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11화 (611/656)

제 611화

외전 5화

『기를 담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그렇지. 유(流)에 강(强)을 담으니 세상 그 어느 자가 당할 수 있을까!』

첫째는 동생에게 자신이 아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생에게 단순히 몸을 가누는 정도만 가르쳐 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초보적인 삼재보법을 곧잘 따라 했다.

기억이 날아갔다고 해도 여태까지 축기하여 단전이 튼실하고 선천진기가 활성화된 상황이니 어린아이답게 금방 실력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이 녀석 아주 보법의 달인이야.』

가르치는 대로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이 천재가 아니겠냐며 장남은 아주 신나 있었다.

『대소변도 가리고 보법도 할 줄 알고. 이제는 투척도 배웠지. 내가 대제자 녀석에게 보법을 처음 가르치려고 시도했을 때가 네 살이었는데 그때 애가 울면서 싫다고 했어. 일곱 살쯤 됐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지. 그런데 얘는 벌써부터 잘 따라 한다고! 지금 보법을 시작할 수 있으면, 다섯 살이면 손에 검을 쥘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열다섯이 되기 전에 천하를 오시-,』

딱.

임진혁이 장남의 이마를 엄지손가락으로 튕겼다. 장남이 억울해하며 성질을 냈다.

『내가 가문의 비전을 전수해 줬으면 고마워해야지, 왜 때려!』

『무공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니까!』

진혁은 답답했다.

진혁이 참다못해 소리 내어 말했다.

『몇 번을 말했어? 이 시대에 강력한 무공은 필요 없어.』

『강력한 무공이 필요하지 않다면 너는 왜 지금 절대자의 경지에 닿아 있는데? 화경은 아득히 넘은 것 같다만?』

장남이 노려보았다. 진혁이 사실을 말했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경지였다!』

『케이크가 뭔데. 공성 병기 같은 건가?』

『전에도 보여주지 않았나?! 부드러운 크림을 빵에 얹어서 만든 물건이다!』

『그 현란한 그림말인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밀가루를 반죽해 먹을 것을 구워내는데 화경을 넘어선, 극마의 경지가 왜 필요해! 네 말이 맞는다면 황궁의 숙수는 전부 무공 달인이게! 이 자칭 아버지 놈아!』

『자칭 아니다, 이 녀석아!』

진혁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는 장남과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일 년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밀가루 반죽을 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어머니 앞에서는 평범하게 굴겠다고 약속도 했다.

동생 돌보기도 하겠다고 동의했고, 진혁이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열심히 동생을 돌보았다. 혈와수 놈이 기억을 잃고 나서는 정말 친동생처럼 돌보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진혁과는 생각이 달랐다.

‘이놈 기억도 지워 버려야 하나.’

진혁은 순간 갈등했다.

기억을 지우는 이 형벌은 일월신교에서 자실(自失)형이라 불렸다.

한 인간의 자아(自我)를 말살해 버리는 이 일은 일월신교에서도 좀처럼 내려지지 않는 형벌이다. 대개 단전을 폐쇄하면서 시행한다.

성인의 몸에서 기억을 잃은 자는 배고픔을 느끼나 어떻게 밥을 찾아내어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며 대소변을 가릴 줄도 모른다.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다.

이 형벌은 대개 교주가 되지 못한 교주의 혈족들, 반역의 뜻을 보인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렇게 기억과 내공을 잃은 이들은 교인들에게 전시된다.

무공을 폐하고 기억까지 잃은 자들을 모시고 새로운 교주를 수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없다.

진혁은 장남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맘 같아서는 아주 딱밤을 백 대는 때려 주고 싶었다.

‘……이놈 기억도 날려 버리고 싶다.’

진혁은 남궁소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이 남궁가의 맥을 되살려 검법과 심법을 후예에게 가르치겠다는 사명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파 놈들은 다 그랬다. 꽉 막힌 고집불통이다.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일반인을 넷이나 다치게 한 게 좋은 일이야? 잘했어?』

『……명이도 사람들을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자기도 놀라서 울더라고.』

장남이 약간 풀이 죽었다.

진혁은 잠시 아이들을 둘만 두고서 복도로 나왔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웬일이냐, 진혁아?”

아버지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진혁은 조언을 구했다.

“아버지. 제가 말을 안 들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글쎄다, 네가 하도 알아서도 잘 해서 말이지. 손이 안 가는 애였어.”

“군대 가기 전에요.”

아버지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그때는 말을 안 들었지, 고집도 지독하게 센 주제에 일은 안 하고 게을렀지. 내 일을 돕겠다고 전문대에 진학해놓고선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반죽도 제대로 못 하고. 돈을 아주 똥통에 갖다 버렸지?”

“……똥통은 너무하잖아요.”

“그래. 그건 왜?”

“애가 말을 안 들어서요.”

아버지가 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파하하하핫! 진혁아, 걔들은 이제 겨우 한국 나이로 두 살이야. 애들이 뭘 말을 안 듣는다는 거야.”

“…….”

