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20화 (620/656)

제 620화

외전 14화

“‘고아원에 가서 입양을 할 수 있는지 절차를 알아봐야겠어.’”

생각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데 비해서 행동력은 좋다.

루이스가 반죽하던 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이야. 함부로 결정하면 좋지 않아.’”

“‘형, 나를 봐.’”

마리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난 아무것도 우습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진희는 강 씨 형제와 같이 있을 때에는 통역사를 동반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둘이서 불어를 하는 거야.’

그녀는 두 사람이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도 공부하기는 했다. 하지만 프랑스어는 이해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주지. 이번에 프린스가 개최하는 미식 평론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하면 애를 데려다가 키우겠어.’”

“‘잠깐만, 그건 이거랑 아무 상관 없잖아.’”

루이스는 정말로 당황했다. 루이스의 표정을 본 임진희는 방금 자신이 저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리, 지금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면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이야기한 거야? 내가 이해한 게 맞아?”

“응.”

“어디 제과제빵대회가 있어?”

“제과제빵 대회 말고, 미식 평론 대회. 진혁 쉐프가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거.”

“한국에서 하는 거?”

“이번에 대회 심사 기준이 바뀌면서 우승 후보들이 대거 포기했다고 하던데.”

“음.”

루이스는 버터를 발라놓은 팬에 수플레 반죽을 퍼 올렸다. 미리 예열해둔 구식 오븐에 수플레 팬을 넣으며 그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눈앞에 서 있는 동생은 어린애가 아니다. 그가 지켜보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소년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다.

“그 미식 평론 대회는 무슨 대회인데? 그냥 평론을 하는 대회야?”

진희가 관심을 보였다. 무하마드 왕자가 이야기를 진혁에게 전해달라고 해서 전해주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리오가 대회에 참석하면 내가 그만큼 빈자리를 메꿔야 하잖아.’

그녀는 대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나도 그 대회에 참석할 수 있어?”

한국에서 개최된다면 더 가고 싶다. 며칠 전에도 한국에 다녀오긴 했지만, 또 가고 싶었다. 김치찌개와 부모님, 그리고 된장국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내내 살던 때에는 해외여행을 부르짖었지만, 외국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니 한국 음식이 고팠다.

“당연히 가려면 갈 수 있지.”

마리오가 대답했다. 루이스의 안색이 나빠졌다.

“잠깐만, 진이랑 너랑 같이 대회에 참석하면 그 일은 누가 하고?”

“루이스 형이 봐줄 수 있잖아.”

“…….”

루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열심히 클릭하다가 이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도 그 대회 참가 신청서 냈어.”

“형은 왜?”

“아직 접수 중이야?”

“이건 어디까지나 발전을 위해서야. 페이스트리 쉐프로서 정체되어 있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도약점이 필요한 거라고.”

“어어어. 형까지 자리를 비우면 푸드 블록 최종 검사는 누가 해.”

루이스는 고개를 숙인 채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부지런히 스마트폰의 키보드 터치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마리오가 옆에서 들여다보니 메일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민병철 사장님이 하면 되지.”

진희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다. 병철 오빠도 계속 푸드 블록을 보고 있었으니까 맛 심사랑 모니터링은 할 수 있지.”

“민 사장님이라면 고객의 입장을 훌륭하게 봐줄 수 있을 거야.”

“내가 이야기할까?”

루이스의 말에 진희가 생긋 웃었다.

“아니, 내가 지금 바로 연락할게.”

민병철은 진희의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 주는 편이었다.

세 사람은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5박 6일간의 한국 여행은 너무나도 크나큰 유혹이었다. 진희는 전화를 걸어 민병철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이번 주에는 공장에 계신다고 했잖아요. 이번에 저와 강 쉐프님들 두 분이 한국의 미식 대회에 참석하고 싶은데요. 그동안만 팩토리 모니터링을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며칠인데?”

“본선까지 진출하면 대충 5박 6일 정도요.”

