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94화 (592/656)

제 594화

루이스는 진희가 합류한다는 사실을 크게 반겼다.

「지난번에도 잘 하더라.」

「그렇지. 잘 가르쳐 줘.」

하지만 다음날, 본점으로 불려온 김동진은 크게 놀랐다.

“제가 지점장이 된다고요?”

그는 막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었다. 진혁은 고개만 옆으로 까닥해 미세한 커피 방울들이 날아오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맞은편에 있던 백진영은 그대로 커피 벼락을 맞았다.

“악!”

임진혁은 백진영에게 물티슈를 건넸다. 진영이 물티슈로 얼굴을 닦고 나서 하얀색 셔츠를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앞치마 안쪽의 하얀 셔츠는 갈색으로 얼룩져버렸다.

김동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난 갈아입고 빨래 좀 해 놓고 올게.”

백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점장실로 돌아갔다. 진영이 나가자마자 김동진이 물었다.

“그럼 지금 누나, 아니 점장님은요? 짤리는 건 아니죠?”

진혁은 김동진을 다시 평가했다.

‘임진희 녀석, 꽤 좋은 상사였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진희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부터 할 리가 없다.

“진희랑 이야기 끝냈어. 지금은 네가 원하는 걸 얘기해.”

“지금 누, 아니 점장님이 하는 경영하고 회계 쪽 일은 제가 하나도 할 줄 몰라요. 빵 만드는 것밖에 못 하는데.”

진혁이 말했다.

“동진아, 네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김동진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저었다.

“예에?”

그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걔도 처음에는 그런 걸 하나도 할 줄 몰랐어. 하면서 배운 거지. 진희가 널 추천했기 때문에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동진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왜 절 추천한 거예요?”

“빵을 만드는 거야 제대로 하고 있고, 재고 관리도 잘 하고 있다고 들었어. 성실하고 가게 내의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월급 사장이라면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중국에서 파견 오신 쉐프님도 있고. 저번에 푸드 블록 사업에 참여하신 분들 중 다른 사람을 데려와도 되잖아요. 다른 프랜차이즈 제과점 보면 점장님은 보통 40대 이상이시던데요.”

“네가 건강한 빵에 대해서 제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진혁이 턱을 괴며 말했다.

“어…. 지금 가게가 직영점이라서 그래요?”

“비슷한데 좀 다르지. 오너 쉐프가 브랜드 이름을 빌리면서 운영하는 시스템이야. 우리는 식자재 공급을 돕고 이익 일부를 가져가지만, 이 가게는 기본적으로 진희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어. 당연히 새로 개발한 건강한 빵에 대한 권리도 ‘해와 달’이 아니라 진희가 가지고 있고.”

김동진이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형, 제가 뭔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어떡하죠?”

진혁이 반문했다.

“네가 실수를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뭔데?”

“어, 잘 모르겠어요. 가게가 망하는 거요?”

“뭘 해야 망할 것 같은데?”

“제가 만들어서 맛이 변할 수도 있고요.”

“지금도 절반 이상은 네가 만들고 있잖아. 이미 레시피는 확고하고,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지난번에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 때는 임진희가 3주 이상 자리를 비웠다. 진혁이 그때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진희가 없을 때마다 네가 만들고 있잖아.”

“으윽…, 그럼 이럴 수도 있잖아요. 너무 좋은 재료를 많이 써서 빵값이 비싸진다거나.”

“지금 명동점이 딱 그렇게 하고 있는데. 비싸고 건강에 좋은 빵을 소수의 손님들에게 팔기 말이야.”

“어….”

김동진이 머리를 쥐어뜯는 동안 진혁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이미 손님층이 형성되어 있고, 웹스토어를 통한 온라인 주문량이 어느 정도 있어. 새로운 빵을 낼 때 기존의 빵 종류를 전부 없애 버리고 내놓을 건 아니잖아. 모르는 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고. 중국 지부에서 나온 비서님하고 쉐프님도 당분간 일을 도와줄 거야.”

김동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못내 불안해하는 그에게 진혁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월급을 생각해 봐. 진희는 기본급 반에 인센티브 20%를 주려고 하더라. 그러면 어디 보자, 이번 달 기준으로 지금보다 최소한 월 백만 원은 더 가져갈걸?”

동진이 흥분해서 외쳤다.

“당장 할게요! 모르는 거 다 가르쳐 주세요!”

진혁은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얘기를 먼저 해줄 걸 그랬구나.‘

◈          ◈          ◈

진혁은 명동점의 업무는 전부 임진희에게 위임했다. 일요일 비행기 표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그녀는 부지런히 일했다.

어머니는 진혁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잠깐만. 진희가 이번 주 일요일에 미국에 간다고? 3개월 일정으로?”

“푸드 블록 기획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모자라던 차에 잘 됐죠.”

“그런데 걔를 그냥 보내니? 가기 전에 식구들끼리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지.”

“예에?”

“내가 느이 아부지 데리고 오늘 저녁에 당장 올라가마.”

“어…, 제가 오늘 저녁에는 일정이 있는데요.”

“미룰 수 없는 일정이니? 그럼 우리 둘만 진희를 찾아갈게.”

임진혁은 1초간 갈등했다.

“잠시만요, 어머니.”

그는 급히 장유향에게 연락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 내려가게 됐다.』

장유향이 과도하게 굽신거리며 말했다.

『주군께서 하시는 일에 저 같은 미물이 감히 무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요.』

아랍과 미국, 일본과 중국을 넘나들면서 진혁은 한동안 장유향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향은 한결같이 스마트 폰에 사진과 음성 메시지를 꾸준히 남겨주었다.

