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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98화 (596/656)

제 598화

『전에는 직접 구운 오리를 스스로 맛보았잖아. 그리고 한동안 이 교육시설의 다른 직원들에게 오리구이를 제공했다고 했지. 그럼 최근에 오리구이를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인가?』

『예.』

진혁이 팔짱을 끼고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신발 굽으로 탁탁 치며 말했다.

『오늘 자네의 오리구이는 달랐어. 먹으면서 유달리 뛰어난 점을 느끼지 못했나?』

장유향이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약을 먹은 것처럼 활력이 솟고 기운이 나기는 했습니다만, 주군이 앞에 계셔서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자네의 오리구이는 최하급 비약과도 같아.』

『수하가 어리석어 최하급 비약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백 년짜리 산삼 정도 될걸? 다리 한 조각을 통째로 먹는다면 두 시간 활력이 솟을 거야. 애초에 기운이 없는 사람이 반 마리를 통째로 먹었다면 기력을 되찾아 회복하겠지. 즉, 먹는 사람의 상태와 얼마나 먹는지에 따라 달라. 확실한 건 기력을 된다는 거지.』

『약재를 얼마나 넣었는데… 고작 그 정도입니까? 그러면 대단한 건 아니네요.』

장유향이 실망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백 년짜리 산삼이라고 해도 요즘 산에는 흔치가 않아. 그걸 하루에 몇 개씩 구워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하루에 하나는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지 않나. 백 년짜리라곤 해도 산삼을 하루에 한 뿌리씩 무한정 공급해낼 수 있는 심마니는 없네. 뭐어, 기력을 되찾고 싶어 하는 VIP들에게 한정적으로 공급하면 비싸게 팔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이 오리구이를 판매하지 않기를 바라네.』

장유향이 늪처럼 깊은 눈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주군께서는 음식 장사를 크게 하고 계신데요. 어째서 저에게 장사하기를 권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빵을 구워 파는 건 내 맘이고. 자네가 오리구이를 구워서 팔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하지만 그걸 원하는 게 아니지 않나?』

『…태명이 놈은 저에게 오리를 구워 팔자 했습니다. 이 오리 구이를 널리 널리 알리면 언젠가 주군을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지요. 저는 그래서 그때의 오리 구이를 재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오리 구이 사업이 점점 더 커지고, 황태명이 놈의 손에 거액이 굴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놈은 주군을 찾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 회고를 들어준다면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진혁이 말을 잘랐다.

『그 녀석에게 있어서는 돈이 아주 큰 목표였지. 하지만 자네에게는 아니잖아?』

한때 금 보기를 돌같이 하던 정파의 청년이 세파에 찌든 얼굴로 파스스 웃었다.

『어허,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도 돈 좋아합니다.』

진혁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건 어쨌건 말이야. 지금 자네의 오리 굽기 기술은 장인의 경지에 도달해 있어.』

『…!!』

『오리구이를 비약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니, 무공보다 수준이 높지.』

『무공을 포기하고 오리구이에만 전념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희게 센 눈썹 아래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분노에 일그러진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아니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평화로운 사회에서 예전처럼 대도(大刀)를 휘두를 생각인가? 지금 그 체구로?』

『…그래서 저에게 적절한 무기를 추천해 주시려던 것이 아닙니까.』

『지금 자네는 내공의 양은 이전보다 확실히 적지. 하지만 깨달음의 수준은 낮지가 않네.』

진혁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자네 당가철방의 노인을 기억하는가?』

『당가철방요?』

장유향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당가에서 도검을 도맡아 제작했던 이가 있지 않나. 당가의 검 외에는 맡아 주지 않는데 특별히 예외적으로 천마수라검을 벼려 주었지.』

『그냥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니었습니까?』

『그자는 특별히 무공이 뛰어나거나 내공이 충만하지는 않았지. 모친이 당가였고 부친은 데릴사위로 들어온 외부인이었기에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히지 못했어. 하지만 그가 만든 검은 다른 자들이 벼려낸 검과 수준을 달리했지.』

『아, 이제 기억납니다. 장인으로 이름이 높은 당가철방의 주인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던 자 아닙니까. 당문에서 그자의 실력이 외부에는 유출되지 않게 하려고 외부인을 아예 못 만나게 하며 숨겨서 키웠다고 들었는데요.』

『그냥 숨겨 키운 정도가 아니었어. 너 따위의 실력은 한 성(城)에만도 천 명은 넘을 거라고 윽박지르며, 매일같이 밥도 굶겨가며 검만 만들게 시켰지. 방계 혈족 중에서도 위치가 낮았는데 본인도 기가 약해 거의 노예 취급을 받으며 자랐어.』

장유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 해도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제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진혁은 장유향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내공을 쌓는 재능은 없었으나 불을 조절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어. 그리고 운기조식 역시 꾸준히 해 왔지. 검을 만들며 자신의 선천진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덕분에 수라천마검과도 같은 명검을 벼려낼 수 있었네. 불행히도 자연의 기운이 아니라 자신의 기운을 검에 불어넣으며 제 생명을 깎아 먹은 탓에 수라천마검을 마지막으로 생을 다했지.』

『저는 광안마 놈이 일부러 죽인 줄 알았는뎁쇼?』

『뭐?』

『주군의 검과 같은 뛰어난 검이 세상에 두 개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진혁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몸이 약해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세상에는 독약이 많지요.』

『당문의 자식이 독약 때문에 죽었으려고.』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하지 않습니까.』

진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여하튼 자네는 흙 가마에 오리구이를 구워내며 화기(火氣)에 아주 민감해졌어.』

장유향이 수긍하였다. 그는 회의실의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흙 가마를 내려다보며 유향이 말했다.