“대신 돌아오면 밥이라도 한 번 같이 먹자.”

“물론이죠!”

* * *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리오가 팸플릿을 넘기며 물었다.

“그래서 그 대회는 정확히 뭘 한다는 건데?”

루이스가 설명해 주었다.

“이국적인 요리를 먹어본 다음에 그 요리의 가장 매력적인 맛을 살리고,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바꿔서 내놓는 거야.”

“대놓고 베끼라는 건가?”

“그리고 이국적이라는 건 상대적이잖아. 한국 요리가 여기서는 이국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그러니까 뭐가 나올지 모르지. 참가자 중 한국 요리사들이 많으니까 한국 요리는 안 나올걸.”

임진희는 멕시코 요리책을 읽고 있었다. 이제 막 또르띠아와 타코, 화이타의 차이점에 대해서 보고 있는 참이었다. 마리오가 물었다.

“왜 멕시코 요리책을 보고 있는 거야?”

“한국에 외국 요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프랑스 요리는 고급 식당에 많고, 이탈리아 요리는 정말 많아졌거든? 요즘은 베트남이나 태국 요리도 먹기 쉽고.”

“그런데 왜 하필 멕시코야?”

“타코와 부리또는 흔한 듯하면서도 많지 않으니까? 한국에서 하는 대회니까 한국 기준으로 이국적인 요리가 아닐까 했지.”

타코는 요리 치고 자유도가 높았다. 고기와 야채를 적정한 비율로 섞어 소스를 발라 무언가로 감싸기만 하면 된다. 그 무언가는 단단한 타코 칩일 수도 있고, 부드러운 화이타 빵일 수도 있으며 얇은 또르띠야일 수도 있다. 살사 소스나 과카몰레 소스를 얹는 상상을 하며 진희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양고기에 살사랑 과카몰레를 넣고 양배추랑 당근, 옥수수를 잔뜩 넣는 게 좋은데. 도착하면 여러 종류 만들어 봐야지.’

“일리 있는 생각인데.”

루이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루이스가 생각했던 이국적인 음식은 뭔데?”

“일본식 초밥하고 라멘?”

“초밥은 초보자가 만들기에는 너무 어려운 음식인데? 빗자루질만 3년 해야 밥 짓기라도 배울 수 있다며.”

“그건 진짜 오래된 노포들 아닐까? 요즘은 유튜브만 봐도 초밥 만드는 방법은 배울 수 있어.”

마리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푸드 블록 연구를 하면서 기상천외한 요리 재료도 많이 다뤄 봤으니까 이번엔 내가 이길 거야.”

루이스가 반박했다.

“그 연구는 너 혼자 했어? 나도 같이 했다고.”

“하지만 형은 우승해도 입양을 하러 갈 생각도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우승하는 게 맞지.”

“아니, 그 두 개는 전혀 상관이 없잖아.”

“여자애도 남자애도 상관없으니까 제과제빵에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 내 말 듣고는 있는 거냐?”

진희가 멕시코 요리책을 덮고 마리오를 보았다.

“마리오. 진혁이가 아이를 가져서 부러운 거야?”

“……그런가?”

마리오가 창밖의 구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부러운 건가?”

루이스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결혼해서 애가 있잖아. 유키코 쉐프님도 그렇고. 그런데 왜 진혁이만 부러워?”

“유키코 씨는 아들이랑 같이 쿠키를 굽거나 빵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아내가 부러운 게 아니야. 자식이랑 같이 빵을 만드는 게 좋은 거지. 그러면 제일 좋은 것만 하는 게 맞아.”

마리오는 자신의 계획을 줄줄 읊었다. 프랑스는 독신자 입양이 가능한 국가다.

자신은 이미 직장에서 가까운 보육원을 알아봐 두었다. 대회에서 우승하는 대로 돌아와서 독신자 입양 면접을 진행할 거다.

“9개월에서 일 년쯤 걸린대.”

“흠.”

