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04화 (604/656)

제 604화

“호랑이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어린 짐승은 결국 잡아먹히게 마련이니까요.”

“….”

진혁이 미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마음껏 두려워하고 피해도 괜찮습니다.”

미미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서 정처 없이 테마파크 안을 걸었다. 30분쯤 침묵이 계속되고, 미미가 점점 더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혁이 자동차를 불렀다.

『자택으로 돌아가지요.』

차 안에서도 미미는 내내 조용했다. 심장 박동이 일정한 것을 보면 우울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에 깊이 잠긴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결혼한 후 함께 보낸 시간을 전부 합쳐도 총 두 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항상 진혁을 우선으로 두며 배려해왔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먼저 말하기보다 진혁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를 열어 들으며 양처(良妻)의 역할을 해 왔다. 미미가 이런 식으로 침묵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진혁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그저 그 옆자리에 있었다. 미미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지.’

누군가 본다면 두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으며 미미는 사색에 잠겨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뜰 무렵, 한참이나 지나서 미미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돌파해야 하고, 절대로 도망치면 안 된다고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결혼식을 올리던 당시에 갑자기 해일이 닥쳐 왔죠.”

“예? 그때 얘기는 지금 갑자기 왜,”

“인간이 해일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당연히 아니에요. 하지만….”

미미가 말하려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 역시 연기를 갓 시작한 어린 배우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결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그녀는 그 어떤 도전도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피할 생각부터 하면 맞설 수 없으니까요.”

“해일이 밀려올 것을 한 시간 전에 예측한다면 사람들을 피난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일 년 전에 알 수 있다면 테트라포드 방파제를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오 년 전에 안다면 그 주변의 주민들에게 재해 대비 피난 교육을 시키며 좀 더 안정적인 방파제를 지을 수 있겠지요. 맨몸으로 파도를 무릅쓰고 홀로 외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무언가와 맞설 때는 그에 적절한 대처 방법이 필요합니다.”

미미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가 분한 듯이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무섭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탈 수 있었던 거구요.”

“제가 함께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모르시겠어요? 제가 정말로 무서웠다면 사마귀 앞의 무당벌레처럼 굳어서 아예 타지도 못했을 거예요. 같이 타자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거구요. 다음번에도 또 탈 수 있어요.”

진혁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했다.

“타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번에 도망치면 다음에 또 도망치게 될 테니까요. 한 번이라도 달아난다는 선택을 하면 안 돼요.”

“돌진하기만 하는 군대는 금방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 패배하게 됩니다. 자신이 부하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분석해 보세요.”

미미가 한 일자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진혁이 미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제가 아버지 곁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만났던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 애는 어렸을 때 크게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미미가 눈을 뜨고 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진혁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아이보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더 불을 무서워했습니다. 아이가 불에 또다시 다칠까 봐, 절대로 불에 접할 수 없도록 집안 환경 자체를 바꿔 놓았더군요. 그렇지만 그 애는 빵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빵을요?”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지요. 그래서 저와 함께 방과 후에 주방에서 빵을 구웠습니다. 의외로 꽤 잘 굽더군요.”

“……무서워하지 않던가요?”

“오븐을 켜서 예열하는 방법부터 가르쳤죠. 뜨겁게 달아오른 트레이를 만질 때는 오븐용 장갑을 착용했습니다. 적절한 대비를 하면 화상을 입을 일은 없습니다.”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은 그 침묵에 힘입어 이야기를 계속했다.

“꼭 이번에 그 관람차를 같이 타지 않아도 됩니다. 상하이타워의 전망대에 올라가도 되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그냥 저와 함께 하늘을 날아봐도 됩니다.”

상하이타워는 얼마 전에 완공을 마친 빌딩이다. 지상 128층에 632m의 높이에 달하는 건물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았다. 미미가 피식 웃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잘 탔다구요.”

“그냥 피했어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관람차를 꼭 타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미미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목덜미를 지나 뺨까지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시뻘게진 얼굴을 들었다.

“필요가 없었다고요.”

“예.”

“…그래도 저는 같이 가고 싶었어요.”

진혁이 반문했다.

“예?”

