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15화 (615/656)

제 615화

외전 9화

『조금 전까지는 잘 불렀잖아. 왜 또 아버지 자격이 없다는 거야?』

진혁은 투덜거리면서 케이크를 마저 장식했다.

진한 브라우니 케이크는 주먹만 한 정육면체 크기였다.

그 안에는 초콜릿으로 코팅된 견과류들이 콕콕 박혀 들어있었다.

호두와 피스타치오, 아몬드 가루를 각자 따로 동글동글하게 뭉치고 그 겉면을 새까만 다크 초콜릿으로 아주 얇게 코팅했다.

브라우니 케이크 안에 박혀있는 견과류들은 전부 무하마드 왕자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데코레이션은 단순했다.

하얗게 편 썰어둔 아몬드를 둥글게 잘라내, 동글동글한 원판들을 케이크의 육각 표면에 박아넣었다. 점성을 더한 물엿은 이럴 때 효과가 좋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면에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박혀 있으니 이제야 주사위 같아 보였다.

“좋아.”

초콜릿 브라우니 주사위 여섯 개가 바닥에 놓였고 그 위에는 네 개, 또 그 위에는 세 개를 놓았다.

‘이번에 마카오에서 많이 잃었다지?’

무하마드 왕자는 돈이 많았다.

그는 본래 도박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축구 구단의 승리에 거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소개받은 친구와 함께 마카오에서 룰렛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10억 정도 잃었다고 들었다.

물론 도박으로 몇억 정도를 잃어도 그의 재산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하지만 페드로는 무하마드 왕자가 도박에 점점 더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을 걱정했고, 진혁도 무하마드 왕자가 도박을 그만두기를 원했다.

‘미약한 암시라도 걸어 줄까.’

하지만 그는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암시를 걸었다가 큰코다친 적이 있었다.

‘타르트는 잘 팔고 있는지 모르겠군.’

진혁이 이탈한 후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완전히 망했다.

타르트 가게 부부는 악플에 시달리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에는 소식을 들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종종 거제도에 낚시를 하러 갔고, 낚시 가게 주인의 소개를 받아 타르트 가게 주인 부부와 친해졌다.

‘가게 이름을 바꾸고 이사를 한 다음에 조금씩 소량 판매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혁의 아버지가 몇 가지를 더 가르쳐 주었고, 단체 판매하는 루트를 뚫어서 입에 풀칠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혁이 관심이 있으면 같이 놀러 가자고 아버지가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혁은 육아를 하느라 바빴고 이미 타르트 가게 부부에 대해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절했다.

생각을 멈춘 진혁은 바닐라 쉬폰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깎아냈다.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는 정해져 있었다. 왕이 비서가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무하마드 왕자님이 방문하실만한 카지노는 마카오에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초대 손님들만 방문할 수 있는 곳이죠.”

“그곳의 칩 모양을 알 수 있습니까?”

“아주 쉬운 일입니다. 로비 입구에 카지노의 칩 모양을 쌓아 만든 거대한 탑이 있고 이곳이 관광 명소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보여드리면 될까요?”

“확대해서 한 장만 출력해 주시죠.”

1만 달러짜리 칩은 그리핀을 돋을새김으로 새긴 동전 모양이었다.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의 갈기와 몸 그리고 앞발을 가진 환상 속의 짐승이다.

그만큼 쉬폰 케이크를 깎아서 새기기에는 어려운 생김새였다.

특히나 갈기의 털 모양과 깃털이 까다로웠다.

‘푸슬푸슬 떨어지는데.’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리더니 버터와 우유가 뛰쳐나왔다.

종이 포장지를 훌훌 벗어내고 허공에 떠오른 버터 맞은편에서 입구를 연 우유가 하늘을 향해서 솟구쳤다.

녹아내린 우유와 버터가 서로 합쳐지며 빙글빙글 돌았다.

아름답고 우아한 광경이었다.

『네 녀석은 진짜로 빵 만들기에 진심이군.』

장남 책이 건방지게 말을 붙였다.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는 아버지라고 잘 부르더니 왜 갑자기 네 녀석이야.』

녹인 버터와 우유가 섞이자 색깔이 변했다.

버터의 노란색은 연해지고 우유의 흰색은 노랗게 물든 것이다.

연노랑 폭풍이 휘몰아치는 광경을 보며 차남이 꺄르륵 손을 내밀었다.

『저기 함부로 손 내미는 거 아니다, 다쳐.』

장남이 차남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생은 잘 돌보네.’

진혁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건 뭐하는 거야?』

『헤비 크림(Heavy cream)을 만들기 위해서 버터와 우유를 섞는 과정이다.』

폭발적인 강기의 흐름이 지나가고 나자 걸쭉한 상아색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려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겼다.

『그 헤비 크림이란 건 일반인들은 먹지도 못하겠군…….』

이렇게 강력한 무공의 소유자가 강기를 통해서 휘저어야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면 일반인들은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그걸 뭐에 쓸 건데?』

『이렇게.』

낯익은 향기가 훅하고 풍겼다.

장남은 그 향기를 알아보았다.

『이건 서역에서 온 흑차잖아. 네가 환장한다던.』

『알고 있었냐?』

『정보원이 유능해서.』

『흠.』

천마가 흑차를 즐겨 마신다는 것은 일월신교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진혁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어디까지나 신교 내에서 알려진 사실이지 정파에까지 흘러 들어갈 만 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정보가 샌 모양인데…….’

정보는 책사가 담당한다. 그러니 이 경우는 광안마를 족쳐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두 번이나 죽었고, 진혁은 족칠 사람이 없었다.

곱게 갈아내어 빻은 진한 칠레산 커피 가루에 방금 만든 헤비 크림과 에티오피아 산 다크 초콜릿을 섞었다.

