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91화 (589/656)

제 591화

두 번째 가게는 마키모토 편의점이 아니었다. S 편의점이었다.

<숙녀를 위한 아름다운 점심, 케이크 위치>

진혁은 포스터를 힐긋 보았다. 편의점의 투명한 유리창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세련되었다기보다는 투박했다. 굵은 원색 폰트가 촌스럽고 구도가 괴상했지만, 샌드위치 사진만은 색감이 살아있었다.

“…저 포스터는 누가 만든 겁니까?”

“아시다시피 디자인 팀이 없어요. 그래서 외주를 줬지요.”

“좀 촌스럽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의 미적 감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로고와 포스터 디자인 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유키코에게 맡겼다. 시안을 본 적도 없었다.

실제로 보니 ‘해와 달’의 포스터와는 완연히 달라 시선을 끌었다. 유키코가 보충해서 설명했다.

“요즘은 이렇게 레트로한 포스터가 인기랍니다. 70년대풍 이미지를 살려서 향수를 자극하는 거예요.”

“일부러 촌스럽게 한 거군요.”

“비슷해요. 복고풍 의류가 유행하면서 디자인에도 그 영향이 오고 있죠. 지금 케이크 위치의 판매가 호조를 이룬 후의 다음 계획은 복고풍 빵이에요. 옛날에 유행했던 크림빵이나 팥빵, 고로케 같은 빵이지요. 꾸준히 수요가 있거든요.”

“그런 빵들은 사람들이 기존에 먹던 브랜드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진혁 씨가 만든 팥빵을 먹어 봤으니까요.”

유키코가 빙긋 웃었다.

“최고급 팥알을 일일이 골라냈잖아요? 팥을 씹는 감촉부터 다르던데요. 빵 반죽은 물론이고. 건강에 좋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한 번만 맛보게 하면 돼요. 똑같은 팥빵이라도 더 맛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거죠. 가격 선을 맞출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요.”

진혁은 힐긋 편의점을 들여다보았다.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알록달록하니 케이크처럼 예쁜 샌드위치를 두 개씩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그러자 점원이 서비스 음료를 하나씩 챙겨 주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케이크 위치를 먹지 않았다. 각자 포장해서 집으로 향했다.

“편의점 내에서 취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군요.”

“식당과 주점들이 문을 닫는 밤 시간에는 다를 거예요.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어묵,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지요.”

세 번째로 방문한 가게는 마키모토 편의점이었다. 이곳에도 포스터가 붙어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이 도착한 시점에서 점원이 샌드위치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오늘부터 케이크 위치를 판다고 들었는데요?』

유키코가 손님인 척 질문했다.

『다 팔렸어요.』

직원이 대답했다. 그녀는 몇 가지를 더 질문하고 가게에서 나왔다. 유키코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광고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팔리네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광고를 하면 더 잘 팔리겠지요. 마키모토 그룹에서도 대대적인 광고를 약속했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하지요.”

유키코와 헤어지고 난 후 호텔로 돌아왔다. 한 비서가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오전 6시에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건물을 나서서 마키모토 편의점 몇 군데와 S 편의점 몇 군데를 랜덤하게 방문했다.

브랜드별로 반반씩 번화가와 주택가를 골고루 들렀다.

총 열두 군데의 가게를 들러서 여섯 개의 샌드위치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맛을 보았다.

‘퀄리티 컨트롤은 나쁘지 않아.’

진혁은 유키코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계속해서 동경 지사를 맡겨도 되겠군.’

그는 방으로 돌아와 특정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혁! 메시지는 읽었나? 자네가 나에게 특별히 맡겼다는 페퍼민트 화분은 잘 받았네. 꽃이 아주 예쁘게 피었던데. 새로운 꽃을 피우는 게 숙젠가?」

‘알레한드로가 정말로 화분을 무하마드에게 맡겼나 보군.’

진혁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무하마드 왕자는 신이 나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남겨두고 간 마지막 블루베리 커드 타르트를 오늘 먹었네. 타르트 생지를 밀푀유처럼 부드럽고 폭신폭신하게 여러 겹으로 만들었던데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더군. 정말 환상적이었어. 그런데 거기에 쑥은 대체 왜 넣은 건가?」

진혁이 피식 웃었다.

「쑥이 있기 때문에 블루베리의 단맛과 커드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겁니다.」

「정말로?」

「아니요. 쑥을 눈치채는지 궁금해서 넣어 봤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런 식으로 시험하면 재밌나?」

「재밌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자신만만하게 배를 내밀며 말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카메라 렌즈가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배를 비추도록 조정했다.

「어떤 수수께끼를 내더라도 풀 수 있네.」

진혁은 영상통화 너머의 배를 응시했다. 예전에는 만삭의 임산부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올라 있던 배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양복이 아닌 민소매 운동복 상의를 입고 있기 때문에 납작한 배에 뚜렷하게 생긴 복근 라인이 옷 너머로 보였다. 무하마드 왕자는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진혁이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복근 자랑은 다 했습니까? 그럼 이제 배가 아니라 얼굴을 보여주시죠?」

「눈치챘나? 난 18살 때에도 복근이 있었던 적이 없어. 이렇게 건강 해본 적이 없네. 자네만 괜찮다면.」

무하마드 왕자가 심호흡을 했다.

