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32화 (632/656)

제 632화

외전 26화

“둘이 진짜 사이가 안 좋은가?”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 정말로 임진희를 데려와서 물어볼 걸 그랬네.’

그는 왕이 비서를 바라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이게 바로 그 드라마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고부 갈등인가? 오히려 어머니랑 미미 씨는 괜찮은데.’

어머니는 황미미를 아주 좋아했다.

특히 손자를 낳은 후로는 진혁보다는 황미미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황미미는 어머니에게 안마의자를 맞춰 주었고 보석과 모피를 선물했으며 크루즈 여행과 별장을 선물했다.

진혁이 알기로는 전략팀을 통해 어머니의 취향을 분석해서 어머니가 모르는 취향까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요약하자면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는 말이다.

“어머니와 미미 씨는 잘 지내는데 진희는 그게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진혁이 중얼거렸다.

‘대표님, 저는 황 회장님에게 월급 받습니다…….’

왕이 비서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진혁의 통역사 겸 비서 업무를 하며 많은 상황을 지켜봐 왔다. 그러나 상사의 가족 갈등에는 끼고 싶지 않았다. 진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진희가 살만한 집이 회사 근처에 또 어디에 있을까.”

“판매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집이 있을 수도 있고, 임 이사님이 좋아하시는 취향의 집이 어떨지도 모르니까요. 임 이사님과 직접 상의하고 결정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이의 대답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책이가 깨어났다.

“우.”

왕이 비서가 환하게 미소지었다.

“도련님이 정말로 장군감이십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으시군요.”

‘얘는 그냥 눈만 떴잖아?’

진혁은 눈알을 굴리며 왕이 비서를 보았다. 왕이 비서는 황미미를 존경했고 그녀의 아기들도 좋아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쳐, 종교의 신도처럼 열렬하게 아이들을 칭찬했다.

“얘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텐데.”

진혁이 책이를 안아 들고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트여있는 창문 아래로 깔려있는 구름이 보였다.

* * *

임책은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음?’

주변의 공기 흐름이 이상했다. 마치 화산의 산봉우리에 올랐을 때처럼 공기가 희박하다고나 할까? 그때 진혁이 그를 안고 앞으로 걸어 올라갔다.

“우리는 지금 멕시코로 가고 있어.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지. 비행기란 하늘 자동차 같은 거야. 공중에서 부양해서 돌아다니는 강철 기계인데…….”

‘……!!’

진혁이 나름대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임책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늘을, 난다고?’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선명하게 인화된 사진과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 얇게 썰어져 익혀진 고기.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전깃불과 인덕션 전기레인지. 가스레인지와 에어컨.

일상을 편안하게 하는 다양한 현대 문물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허공을 떠다니는 거대한 기계 탈것이라니?

이런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책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구름 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기감을 뻗쳐 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다.

‘어라?’

가장 높은 산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다.

한없이 하늘에 가까운 공간.

‘이, 이래도 되는 건가.’

그렇지만 구름만이 있을 뿐, 천상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궁소천은 도가(道家)의 도사들이 말하는 원시천존을 모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연히 천상에 옥황상제와 삼청, 즉 원시천존과 태상도군, 태상노군 등이 존재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관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높이 있는 거야? 천상계를 지나쳐온 거냐?』

책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임진혁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일월신교에서는 옥황상제의 존재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해와 달이 뜨듯이 당연한 섭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도가와 불가에서 모시는 다양한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쓴 적은 없었다.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지.』

『출가한 스님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오, 옥황상제님은 어디 계신 거야?』

『옥황상제는…… 음, 그게.』

진혁을 부족한 지식으로 열심히 우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음, 천상계라는 건 모르겠고 우리는 대기권 안에 있다. 이 위에는 우주가 있고.』

『우주…….』

달과 별이 평면적으로 하늘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임책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

‘미미 씨의 교육이 사회와 경제 쪽에 치우쳐져 있었구나.’

다행히 비행기 안에서는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진혁은 어린이용 자연과학 교과서를 가져와서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 있었다.

『이 기계는 아, 당신이 띄운 건가?』

임책은 아직도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는 옥황상제와 원시천존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이 이상했다. 멋대로 날틀을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도 이상했다.

『그렇긴 하지.』

임책이 따지듯이 묻는데 진혁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는 비행기가 뜰 수 있는 원리 같은 것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허공섭물로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올릴 수 있다니.』

임진혁은 아들이 어떤 오해를 했는지 깨달았다.

『……아니, 그렇게 올린 건 아니야. 이건 자동차랑 같은 거라니까? 기름을 넣고 운전사가 기계를 운전하는 거야.』

책이를 진정시키는 데에 열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봐, 원래 도사들을 믿지 않았잖아.』

『그럼 우리는 죽으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윤회와 무간지옥, 그 중 어디로 가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몰라. 난 죽어서 여기로 왔지만 말이야.』

진혁은 자신의 마지막을 기억했다.

그는 무림 맹주 남궁소천과 결투하다가 의식을 잃었고, 그리고 현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과거 시점으로 회귀를 하여, 원치 않던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

『고맙다.』

자신과 아내를 닮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소중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들어있는 영혼이 호적수의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아기가 한때 자신과 생사결을 하였던 적수라는 사실은 최근에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남궁소천은 변했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으며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진혁이 쌓은 무위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아들 겸 제자라, 나쁘지 않고.’

