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5화
아버지가 흥분해서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바쁩니다.”
“그래? 네가 처음으로 우승한 대회잖아. 덕분에 텔레비전 출연도 하게 됐고. 가게도 잘 되고.”
“특별히 텔레비전 출연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요.”
담담하게 사실을 읊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거야 그렇지.”
“아버지는 제가 그 대회에 참석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아닌데.”
아버지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난 화장실에 좀 다녀오마.”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진혁아. 네 아버지도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아 이미 답신을 했어. 너도 이번에 대회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오케이를 하셨단다. 네가 만일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면 대회 최초로 부자 심사위원이 될 거라며 좋아하더라고.”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네가 대회 심사위원을 한다고 하면, 당일에 나도 심사위원이다 하고 놀라게 해줄 생각인 것 같더라. 느이 아부지는 그냥 너랑 같이 대회에 가고 싶은 거야. ”
진혁이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일정이 언제입니까?”
“너 바쁜데 굳이 안 해도 된다.”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혁이 히죽 웃었다.
“아버지에게는 말씀하지 마세요.”
임진희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나 왔어.”
핏기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며 진혁이 혀를 찼다.
“밤새웠어?”
“어제는 그래도 세 시간은 잤어…, 내일 새벽에 비행기 타면 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때 자려고.”
어머니가 안쓰러워하며 임진희의 앞으로 국그릇을 밀었다.
“네가 좋아하는 소고기뭇국이야.”
“오. 맛있겠다.”
그녀는 국을 그릇째 들어 올려 그대로 후루룩 마셨다. 작게 잘린 고기조각과 무를 씹지도 않고 삼키는 모습에 어머니가 혀를 찼다.
“아구, 아구. 그러다가 큰일 난다.”
“괜찮아요!”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임진희를 반겼다.
“진희야, 이제 미국 가서 일한다면서. 과자 궁전 만들기 하는 거냐?”
“비슷해요. 예술적인 건축프로젝트인데, 일단 허니랜드에서 하는 것 먼저 하기로 했어요.”
“허니랜드?”
“미국에서 제일 큰 테마파크에요. 잠실 롯데월드나 용인 에버랜드처럼 놀이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인데, 전 세계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대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버지는 푸드 블록 사업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나, 어머니는 잘 몰랐다. 어머니가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과자 집 같은 걸 만들어놓으면 벌레들이 꼬이지 않니? 사람들이 바깥부터 먹기 시작하면 무너질 거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입댄 부분이 남으면 상하기도 할 거고 말이야.”
진혁이 대답하기 전에 임진희가 말했다.
“그래서 과자의 집이 아니라 푸드 블록 하우스에요. 모든 음식들이 전부 개별포장되어 있어서, 하나씩 가져가서 먹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가져간 건 다 먹어야 하고.”
그녀가 샘플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벽과 바닥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무지개색 볼들이 가득 차 있는 볼풀이 보였고, 벽에는 노란색 정글짐이 줄줄이 서 있었다. 유아들이 앉을 수 있을 법한 키 작은 탁자와 정육면체 모양 블록 의자들이 그 옆에 배치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상자에는 장난감 자동차와 소방차, 경찰차와 인형들이 뒤섞여 제멋대로 담겨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키즈 카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 보자.”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블록 놀이 장난감. 정글짐. 탁자. 볼풀. 이런 것밖에 안 보이는데?”
“그게 다 먹을 거야, 여보.”
이미 이전에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장 사진을 본 적이 있던 아버지가 잘난 척하며 말했다.
“아마 여기 있는 탁자와 의자, 가벽과 화분, 그리고 장난감들도 다 먹을 수 있을걸?”
어머니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다 먹을 거라고? 플라스틱이 아니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용 가능한 비닐로 포장한 음식들이에요. 색깔마다 맛도 다르고요. 접시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 이라는 아이디어에요.”
임진희가 해맑게 웃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결혼식 사진을 여러 장 보여 주었다.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모스크 내부 사진에서 멈추었다.
“여기는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장이에요. 완전히 궁전 테마로 꾸몄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부터 내부 벽까지 전부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꾸몄어요. 슈가젬부터 벽돌까지 전부 다 다른 맛으로 만들었고, 누군가 파먹으면 새로운 벽돌을 새로 꽂아 넣는 식으로 다시 보충했죠. 그런데 이때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 성인이고, 어린아이는 몇 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허니랜드의 경우에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70% 이상 가족 단위라 아이들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키즈 카페로 만들었구나.”
“네, 보통 부부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까지의 어린 자녀를 두 명에서 네 명 데려온대요. 그래서 유아 대상의 키즈 카페를 먼저 만들었어요.”
임진희가 다른 사진도 이것저것 보여 주었다. 진혁이 손뼉을 쳤다.
“자, 그러면 가족들이 다 모였으니 이제 메인 요리를 먹죠.”
진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이미 정갈하게 밥과 국, 반찬이 차려져 있는 상을 힐긋 보면서 말했다.
“소고기뭇국이랑 밥 아니야?”
“진혁이 아시는 분이 진흙 오리구이를 따로 챙겨서 보내주셨대. 고마운 분이지 뭐냐.”
