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16화 (616/656)

제 616화

외전 10화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인가!”

“당신에게는요.”

무하마드가 호쾌하게 말했다.

“나한테 제일 맛있으면 그게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거지. 그렇지 않은가?”

몇 년 전부터 고대하던 진혁의 케이크.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음식이다.

그는 오늘 저녁에 먹을 초콜릿 케이크의 풍부한 향미를 즐기기 위해서 아침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아침 식사는 평소와 달리 소금을 치지 않은 부드러운 닭고기 수프를 먹었으며, 점심도 일부러 가벼운 샐러드를 드레싱 없이 먹었다. 좋아하는 기름진 음식과 고기를 피했다.

양배추와 파프리카, 그리고 콜리플라워를 꼭꼭 씹어 먹었다. 전부 향이 강하지 않게 살짝 데쳐서 물기를 뺀 채소들이었다.

그리고 식사 2시간 전에 일부러 한 시간 동안 달리기를 했다.

다른 요리사들이 진혁의 훈련 프로그램대로 달리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함께 옆에서 달렸다.

땀을 흘리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미지근한 생수를 마셔 입안을 헹구었다.

‘위대하신 알라께서 나에게 진혁 쉐프를 만나게 하였고 진혁 쉐프는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약속했으니 마땅히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해야지.’

그가 오늘 입고 있는 옷도 특별히 이 식사를 위해서 맞춰 입은 것이었다. 아랍의 귀족 남성들이 공식 석상에서 주로 입는 긴 팔 소매의 겉옷이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옷은 장식 없이 단순한 고급 면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기후 문제로 이제 거의 면을 생산하지 않는데, 왕자의 전속 디자이너가 전 세계에 남아있는 한국산 면을 전부 끌어다가 크림색으로 곱게 염색해 손수 바느질하여 의복을 만들었다.

요약하자면 무하마드 왕자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옆에서 페드로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왕족들은 이제나저제나 콧대가 높았다.

그 둘의 기대감에 보답하는 듯 진혁은 과장된 태도로 가져온 케이크의 덮개를 벗겼다.

층층이 쌓아 올려진 초콜릿 주사위와 바닐라 크림색의 칩스.

그리고 그 위에 끼얹어진 연한 상앗빛의 크림.

‘내가 보낸 우리 왕궁의 보물들 사진은 참고하지 않은 건가?’

무하마드 왕자는 멀뚱멀뚱 그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생각외로 모양이 평범하여 그는 살짝 실망했다.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의 기대감이 사그라지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챘다.

“어떤 모양을 기대하셨습니까?”

“화려한 유리병이나 항아리 모양 케이크일 줄 알았지. 이건 그냥 브라우니 주사위 아닌가.”

“요즘 마카오에 자주 가신다면서요?”

무하마드 왕자가 싱긋 웃었다.

“아, 나한테 행운을 빌어주려고 하는 거였나?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는데.”

짙은 눈썹이 환하게 풀어지는 것과 동시에 두꺼운 입술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걸 보기만 해도 행운이 솟구칠 것 같네. 고맙군.”

지금 눈앞에 있는 30cm 높이의 주사위 탑이 진혁이 자신에게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구운 것이라 생각하니 유쾌해졌다.

“하지만 마카오는 이제 안 갈 거야. 거기 투자를 조금 했기 때문에 특별히 가준 거라서.”

“아.”

임진혁은 페드로를 바라보았다.

왕자님이 최근 도박을 즐기셔서 걱정된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한 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진혁 쉐프님!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페드로가 오해한 모양이었다.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을 마카오 카지노에 초대하기도 했다. 자신이 카지노에 드나든다는 것 정도는 진혁도 원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왕자가 오해할 일은 없었다.

“카지노 식당 쉐프가 꽤나 요리를 잘해서 몇 번 더 갔는데, 쓸데없이 자극적이라서 먹다 보니 질리더라고. 이제 다시 집에서 먹어야지.”

페드로가 감격한 눈빛으로 무하마드 왕자를 보았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맨날 밖에서 먹고 들어와서 걱정했구만?’

훌륭한 요리를 매일같이 준비하지만, 외식을 하고 들어오니 걱정했나 보다.

진혁은 그 요리사의 마음에 공감했다.

황미미도 처음에는 매일매일 치즈 케이크를 눈앞에서 먹어 주었는데, 요즘은 먹지 않는 날이 있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다음날 먹겠다고 하면서 치즈 케이크를 먹지 않고 보관해 두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진혁은 어쩐지 조금 실망하게 되었다.

“크림과 케이크를 같이 먹는 게 좋은가, 아니면 따로 먹는 게 좋은가?”

무하마드 왕자는 아직도 케이크를 먹지 않고 있었다.

그는 포크를 집어 들었고,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진득하게 코로 냄새를 최대한 깊이 들이마시려 했다.

“이 크림은 뭐지? 초콜릿은 아닌데 비슷한 향기가 나.”

왕자는 모카 크림에 코를 갖다 대고서 킁킁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맛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자네가 잘라 주겠지?”

“예.”

진혁은 빵칼을 들어 올렸다.

페드로가 접시 세 개를 내어놓았다. 임진혁이 무하마드 왕자를 힐긋 보았다.

‘케이크를 혼자 먹을 줄 알았는데?’

진혁의 마음을 읽었는지 무하마드 왕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함께 먹고 나서 맛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니까. 같이 먹지 않겠나?”

진혁은 미간을 좁혔다. 무하마드 왕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라면 혼자서 먹고 추가로 주문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도 남을만한 성격이었다.

