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23화 (623/656)

제 623화

외전 17화

대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안내원은 간섭하지 않았다. 통역사는 안내원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번역해 주었다.

“이 오리고기도 맛있지만, 자신이 만든 오리고기 요리가 더 맛있다고 하십니다.”

마리오가 눈알을 굴렸다. 그는 오리고기를 한 입 더 먹어 보았다. 다시 먹어도 맛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쪽의 쌀 요리도 한 수저 떠먹어 보았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밥알들.

이 밥알들이 탱글하니 터져나가며 오리의 지방이 입안에 퍼지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향신료를 적절하게 뿌린 것이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그는 루이스와 함께 오리고기 파이를 만든 적이 있었다. 칠면조 파이를 응용해 오리고기의 부드러운 가슴살을 발라내어 양념하고 저민 다음에 얇게 구운 페이스트리 속에 넣어 부풀렸다.

루이스와 마리오 둘 다 만족했지만, 진혁은 그 오리고기 파이에 85점을 주었다. 오리고기의 기름이 배어 나와 페이스트리를 적셔서 아래쪽이 눅눅해졌다는 이유였다. 조금 더 바삭하게 하면 더 맛있을 거라고 했다.

‘얇고 바삭한 크루아상은 기름을 흡수하면 눅눅해지지만, 쌀은 기름을 흡수하면 탱글탱글하면서 오히려 더 맛있어지네. 오리는 빵보다 밥이랑 더 잘 어울려.’

마리오는 이 대회에 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대거 참여했다고 들었다. 그는 이 무례한 아저씨도 그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저기요, 요알못 아저씨. 이 오리고기는 게임으로 치면 레벨 99에요. 이것보다 더 맛있는 오리고기가 존재할 리가 없는데요.”

마리오가 단언했다.

통역사는 방금 통역해준 것을 후회했다. 장유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눈빛에 귀기가 서렸다.

『아직 자네가 어려서 음식을 많이 먹어보지 못해서 그래. 이 오리고기 요리는 숨김 맛으로 시나몬을 사용했지! 아주 훌륭한 맛이야!』

안내원이 고개를 저었다. 통역사는 이 말을 통역하지 않았다.

‘시나몬?’

하지만 마리오는 단어를 하나 알아들었다. 장유향이 ‘시나몬’이라는 단어는 영어식으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강마리오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여기 계피가 들어있다고? 난 못 느꼈는데.’

그는 다시 한 번 오리고기를 맛보았다.

사프란이 감싸고 있는 노랗고 부드러운 오리의 맛. 그리고 톡 쏘는 후추. 카다멈의 고급스러운 향. 클로브(정향)와 마늘. 커민.

‘어, 정말로 있네.’

모르고 먹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있다고 생각하면서 맛을 보니 확실히 시나몬이 조금 숨어 있었다. 마리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할아버지 혀가 나보다 좋다고?’

미뢰 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퇴화한다. 나이가 들면 미각이 더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마리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사람이 나보다 더 뛰어난 요리사? 말로만 듣던 재야의 고수?’

얼마 전 다시 정주행한 드라마 ‘천마’에 따르면 세상에는 재야의 고수라는 자들이 존재한다. 주인공 ‘천마’ 역시 그 고수 중의 하나였다.

마리오는 자기가 최근에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줄 알았던 동네 천재 남궁소천이 약관이 되기 전에 무림에 뛰어들어 대회에 출전했다가 진정한 천재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마리오는 그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 진혁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진짜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마리오도 제과제빵의 신동으로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유튜브를 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는 그 인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무시했던 대학 대회에 나갔다가 임진혁을 만났다.

‘사람 재킷을 뺏어 입고, 말도 잘 안 듣는 이상한 놈.’

하지만 그 이상한 놈은 제과제빵에는 천재였다. 뭘 어떻게 해도 그 녀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마리오는 좌절했고, 절망했으며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진혁을 만난 것을 계기로 마리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성실하게 노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진혁 못지않은 재야의 고수라고?’

어쩌면 더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진혁은 동갑내기였지만 이 할아버지는 나이가 더 많으니까 실력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마리오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레벨 99 오리고기 요리 먹어보고 싶네요.”

싸울 것처럼 으르렁대고 있던 마리오가 점잖게 말을 꺼내자 통역사가 반갑게 말을 이었다.

『어르신, 어르신의 오리고기 요리를 꼭 먹어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 대회가 끝나면 오라고, 내가 세계 최고의 진흙 오리구이를 대접해 줄 테니까.』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평화로워졌다. 두 사람은 오리고기 시식을 마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 냉장 창고와 냉동 창고는 방송용 포맷을 가져와서 크기만 키워놓은 것 같네.’

이미 다양한 요리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마리오는 창고의 규모에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은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엄청난 양의 식재료야. 이거라면 한 성의 사람들을 전부 배불리 먹일 수도 있겠어!』

‘정말 시골에서 오셨나보다. 엄청 좋아하네.’

마리오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색색의 재료에 놀라 멍하니 서 있는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여기가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후딱후딱 하십셔.”

『어, 음.』

장유향은 기특한 젊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길게 기른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였고, 눈썹은 검었다. 뭐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두르라는 뜻 같았다.

