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27화 (627/656)

제 627화

외전 21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

아기들을 데리고 하는 여행이 얼마나 위험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수천 장이 넘는 아기 사진을 하나하나 무하마드 왕자에게 보여주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됐다.

옆에 앉아 있었던 라시드는 책상 밑의 스마트폰으로 폰 게임을 하다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오리 바비큐 구이입니다.』

장유향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오리구이를 내밀었다.

「오븐을 전부 독점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맛있기를 바라네.」

무하마드 왕자가 부드러운 말을 건넸다. 페드로 쉐프와 마찬가지로 무하마드 왕자도 장유향과 안면이 있었다. 이전에 장유향과 함께 진혁 밑에서 미각과 후각 수련을 할 적에 함께 고생했기 때문에 꽤 가깝게 느꼈다.

‘그때는 정말 고생스러웠지.’

‘진혁 쉐프는 악마처럼 우리를 가르쳤어.’

짧은 눈빛 인사가 오가는데 진혁이 슬그머니 일어나며 무하마드에게 속삭였다.

「저는 본선부터 심사를 하기로 했으니까…….」

영어는 모르지만, 눈치로 진혁이 자리를 떠나려는 것을 깨달은 장유향이 황급히 말했다.

『부디 심사가 아니더라도 맛을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회는 무하마드 왕자가 취미 삼아 오픈한 것이었다. 문제 출제 기준도, 심사 기준도 전부 무하마드 왕자가 정한 대로였다. 심사 위원 역시 무하마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거나 호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사실상 무하마드 왕자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개최한 대회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왕자는 개의치 않았다.

「진혁 쉐프는 맛을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무하마드 왕자가 권유했다. 진혁이 웃었다.

「앞서 다른 요리들을 맛보지 않았으니까요.」

‘예선 심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 멋대로 등장해서 평가를 할 순 없지.’

물론 본심은 따로 있었다. 본선 심사는 내일부터고 오늘 오리고기도 맛보았으니 진혁은 슬슬 일어나서 아기들을 보러 가고 싶었다.

‘책이한테 멕시코에 가자고 하면 좋아할 거야.’

임진혁은 서울 키즈카페조차 가보지 못한 아기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줄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맛있는 오리구이를 먹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과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웃었다.

「진혁 쉐프, 이번에는 객원으로 같이 먹어 봐도 좋지 않겠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린드버그 박사가 말했다. 그는 이 중에서 무하마드 왕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제일 적은 사람이었다.

「음…….」

‘심사하려고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던 거 아니야?’

페드로 쉐프가 힐끔힐끔 눈치를 보았다. 진혁이 태평하게 말했다.

「오리 구이는 다음에 따로 맛보면 되죠.」

『아닙니다, 제발 맛을 봐주세요.』

장유향이 애원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진혁이 맛볼 것이라 생각하며 뜨거운 열기 앞에서 타지 않도록 오리를 뒤집어가며 구웠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사람이 먹는다고 해서 대충 굽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유향은 임진혁의 취향을 꿰뚫고 있었고, 이번 대회에 진혁이 심사위원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아예 진혁이 좋아하는 식감과 맛의 조화를 고려해서 밑간을 하고 시간을 들여 정성 들여 구웠다.

‘내 진기……!’

그래서 새끼손톱보다도 적은 양의 진기를 있는 힘껏 퍼부었다. 정말로 영혼을 다했다.

‘겨우 한 마리만 건졌는데.’

장유향은 나름대로 양념을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처음 사용하는 오븐이다 보니 전부 성공하지는 못했다. 한 마리의 오리는 완전히 타버려서 버렸으며 한 마리는 설익었다. 오리 두 마리만이 무사히 익었고, 그중 한 마리가 제일 맛있게 요리되었다.

아랍에 초대를 받았을 때 먹어 보았던 아랍 요리와 이번에 접한 아랍식 오리 요리에서 사용한 양념을 섞어서 한 것이었다.

‘강황과 마늘, 양파와 계피, 정향과 카르다몸.’

그리고 월계수 잎을 살짝 첨가해 향을 더했다. 장유향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결과였다.

「심사는 하지 않더라도 맛만 보고 가라고, 장 숙수가 섭섭해하지 않나?」

무하마드 왕자가 빙글빙글 웃었다. 아무리 봐도 장유향 쉐프 편을 드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진혁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심사를 하지 않고 맛만 보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이건 아주 잘 구워졌군요.」

린드버그 박사가 포크를 들었다. 이국적인 향신료가 진하게 배인 살점은 푹 익어있었다. 겉껍질을 떠내자 안쪽의 살점이 아주 쉽게 떨어져 나왔다. 정향과 레몬그라스, 그리고 샬롯의 향.

‘오리 구이는 당연히 장유향 숙수가 우승하겠군?’

무하마드 왕자는 눈을 감고 오리구이를 음미했다.

갈아 넣은 가지와 페누그릭 잎, 그리고 렌틸콩과 코리앤더 씨앗. 마치 커리처럼 다양한 향신료가 풍부하게 조화되며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새로운 향신료의 향이 강렬하게 풍기며 자기주장을 한다. 다리 부위에는 커민을, 목 부위에는 사프란을 메인으로 해서 고기 부위마다 강조한 향신료가 달랐다.

‘커민, 강황, 정향, 카다멈, 마늘, 후추, 사프란. 그리고 숨김 맛으로 넣은 다른 향신료들도 전부 파악했고 거기에 새롭게 향을 더했어. 레몬그라스와 샬롯이라.’

양파가 아니라 샬롯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양파는 맵고 톡 쏘아서 오랜 시간 달여야 매운맛이 사라진다. 하지만 양파의 친척인 샬롯은 맵기는 하지만 양파와 그 맛의 양상이 다르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데 마늘 같은 매운맛이 있다. 마늘에 샬롯을 더해서 혀끝을 간지럽히는 매운맛.

