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90화 (588/656)

제 590화

「이미 메뉴를 확정한 줄 알았는데요?」

진혁이 반문했다.

「네, 첫 번째 메뉴는 예정대로 햄 치즈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과카몰리 치킨 샌드위치, 에그 미트 샌드위치 세 가지로 진행합니다. 샌드위치 두 종류를 케이크 모양으로 재구성하고 싶어요.」

유키코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설명했다.

「햄 치즈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크루아상 모양 그대로 갈 거예요. 그게 제일 예쁘고 보기 좋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두 가지는 케이크처럼 예쁘게 만들면 더 시선을 끌 거예요.」

「디저트로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예쁜 한 끼’라는 컨셉이에요. 포장에도 쓰여 있으니 이게 디저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오히려 착각하고 구매한 사람이 있어도 한입 먹고 나면 의외로 샌드위치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더 재미있고 신이 날 거예요.」

유키코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진혁이 작게 고갯짓을 하며 그 의견을 수긍했다.

「좋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시험을 통과했다.

「웬일로 그런 식으로 질문하세요?」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셨을 때는 기운이 없으셨지요. 지금은 기력을 회복하신 거로 보입니다.」

진혁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유키코가 웃어넘겼다.

「아, 물론이죠. 오늘부터 드디어 상품이 깔리는걸요! 이날만 계속 기다려왔다구요.」

진혁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그저 따르기만 하는 수하를 원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의견을 내고, 새 상품을 개발하는 자를 원했다. 본래 케이크 위치를 함께 만들던 때의 유키코는 자주적으로 신메뉴를 개발하곤 했다. 최근에는 활기를 잃었다 싶었는데 지금 대화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지켜보면 되겠어.’

유키코는 진혁을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나서 일정을 알려주었다.

「일정표는 미리 받으셨지요? 한 시간 후에 호텔 회의실 중 다이아몬드 룸에서 동경 지사 회의가 있어요.」

「물론입니다. 그럼 조금 후에 뵙죠.」

돌아서는 유키코에게 진혁이 물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십니까?」

「네, 염려해 주신 덕분에 괜찮아요.」

그녀가 싱긋 웃어 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          ◈          ◈

진혁은 호텔 객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장유향이 보낸 장문의 메시지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영상과 그림 파일을 잔뜩 첨부한 걸 보면 여느 때처럼 흙가마에 구워낸 오리고기 사진을 보낸 것이 분명했다.

“이건 나중에 대답해야겠군.”

진혁이 피식피식 웃으며 스크롤을 넘겼다.

무하마드가 보낸 102개의 메시지 역시 방치해 두었다. 요리사들의 훈련 과정부터 시작해서 오늘 먹었던 메뉴에 대한 불평, 그리고 하늘 사진까지 온갖 잡담이 뒤엉켜 있었다.

경험상 이 대화에도 일일이 응답해주면 바로 새로운 질문이 날아온다. 진혁은 대충 목록을 훑다가 루이스 강이 남긴 메시지를 보았다.

「진혁, 동생 녀석을 돌봐줘서 고마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꼭 얘기해 줘.」

공적인 일이었다면 한 비서를 통해서 연락해 왔을 것이다.

“이번에 마리오에게 법무팀을 연결시켜줘서 그런가 보군?”

진혁은 짧게 답장을 남겼다.

「형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일이나 잘 해.」

루이스는 현재 푸드 블록 사업을 총괄하고 있느라 바빴다.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 이후로 황 그룹의 테마파크에 새로운 건물을 세웠으며, 동시에 미국의 허니 랜드에 궁전 같은 건물을 짓는 중이었다.

캐리비안 랜드와 기후가 달라, 음식의 종류 자체부터 바꾸어야 했다.

실시간으로 루이스가 응답해 왔다.

「아, 물론. 이번에 벌레들 다 잡아냈어. 젠이 아주 큰 일을 했지.」

「젠?」

「주느비에브 말이야.」

「호오.」

주느비에브 아짐은 본래 건축가 출신인 프랑스인이었다. 시몬 리옹의 제자 중 한 명이며, 지금은 홀로 독립했다. 건축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루이스를 보좌하여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진혁이 피식피식 웃었다.

「이제는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란 말이지.」

잠시 침묵한 후에 루이스가 응답했다.

「친구야, 친구.」

「업무에만 영향 없게 해 줘.」

「오케이.」

그는 남겨져 있는 부재중 전화 목록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전화를 다시 걸었다.

“병철이 형, 무슨 일이야?”

민병철은 미국의 병원 카페와 이탈리아의 호텔에도 푸드 블록을 이용한 미니 벽을 세울 수 없는지 재차 문의해 왔다. 진혁이 짧게 답했다.

“루이스 강 이사하고 직접 얘기는 해봤어? 내가 완전히 다 맡겼거든.”

민병철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당연히 해봤지. 그런데 진전이 없어. 여기 호텔 지배인도 그렇고, 병원 카페의 베이커들도 엄청나게 대단한 걸 원하는 건 아니야. 데코레이션용 푸드 월이나 액자 수준의 자그마한 장식이어도 괜찮거든. 한정판으로 공개하고 시식해도 좋은데. 아예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아. 루이스는 그냥 너랑 얘기하라고 앵무새처럼 얘기할 뿐이고 말이지.”

병철이 한숨처럼 토해내자 진혁이 말해주었다.

