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9화
진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국어 방언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경호원을 한 명 더 섭외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최소한 이틀은 걸릴 겁니다.”
진혁은 아주 잠시 동안 자신이 여기에 머물며 장유향을 돌볼지 갈등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먼저 한국어만 할 수 있는 경호원 한 명을 보내 줘서 교대하게 해 줘. 절대로 아무도 말 걸지 못하게 말이지.”
“알겠습니다.”
상경하는 자동차 안에서 한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장유향 어르신의 건 말인데요, 흙 가마 주변에 가벽을 세우는 건 어떻습니까?”
“음?”
“산업 스파이를 염려하여 추가로 경호원까지 고용하신 것이 아닙니까?”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건 절대 아니야. 그 진흙 오리구이는 설령 뭐가 언제 들어가는지 레시피를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따라 할 수가 없어.”
“그렇습니까?”
“장유향 어르신의 제자만 봐도 그래. 몇 년씩 따라다니면서 불 조절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오리구이를 할 수 있게 되지 않나. 하루 이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한 비서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진혁이 말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매일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아져야 하니 집중하고 고민하고 연구할 시간이 필요해. 그걸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고.”
“알겠습니다.”
한 비서가 새로운 눈으로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였다.
서울이 멀지 않았을 무렵,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표 이사님. 제가 질문을 하여도 되겠습니까?”
“음?”
“저는 그냥 하루하루 이사님께서 주시는 일을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방향도 모르고, 목적도 모른 채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이 일하고 있습니다.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 대표이사님께서 무엇을 중시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한 비서는 운전사가 듣지 못하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고 한 비서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이사님께서 중국의 ‘해와 달’ 지점에서 크나큰 성공을 거두며 회장님과 결혼하신 이후에 정식 비서가 되었습니다.”
“그랬지.”
“저는 부족하지만, 미국에서 유학해 법률에 해박하며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가 유창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법률을 비롯하여 비서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분야에서도 보좌를 할 수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어떤 분야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 비서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중국의 ‘해와 달’처럼 한국 지점을 늘리실 줄 알았습니다. 충분한 재력이 있었으나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과제빵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력을 교육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랬지.”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나온 어린 이들을 직접 훈련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인력들은 직접 다루지 않으시고 각 지점의 보조 인력이 되어 각 빵집에 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들을 수하에 두고 직접 키우실 줄 알았습니다. 황태명 어르신께서 고아들을 데려다가 은혜를 입히며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주었듯이 말입니다.”
진혁이 계속하라는 듯이 고갯짓을 했다.
한 비서가 말을 이었다.
“빵 가게를 늘린다는 선택을 하지 않으시고 공장을 건설하셨지요.”
“미국의 클리닉에 진출하실 때에도 ‘해와 달’에서 안정적으로 다져놓았던 레시피의 빵들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병원식 빵을 개발하셔서 판매하셨습니다. 제과제빵의 레벨이 높아, 결국 생지를 생산하여 전달하여 굽기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변경하며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느닷없이 이탈리아의 호텔을 인수하신 것도, 예술계에 저명한 화가와 친분을 쌓다가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신 것도. 아랍의 왕족과 친분을 쌓으시다가 일본에 진출하신 것도 전부 저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항주 진흙 오리구이 전문점의 사부, 은거 기인으로 유명하신 장유향 어르신을 모셔오기까지 하셨습니다.”
진혁은 한 비서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래서?”
“대표 이사님께서는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 무하마드 왕자에게 미각훈련을 시킨다는 것도 결국은 일본 사업의 확장과 맞물려졌지 않습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놀라운 도전정신에 힘입어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인덕이 있어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당기시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이사님의 행보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알아야 그에 맞추어 미리 준비할 텐데 그게 불가능합니다.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겠지요.”
진혁이 멀뚱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는 한 비서에 대해서 높게 평가했다. 그는 어떤 일을 맡겨도 아주 잘했다. 그건 아주 크나큰 장점이었다. 자신이 잘 모른다면 잘 아는 사람을 데려와서 시키는 점이 기특했다.
‘이 녀석 뭔가 엄청나게 착각하고 있는데.’
진혁은 특별히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사업이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빠르게 철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비서가 그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대해서 ‘우리 대표님께서는 비전이 있으시다.’라고 오해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었지?’
진혁은 한 비서의 단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좋고 행정적인 일은 잘했지만, 진혁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특히 그가 진혁의 뜻을 미리 넘겨짚고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십중팔구는 실패했다.
‘그 녀석만 한 부하가 없었지.’
