 몰라. 세상에 알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명이야, 저게 화기라는 거야.』
『웅?』
『벽력탄이 발전하면 저렇게 된다고 하는데. 살기는 알지?』
『웅~』
『좋아, 잘 배우고 있어.』
책이는 동생을 교육시키는 중이었다.
‘멍청한 아비 놈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주변에 전음을 뿌려도 임진혁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먼 거리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축지법을 사용한 것처럼 놀라운 속도로 이동하는 이 ‘자동차’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엘리엇이 명이의 유아 시트 버클을 풀고, 그다음에는 책이의 버클을 풀어 주었다.
이낙호가 책이를, 그리고 엘리엇이 명이를 안고 내렸다. 박지건이 물었다.
“권총이나 전기 충격기를 다룰 수 있습니까?”
“권총은 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낙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육군 소총수로 제대하여 권총을 써 본 적도, 쓸 일도 없었다. 엘리엇은 전기 충격기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 본 적은 있어요.”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은 없었다. 세 사람은 몸을 낮추고 숲속에 몸을 숨겼다.
박지건은 아이 둘을 데리고 달아나는 건 무리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는 덤불을 헤치고 아름드리나무 뒤편에 숨도록 손짓을 했다.
“지금 외부에 SOS 요청을 했습니다. 두 분은 도련님들과 여기 숨어 계십시오. 제가 저 앞에서 시선을 끌 겁니다.”
박지건은 자신의 총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엘리엇이 명이에게 속삭였다.
『명이야, 조용히 해.』
『웅.』
명이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책이는 기감을 퍼트려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했다.
‘저쪽 말고 이쪽으로 가야 되는데.’
박지건이 달려간 쪽은 총소리가 들려오던 방향이었다.
지금은 총소리가 멈추었다.
‘그나마 경호원이라고 저자가 제일 쓸모 있을 줄 알았는데.’
박지건은 경호원의 책무를 버리지 않았다. 앞쪽으로 50m밖에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총을 겨누고 있었다.
‘거기 있으면 소용없다고.’
그곳은 다른 자들이 오는 길목이 아니었다. 책이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지건과 달리 기감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쪽이 완전히 패배했다.
패배한 자들은 흩어져서 저마다 숲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승리한 자들은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 세계는 평화롭다며.’
이곳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책이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날아다니는 총탄 따위는 얼마든지 피할 자신이 있었고, 명이 역시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자들은 못 피하겠지?’
그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90살의 노인이라면 누구나 젊어지는 것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지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20대의 육체가 절실했다.
‘이 성인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말을 듣게 하지?’
안전하게 빠져나갈 방도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책이의 눈에 이쪽으로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사파의 용병들인가?’
양쪽 패거리들은 복장이 달랐다. 패배한 자들은 개방의 방도들처럼 거지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고, 승리한 자들은 비즈니스맨처럼 깔끔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양쪽 다 내공이라고는 한 톨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와. 사파의 무인인데 내공이 없어. 와. 쌀알 한 톨만큼도 없어.’
무인이 아닌 진희 고모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도 아주 약간의 내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자들은 육체적으로 단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내공도 없이 교전을 할 수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패배한 자들은 펑크 난 차량을 발견했다. 그들 중 일부가 차량을 방패 삼아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복을 입은 자들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모두를 쓰러뜨렸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그리고 무언가 외쳤다. 총을 든 자들이 흩어졌다.
여기 있는 세 사람 중에서 스페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엘리엇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차를 보고 우리들을 찾고 있어. 유아 시트가 둘, 아이가 있으니까 멀리는 못 갔을 거라고…….”
엘리엇은 덜덜 떨고 있었다. 총격전이라는 것, 진짜 시체 따위는 영화로밖에 보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전기 충격기 따위로는 총에 전혀 맞서 싸울 수 없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굳어 있었다.
이낙호가 비장하게 말했다.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도망쳐.”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쪽으로도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책이는 손을 뻗어 가지에서 익숙한 것을 하나 땄다.
“솔방울?”
이낙호가 눈을 깜빡였다. 책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곳의 소나무는 그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생겼다. 하지만 솔방울은 조그마했다.
책이는 솔방울을 두 개, 명이에게 쥐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두 개를 쥐었다.
‘허공섭물을 쓸 수 있었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지.’
그는 예민하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 보육 교사들은 아직 젊었다. 기껏해야 20대에 불과하다. 책이가 보기에는 미래가 창창한 어린이들에 가까웠다.
책이가 태중에서부터 쌓아 왔던 내공.
그리고 명이가 쌓아 온 내공은 가히 1갑자에 필적했다.
어린아이의 몸에 들어 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양!
『형이 신호하면 던져. 알았지?』
『웅!』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멕시코인 남자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승리자 패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는 총을 겨누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강렬한 암모니아 냄새가 주변에 퍼졌다. 아무래도 엘리엇과 이낙호, 두 사람 모두 소변을 지린 것 같았다.
오히려 책이와 명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살기가 없어. 납치라도 하려는 건가.’
책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남자의 입이 벌어지며 안쪽에 해 넣은 금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멀리서도 입 냄새가 풍겼다.
보기 좋은 표적이었다.
『명아, 저 금색으로 반짝이는 거. 그거 맞추면 된다.』
책이가 동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웅!』
명이는 솔방울을 던졌다.
「쿠엑?!」
남자는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졌다.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는지 하늘을 향해서 총탄이 뿌려졌다.
- 두다다닷!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뒷머리에서부터 진한 혈액이 흘러 웅덩이를 적셨다.
첫 살인이었다.
「[email protected]$#!」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른 사람들도 달려왔다.
“도, 도망치자.”
이낙호는 황급히 책이를 안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엘리엇이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