’전서구를 보낼 때가 좋았지.‘

진혁이 혀를 찼다.

지부마다 키우는 전서구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고, 전서구의 발목에 매어 보내는 편지에 담을 수 있는 글자의 수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과거 전서를 보내던 자들은 꼭 필요한 용건만 간략하게 적어 보냈다.

’많으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건 아니야.‘

무제한의 데이터로 원하는 만큼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자 장유향은 말이 많아졌다.

진혁이 투덜거렸다.

『차라리 화를 내라.』

『물론 저같이 어리석고 나이든 부하에게 왜 늦게 되는지 설명하실 필요는 전혀 없고….』

『동생이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가기 전에 가족 식사를 하게 됐어.』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장유향이 손뼉을 쳤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군요. 아주 좋은 일입니다.』

『응?』

『4명이 먹을만한 정도 크기의 오리구이를 미리 재워두었습니다. 지금 절반을 구워서 진흙 덩이째 보내면 주군께서 마저 익혀 드실 수 있습니다.』

진혁이 입을 딱 하고 벌렸다.

『주군이시여! 양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시며 삼매진화도 사용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지옥의 겁화를 누가 요리하는 데 쓰-.』

『어허! 흠!』

장유향이 거세게 가짜 기침을 했다. 쿨럭쿨럭하고 과장된 기침 소리는 누가 보기에도 가짜였다. 진혁이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진정한 무인이라면 나무의 표면은 두고 속을 진탕 시켜 좋은 장작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저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아주 옛날에는 그랬지.』

『진흙을 부수지 않고 안쪽의 오리만 뜨끈뜨끈하고 골고루 익혀 주시면 됩니다.』

『허허허.』

『주군을 만나 바치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약초에 재워둔 오리 구이입니다! 주군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얼마든지 바칠 수 있지요. 가족분들께서 함께 맛보실 수 있다면 저에게도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 어렵게 구한 조선 인삼과 당귀, 대추와 밤, 그리고-.』

어째 익숙한 재료들을 늘어놓는다 싶었는데, 한국에서 흔히 사용해 갈비탕에 넣을 법한 약재들이었다. 기대감에 벅차서 줄줄 늘어놓는 목소리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드시고 나서 어떠실지 감상을 기다리겠습니다.』

『그건 언제 출발하는데?』

『세 시간 후에 주군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은 배달 서비스가 잘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오리구이가 분실되거나 하지 않고 제대로 도착하기를 원했다.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지.』

장유향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영상 통화 화면 너머로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이마를 댔다.

『주군.』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유향은 통화를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마다 다른 사람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절을 했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응?』

『맛있게 드십시오.』

『…알았어, 고맙네.』

◈          ◈          ◈

오리구이는 세 시간 후에 무사히 도착했다. 진혁은 거대한 흙 그릇 안에 들어있는 오리를 전달받아 부엌으로 가져왔다.

“몇 달 동안 계속해서 개량했다더니.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네.”

진혁은 외계인의 알처럼 큼직한 회색 흙덩어리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살짝 흙 위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허공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라, 진흙 껍데기를 뒤덮었다. 껍데기가 파스스스 흩어져가며 검게 변했다.

“조금 덜 뜨겁게 해야겠는데.”

다행히 안쪽에 한 겹의 흙 껍데기가 더 남아 있었다. 진혁은 다시 한 번 손을 갖다 대 안쪽의 오리 구이의 상태를 느꼈다.

“아.”

방금 전의 열기로 인해 전부 익어있어 더 이상 열을 가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오리를 카트에 실어 주방으로 가져갔다.

“우리 부모님이 오시면 내와 주게.”

미미를 따라온 전속 조리사 황 쉐프가 물었다.

“히터에 넣지 않아도 됩니까?”

“지금 충분히 뜨거우니까 조심해.”

“이 오리구이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장유향 어르신께서 구우신 겁니다.”

“그분은 이미 몇십여 년 전부터 직접 요리는 하시지 않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요?!”

장유향이 중국의 요리계에서 생각보다 꽤 유명한 모양이었다. 진혁이 사실의 일부를 대답했다.

“음, 한국에 와서 새로운 오리구이 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황 쉐프가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          ◈          ◈

결국, 송별회를 겸한 저녁 식사의 메뉴는 소망시에서 갓 올라온 진흙 오리구이였다. 부모님은 오리구이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아버지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4인분의 수저가 차려진 식탁을 보았다.

“며느리는 못 온대?”

“아, 다음 주에 저하고 같이 중국 출장을 가거든요. 그 전에 국내에서 학교 법인 관련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모양이에요.”

어머니가 물었다.

“진희는?”

“일을 좀 더 마무리하다가 온대요.”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진희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혁아, 너 말이야. 3개월 후에 하는 제과제빵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니?”

“예? 무슨 대회요?”

“너도 예전에 참가했던 대회야. 향인대와 경운대에서 매년 하는 것이 있잖으냐.”

대회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진혁의 모교인 향인대학교와 라이벌인 경운대학교.

두 학교는 제과제빵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과제빵 대회를 했다. 진혁이 중얼거렸다.

“마리오를 처음 만났던 대회네요.”

“이번에 너를 꼭 심사위원으로 데려오고 싶다 하더라. 그 대회에서 수상하고 나서 국제 대회에서 여러 개 수상하지 않았니? 그게 큰 영향을 끼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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