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7화
외전 11화
“어떻게 바꾸었습니까?”
진혁이 흥미를 보였다.
“먼저 대회에 출전할 쉐프님들에게 대회에 내보낼 음식의 종류를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다들 기뻐하시더군요.”
당연한 일이다. 진혁이 페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쉐프라면 누구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 하겠죠.”
“예. 단순히 맛을 숨기기 위해 복잡한 맛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편이 더 즐거운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갑자기 메뉴가 바뀌니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대회 일정이 조금 더 미뤄졌습니다.”
“어떤 메뉴로 바뀌었습니까?”
페드로는 진혁에게도 낯선 요리 이름을 줄줄이 댔다.
“알 해리스와 샤와르마, 알 마추부스 등입니다.”
“아랍의 전통요리입니까?”
“예.”
페드로는 이 전통 요리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알 해리스(Al Harees)는 하리사나 하림, 아지라라고 불린다. 아랍 전통 요리로 요리 준비에만 12시간 이상 걸린다.
잘게 부순 밀을 밤 내내 담가두고 아침이 되면 양고기와 양의 꼬리 지방 또는 버터를 넣고 오랜 시간 끓인다. 끓이는 내내 이 양고기와 지방을 뭉개고 부수어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대개 양고기를 사용하며 드물게 닭을 쓴다. 계피와 설탕을 함께 내놓아 간을 해서 먹을 수 있게 하며, 라마단 기간에 자주 먹는다.
“밀은 정미하지 않은, 껍질이 붙어 있는 밀을 씁니다.”
아라비아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카시미리와 잔지바르, 에티오피아에서 모두 같은 요리를 하지만 미묘하게 요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페드로는 아랍 연방국의 방식을 알려 주었다.
“이탈리아식으로 하면 오래 끓인 치킨 리조또 수프쯤 되겠죠. 환자들에게도 아주 좋습니다.”
“흠.”
진혁은 자신이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흥미를 보였다.
“이건 향신료를 조금 빼면 아기들이 먹기에도 좋겠군요.”
“오, 지금 아이가 있으셨죠? 몇 살입니까?”
“이제 한 살이 좀 넘었습니다.”
“한창 귀여울 때군요! 하지만 이제 걷기 시작하면 재앙이 닥칠 겁니다.”
“지금도 잘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임진혁은 아기 사진을 보여 주었다. 또랑또랑한 눈으로 무심하게 앞을 바라보며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남자아이들이었다. 울거나 웃지 않고 무표정한 것이 기묘했다. 눈썹과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동글동글한 뺨도 귀여웠다. 돌 사진을 보고 페드로가 감탄했다.
“아주 귀엽네요. 이 빨갛고 파란 옷도 잘 어울립니다. 한국의 전통 의상이죠?”
“예. 아기들이 100일이 되면 이런 옷을 입고 잔치를 합니다.”
목을 가누고 막 뒤집기를 시작할 나이지만 두 아기는 아주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조숙한 탓이다.
“진혁 쉐프님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더니 많이 변하셨네요. 이렇게 아이 자랑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자랑할만한 귀여운 아이들이네요. 제 조카들도 보여드리죠.”
진혁은 페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나는 이 아이들이 자랑스러워서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거였구나.’
첫째 아들이 처음부터 마냥 귀엽기만 하지는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 기를 모으며 자신을 경계하는 아들이었다.
다행히 혈교나 사파는 아닌 정파 출신의 꽉 막힌 놈이라 아기의 몸으로 부모를 암살할 일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살려두지 못했겠지.’
진혁이 씁쓸하게 생각했다. 자식이 그나마 남궁소천이라 다행이었다.
자신이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놈이니 안심하고 집에 둘 수 있는 것이다.
‘그 남궁소천 녀석이 미미 앞에서는 애써서 어린아이인 척 애교도 부리고 옹알이도 하는 걸 보면 참…….’
‘아아아.’
어설픈 옹알이를 하는 척하면서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기에 웃겼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100일이 되면 백일잔치라는 걸 합니다. 그때 아이가 미래에 뭐가 될지를 보기 위해서 이것저것 상 위에 올려놓죠.”