진혁은 억울했다. 장남은 두 살이 아니었다. 이미 성인이다. 힘도 셌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버지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야 애들이 원하는 걸 그냥 다 하게 해줄 수는 없지. 위험하니까. 그런 고민은 애들이 사춘기나 됐을 때 하는 거지.”

그는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애들이 사춘기라고 치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위험한 것만 아니면 하고 싶은 대로 해 줘.”

“!”

“아무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어. 금쪽같은 내 자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자기가 알아서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실수도 하고 상처도 입고 그러면서 자라고, 배우는 거야.”

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타이르는 듯한 어조였다.

“그래. 몸조심하고. 새아기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

“예.”

전화를 끊고 나서 진혁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조언은 전부 맞는 말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적용할 수가 없었다.

진혁은 자신이 아는 또 다른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쿄 지사를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유키코 쉐프.

한때는 함께 케이크 위치를 개발하는데 열과 성을 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이를 키우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서울과 도쿄는 시차가 없기에 유키코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 쉐프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유키코 씨.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키코의 목소리 너머로 소년이 꺄르륵 거리며 어머니에게 장난을 치는 모양이었다.

“어머, 웬일로 안부 인사부터 하시네요. 회사일 때문에 전화하신 거지요?”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회사일 때문에 전화한 것이었다면 이 시간에 이 루트로 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용건만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있었나?’

그는 새삼스럽게 반성했다.

“저는 요즘 집에서 애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드님이 이제 초등학생이시죠. 키우시면서 힘드시진 않습니까?”

진혁의 말에 유키코 쉐프가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계속해서 케이크 아이디어도 내시고, 따로 개인 주문도 받고 계시잖아요? 이번에는 무하마드 왕자님 케이크 만드신다고도 들었어요.”

“누가 알려줬습니까?”

“무하마드 왕자님 트위터에서 봤어요.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자랑하고 계시던데요? 저도 궁금하네요.”

전화기 너머로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케이크는 무하마드 왕자에게 제일 맛있는 거라서요. 유키코 쉐프님에게 제일 맛있는 맛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굉장히 맛있을걸요.”

대화는 진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답답해진 임진혁은 유키코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아이를 키우시면서 어떻게 가르치고 계십니까? 훈육은 어떻게 하시나요.”

“훈육이라니, 혹시 때리세요?”

“미미 씨는 체벌은 절대 안 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때리고 싶습니다. 적당히 벌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요.”

체념 섞인 말에 유키코가 웃음 지었다.

“벌은 그렇다 치고, 저희 집 애는 보면서 배워요.”

“보면서요?”

“애들은 하얀 도화지 같아서 제가 하는 걸 다 보고 따라 해요. 자기 성격이 분명히 있는데, 제가 하는 말버릇이나 습관, 사소한 동작 같은 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저희 신랑이 문에 엄지발가락을 찧으면 욕설을 하는데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얼마나 곤란했다고요.”

“알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키코와의 통화를 마치고 진혁은 결심을 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줘야겠다.’

현재 이 시대에서는 무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자신은 아들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것.

그는 두 가지 사실을 납득시키고 싶었다.

그때 미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계속 통화 중이시던데요.”

“아. 이제 끝났습니다.”

“지금 집에 거의 다 왔어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중국 출장을 가 있었던 미미는 저택의 유리창 파손 소식을 듣고 바로 귀국한 모양이었다.

* * *

진혁은 미미와 함께 CCTV 화면을 확인했다. 미미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았다는 데에는 안심했지만, 다른 직원들이 다친 것에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 두 사람은 중용해도 좋겠네요.”

“예.”

유리가 깨지는 순간 이낙호와 엘리엇이 각각 장남과 차남을 몸으로 감싸는 것이 보였다.

진혁은 호신강기를 상시 운용하고 있는 두 아기는 유리 조각을 맞아도 튕겨낼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보호받을 필요는 없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아이를 우선으로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장남에 대해서는 언제 알려 주실 생각이었나요.”

“언제라니요?”

진혁이 말을 더듬었다.

“CCTV를 보면 진혁 씨와 능숙하게 대화를 하던데요. 단순한 옹알이 수준이 아니라 깊은 대화를요.”

“…….”

미미의 앞에서는 항상 행동을 조심했다.

하지만 방 안에 설치된 CCTV 앞에서 대화를 조심하지는 않았다. 익숙해 져버린 것이다.

미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할아버지께서 다시 태어나셔서 이름을 그렇게 명…….”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진혁이 흥분하여 부정했다.

“그럼 누군가요?”

미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혈도객 님?”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닙니다. 말씀하셔도 모르실 겁니다.”

“어쨌거나 성인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거군요.”

“둘째는 아닙니다.”

미미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겠어요.”

“교육요?”

“황 그룹을 물려받으려면 외국어부터 시작해야 해요. 저도 다섯 살 때부터 외국어 교육을 받았어요. 다른 건 몰라도 발음 교정은 어린 시절에 하는 것이 좋거든요.”

진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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