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6화
외전 20화
「소고기를 맛있게 익혔어. 육즙도 괜찮고.」
마리오는 자신의 선택에 안도했다.
‘휴. 계획대로 잘 되고 있어.’
그는 무난하게 예선을 통과했다. 이 요리 점수가 낮은 필기점수를 만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리오는 자신의 요리를 먹는 라시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일단 후원부터 하면서 요리하는 거랑 먹는 걸 좋아하는 애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
자신이 한 요리를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하는 중년 남자들. 그 사이에 있는 어린 소년이 홀로 순수하게 맛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고아 후원을 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 갔다.
‘대회에서 입상하게 되면 입양을 하고, 그냥 참가하는 거로 끝나면 후원만 하는 거야. 어차피 예선은 통과했으니까.’
무하마드 왕자는 자신이 개최한 대회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왔는지 몰랐다. 사촌 오마르에게 ‘내가 너보다 네 후계자와 더 가깝다!’하고 약을 올리려고 데려온 라시드가 강마리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진혁도 몰랐다.
‘마리오 저 녀석은 왜 저 어린 왕자만 힐끔힐끔 보는 거야? 저 사람은 네가 입양할 수 있는 고아가 아니라고.’
멀리서 루이스만 애타게 동생이 혹시 실수를 할까 눈빛을 쏘아 보낼 뿐이었다.
마리오의 요리 이후에 등장한 것은 일본계 야키토리 요리였다.
「이건 간식 같아요.」
라시드가 말했다. 어른의 엄지손가락만 한 살점들이 꼬치에 꽂혀 있었다. 고기 한 조각, 대파 한 조각이 번갈아 꽂혀있는 가운데 접시에는 오니기리가 얹혀 있었다. 하지만 김이 아니라 얄팍한 닭 껍질로 감싸져 있었다.
「유부초밥이 아니라 닭 껍질 초밥인가?」
「닭의 기름을 흡수해서, 오리구이 안에 있었던 밥과 비슷한 맛을 냈습니다.」
요리사는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요리를 선보였다. 잘 구운 닭고기를 양념에 발라서 익혔고, 사이드로 쥐어 만든 주먹밥에 닭 껍질을 감싸서 익혀낸 것을 제출했다.
「윗 날개와 아랫 날개, 윗 봉과 아랫 봉, 골반 살과 엉덩잇살, 허벅지살과 종아리 살, 가슴 연골, 무릎연골, 목살, 그리고 이쪽은 간과 염통, 닭발 꼬치입니다.」
한 명의 심사위원마다 총 열네 개의 꼬치가 주어졌다. 그리고 꼬치에 꽂혀 있는 고기는 전부 다 다른 종류였다. 먹기 쉽게 뼈도 제거해서 손질했다. 닭 한 마리를 완전히 분해한 것 같았다.
곁에 있는 미니 주먹밥도 생김새는 유부초밥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요리였다.
라시드는 제일 먼저 골반 살 꼬치를 집어 들었다.
「이거 맛있어!」
라시드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국물이 들어있는 소고기 만두는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이쪽이 더 맛있었다.
달콤하면서도 짠맛이 입안에 확 퍼지는데, 딱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취향이었다. 린드버그 박사는 염통 꼬치를 한입 물어보고 말했다.
「데리야키 소스를 사용한 줄 알았는데 데리야키가 아니군요?」
내장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특별히 더 진하게 졸인 모양이었다. 쫄깃한 내장의 맛이 진한 고수 향과 잘 어울렸다.
「고수와 정향, 생강을 간장에 재워두었다가 닭에 절였습니다.」
데리야키 소스를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고수와 정향을 추가하니 오묘한 향이 났다.
무하마드 왕자도 이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먹었던 마리오의 음식이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목살을 이렇게 발라낸 것도 나쁘지 않군.」
이 소스는 한국식 양념치킨 소스를 닮아있는 단짠단짠한 계열의 진한 맛을 자랑했다.