『맞습니다.』

『어떤 장작을 언제 넣으면 되는지, 공기의 층을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불을 세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부지깽이 없이 나뭇가지 하나로도 꺼뜨릴 수 있고.』

『불가마를 몇 년 동안 봐왔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어야지요.』

『그래, 금수화목토 중에서도 화기는 제일 강력한 기운이지. 쉬이 불타오르고 금방 꺼지니 열기를 통해 그 성쇠(盛衰)를 짐작할 수 있어. 자네는 그걸 아주 잘 하게 되었고 말이야.』

그쯤 되자 비로소 장유향도 알아들었다.

『제가 모르는 새에 외부의 기운을 조절하여 담는 방법을 익혔군요.』

『운기 조식을 하여 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은 심법을 꾸준히 익혀 온 자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외부의 기물에 진기를, 그것도 자신의 기운이 아니라 자연지기를 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제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긴 한데요.』

장유향이 팔짱을 끼고서 뚱하게 말했다.

『엄청난 일이지, 엄청난 일이야. 자네는 모르는 사이에 벽을 넘은 거야.』

『하지만 당가의 그 노인네처럼 검에 기운을 담는다면 모를까, 오리구이에 기운을 담아서 좋을 일이 무어 있습니까? 장사를 해서 판다면야 의미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에게 돈 주고 팔지는 말라고 하셨고. 그렇다고 해서 이 오리 구이를 던져서 누굴 공격할 것도 아니고요.』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못써.』

『말이야 못할 게 없죠. 제가 어떻게 구운 건데 이걸 무기로 씁니까. 전 못 합니다.』

장유향이 격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혁이 킥킥 웃었다.

『지금 기를 다스리는 수준은 현경의 벽을 돌파했다고도 볼 수 있네.』

뜻밖의 말에 장유향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작 이 정도 잔재주가요?』

『잔재주가 아니야.』

노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주우우우구운! 비약이니 현경이니 괜한 말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를 들뜨게 하시지 말고 자세히 말 좀 해보십시오. 저의 내공이 미약하나 그 조절 능력은 가히 현경에 달하니 이 뛰어난 재능을 칭찬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어리석고 멍청한 수하는 주군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무엇부터 하면 좋겠습니까? 오리 구이를 굽는 일 따위는 그만두고 폐관 수련을 할까요, 아니면-.』

『당분간은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게.』

『오리를 구우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음교혈부터 시작하여 운기조식을 하면서 흙 가마 안에서 불꽃과 오리가 어떻게 어우러져 가는지, 화기와 토기가 조화를 이루며 자연지기가 오리에 담겨지는 과정을 직접 느껴야 하네. 아직은 부족해. 지금은 자신의 마음대로 오리에 진기를 주입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스스로의 뜻대로 진기를 주입할 수도 있고 주입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비로소 현경의 경지라고 할 수 있지.』

장유향의 눈가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아니, 주군.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셨으면 되지 않습니까?』

진혁이 장유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무공을 가르쳐준다고 하고서 갑자기 오리를 계속 구우라고 하면 말을 들었겠나?』

『아니요.』

『그래. 오리를 계속 굽되, 아무 생각 없이 하지는 말고. 꼭 기의 흐름을 느껴.』

『네.』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 어떻게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겠나. 일단 기류(氣類)를 파악하여야 그 이후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 지금 당장은 별개의 무기나 권법, 각법의 초식 따위를 익힐 때가 아니야.』

그는 장유향의 다른 어깨에도 손을 얹었다.

『자네 안에는 아직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

『주군…! 역시 주군께서는 저의 하나뿐인 주군이십니다. 영명하시며 현명하시고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깨우치신 주군께서 이 귀뚜라미처럼 어리석은 수하를 인도하심에 저는 감격을 금치 못하고-.』

『그만.』

천 명의 암살자에게 지시를 내리던 때와도 같은 서늘한 구령 소리에 장유향이 바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자세로 대답했다.

『넵.』

진혁이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 주었다.

『오늘 오후에 한 마리를 더 굽는다고 했지. 자, 그럼 가서 마저 구워.』

『넵.』

장유향은 군인처럼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하지만 해죽해죽 웃고 있는 표정은 전혀 군인 같지 않았다. 진혁은 맞은편 미팅 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통역사를 불러 지시했다.

“당분간 장유향 어르신께서 오리구이를 하시는 동안에는 아무도 말을 걸지 못하도록 지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요?”

“예, 택배 기사나 다른 부서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고 해도 무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혁은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신신당부했다.

“혹시 저나 미미 씨가 오더라도 가마에 집중하는 시간에는 절대 방해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지금 당장 내려가서 장 어르신을 지켜 주십시오.”

“예!”

통역사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장유향을 따라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한 비서가 말했다.

“통역사에게도 인센티브를 추가로 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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