“처음으로 제대로 데이트를 했던 장소니까요.”

진혁이 입을 다물었다. 미미가 중얼거렸다.

“출장을 겸해서 가지 않고서 제대로 데이트를 했던 곳은-”

진혁이 사실을 적시해 주었다.

“테마파크도 점검을 겸해 출장으로 갔는데요.”

“….”

“….”

두 사람은 서로 입을 다물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진혁이었다.

“추억을 기념하기 위해서 같이 올라가고 싶었던 겁니까?”

“네.”

미미가 고개를 가볍게 까닥이며 대답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진혁은 이런 상황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차라리 삼백 명의 정파 무림인과 맞서 싸우며 칼을 휘두르는 편이 낫겠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희나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혁과 미미, 두 사람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진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하루에 한 번씩 관람차를 타죠.”

“예? 하루에 한 번씩이요?”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입문자가 무술을 수련할 때 그렇게 합니다. 마보 자세를 한 번 할 때 시간이 지나치게 짧으면, 여러 번 하면 됩니다. 관람차를 한 번 타서 무서운 일이 생겼으면 두 번, 세 번, 백 번, 천 번을 타면 되지요. 아니면 아예 집 앞에 전용 관람차를 지어도 좋습니다. 천 번, 만 번 정도 타서 익숙해지면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렵지 않을 겁니다.”

진혁이 횡설수설하며 설명했다. 조금 전까지 초조하고 불안했던 미미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던 긴장감이 터져 버린 것만 같았다.

“바쁘시잖아요! 누가 관람차를 하루에 한 번씩 매일 타요.”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습니다.”

“마음만이라도 고맙게 받을게요. 매일 받는 건 치즈 케이크로 충분해요.”

미미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진혁은 안도했다. ‘뭐가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은 풀린 거 같군.’

미미는 치즈 케이크를 아주 좋아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분명하다. 언제 어느 때에 주더라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이번에도 처음부터 이런 대화를 나누기보다 치즈 케이크부터 구워 주는 편이 좋았을지도 몰라.’

진혁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미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에게 많이 부족하지요?”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는 미미가 진심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아니면 떠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미미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운동화 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으세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변했다.

“아이를 갖고 싶으십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계자는 필요해요.”

진혁이 질문을 던졌다.

“왜 후계자가 반드시 혈연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예?”

“일월신교에서는 항상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춘 소교주를 여러 명 선발하여 서로 경쟁하도록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뛰어난 교주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요.”

“…!”

“현대의 선거와도 비슷한 데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혈연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선발한 정파의 경우, 그 후계자가 무능할 경우에 크나큰 파란이 일었습니다. 가문 내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치러야 했지요.”

미미는 일월신교의 계승 체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드라마 속에서 설정 일부를 엿보았을 뿐이다. 그녀는 기억을 쥐어 짜내어 옛날에 연기했던 대본 일부를 떠올려냈다.

“소교주가 교주가 되려면 세 개의 시험을 통과하고 장로 다섯 명의 동의를 얻어야 했던가요?”

“비슷합니다.”

미미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우리 아이는 황 그룹을 물려받게 될 거예요.”

“그렇군요.”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진혁이 미미가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지적했다.

“아버지께서는 황 그룹을 물려받지 못했죠.”

미미가 눈알을 굴렸다.

“대신 그 딸이 이어받았지요. 할아버지께서는 그룹이 핏줄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기를 바라셨어요. 저도 그렇기를 바라고요.”

진혁은 그 사실을 그 무엇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그 아이가 그룹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매우 매우 갖고 싶어 할걸요?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라날 거예요. 아무에게서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전부입니까?”

“어머니께서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자꾸 물어보세요.”

“저희는 둘 다 젊으니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요. 저는 아이를 빨리 갖고 싶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이왕이면 후계자 교육도 받아 주었으면 좋겠고요.”

이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진혁은 이 시대에서 자신이 과연 아이를 갖고 싶은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그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일찍 떠날 것이 분명하다.

잃어야 할 인연을 굳이 이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은 여러 차례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진혁은 황미미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          ◈          ◈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임운정과 장은효는 산부인과 병원의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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