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8화
「내가 이미 이 냄새를 알고 있다라….」
꼬미 요리사는 애달픈 표정으로 말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내 머릿속에는 안 들어있나 봅니다.」
「열흘 전에 한 번 맡아봤을 겁니다.」
「으으으윽…, 그런 건 기억 안 난다고요.」
새로운 허브 향에 대한 토론을 마친 후 짧은 휴식 시간이 있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다시 트레이너들을 호출하는 동안 진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요리사들이 쉬는 동안 옥빵상제 김도을의 채널 역시 확인할 생각이었다.
“마리오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도을이는 더 심각한 상황일 텐데.”
김도을은 어제저녁에 비슷한 영상을 업로드해놓았다. 유튜버와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어 바쁜 강마리오가 생방송을 오늘 한 것에 비해서 채널 ‘옥빵상제’는 어제 논란이 퍼지자마자 바로 대응한 모양이었다.
“형들, 누나들. 아주 아주 먼 옛날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말이야.”
김도을의 이야기는 해명문이라기보다 일상 브이로그처럼 진행되었다. 그는 자신이 옛날 게시판에 올렸던 글들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진짜 찌질했단 말이야. 학교에서 친구도 없고 할 줄 아는 건 인터넷에 글 올리는 것밖에 없었거든. 그중에서도 좀 자신 있는 게 맛있는 빵을 먹는 거였어.”
지금은 폐쇄된 옛 빵 갤러리의 글을 몇 개 보여주었다. 세상에 맛있는 빵이 없다는 한탄 글이었다.
“학교 다닐 때 맨날 다니던 길이 있거든? 왜, 우리가 학교에 갈 때는 매일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고. 똑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다니지. 그리고 그 길에는 빵집이 하나 있었어. 몇 년간 똑같은 아저씨가 그 빵집에서 똑같은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 집에서 갑자기 빵집 아저씨가 아니라 빵집 형이 튀어나오는 거야. 그것부터 신기한 일이었는데, 샘플을 나눠준다면서 치즈 케이크 행사를 하더라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치즈 케이크 사진을 보여 주었다. 조각 케이크의 사진이었다.
진혁은 자신이 옛날에 처음 만들었던 초기의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를 알아보았다.
“큰 사장님은 안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 사장형이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하는 거야. 맞은편에 그때 막 프랜차이즈 빵집이 열렸거든. 그래서 그런가? 싶었지. 뭔가 아버지와 아들이 힘을 합쳐서 일하려는 것 같은 느낌?”
도을은 진혁과 아버지의 가게가 초기에 어땠는지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
진혁은 이 동영상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는지 확인했다. 옥빵상제의 해명 동영상은 이미 몇십만 뷰를 찍었다.
‘특별히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떠들 만한 일도 아닌데.’
진혁은 도을이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팔짱을 끼고서 그 영상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별로 먹고 싶지 않았거든. 그 집 형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갑자기 나온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갔어. 난 아빠도 없는데, 이 형은 아빠가 있는데도 아빠 일을 안 도와주다가 지금 와서 갑자기 같이 하고 있는 거잖아. 좀 치사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빵 향기가 너무 좋은 거야. 진짜 미친 듯이 좋았어. 지금 생각해도 표현할 길이 없는데.”
도을이는 코를 벌렁거리며 말했다.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맛있는 거야. 궁서체에 글자 크기 100? 아니면 200? 정도로 맛있었어! 그래서 그다음에는 형이고 아버지고 뭐고 상관없이 점심으로 매일 치즈 케이크를 한 조각 먹었지. 그걸 먹으면 저절로 힘이 나는 것 같더라니까. 나중에는 어머니도 그 케이크를 맛보셨는데 진짜 좋아하셨어.”
치즈 케이크에 대한 찬탄을 한참 하더니 또 진혁이 야기를 했다.
“아참, 형하고 큰 사장님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 내가 오해한 거였어.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 형이 군대에서 막 제대해서 아버지 가게 일을 돕는 거라고 하더라고? 군대에 있었으니까 당연히 가게에 있을 수가 없지. 그냥 내가 몰랐는데 함부로 생각했던 거야.”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방과 후에 태권도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게 나쁘지 않은 거야. 전에는 체육 시간에 내내 비실대다가 넘어지고 그랬는데, 커서 그런 건지 확실히 체력도 좋아지고 힘도 붙었어. 이게 빵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기는 비슷해. 자신감이 생기더라니까.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고, 살도 빠졌어.”
도을은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치즈 케이크가 너무 맛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 맛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는 거야. 그래서 게시판에 계속해서 글을 썼지. 글을 쓰다 보니까 영상도 찍게 되고, 평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영상을 찍어야 하니까 다른 집 빵들도 이것저것 사 먹어봤는데 역시 소망 베이커리 빵이랑은 다른 거야. 그냥 더 맛있는 걸 어떡해.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자주 가다 보니까 단골이 되고, 단골이 되니까 덤으로 주는 빵도 늘었어. 그걸 협찬이라고 할 수는 없지.”
한참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비로소 본론이 나왔다. 도을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솔직히 내가 좀 찌질하게 살았거든. 그런데 형한테 형이 만드는 빵 맛있게 얘기해 달라고 뭘 받은 적은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형이 품질 조절한다고 맨날 파는 개수도 제한하고 있단 말이야.”