하지만 그 아들은 공황에 휩싸인 모양이었다.

『죽으면 여기로 오는 건가……? 그럼 여기에서 죽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나?』

진혁이 황급히 정정했다.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큰아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그건 아무도 몰라.』

어찌 보면 공황을 일으키지 않고 그 시간 만에 상황을 납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임책의 천재성과 합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기계를 띄워서 달나라에 보내는 세상인데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그렇지. 현대의 지식으로는 몰라.』

그때, 기장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울려 퍼졌다.

“30분 후에 도착합니다.”

진혁은 아들을 빤히 바라보며 전음으로 속삭였다.

『하지만 일월신교에서는 위대한 섭리가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하지. 네가 일월신교에 입문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교리에 대해서 들려줄 수 있다.』

『필요 없어!』

* * *

공항에 도착하자 자동차가 마중 나왔다.

그들은 자그마한 개인 소유의 공항에 내렸다. 미미의 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공항이라고 했다.

『이건 또 뭐야?』

VIP의 입국 심사라고 해도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면서 책이는 불평을 했다.

『이상한 걸 자꾸 시키는군.』

『보안 때문에 그래.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거지.』

『행정 체계 자체가 고도로 발달한 모양이야?』

책이는 새로운 자동차를 보고 신기해했다.

『나눠서 타?』

『그래.』

방탄 차량은 4인승 세 대였다.

‘아기 시트를 조수석에 연결해도 되나?’

진혁은 선택해야 했다.

아기들과 같은 차에 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에 탈 것인지.

육아 도우미 두 사람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진혁은 결정을 내렸다.

“두 분은 뒤쪽 차에 타시고, 아기 시트는 이쪽 뒷자리에 두 개 다 체결해 주세요.”

“아, 대표님이 조수석에 타십니까?”

“예.”

왕이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카카오 빈 농장에도 도련님들을 데려가시는 겁니까?”

“음?”

“공항 근처에 아기님들이 쉬실 수 있는 숙소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호르헤스 농장에 자녀 동반이라고 얘기해 두지 않았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왕이 비서는 땀을 뻘뻘 흘렸다. 보통 비즈니스 미팅에 자녀를 데려오지 않는다. 아이가 이렇게 어리다면 더욱더 그렇다. 왕이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호르헤스 농장 입구까지는 자동차가 갈 수 있지만, 내부에는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도로가 없습니다.”

“음?”

“안에서는 당나귀를 타고 돌아다녀야 합니다. 성인 한 명만 방문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통역사를 포함해서 두 명이 갈 거라고 요청을 해두었습니다. 당나귀를 한 마리 더 준비해서 선물로 드렸고요.”

진혁은 공항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당나귀를 실은 트럭을 곁눈질했다.

이제야 세부 사항을 전해 들은 경호원들이 항의했다.

“그럼 왕이 비서님과 함께 들어가시는 겁니까?”

“제럴드와 함께 가시죠. 제럴드가 스페인어 통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왕이 비서님이 행정적인 능력은 좋을지 몰라도 경호는 저희가 더 잘합니다.”

깊은 산속을 방문하는 이런 때야말로 용병 부대 출신의 경호원들이 활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서울에서 놀고먹으며 아기방 근처를 배회하던 경호원들이 저마다 경호를 하고 싶다고 자청했다.

진혁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VIP 공항에 당나귀가 있더라니.”

그가 혼자 아기들을 안고 걸어 올라가도 된다. 황미미와의 결혼 자체는 좋았지만 이럴 때는 귀찮았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이 따라붙으니 번거로운 일이 많아.’

진혁은 책이에게 카카오 빈 농장을 보여주고 싶어서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니 여기서 두 사람을 돌려보내는 건 원치 않았다. 그가 물었다.

“당나귀를 서너 마리 더 섭외해서 가면?”

왕이 비서는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 보았다. 그리고 죄송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시는 귀국 시간이 빠듯해서 곤란합니다.”

유능한 왕이 비서도 못 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진혁이 당부했다.

“다음부터는 그런 건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섭외해 주시죠.”

“아, 알겠습니다!”

진혁은 왕이 비서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어디서 머물게 됩니까?”

진혁은 혼자서 카카오 빈 농장에 다녀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도련님들은 산 루이스 레몬의 자택에서 안전하게 머물 겁니다.”

이곳은 해변가의 소도시였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왕이 비서가 일부러 호텔이 아니라 저택을 매매했다며 안전은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생 잘 돌봐라.』

진혁은 책이에게 짧게 전음을 보냈다. 명이를 두고 책이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을 두고 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알아서 잘 할 거야.』

경호원들과 보육교사 두 사람이 모두 남기로 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보르헤스 농장은 도시에서 멀었다. 정말로 산골 깊숙한 곳에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120km 자동차로 달리면서 길이 점점 더 불편해졌다. 마침내 보르헤스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에 무성한 열대우림이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에도 진혁은 계속해서 기감을 넓게 퍼트려, 아이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마침내 만나게 된 카카오 빈 농장의 주인공은 160cm 정도로 키가 작고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었다. 초콜릿처럼 새까맣게 탄 피부에 조글조글하니 주름이 진 얼굴로 웃으며 노인이 말했다.

「내가 필리페 보르헤스입니다.」

노인이 손을 뻗는 순간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뭐지? 무슨 일이야?’

갑자기 책이의 심박수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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