그는 한쪽 벽면에 설치된 시계를 바라보았다. 요리 시간은 24시간에서 시작한 모양이었다. 18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다른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채소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고, 고기를 챙겨가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장유향은 망설이지 않고 가금류가 준비된 코너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눈에 오리를 골라냈다.

『네가 여기에서 제일 튼실하구나!』

깃털을 뽑아내고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한 오리. 그런 생오리에게 말을 거는 장유향을 보고서 마리오는 생각했다.

‘재야의 고수라서 그런가. 저 할아버지도 좀 미친 것 같아.’

그는 미친 할아버지로부터 슬금슬금 거리를 두었다. 시간은 넉넉했다. 마리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금류에 집착할 생각이 없었다.

‘진하게 농축하려면 역시 소고기지.’

그는 사골뼈를 집어 들었다. 육수부터 우려낼 생각이었다. 사골과 도가니, 그리고 소금과 후추만 단출하게 챙겨서 주방으로 갔다.

마리오가 주방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칠면조를 손질하고 있는 루이스 형이 보였고 임진희는 아직 시험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리오는 들통에 물을 붓고 사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늘을 가져와 현대식 주방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마늘을 썰었다.

그러느라 바빠서 마리오는 운동장에 준비되어 있는 특이하게 생긴 구덩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장유향은 달랐다. 그는 흙 가마를 찾아 운동장으로 나갔다가 전혀 다른 형태의 예멘식 오븐을 발견했다.

『이건 내 진흙 구이 가마하고는 전혀 다른데!』

그는 독특한 형태의 오븐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이렇게 해서 구운 거구만.』

유향은 질 좋은 숯을 잔뜩 챙겨왔다. 다행히 다들 인덕션과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어서 이쪽 오븐은 여러 개가 남아있었다. 신이 난 장유향은 오리를 세 마리 더 가져왔다.

『이렇게 된 거 여러 마리를 구워보자고.』

한 명의 응시자가 여러 개의 오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명시적인 규칙은 없다. 장유향은 빠른 손으로 오리 네 마리를 밑간하기 시작했다. 평소 연습할 때에는 스무 마리를 한 번에 구워내기도 했으니, 오븐의 형태가 조금 특이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아니, 지금 이 오븐이 어느 정도로 오리를 구울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여러 마리로 테스트를 해봐야 해.’

그는 예멘식 오븐 다섯 개를 혼자 전부 독점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통역사가 당황해서 안내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사람이 오븐을 여러 개 써도 됩니까?”

“그, 그런 규칙은 없기는 합니다. 보통 하나만 요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준비하려고 하시는 분이 없거든요.”

안내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 * *

무하마드 왕자는 높은 곳에서 그 광경을 전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흐뭇하게 입맛을 다셨다.

「진혁 쉐프의 말대로 요리 대회 컨셉을 바꾸기를 잘했어. 우승 후보는 누가 있지?」

「원래는 조향사 엘레나 크리스토프와 요하네스 존슨이었습니다만 요리를 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두 사람 다 대회 참여를 포기했습니다.」

「그럼 지금은 누가 우승할지 모르는 건가?」

「아무래도 급작스럽게 바뀐 만큼 유명한 요리사들은 많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진흙 오리구이의 명인인 장유향 쉐프가 오셨고요. 특이한 건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여럿 참가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페이스트리 쉐프라면?」

「진혁 쉐프의 지인이기도 한 루이스 강, 마리오 강 형제와 임진희 쉐프입니다.」

「참가자 명단에서 못 봤는데?」

「마지막에 급하게 참가했습니다. 임진혁 쉐프가 부탁해서 대회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요?」

물론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전부 놀고 싶어서 적당히 대회 핑계로 한국에 방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운 일이야. 소소한 선물을 해야겠군. 아흐마드, 어떤가?」

그는 새로운 대회가 마음에 들었다. 궁정 요리사인 아흐마드 사우드 쉬라힐 리가 미소를 지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전부 제 오리고기 요리를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니 기쁩니다.」

그는 평소 무하마드 왕자의 궁정에서 요리를 하느라 바빴다. 이런 식으로 해외에 나와서 대회에서 메뉴를 선정하고, 다인분의 요리를 하고 설비를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새로운 일은 바쁘고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제 오븐을 여러 개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흐마드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음?」

「장유향 쉐프가 아닌가?」

「오리를 다섯 마리나 구우려고 하나 본데?」

페드로 쉐프는 시험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장유향 쉐프가 혼자서 예멘식 오븐을 전부 독점하고 있는데, 이대로 괜찮은지 안내원이 묻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럴까요?」

「장 쉐프는 아주 늦게 나왔어. 필기시험도 늦었고, 시식도 늦었지. 다른 사람들이 예멘식 오븐을 사용하고 싶었다면 벌써 한참 전에 숯을 준비해서 오븐을 달구었을 거야.」

「맞습니다.」

아흐마드가 웃었다.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로 예멘식 오븐만큼의 화력을 만들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게.」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임진혁이었다. 황미미가 그 뒤에 서 있었다.

「덕분에 맛있게 먹었어요.」

미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진혁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황미미가 돌아가기 전에 무하마드 왕자에게 인사를 하러 방문한 것이었다.

미미가 창문 밖을 보며 말했다.

「어, 여기서는 시험장이 다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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