진혁이 백일잔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오, 아드님들이 뭘 집으셨습니까? 당연히 케이크를 집었겠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백일잔치 때에는 뭘 집어야 좋은가 하고 진혁에게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진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거나 집어도 좋다고 전음을 보냈고, 큰아들은 미미의 눈치를 보며 금괴를 집었다. 미미는 큰아들이 보는 눈이 있다며 좋아했다.
“장남은 금괴를, 차남은 떡을 집었죠.”
반면에 식탐이 있는 둘째는 그냥 백설기를 집어 먹었다. 도끼가 있었다면 도끼를 주웠을 것이라고 나중에 말하긴 했다.
진혁은 둘째가 먹을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그저 뿌듯했다.
페드로가 칭찬했다.
“두 분 다 대성하시겠네요.”
진혁이 미소를 지었다. 이 사진에 대한 추억 역시 있었다.
“아기가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고 이렇게 무표정으로 있기는 어려운데. 어른스러운 아이인가 봐요.”
그 표정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았다.
눈앞에서 밉상스럽게 ‘아버지라고 부르기는 좀.’하고 눈빛을 쏘아 보내던 첫째가 사진사가 오는 순간 근엄한 표정으로 사진기를 노려보았다. 그때까지 미미나 진혁, 그리고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스마트폰으로 아기들 사진을 찍기는 했다. 하지만 찍은 사진을 아이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겠다고 진혁이 설명하자, 장남은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기가 참 얌전하네요.”
사진사가 칭찬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찰칵하고 사진을 찍은 지 한참 지났는데도 두 아기는 계속 가만히 있었다.
초상화를 그리듯이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 한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때도 정말 웃겼는데.’
진혁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미미는 이 사진을 인화해 액자로 육아실에 걸어두었다.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처음 보게 된 아기들은 깜짝 놀랐다. 사진이 선명해서 놀랐고, 자신들이 정말로 그냥 아기라서 또 놀랐다.
임진혁이 아기들을 생각하며 빙긋 미소짓고 있는 사이에 페드로는 두 번째 요리의 설명을 하고 있었다.
“샤와르마(Shawarma)는 양고기나 새끼 양고기를 얇게 썰어 지방을 더해 꼬치에 꽂아 빙글빙글 돌리며 익히는 음식입니다.”
그는 거대한 사진첩을 넘기며 다양한 국가의 샤와르마 모양을 보여주었다.
꼬치가 360도 돌아가면서 고기가 익어가면 다시 얇게 썰어내 야채나 얇은 빵에 더해서 먹는다.
대개 커민과 계피, 파프리카와 카다멈, 정향과 강황을 사용해서 양념한다. 진혁이 말했다.
“이건 케밥이군요?”
페드로가 옆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왕자님 앞에서는 조심해 주십시오. 케밥은 터키식으로 부르는 명칭입니다. 아랍권에서는 샤와르마라고 부릅니다. 터키에서는 케밥이 원조라고 하고, 아랍에서는 샤와르마가 원조라고 해서 좀 예민한 문제입니다.”
아랍권에서는 샤와르마나 슈와마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고기를 잘라서 야채와 함께 얇은 빵에 감싸 먹는 모양이 인사동에서 파는 케밥과 똑같았다.
‘아무리 봐도 케밥인데.’
터키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역삼각형의 꼬치구이를 보며 진혁은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예, 대회를 한국에서 하니까 참가자들 중에 한국인이 많기는 합니다.”
알 해리스의 맛도, 샤와르마의 맛도 대강 상상할 수 있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음식은 알 마추부스입니다.”
알 마추부스.(Al Machboos)
이 아랍 전통의 쌀과 고기 요리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무하마드 왕자가 선정한 요리사의 방법은 쌀을 먼저 넣어 끓이는 것이었다.
“마추부스를 요리하는 방법만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멘식 ‘만디’라는 방법으로 요리를 할 겁니다. 땅을 깊숙이 파고 진흙을 발라 탄두르(Tandoor)라는 오븐을 만들어요. 그래서 그걸로 요리를 합니다.”
예멘 고유의 요리방법인 만디(Mandi)를 듣고서 진혁은 감탄했다.