그 결과 산뜻한 연노란색 모카 크림이 만들어졌다.

진혁은 이 크림을 브라우니 케이크와 바닐라 쉬폰 케이크 칩 위에 흩뿌렸다.

정교한 계산하에 뿌려진 크림.

이 크림이 굳어지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진혁은 따로 남겨두었던 브라우니 케이크와 바닐라빈 케이크를 조그맣게 잘랐다.

손톱 크기 정도로 덜어낸 모카 크림을 콕 찍어서 장식했다.

『먹어 볼래?』

그리고 장남에게 내밀었다.

『음.』

장남이 손을 뻗었다. 달콤씁쓸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눈앞에서 만드는 광경을 지켜보았으니 독이 들어있을 리는 없었다.

‘맛있겠지?’

진기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음식이니 맛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공청석유만큼은 아니라도 소림사의 대환단만큼은 하지 않을까?

달각-

문이 열리고 황미미가 들어왔다.

그녀는 깔끔한 은백색 새틴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의복으로 미루어보건대 비즈니스 미팅에서 갓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아, 아기들은 아직 초콜릿 먹으면 안 돼요.”

“그래요?”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거둬들였다.

장남의 동공이 흔들렸다.

『……!!』

방금 전까지 주려고 했는데 왜 지금은 안 된다는 건가.

장남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뻗었다.

진기를 담아 금나수법을 사용해 케이크에 접근해오는 손길!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 손길을 튕겨내고 케이크를 자기 입에 넣었다.

“음, 잘 됐군요. 어울려요.”

진혁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에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을 보며 미미가 입을 열었다.

“이가 나기 전부터 단 걸 먹어버릇하면 다른 건 아예 먹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달콤한 간식류를 먹는 건 초등학교 입학 이후가 낫대요.”

“그래요?”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보통은 유치원 등에서 간식으로 가공식품을 접한다.

모든 아이들에게 초콜릿 과자를 나누어 주는데 가족의 방침이 달라서 한 아이만 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친구들은 먹는데 자기만 먹지 못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황미미와 진혁에게 있어서 그런 문제는 없었다.

“세 살이 되면 제주도의 국제유치원에 입학하게 될 거예요.”

“빠르네요?”

“지금 짓기 시작했으니까 아이들이 두 살 반이 되기 전에는 다 지을 수 있어요.”

미미는 이미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다국어 유치원을 설립했다.

지금은 그 건설 건 때문에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원장이 초콜릿이나 과자 등의 가공식품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방침으로 한다면 아이들은 정말로 학령기까지 달콤한 간식을 먹지 못하리라.

“음, 그러면 애들이 가져온 푸드 블록부터 차단했어야 했을 텐데요? 거기에 초콜릿도 있었는데.”

진혁은 장남을 힐긋 보았다.

‘벌써 단전에 쌓은 내기만으로도 일류에 달했는데 초콜릿 따위를 먹는다고 해서 건강이 나빠질 리는 없지.’

미미가 미간을 좁혔다.

“아이들이 먹어도 괜찮은 음식들로 푸드 블록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요. 거기에 초콜릿이 들어있었나요?”

“저번에 동전 모양 모빌.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나나나 사과, 쌀이라면 모를까 지금 나이에 초콜릿은 너무 일러요. 그 모빌은 좀 더 나이 많은 다른 아이들에게 기증하거나 해야겠어요.”

미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뒤에 서 있었던 왕 비서에게 지시했다.

“강 마리오와 루이스 쉐프님에게 연락을 취해서, 음식 재료 명단을 받으세요.”

“어떤 재료를 뺄까요?”

“초콜릿과 설탕이 들어있는 것들은 전부 빼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진혁은 장남을 힐긋 바라보았다. 장남은 조그마한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자그마한 손을 내뻗고 있었다.

‘한 입 정도는 줘도 될 것 같은데. 얘는 이미 초콜릿 맛을 알 텐데…….’

이전에 모빌 동전을 먹었으니 충분히 맛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육아에 있어서 미미의 의견을 중시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진희도 육아는 황미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그렇게 하죠.”

미미도 장남을 보았다.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요람에서 기어 나와 초콜릿 케이크를 향해 걸어가는 장남을.

“이제 아주 잘 걷네요?”

미미가 기뻐했다. 큰아들은 흔들거림도 없이 아주 똑바로 걷고 있었다.

‘아, 이건 삼재보법이네.’

임진혁은 장남이 걷고 있는 방식을 알아보았다.

장남은 샘플로 담아둔 초콜릿 케이크를 향해서 직진했다.

미미는 아무렇지 않게 장남을 안아 올렸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간식들은 괜찮아요. 애들은 아직 우유 알레르기는 없으니까. 푸딩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푸딩에는 설탕 들어갑니다.”

“수플레는요?”

“수플레도요.”

“음.”

미미는 페이스트리 쉐프의 아내였지만 직접 제과제빵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 다른 간식 이름을 댔다.

“슈크림 정도는.”

“거기도 설탕이 들어갑니다.”

미미가 방긋 웃었다. 그녀는 더 이상 간식 이름을 대봤자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광고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들 입맛에도 맞고 건강에도 좋은 간식을 진혁 씨가 만들어 주시면 되겠어요.”

“옛날에 이유식 만든 것들이 있는데요.”

미미는 눈치 없는 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초콜릿 향은 나고 초콜릿 맛은 나지만 초콜릿은 아닌 거로 만들어 주면 우리 책이가 아주 좋아할 거예요.”

“…….”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냥 주지 않으면 될 일이지, 대체할만한 걸 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미미가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은 이전에 치즈 케이크 말고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가 대답했다.

“한번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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