“흠, 내가 알기로는 지금 여력이 하나도 없긴 해. 허니 랜드 건설이랑 중국 쪽을 동시에 하면서, 디아타 공주의 궁전을 보수하는 일까지 병행하는 중이니까.”

“씁, 그런 것 같긴 하더라.”

“허니 랜드 건설이 마무리될 즈음에 다시 얘기를 꺼내 봐. 나도 말해놓을게.”

민병철이 물었다.

“그럼 여력이 가능한 시점에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다, 하고 이야기해도 되는 거지?”

“그건 내가 루이스 형하고 이야기해보고 확답해줄게.”

“오케이.”

진혁은 바로 루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차가 있어 전화는 자동응답기가 받았다.

「루이스 강입니다. 용건이 있다면 남겨 주십시오.」

“형, 나 진혁인데. 가로와 세로 1미터 정도 크기의 푸드 월이나 미니 액자 종류로 수십 개 정도 생산할 정도 여력이 생기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거 알 수 있게 되면 한 비서한테 연락 좀 남겨 줘.”

문밖에서 한 비서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님, 자리에 계십니까? 유키코 지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진혁은 대강 일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는 복도를 걸으며 한 비서에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병원 카페와 이탈리아의 호텔에서도 푸드 블록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데 말이지. 루이스 형과 병철이 형 두 사람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거로 보여.”

한 비서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미미 회장님과 상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푸드 월 문제를?”

“아니요, 조직의 구조와 의사소통이 문제입니다.”

그는 어째서 이것이 문제인지 짧게 설명했다.

“두 분이 대표이사님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관계라는 사실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뭔가를 요청했을 때 안 된다는 응답이 돌아오면 그때마다 대표 이사님에게 청탁성 요청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는지 깨달았다. 그가 아끼는 이들이 서로를 전혀 믿고 있지 않았다.

“그게 문제입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미미 회장님께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알겠어.”

그는 이전에 유사한 문제에 처한 적이 있었다.

‘혈도객과 광안마만 해도 개와 고양이처럼 사이가 안 좋았지.’

하지만 공동의 적이 등장해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우자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진혁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뭔가 무서운데.’

한 비서는 어쩐지 전신에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로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키코가 허리를 숙여 다소곳하게 인사했다. 그녀는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들은 시내의 편의점 중 가장 번화가에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세 군데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차량 내부에서 유키코가 일본의 편의점 시장에 대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였다.

“편의점 매상의 80% 이상을 식품류가 차지해요. 덮밥과 주먹밥, 파스타와 샐러드가 주로 팔리죠. 일일이 식재료를 사서 다듬고 익혀 요리를 하는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 단순히 편의점에서 사 먹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행은 자동차에서 내려 동경역의 지하쇼핑상가로 향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처럼 여러 날 먹을 먹거리를 한꺼번에 사지 않아요. 매일매일 퇴근하면서 신선한 먹거리를 사 가서 집에서 요리해서 먹어요.”

“그럼 편의점 음식들도 신선도가 중요하겠군요.”

“예, 그 점에서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의 편의점은 하루에 한 차례 음식을 받지만, 일본의 편의점은 하루에도 세 번씩 신선한 도시락과 샐러드를 받아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맞추어 음식을 사 가고요.”

“저희 샌드위치와 케이크 위치는 언제 반입됩니까?”

“지금으로서는 하루에 한 차례 저녁 시간대에 맞추어서 들어갑니다.”

“아침과 점심때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뭐죠?”

유키코가 생긋 웃었다.

“아직 충분히 주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주문량이 늘어나면, 저희가 별달리 영업하지 않아도 각 지점에서 주문을 할 거예요.”

그녀가 일본 편의점의 주문 시스템을 설명했다. 마키모토 그룹은 물론이고 S그룹의 포스기 역시 물건을 판매함과 동시에 주문자의 성별과 연령, 직업을 기록한다. 그리고 중앙 본부에서는 각 편의점에서 얻은 데이터를 취합하여 분석한다.

“60년대에 처음으로 편의점이 들어오고 벌써 30여 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죠. 그들이 갖고 있는 소매점 데이터를 알 수 있다면 저희가 빵을 만드는 데에도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통계적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났고, 조리를 하지 않는 가정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 데이터를 절대로 공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마키모토 편의점에 가까이 다가가자 화려하게 빛나는 노란색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메뉴를 홍보하는 플랜카드와 포스터에는 시원한 수박 화채와 자그마한 떡이 보였다. 케이크 위치 포스터는 붙어 있지 않았다. 유키코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네.”

“들어가 보죠.”

냉장 디저트 코너에는 자그마한 치즈 케이크와 에그 타르트, 그리고 크레페가 보였다. 알록달록한 미니 케이크들을 지나자 바로 샌드위치와 파스타, 도시락 코너가 있었다.

“여기 있네요. 진열 위치 자체가 다르니 디저트로 착각할 염려는 전혀 없겠네요.”

“세 개밖에 없네요.”

햄 치즈 크루아상 샌드위치. 그리고 과카몰리 치킨 샌드위치와 에그 미트 샌드위치. 종류별로 하나씩밖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양옆에는 평범하게 생긴 달걀과 마요네즈 샌드위치, 돈가스 샌드위치, 야키소바 빵이 사이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유키코가 굳은 얼굴로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두 번째 가게에 가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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