‘이게 정말 맛없어 보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확실히 가장자리를 살짝 다듬은 다갈색 주사위 모양의 케이크는 보통 브라우니 케이크 같았다.

이전에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 때 만들었던 웨딩 케이크처럼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수수해 보였다. 진혁은 싱긋 웃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은수저를 들어 올려 상앗빛 모카 크림을 끼얹은 초콜릿 케이크를 한술 떴다.

“이건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으니.”

크림과 케이크를 동시에 먹어볼 요량이었다. 그는 입을 열어 케이크를 한입 물었다.

제일 먼저 느껴진 것은 옅은 커피의 향기였다. 어딘가 익숙한 커피의 향 후에는 촉촉하고 진한 초콜릿의 맛이 입안을 완전히 점령했다. 뇌까지 두들길 정도로 폭력적인 맛이었다.

“음!”

진하고 더 진하다. 부들부들하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 브라우니의 맛을 느끼고 있는데 무언가가 딱딱하니 씹혔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농축된 진한 초콜릿 맛이 팡 하고 터지고 단단한 것이 씹혔다.

호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몬드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동그란 형태를 보면 땅콩인지도 모른다. 딱 하고 씹으니 견과류의 작은 알갱이들이 입안에서 퍼졌다.

이 딱딱한 견과류 알갱이들은 보들보들하니 부드럽게 녹기만 하던 다크 초콜릿 케이크의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

무하마드 왕자는 눈을 감았다. 이 맛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서는 시력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방금 먹었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입안에서 혀를 굴렸다.

입천장과 앞니 뒤, 그리고 어금니까지 윗니와 아랫니를 전부 훑었다. 모카 크림의 씁쓸한 커피 향이 잔재하여 뒷맛에 남았다.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수수한 모양 속에 숨어있는 진정한 보물이라. 아주 훌륭해.”

무하마드 왕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초콜릿 브라우니 주사위를 맛보았으니 다음 차례는 칩이다.

“그리고 이건.”

그리핀 모양이 모카 크림 위에 모양처럼 찍혀 있는 칩.

그 아래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기대감으로 손끝이 살짝 떨렸다.

무하마드 왕자는 손을 뻗어 동전을 하나 쥐었다. 그리고 동전 모양의 칩을 부러뜨렸다.

그러자 마치 코팅처럼 얇게 발려져 있었던 모카 크림이 주륵 흘러내리며 안쪽에 들어있던 노란 케이크가 드러났다. 손끝에는 크림이 묻었다.

겉모양은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바닐라 쉬폰 케이크였다. 감촉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맛은 다르겠지.’

무하마드 왕자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바닐라 쉬폰 케이크를 살짝 핥았다.

“음.”

바닐라빈의 향이 훅 하고 풍겨왔다. 방금 전에 진하디진한 초콜릿을 먹어 느끼기 힘들어야 할 텐데 놀라운 일이었다.

강렬한 바닐라 향의 존재감을 느끼며 그는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오오오.”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바닐라 쉬폰 케이크와 모카 크림의 조화는 훌륭했다. 마치 쉬폰 케이크를 커피에 적셔 먹는 것처럼 잘 어울렸다.

“이 코팅은 단단해 보였는데, 손끝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네.”

“체온에 닿으면 녹아내리도록 처리를 했으니까요.”

“처리?”

“제 비결입니다.”

진혁이 웃었다. 반죽할 때 스며들어 가는 진기와 구울 때 집어넣는 진기의 양을 고려해 보면 이 케이크는 이미 영단(靈丹)이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미각과 후각만이 아니라 인간의 육감을 전부 자극하며, 두뇌의 회전을 빠르게 하고 육체에 활기를 가져다준다.

먹기만 해도 수명이 늘어나는 음식이니 먹으면서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활력이 솟구치면서 케이크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게 되지.’

그는 계속해서 물엿을 만들어 전 세계의 푸드 블록 공장에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먹고 있는 것을 보니 이건 또 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역시 케이크를 만드는 게 좋아.’

그리고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먹는 사람을 보는 것이 좋다.

“잘 드시니 좋군요.”

진혁이 웃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브라우니 초콜릿 케이크를 먹느라 바빴다.

페드로 쉐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포크를 집어 들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네를 위한 케이크는 내가 따로 주문을 하겠네.”

“알겠습니다, 왕자님.”

페드로 쉐프는 다시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혁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왕자님은 케이크에 만족하신다.’

페드로는 마치 자신이 케이크를 만든 것처럼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저 녀석도 많이 변했어.’

처음에는 무하마드 왕자라는 VIP 고객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던 이탈리아인이었는데, 지금은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미각 훈련을 거치고 나서 진혁을 완전히 인정하게 된 것이다. 무하마드 왕자도 변했고 페드로 쉐프도 변했다. 현대에 돌아온 진혁을 만나서 변한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다.

진혁 자신도 변했지만 다른 이들도 변했다. 이럴 때마다 진혁은 기시감이 들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거야.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그는 장남 놈이 어서 빨리 이 사회에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애써 억제했다. 그것은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지 진혁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저쪽 방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페드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혼자서 거대한 케이크의 탑을 먹어치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특히 무하마드 왕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케이크에 탐닉하는 시간은 꽤나 길 것이다. 페드로는 경험상 대략 30분 정도로 예상했다.

그는 진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진혁은 말없이 무하마드 왕자를 지켜보았다.

페드로는 그런 진혁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진혁 쉐프님이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미식 평론 대회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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