「그냥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었으면 요리 대회를 했을 것 아닙니까? 이건 알 마추부스처럼 닭고기의 쫄깃한 맛을 살려낸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 밥알들도 그렇고.」
린드버그 박사가 중얼거렸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닭 껍질은 밥알과 잘 어울렸지만, 오히려 더 느끼한 맛이 있었다. 그것을 잡아줄 만한 다른 요소가 없었던 탓이다.
‘이건 뭔가 다른 반찬을 곁들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를테면 한국식 양념치킨에 곁들이는 짠 무라거나 단무지 같은 것들.
무하마드 왕자는 얼마 전에 진혁이 소개했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이건 버드와이저 한 잔 하면서 먹으면 아주 좋겠는데요.」
반면에 린드버그 박사는 맥주를 생각했다. 페드로 쉐프도 마찬가지였다.
「아사히 한 잔 하고 싶군요.」
라시드도 입맛을 다시며 거들었다.
「저는 콜라요.」
무하마드 왕자가 라시드에게 주의를 주었다.
「심사하는 도중에 물 말고 음료수는 못 마셔.」
그때 페드로 쉐프가 무하마드에게 물었다.
「이 요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쁘지는 않아.」
무하마드 왕자는 이 자의 닭꼬치 요리가 바로 탈락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통닭을 먹기 쉽게 손질했을뿐더러, 굽는 것도 잘 구웠다. 꼬치에 고기를 끼운 다음에 타지 않도록 양념을 얇게 바르며 계속해서 돌리며 구운 모양이었다.
다만, 닭 껍질 오니기리는 굳이 없어도 좋았을 것이었다. 지나치게 느끼했다.
아마 꼬치가 잘 어울릴 수 있는 상큼한 계열의 요리를 곁들였다면 요리로서의 완성도가 더 올라갔을 것이다.
린드버그 박사도 동의했다.
「정향과 생강도 전부 알 마추부스에 들어갔던 향신료죠. 그것을 잘 잡아냈다고 생각하면 뭐.」
「좋아요, 심사를 마칩니다. 제임스 나카무라 씨는 다음 코스로 가세요.」
「감사합니다!」
미국계 일본인인 나카무라 쉐프가 기뻐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는 이제 숙소에서 휴식을 하면서 2차 시험을 기다릴 것이다.
그 다음에는 한참 동안 심사 요리가 등장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간을 너무 길게 잡은 모양이야. 생각보다 맛도 없고…….」
무하마드 왕자는 지루해졌다. 아예 예산 심사를 외부 인사들에게 맡기고 자리를 뜨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취재를 하러 온 방송사와 신문사의 팀들도 막내들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철수한 지 오래였다. 이 요리대회를 전속으로 촬영하는 팀만 계속해서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다.
요리사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페드로 쉐프는 어슬렁거리면서 요리하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오븐 구이들이 거의 완성되어 갈 겁니다. 장유향 숙수님의 요리가 곧 다 되겠는데요?」
페드로가 확인하고 와서 보고했다. 무하마드 왕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어떤 맛일지 전혀 모르겠는데.」
왕자는 장유향의 진흙 오리구이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흙 가마를 사용한 중국 고유의 요리 방식이었다.
「사실 진흙 오리 구이와 이 구이는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그걸 장유향 숙수님이 어떻게 잡아낼지 궁금합니다. 풍기는 향기를 보면…….」
페드로 쉐프가 작은 목소리로 요리 재료들을 읊었다.
「호오.」
무하마드 왕자가 감탄사를 흘렸다. 장유향 숙수는 오리지널 알 마추부스에 어떤 향신료가 들어갔는지 거의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거 기대되는데.」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을 흘긋 보았다. 옆에 준비된 예비용 좌석에 앉은 진혁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나?」
무하마드 왕자가 관심을 보였다. 진혁은 보육 교사가 보내준 동영상과 사진을 살짝 보여주었다.
「제 아들들입니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사진이 아닌 새로운 사진들이었다.
얼짱 각도라고나 할까?
커다란 검은색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렌즈를 바라보는 두 아이가 귀여웠다.
