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28화 (628/656)

제 628화

외전 22화

「오.」

무하마드 왕자는 평범해 보이는 진희의 닭 요리보다 터덕킨에 더 흥미를 느꼈다. 스터핑은 분명히 쌀을 넣었을 것이다. 애초에 문제로 출제한 요리에 쌀을 곁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쌀을 어떤 방식으로 넣었을지가 궁금했다.

무하마드 왕자의 호기심을 읽은 페드로 쉐프가 말했다.

「어떤 요리를 먼저 먹는가가 판정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요. 두 쉐프님이 동시에 요리를 제출했으니, 순서를 바꿔서 먹읍시다.」

「좋은 생각이야.」

무하마드 왕자는 입맛을 다시며 터덕킨에 손을 뻗었다. 루이스는 눈앞에서 거대한 칠면조를 썰었다. 진혁만큼 우아하지는 않았으나 능숙한 손길이었다.

칠면조가 반으로 잘리며 안쪽에 빼곡하게 쌓인 통살이 드러났다.

가장 바깥쪽에는 살짝 갈색이 도는 칠면조의 껍질, 그리고 흰색 살코기가 있었다. 그 안에는 기름이 차르르 흐르는 연갈색 무언가가 겹쳐져 있고 그 아래에 바로 선홍색 오리 살이 존재했다. 그 다음에는 모르는 고기가 얇게 한 겹, 마지막으로 새하얀 닭고기였다.

닭을 자르자 안쪽에서 말캉하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중국식 게살 수프처럼 끈적한 그것을 자그마한 그릇에 담았다.

「에그 수프입니다.」

「호오.」

무하마드는 아까 샤오룽바오와 비슷한 만두를 선보였던 마리오를 떠올렸다. 그 마리오와 이 루이스는 형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과 비슷한 아이디어였다.

다만 이 경우에는 에그 수프-달걀 죽에 가깝지만 다른 무언가가 닭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들어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는 수프를 먼저 맛보았다. 코끝에 가져다 대고, 입은 다문 채 냄새만을 즐겼다.

비린내 없는 닭과 오리, 그리고 달걀의 향기.

조금 더 냄새를 맡아보면서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볼까 했으나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났다. 무하마드 왕자는 끝내 혀를 댔다.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수프는 맑고 투명한 색깔이었으나 향기는 아랍풍의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 있어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했다. 뒤범벅되어있는 향신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굴러다니는 투명한 쌀알. 쌀알 사이에 들어가 있는 잘게 찢어진 고깃덩어리에서 익숙한 맛이 조금 났다.

「안쪽에 넣은 것 말인데, 설마 생선 살인가?」

「맞습니다.」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린 대구의 살입니다.」

바싹 말라 있던 생선 살이 오리 기름을 흡수하면서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다. 말캉말캉한 닭고기 살에 씹히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진희가 부드러운 닭고기 요리를 하면서 상큼하게 씹히는 사과 깍두기의 식감을 더해준 걸 보고 생각했지.’

임진희는 모르겠지만, 루이스는 진희가 요리하는 것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무하마드 왕자가 감탄했다. 그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요리를 잘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진혁의 지인들이고 맛있는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들이니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다.

영어 통역사가 아랍어를 잘 통역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동시통역사’라고 해도 명확하게 전문 분야가 구별되며 한 분야의 대가가 다른 분야의 대가인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요리에도 대가인 모양인데?’

드물게도 두 가지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다. 무하마드 왕자의 통역사인 에밀리만 해도 영어와 아랍어, 스페인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했다. 안타깝게도 아시아 쪽 언어는 잘 하지 못해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통역사를 데리고 와야 했지만 말이다.

칠면조 고기에 생선포, 그리고 오리고기. 쫄깃하고 짭짤했다가 살짝 부드러워진다. 가장 안쪽에 있는 닭고기는 이 모든 고기의 육즙이 전부 몰려들어 황홀하리만큼 진한 맛을 선사했다.

다이어트할 때 선호하는 닭가슴살도 보통 담백하고 금욕적인 맛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사프란과 강황, 정향과 생강 등으로 아낌없이 양념한 닭고기를 장시간 사과나무 장작을 태워 구웠더니 그 향미와 온갖 고기의 육즙을 흡수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맛을 풍겼다.

린드버그 박사가 눈을 감고 무하마드 왕자와 유사한 신음 소리를 흘렸다.

「오오오.」

어떤 향신료가 들어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 향신료의 풍미는 분석하지 않아도 기존에 그들이 내놓았던 요리와 유사했다.

그러나 고기의 맛이 달랐다.

「같은 길을 다른 방식으로 걸었어.」

루이스는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면서 생각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무하마드 왕자와 린드버그 박사는 루이스의 음식을 먼저 맛보았다. 거대한 칠면조 고기에 호기심을 느낀 탓이다.

그는 일부러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생선 살이 아니라 잘 말린 생선포를 넣었다. 장시간 익히면서 부드러워진 명태포와 대구포가 기름을 빨아들이는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그 모빌 만드는 게 도움이 다 되네.’

모빌을 언제 먹을지 모르니 유통 기한을 최대한 길게 하고 싶어서 다양한 종류의 말린 어포들을 가지고 실험을 이것저것 했었다. 하지만 말린 어포는 이가 없는 어린 아기가 씹기에는 너무 질겼다. 그래서 다시 어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기름을 추가했더니 유통 기한이 짧아졌다.

대구포와 명태포, 흔히 만들지 않는 아구포에 육수를 내기 위한 멸치포까지, 평소 사용할 일도 없고 보통 말리지 않는 생선까지 다 말리고 구워보았다.