“중국에도 이 비슷한 요리법이 있습니다. 오리 통구이를 그런 식으로 하죠.”
“그래요?”
페드로가 신기해하면서 참고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런 식인데요.”
“어…… 비슷하지만 다르군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흙 오리 통구이는 오리에 진흙을 발라서 거대한 달걀 모양으로 만든 다음에 땅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 후 위에서 모닥불을 피워 오랜 시간 동안 구워낸다.
하지만 만디는 파낸 구덩이 안에 진흙으로 우물처럼 원통형 공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안에 숯을 놓고 그 위에 양철로 된 냄비 안에 향신료와 쌀, 그리고 물을 넣는다.
쌀 위의 허공, 우물의 두레박이 있을 만한 위치에는 통닭이 꼬치에 꿰인 채로 매달려 있었다. 닭발이 아슬아슬하게 쌀에 닿을락 말락 한 높이였다.
“숯으로 오랜 시간 열을 가하면 이 닭이 밑에서 올라오는 증기로 쪄서 익혀지지요. 동시에 닭이 익으면서 흘러나오는 기름이 쌀을 적셔서 촉촉해지고, 고소하고 부드러워집니다.”
“이건 또 신기한 방법인데요.”
임진혁은 진유향을 떠올렸다. 유향은 몇백 년 동안 다시 태어나며 그때마다 우직하게 한 가지 방식으로 오리를 구워왔다.
하지만 진혁을 다시 만나며, 가마부터 바꾸고 한약재도 써보는 등 오리구이를 맛있게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계속했다.
‘유향에게 이 요리를 먹게 해주면 도움이 되겠는데.’
그는 머릿속으로 알 마추부스라는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다른 방법으로도 요리하기도 합니다. 양파와 당근 등 갖은 야채를 팔팔 끓인 물에 삶아낸 후 쌀을 넣어 끓이고, 쌀이 부드러워진 후에 고기를 넣어 끓이는 방법도 있고요. 또…….”
페드로가 서너 가지 요리법을 더 알려 주었다. 진혁은 흥미롭게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이 제일 좋아 보였다
“그런데 왜 이번에 아랍 요리로 바꾼 겁니까?”
“진혁 쉐프님께서 이미 자주, 많이 먹어본 음식의 경우에는 누구나 자신의 취향이 생긴다고 하셨으니까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희는 크림 파스타를 처음 먹어보았을 때 너무나 맛있다며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여러 크림 파스타 집을 돌아다녀 본 후에는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개발했다.
“나는 크림소스가 눅진눅진하니 듬뿍 들어있고 베이컨과 양파만 넣어서 펜네 면을 곁들인 게 좋아.”
진희가 하던 말을 떠올리며 임진혁이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서 ‘모두에게 똑같이 맛있는’ 음식을 알아보기 위해서 오히려 모두에게 낯선 음식을 고르려고 하신 거군요.”
“예. 한국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일 겁니다. 아랍에서 다시 대회를 할 때는 아예 한식을 내놓을 거라고 하십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것도 재밌겠네요.”
그때 케이크를 전부 먹은 무하마드 왕자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정말로 맛있는 케이크였네. 임진혁 쉐프.”
그가 자그마한 상자를 건네주었다.
“팁이야.”
진혁이 미간을 좁히며 상자를 받아들었다.
“케이크값은 이미 받았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특별한 선물이 필요하지.”
미리 준비했을 것이 분명하다.
진혁은 상자를 열고 차 키를 보았다. 키가 세 개나 들어있었다.
케이크가 맛있건 맛없건 상관없이 이번 기회에 차를 선물하고 싶어서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세 개가 들어있는데요.”
“방탄섬유로 코팅한 람보르기니 SUV야. 특별히 노란색으로 주문했지. 유아용 시트도 추가했어. 원래 애들을 키우려면 차부터 바꾼다며?”
“안 그래도 미미 씨가 그래서 버스를 하나 샀습니다. 아이들과 유모, 경호원까지 다 타려면 차 한 대로는 부족하더군요.”
“그래, 그러니까 세 대를 주는 거지. 셋이 나란히 가면 어느 차에 아이들이 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더 좋아.”
“…….”
무하마드 왕자가 윙크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받아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