「애들이 자동차는 맘에 든다고 하던가?」
무하마드 왕자가 물었다.
「아직 타고 어딜 나가보지 않았습니다.」
「그 자동차를 타면 세계 어디라도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그러라고 산 거지.」
「확실히 눈에 띄기는 했습니다.」
「멕시코 간다며? 그때 아이들을 데려갈 수도 있을 거고.」
「……출장을 갈 때 아이들을 데려간다라…….」
진혁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나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는 멕시코에 왜 아이들을 데려간단 말인가?
「방탄 차량에 경호원을 스무 명쯤 데려가면 넉넉하지!」
「음…….」
「해외에 출장 갈 때마다 아이들을 두고 다닐 셈인가? 곁에 끼고 다닐 줄 알았는데.」
「으음…….」
「자네가 못 보는 사이에 걸음마를 할 수도 있다고!」
이미 두 아들을 성인까지 키워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자식이 있는 무하마드 왕자가 느긋하게 말했다.
「걸음마는 이미 했지만…….」
진혁은 상상했다.
장남이 첫 허공섭물을 하는 장면을!
그런데 자신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두 번째로 보게 된다면 어떨까.
‘둘째 녀석은 봐도 모를 텐데 말이야.’
지금 장남이 기를 돌리는 거로 봐서는 몇 주 이내로 허공섭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혁이 도움을 준다면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요리 대회에 쫓아다니거나 사업상의 출장을 다녀오거나 하다 보면 장남의 ‘첫 허공섭물’은 아마도 24시간 붙어 있는 차남이 먼저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출장 갈 때 애들하고 보육교사도 데리고 가야겠군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는 육아 핑계를 대면서 집에만 머물지 말고 두바이에도 놀러 와.」
무하마드가 진심을 토해냈다. 진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괜찮은 식재료가 있다면 가겠습니다.」
그는 멕시코에 놀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카카오 농장의 사장을 설득하러 가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휴양을 겸해서 가는 게 아니었나?」
「아닙니다.」
카카오 원두 농장에 교섭을 하러 간다. 이번에 진혁이 맛본 푸드 모빌에 사용한 초콜릿이 바로 이 카카오 원두 농장의 카카오 매스와 카카오 버터를 공급받아 만든 초콜릿이었다.
‘여기 원두를 직접 공급받아서 빈 투 바 초콜릿을 만들면 맛있을 거야.’
빈 투 바(Bean to bar) 초콜릿이란 제조자가 카카오 원두콩을 고르는 것부터 완성품 초콜릿까지 관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초콜릿이다.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어내는 대량 생산품과는 질적으로도 다르며, 제작자가 깊게 관여한다. 카카오의 원산지를 골라야 하고, 그 카카오를 어떤 비율로 얼마나 넣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한 가지 품종만 넣을 것인지- 가공하는 방식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미미 씨는 이제 치즈가 아니라 다른 것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고.’
그가 생각하기에 미미가 치즈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초콜릿이었다. 하지만 살이 찐다고 신경을 쓰니 몸에 좋은 초콜릿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가공된 커버춰 초콜릿은 쓸 수 없다.
진혁은 카카오 콩부터 직접 골라내 설탕을 넣지 않고 직접 초콜릿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미 거래하고 있는 카카오 농장의 카카오 빈을 하나씩 다 맛보았는데 이 멕시코 호르헤스 농장의 빈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민병철은 직접 방문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진혁아. 이 농장 말이야. 카카오 매스랑 버터 공급은 되는데, 직접 농장에 와서 콩을 고르는 건 곤란하다던데? 콩을 사용할 사람이랑 직접 얘기해보고 싶대.”
“그럼 내가 직접 간다고 해 줘. 언제 가면 되는지 물어봐 주고.”
그래서 진혁의 멕시코 출장이 결정된 것이다.
「아기와 함께 가는 멕시코 출장이라…….」
아기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진혁에게 페드로 쉐프가 말했다.
「장유향 숙수님의 요리가 완성된 모양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