「카림과 사파위도 이렇게 훈련을 시키고 싶네.」

「아드님들이 원하십니까?」

「내가 하라고 하면 할 걸세. 평생 이렇게 몸이 가벼워 본 적이 없어. 아들놈들 다 나를 닮아서 건강한 편은 아니니 말이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강제로 해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달리기만이라도 시키고 싶어.」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무하마드 왕자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살을 빼며 근육이 붙은 이유는 진혁이 옆에서 계속 봐주었기 때문이다. 젊은 아들들이 동일한 프로그램대로 훈련한다고 해도 무하마드만큼의 효과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굳이 저에게 확인할 필요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커리큘럼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기로 서약했으니까 그렇지.」

진혁이 피식 웃었다.

「두 아들을 달리게 하는 정도야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양 주먹을 마주치며 말했다.

「좋아! 허락했다.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말고.」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편하게 말해 봐.」

「마키모토 그룹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뭐?」

무하마드 왕자가 곰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포효했다.

「그놈의 자식들! 잠시만 기다려 보게.」

그는 진혁과의 통화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노트북을 펼쳤다. 진혁이 노트북의 영상 화면을 지켜볼 수 있게 각도를 조정한 후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키요시 군.」

이번 회의 때에 진혁은 만나보지도 못한 마키모토 그룹의 CEO였다.

「왕자 전하,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어떠한 연유로 이 시간에 먼저 연락을 주셨는지-.」

‘영어로도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구나.’

미사여구가 가득한 인사말을 들으며 진혁은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지켜보았다.

「일월 제과 상품, 내가 투자한 걸세.」

무하마드 왕자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마키모토 키요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작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왕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무하마드는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마키모토 그룹 CEO와의 영상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진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알려주게나.」

진혁이 물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해와 달 전체가 왕자님의 개인 사기업인 것처럼 오해를 받겠는데요.」

「오해하라지. 실제로 투자를 하지 않았나?」

무하마드 왕자가 히죽 웃었다.

「유키코 쉐프는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던데. 세 종류의 샌드위치 모두 훌륭했네. 가격 대비 맛을 생각하면 정말로 놀라울 정도야. 개당 5달러밖에 안 되는데 그 정도 맛이라니.」

그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목적했던 결과를 얻어낸 진혁은 바로 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어이, 잠깐만! 최소한 자네가 맡긴 페퍼민트 화분 정도는 봐 달라-.」

그것까지 들으면 한없이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다. 진혁은 뚝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이 삑삑 울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또다시 장문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푸흐.”

진혁은 메시지를 읽고서 피식피식 웃었다. 그것은 아들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면 좋을지 늘여놓은 계획서였다. 말미에 페퍼민트 화분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진혁이 화분의 안부를 궁금해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이 정도는 답변해 줄까.’

진혁은 짧게 답신을 남겼다.

「To. 무하마드

아들들을 무리하게 운동시키지 말고 초반에는 2km 달리기부터 시작하시죠. 첫날부터 15km를 달리면 초반에 금방 지쳐서 포기하게 될 겁니다. 제대로 된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붙여 주십시오.」

무하마드 왕자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To. 진혁

어이, 내가 할 수 있었으니 아들들도 할 수 있지 않나?」

「To. 무하마드

못 합니다.」

당시에 진혁은 미미하게 왕자에게 진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무하마드 왕자의 체력은 바닥 중의 바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혁이 보조해 주지 않으면 500m도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왕자는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드문 일이었다.

진혁은 왕자와 그 두 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는 ‘그룹 내의 일원들끼리 서로 사이가 좋아질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          ◈          ◈

유키코가 아침 일찍 연락을 해왔다.

“밤 동안 무슨 마법을 부린 거예요?”

진혁이 반문했다.

“마법이라니요?”

“마키모토 그룹 측에서 사과를 해 왔어요. 2만여 장의 포스터를 지원해 주는 것과 동시에, 주문량을 더 늘린대요. 전에는 우리가 그만큼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지 몰라 주문량을 많이 받지 못했대요. 우리가 발주량을 요청했을 때 분명히 가능한 숫자를 공유했는데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더라구요?”

그녀가 흥분해서 말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잘 됐습니까?”

“아주 잘 됐죠. 마키모토 편의점에서 어제 나간 매출은 S 편의점에서 나간 매출의 절반밖에 안 됐어요. 샌드위치 2개를 사면 생수 한 병을 주는 이벤트도 같이 해 준대요.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확 바꾸네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요.”

“잘 된 정도가 아니에요! 아주 환상적이에요.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그 마법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오늘 원래 부서장 회의에 같이 참석하실 예정이었지요? 저희는 추가 주문을 소화하느라 오늘은 회의를 할 수 없게 됐어요. 공장 견학이라도 하시겠어요?”

진혁이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유키코 씨를 믿습니다.”

유키코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감동한 듯이 말했다.

“저를 믿어 줘서 고마워요.”

‘어제 먹은 샌드위치 전부 괜찮았으니까 말이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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