푸드 팩토리에서 경험한 것들이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아, 이게 요리하는 재민가?’

디저트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루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한편 그 옆에는 임진희가 잔뜩 긴장한 채 서 있었다.

‘페드로 쉐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임진희는 꼬마 왕족 라시드와 페드로 쉐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진희가 만든 요리를 먼저 먹기로 했다. 임진혁은 아직 자리에 있었다.

‘진혁이는 내 요리를 안 먹나?’

진희는 눈알을 굴리며 페드로 쉐프와 라시드, 그리고 임진혁을 살폈다. 그녀는 페드로 쉐프와는 여러 차례 교류해서 아는 사이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나눌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페드로와 장유향 쉐프가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아무래도 친한 사람 음식이 더 맛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는 사람의 입맛이라면 더 맞추기 쉽겠지.

정정당당하게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은 사라지고, 임진혁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진희가 여기에 있었다.

‘진혁이 입맛은 알지만 맞추기가 까다롭단 말이야.’

임진혁은 어머니의 ‘못 만든 요리’를 꽤 좋아했다. 미묘하게 간이 맞지 않고 뭉그러진 두부를 넣은 된장국. 그리고 김치를 너무 많이 넣고 돼지고기는 딱딱한 김치찌개. 그렇다고 대회에 그런 걸 냈다가는 바로 탈락이다. 그러니 그건 아예 논외였다.

라시드가 천진난만하게 질문했다

「이 노란 무 피클은 뭐야?」

「무가 아니라 사과입니다. 깍두기라고, 한국의 김치죠.」

「김치는 좀 더 풀 같은 게 아닌가?」

「수박 껍질이나 사과, 무, 오이로 김치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럼 매운가?」

「일부러 맵지 않게 했답니다.」

‘노가다였지만.’

진희가 살짝 웃었다.

은은한 불을 쓴다고 썼는데 껍질이 그을려버려서 새까맣게 되었다. 그래서 닭 껍질은 이번 요리에 사용하지 않았다. 통통하고 질긴 토종닭은 꽤 덩치가 컸다.

그녀는 닭을 잘라내고 껍질은 벗겨내 접시에 덜었다. 허벅지살과 가슴살, 그리고 안쪽에 들어있던 녹진한 찹쌀을 소담하게 담아 곁에 사과 깍두기를 올렸다. 마치 병자에게 가져다주는 것 같은, 온화하고 소박한 요리였다.

라시드는 닭 다리를 조금 뜯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음.」

소금?

언뜻 보기에 양념이 되어있지 않은 닭고기는 너무나도 싱거워 보였다. 그래서 따로 소스를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입 먹어보니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싱겁지 않네요.」

미약한 짠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 번 더 씹자 이번에는 친숙한 향신료의 향이 펼쳐졌다. 이름을 일일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익숙한 맛들이다. 그리고 다시 짭조름한 바다가 입안에서 펼쳐졌다.

「와.」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맛있었다. 밥알도 비슷한 맛이 나는데 푸딩같이 부드러웠다. 단순해 보이는 겉모양과는 달리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이 난다. 그래서 더 좋았다. 라시드는 조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냠냠 쩝쩝 닭고기를 씹었다.

「훌륭합니다.」

페드로 쉐프 역시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향신료를 최소한으로 쓰면서 소금의 맛을 끌어냈군요.」

분명히 시험문제에 출제된 향신료들이 전부 들어있다. 하지만 임진희는 향신료의 풍미를 살리기보다 닭의 맛을 살리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소금이 가장 중심이 되도록 하고 다른 향신료는 잔잔하게 깔기만 했다.

‘진혁이는 안 먹는 건가?’

진희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다. 그는 루이스의 터덕킨도, 진희의 닭고기구이도 받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진희는 걸어 나가는 본선 심사 위원, 진혁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심각했기도 했고, 심사를 받는 도중에 심사위원에게 말을 해도 되는지도 헷갈렸다.

진혁은 복도에서 전화를 걸었다.

“집안이 무너졌다고요? 이번엔 무슨 일입니까?”

보육교사인 엘리엇의 연락이었다.

“명이 님이 쪽쪽이를 집어 던졌는데 거기에 블라인드 끈이 휘감기면서 블라인드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누군가 다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블라인드가 망가진 정도라면 별일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책이는요?”

“요람이 망가졌습니다.”

“요람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그게…….”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만나서 설명을 듣죠.”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에게 짧게 문자를 남겼다.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본선 전에는 돌아옵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운전사가 딸린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건물과 건물의 지붕을 뛰어넘어 집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질주였다.

최근에는 계속해서 외부인들과 함께 스케줄을 하느라 느리기 그지없는 자동차를 타고 달려야 했다.

이천에서 서울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지나치는 모든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쭉 달렸다. 이 편이 훨씬 빠르다.

마침내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땀 한 방울도 맺혀있지 않았다. 진혁은 아기 둘의 기운이 안정되어 있는 것을 가까이에서 다시 확인하고 안심했다. 창문을 뚫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현관에서 보안 인증을 거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는 담을 넘어서 바로 육아실로 향했다.

-똑똑.

3층에 새로 지은 육아실의 테라스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엇은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밖에 거기 누구십니까?”

“접니다. 문을 열어주시죠.”

“아.”

엘리엇이 고용주의 목소리를 듣고서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더니 바로 진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혁 씨를 사칭하는 분이 테라스 바깥에 서 있습니다.”

“……그거 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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