이 점은 광안마와 달랐다. 광안마는 진혁이 원하지 않으나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예를 들자면 일월신교에 암살자를 보낸 암살집단을 궤멸시키는 것 등이 있었다. 즉 자율성이 높았고 행동력도 뛰어났다.
‘고아 집단을 추가로 모집해서 살수단의 인원도 늘렸고 말이야.’
고아 출신의 살수단 인원을 줄이려던 진혁의 뜻과는 상충되는 일이었다.
제멋대로 톡톡 튀는 부하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진혁에게 있어, 한 비서처럼 시키는 것만 하는 부하는 아주 놀랍고도 기특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부하가 이런 고민을 하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앞으로 대표이사님께서 보시는 미래에 대해서 식견을 공유해 주신다면 제가 미력하나마 그 길을 걸으시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다. 진혁이 뒷머리를 긁었다.
“미국의 클리닉 병설 카페 진출은 진희가 환자들에게 좋은 레시피 하고 노래를 불러서, 시험해볼 겸 해서 만든 거고. 그냥 그 빵만 만들면 안 팔릴 게 뻔하니 각 환자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해서 시스템을 같이 판 거야.”
“예.”
“이탈리아에는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님의 기술을 익히려고 갔다가, 숙소에서 사건이 생겨서 그냥 사버렸고. 거기 제과제빵사님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말이야.”
한 비서가 눈알을 굴렸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뉴욕 화랑 진출은 밥 앤더슨이 떼를 써서 같이 하게 됐고, 오마르 왕자의 결혼식 이벤트는 어쩌다 보니 규모가 커진 거야. 돈을 최대한 많이 쓰기 위해서 노력을 하다 보니 섬 전체를 통째로 쓰게 됐지.”
“무하마드 왕자님의 훈련은-”
“그거야 그분이 하고 싶어서 한 거고. 이렇게 친한 척할 줄 몰랐지. 일본 진출은 그냥 유키코 쉐프를 잃기 싫어서 한 거야.”
한 비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코를 벌렁거렸다.
“예에?”
“장유향 어르신은 그냥 내가 좋아서 따라서 온 거고, 한국에서도 오리구이를 굽고 싶어 하셔서 흙 가마를 만들어 드렸지.”
“예에.”
한 비서가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대표 이사님. 그렇게 어설프게 거짓말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유키코 쉐프님이 당시에 일본에 계시던 아버지가 아프셔서 고민을 하긴 했지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해외 지부 설립을 바로 해버리는 CEO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
“아니, 그러니까 그게.”
유키코는 정말로 뛰어난 인재였다. 케이크 위치 개발 대결을 하면서 느꼈다. 그녀는 무하마드 왕자처럼 미각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다양한 재료를 바탕으로 가격대와 성능비가 좋은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것을 잘했다. 이 능력은 푸드 블록을 만들 때에 화려하게 꽃피어,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세 배 이상의 푸드 블록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신제품 개발 부서에 머물렀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뛰어난 인재였으니까 그렇지.”
진혁은 유키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이 싫었다. 그녀가 다른 회사에 가서 다른 빵을 개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침 중국과 한국, 그리고 미국과 이탈리아에 이어 일본에도 지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키코의 전문 분야는 대기업에서 유통하는 산업제 공장 빵이다.
마침 한국에서 빵 공장 모델이 성공적인 수익을 내고 있었던 것과 유키코의 과거 경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일본에서 할 사업 형태를 정했고, 주 유통채널을 편의점으로 선정했다. 간단한 이야기다.
“직원 한 명을 위해서 해외에 진출하는 회사라니요. 저를 믿지 못하신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완전히 신뢰하실 수 있게 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보필하겠습니다.
한 비서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었다.
“도착하였습니다, 이사님. 비서님.”
“고마워.”
한 비서는 차에서 먼저 내려서 문을 열어주었다. 방금 전까지 핏대를 올리며 흥분해서 이야기했던 모습과 달리 평온해 보였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한 비서는 아직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야.”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누르며 한 비서가 말했다.
“대표 이사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사람을 중히 여기십니다.”
“사람을?”
“예, 가족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셔서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셨지요. 아프고 다친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계셔서 환자들을 위한 빵을 만드는 사업을 하셨습니다. 하다못해 방송에서 잠시 만난 부부의 사업도 도와주셨지요. 눈앞에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곤란한 사정을 돌보시기에 이토록 다양한 일을 하시게 된 것이 아닙니까.”
“잠깐만, 아까랑 말이 다른데. 직원 한 명 때문에 일본 진출을 했을 리가 없다고 했잖아.”
“아닙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대표이사님께서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직원 한 명의 사정을 고려하여 해외의 진출 계획을 세우실 정도로 다정하신 분께서 굳이 제게 거짓을 말씀하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