진혁은 직접 부엌에 갔다. 그는 카트 위에 오리구이를 올려놓고, 스테인리스 푸드 카트를 끌면서 나왔다. 카트 위에 올라간 오리구이는 거대한 진흙 달걀처럼 보였다. 축구공을 두 개 합친 것처럼 커다랬다.
“오… 오리구이는 오랜만에 먹네.”
임진희가 눈알을 굴렸다. 그녀가 혼잣말로 자그마하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밤새워서 속 안 좋은데 오리구이라…, 너무 느끼할 것 같아.”
진혁은 못 들은 척하고 칼을 들었다. 그는 칼의 손잡이 부분을 거꾸로 들어 올려 겉을 덮고 있는 흙으로 된 껍데기를 갈랐다. 껍질이 부서지며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연기가 잦아들자 큼직하니 보기 좋게 살이 오른 통오리가 드러났다. 진혁은 칼을 들어 오리고기의 살을 베어냈다. 그러고 나서 허벅지살은 아버지에게, 발라낸 가슴살은 어머니에게 덜어 주었다. 오리 안쪽에 채워져 있던 찹쌀과 밤, 견과류와 호박도 잊지 않고 챙겨 주었다.
“내가 이거 좋아하는지는 어떻게 알고.”
어머니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진혁은 묵묵히 날개에서 날갯죽지를 잘라내고, 뼈를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 목과 갈비에서도 뼈 없이 살과 껍질만 발라내 접시에 옮겨주었다. 그가 진희에게만 들리게 나직하게 말했다.
“이건 덜 느끼할 거야.”
“고마워.”
임진희가 접시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진혁은 자기 몫으로 남은 부위를 골고루 덜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당신하고 나는 진짜 천생연분인 것 같아.”
“여보, 갑자기 왜요? 애들도 있는데.”
“당신은 퍽퍽살을 좋아하고 나는 다리하고 허벅지 고기를 좋아하잖아. 둘이서 같이 치킨을 먹으면 누구 한 사람이 속상해하면서 양보할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아.”
“나도 다리 먹을 줄 아는데요?”
“그럼 내가 양보하면 되지. 닭은 다리가 두 개씩 있으니까.”
“농담이에요, 가슴살이 더 맛있어요. 호호호호.”
어머니와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진희가 먼저 젓가락을 옮겼다. 그녀는 진혁이 잘게 발라낸 목살을 집어 먹으며 눈을 빛냈다.
“어, 이거 진짜 맛있다.”
“그렇지?”
“기름이 쫙 빠져서 느끼하지도 않아. 소고기뭇국하고도 잘 어울려.”
“껍질도 얇고 파삭파삭해서 잘 구운 감자 칩 같네.”
어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는 묵묵히 허벅지살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면 만족하는 것이 틀림없다.
진혁은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허벅지살의 일부를 씹어보았다.
‘!’
진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수저를 먹는 순간 생생하게 기운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물에 기운을 불어넣는 방법을 깨달았나? 설마, 그 정도의 진기를 갖고서?’
진혁은 삼매진화로 이 고기를 마저 구워냈다. 그러나 이 오리구이 속에 진기를 불어넣지는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토록 생생하게 팔딱팔딱하니 신선한 맛을 주는 것은 장유향의 깨달음일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 부족할 텐데.’
진혁은 지금도 고강한 내공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소량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음식에 진기를 주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에게 직접 손을 대고 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나 장유향에게 있어서는 다르다. 그는 콩알도 못 한 양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그 정도의 내공을 지닌 자는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내공을 더 쌓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전의 삶을 통해 내공을 조절하는 능력을 알고 있었지. 그러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야.’
당연하게도 이 고기는 이전에 구웠던 오리구이보다 더 맛있었다. 그는 오리 속에 채워져 있던 찰밥을 떠서 맛을 보았다.
“호오.”
전에는 그저 담백했다. 약재의 풍미가 짙게 느껴져서 건강에 좋은 맛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맛이 깊었다.
짙은 흑미 찹쌀밥과 함께 단호박과 고구마, 밤과 호두, 인삼과 잣, 대추, 가시오가피와 감칠 나무 등 다양한 약재와 견과류가 뒤섞여 있었다. 예전에 사용했던 은행과 감초, 당귀도 빠지지 않았다. 비율이 조금 바뀌었을 뿐 전부 들어 있었다.
‘사프란과 쿠민은 뺐군. 하지만 후추는 통후추를 넣었고, 소금 역시 히말라야산 소금으로 바꿨어. 설탕은 우리 브랜드에서 쓰는 황설탕이군.’
기존의 레시피를 변화시키기 위해 연구와 연구를 거듭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는 사람이 구워준 거라고 했니? 그 사람은 오리 전문가야?”
어머니가 물었다.
진혁은 다시 한 번 입안에서 고기를 음미했다. 진기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고기는 맛있었다. 살코기는 부드러웠으며 기름이 쏙 빠져 느끼하지 않았다. 껍질은 바삭하여 과자 같았고, 약재의 배합 역시 먹는 이의 건강을 위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들어가 있었다.
장유향은 진혁이 자리를 비운 동안 내내 오리구이에 매달렸다. 양념을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한 가지 오리구이 방법에만 매달렸던 과거와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었다.
“네, 평생 오리구이를 요리해온 분이십니다.”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그는 굳이 옛 인연을 풀어 설명하지는 않았다.
“너무 맛있었다고 전해 드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