“한국계를 입양하고 싶은데 요즘은 한국 입양을 많이 하지 않아서 수속이 어렵대. 1960년대에는 많았다고 하는데.”

루이스가 이마를 짚었다.

“부부만 입양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법이 내 편이 아니야.”

“나 정도면 훌륭하지, 아암.”

마리오는 한참 동안 자신의 미래 계획을 늘어놓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진희가 킥킥 웃었다.

“라이벌 의식이 이상한 데로 튀었나 봐요.”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말리고 싶은데.”

“아마 면접에서 떨어질 거예요.”

“응?”

“혼자서 일하는 건 괜찮은데,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해외 출장이 많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루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리 조사해 봤어? 어떻게 알아?”

“친구가 독신 입양을 하려고 하다가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거든요. 한국이긴 한데, 프랑스도 비슷할 거예요.”

“그건 그렇지. 아이를 데려와서 혼자 방치하면 안 되니까.”

“독신 입양은 부부 입양보다 더 까다로워요.”

기장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곧 서울에 도착할 모양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네요.”

그녀는 테이블을 올려 걸어두고 에코백에 멕시코 요리 잡지를 집어넣었다.

“한국 숙소는 어디로 잡았어요?”

루이스가 메모장을 보고 말했다.

“리무진 버스라는 걸 타고 호텔로 갈 거야.”

“그럼 저를 데리러 오는 차가 있으니까 함께 데려다 달라고 할게요.”

“고마워. 진희 씨는 배려심이 깊다니까.”

* * *

대회는 경기도 이천의 요리학교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첫날은 토요일이었다.

진희는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다음날 대회장으로 향했다.

‘조금 일찍 왔으면 가족들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하던 임진희는 요리학교 문 앞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장유향 선생님? 저번에 저희 가족들한테 오리구이를 대접해 주셨었죠?”

진흙 오리 구이의 대가, 장유향이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임진희 씨. 반갑습니다.”

“이 대회에 참가하셨네요?”

진희는 조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멕시코 요리책을 가방에 집어넣고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장유향의 통역사가 옆에서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분께서 참가하면 많이 배울 거라고 하셔서요.』

“그분이라면…….”

『주, 아니 임진혁 쉐프님 말입니다.』

장유향은 오리 구이 프랜차이즈 사업에서는 거의 손을 떼다시피 하고 연구에 집중했다. 그리고 진혁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새로운 오리 구이를 새 메뉴로 내놓았다. 한약재를 포함해 다양한 향신료를 아낌없이 넣은 진흙 오리구이는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고 그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하지만 임진혁을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틈틈이 진혁에게 연락을 계속했으나 임진혁은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다며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혁이 ‘너도 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문자를 먼저 보낸 것이다.

장유향은 망설이지 않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 이전에 맛 수련을 함께 하기도 했던 페드로는 대회 운영진이었기 때문에 장유향이 뒤늦게 신청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주군은 어디 계신 거지?’

장유향은 임진희의 뒤를 흘끔흘끔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주, 아니 임진혁 쉐프님은 여기에 오지 않으셨습니까?』

“진혁이는 안 올걸요?”

『!!대회에 참석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장유향은 크게 실망했다. 진희가 설명했다.

“걔는 대회 심사 위원이라서 여기에는 오지 않을 거예요. 심사위원이 대회 참가자들하고 친해 보이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종이 울렸다. 두 사람은 서둘러 요리학교의 교실로 향했다. 진희는 늦게 접수해서 그런지 1-F반 교실이었다. 장유향은 1-A반이었다.

“그럼 시험 잘 보세요.”

『진희 씨도 시험 잘 보시길 바랍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진희는 F반 교실로 향했다.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루이스랑 마리오도 같은 교실이구나.’

진희는 조금 안심했다. 종이 한 번 더 울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입을 열었다.

“예선 시합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분들의 핸드폰부터 수거할 예정입니다. 첫 예선은 필기시험입니다.”

“으잉?”

음식을 맛보고 요리를 할 줄만 알았던 진희가 놀랐다.

시험장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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