「아.」

이런 식으로 맛이 겹겹이 쌓여서 혀를 간지럽히는 맛은, 진혁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푸드 팩토리에서 생산한 매운맛 푸드 블록 중 대부분이 이런 맛을 냈다.

‘아아아.’

진혁이 좋아하는 방식의 매운맛을 알아본 무하마드 왕자는 피식피식 웃었다. 어쩐지 반가웠다.

‘진혁 쉐프가 장유향 숙수한테 이걸 배웠나 보군.’

사실은 순서가 반대였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알 수 없었다.

진흙 오리구이는 기름기가 빠지는 데가 없어 촉촉하고 부드럽지만, 이 오리구이는 기름이 전부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고기가 씹히는 맛이 달랐다. 대신 고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기 버터를 비를 쏟아붓듯 내려서 간신히 고기가 바싹 마르지 않게 잡았다.

‘식감은 진흙 오리구이 쪽이 더 좋지만.’

향신료를 쓰는 방식은 완전히 개화했다. 무하마드 왕자가 맛을 즐기고 있는데 페드로 쉐프가 아는 척을 했다.

「보통 장 숙수는 진흙 오리구이를 구울 때 껍질은 아예 따로 손질해서 바삭바삭하게 구워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껍질을 씌워서 같이 구워서 그런지 껍질이 바삭하지 않네요.」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껍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페드로 쉐프는 바삭바삭한 오리껍질을 즐기는 파였다. 린드버그 박사가 말했다.

「확실히 미리 사용한 오리고기에 있었던 향은 전부 사용하신 것 같네요. 아주 훌륭합니다.」

계속해서 냉정한 이야기만 하던 린드버그가 모처럼 하는 찬사였다.

장유향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처음 보는 색목인의 칭찬이 아니었다. 그는 주인이 던져주는 뼈다귀를 기다리는 개처럼 애절한 눈빛으로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혁의 말 한 마디도 놓칠까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역시 자신이 길러낸 제자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봐. 임진혁 쉐프가 젊긴 하지만 대단하지.’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과 장유향 숙수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다. 페드로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자에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미각 훈련도 받았지? 장 숙수는 대단한 사람이야.’

진혁은 장유향의 시선을 느끼며 오리고기 조각을 입에 물었다.

「맛있네요.」

과연 무하마드 왕자나 린드버그 박사가 칭찬할 만한 맛이었다. 미미한 진기 역시 느껴졌다.

대장장이로 대성한 자는 명검에 자신의 혼을 담는다. 수백 수천 번을 담금질하면서 선천진기를 갈아 넣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 개의 명기를 들면 원인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어버린다.

‘요리하다가 일찍 죽겠네.’

아니, 일찍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으니까.

임진혁은 면밀하게 장유향을 살폈다.

‘진기를 이만큼이나 담았다고? 몸은 괜찮나?’

하지만 장유향은 그 시선을 오해했다.

‘내 요리가 마음에 안 드시나?’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오갔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장유향이 입을 열고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임진희와 루이스도 요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다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제출하면 될까요?”

「완성했습니다.」

진희가 가져온 요리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시장의 바비큐 구이처럼 보였다. 아직 기름이 비싸고 튀김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흔했던 전기오븐 구이를 닮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기그릇에 다른 반찬을 곁들여 냈다.

하지만 여러 요리를 먹어보았던 무하마드 왕자는 바로 알아보았다.

「탄두르 치킨하고 이건 한국식 무 김치인가?」

진희가 하나하나 사과를 골라 깨끗하게 씻어내고 부추와 함께 무쳐낸 깍두기는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맞아요, 한국식 닭구이에 곁들인 사과 깍두기입니다.」

떡볶이 양념과 양념치킨의 양념은 근본적으로 닮아있다. 진희는 아까 맛본 오리구이의 양념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다.

우유로 충분하게 비린내를 잡았고, 직접 갈아낸 토마토소스에 양파와 마늘, 청양 고춧가루와 설탕, 물과 간장, 고추장. 그리고 정향과 카르다몸, 계피는 향을 주는 정도로 살짝 깔았다. 버터를 계속해서 떨어뜨리며 버터 향이 짙게 닭고기를 구웠다. 안쪽에는 쌀과 함께 콩, 은행과 밤을 넣었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익혔다.

‘이건 사실 장유향 숙수님이 자주 쓰는 방식이긴 할 텐데.’

임진희 역시 장유향 숙수의 진흙 오리구이를 좋아했다. 진혁이 종종 데리고 가서 여러 차례 먹을 수 있었다.

훌륭한 보양식이었다.

루이스가 구워낸 칠면조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쓰는 칠면조 구이처럼 커다랬다.

동생이 만들어온 오리 구이가 아주 조그마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요리보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탓에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코를 킁킁거렸다.

「이건 칠면조 구이가 아닌데?」

「네, 터덕킨입니다.」

터덕킨 Turducken(칠면조와 오리, 닭; Turkey, Duck and Chicken)은 세 마리 새 구이(Three Bird Lost)라고도 한다. 먼저 칠면조와 오리, 닭의 뼈와 내장을 완전히 제거해 손질한다. 그리고 뼈를 발라낸 칠면조 안에 오리 살코기를 통째로 넣고, 그 안에는 닭을 넣는다. 칠면조와 오리 사이, 그리고 닭과 오리 사이, 닭 안의 빈 공간에는 큼직한 빵 부스러기를 넣어 맛있는 기름을 흡수하게끔 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터덕킨에 변주를 주었다.

「스터핑은 뭘 넣었나?」

스터핑(Stuffing)은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의 내부에 채워 넣는 것을 말한다. 루이스가 환하게 웃음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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