“그야 그렇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화면 너머의 도을은 당연히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뭐 맛있다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형한테 이득이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오히려 특정 제품에만 사람들이 몰려서, 빨리 매진되더라고. 그러니까 맛있다고 해서 형한테 이득이 돌아가는 것도 없고 나한테 돌아오는 것도 없어.”
평소 껄렁껄렁하고 가벼운 태도를 견지하던 도을이 진지하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다른 단골손님들처럼 빵을 많이 사서 덤을 받은 적은 있지. 하지만 공짜로 빵을 받아본 적은 없어. 내내 돈 내고 사 먹었지.”
그는 여태까지 구입했던 빵의 가격 영수증을 한 장씩 카메라에 보여 주었다.
“내가 빵에 쓴 돈을 다 합치면 집을 살 수도 있겠다 싶어.”
결국은 협찬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빵 관련 리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보지 않은 건 아니야. 시판하는 빵, 빵집 빵들, 이제 막 개업한 카페 이런 데서 요청이 들어오긴 했지. 근데 그런 요청을 받으면 문제가 뭔지 알아? 맛없을 때 맛없다고 할 수가 없어. 맛없다고 하면 기분 나빠해. 아니 물어봐서 사실대로 대답해준 건데 말이야. 부탁을 할 때 속마음은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가 아닌 거야. <내 빵 맛이 어떻든지 간에 무조건 맛있다고 대답해주세요> 라고 하고 싶었던 거지. 진혁이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형 빵이 맛있어요, 하면 집요하게 캐물어. 식감이 폭신폭신한지 어떤지 단맛이 얼마나 느껴지는지 매운맛이 조금 들어있는데 느껴지는지 그런 걸 따져 묻는단 말이야. 자기가 빵을 만들 때 생각했던 주제가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를 계속 따지고 들어. 본인도 입맛이 예민해서 어느 정도 이상 맛있는 게 아니면 아예 시제품을 내놓지도 않고. 옛날에 두 번, 형이 소망시에 살 때 시제품을 줬거든. 둘 다 엄청나게 맛있었는데 내가 솔직하게 감상을 얘기하니까 형이 그거는 자기가 의도한 맛이 아니라고 하는 거야. 지나치게 단맛이 강하게 나와서 안 팔 거래. 지금 가게에서 파는 중인 디저트빵 라인은 이미 충분하니까 좀 담백한 식사 빵 계열로 간다나 어쨌다나. 그런 식으로 내 피드백을 원한다면 괜찮은데, 그냥 맛있다고만 해달라는 건 별로야. 나도 재미없다고.”
진혁이 이마를 짚었다.
“정말 모든 걸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군.”
그가 영상을 전부 다 보았을 때쯤에 한 비서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최근에 김도을 씨가 소망 베이커리 초반 대표이사님의 행보에 대해서 동영상으로 공개하였습니다. 혹시 이 상황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진혁이 혀를 찼다.
“한 비서는 모르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이사님. 홍보팀에서 방금 추가적인 연보고를 해왔습니다. 강마리오 님과 김도을 님 두 분 다 대표이사님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방향으로 인터뷰를 했으므로 이대로 두고 보는 편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바로 무하마드가 부르러 왔다.
「무슨 일이 있나? 다들 기다리고 있네.」
「별일 아닙니다.」
요리사들은 두 시간 단위로 체력 훈련, 미각 훈련, 그리고 다시 체력 훈련, 후각 훈련을 계속 받았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중간중간 소량의 음식을 수없이 맛보았다.
◈ ◈ ◈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고 마지막 밤이 되었다. 내일이면 이제 이곳을 떠난다.
-똑똑
고요한 가운데 운기조식을 하고 있던 진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였다. 그는 문 앞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알레한드로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혁이 문을 열었다. 알레한드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화분을 하나 내밀었다.
「이건….」
오돌토돌한 연초록빛 봉오리 위에 자그마한 연보랏빛 꽃이 도돌하니 피어 있었다. 짙은 녹색 줄기에 삐죽하니 찢어진 모양의 잎사귀가 빙 둘러 나 있었다.
「제가 직접 키운 페퍼민트 모종입니다.」
알레한드로가 머쓱하게 말했다.
「페퍼민트의 꽃말은 온정과 진심입니다. 거, 계속 배워보니까 진정 우리들을 생각해서 가르쳐 주는 거라는 사실을 알겠더라구요. 멀리까지 와서 고생 많았슴다.」
「마음만 받죠.」
「예?」
「이 모종을 한국으로 반입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아.」
「무하마드 왕자님께 맡기면 나 대신 잘 키워줄….」
알레한드로는 다시 화분을 세게 껴안았다.
「제가 알아서 키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혁이 피식피식 웃었다.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맛을 느끼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전에도 음식을 계속 먹어 왔지만 이렇게 조각내고 씹어서 삼키고 분해한 적은 없습니다. 진짜 많이 배웠습니다. 사흘밖에 없어서 아쉬울 정도임다.」
「그렇습니까?」
진혁이 피식 웃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자기 요리사들도 꼭 알아야 한다고요. 그러니 무하마드 왕자님께 감사하십시오.」
「하지만 직접 가르쳐준 건 임진혁 쉐프님이시죠.」
그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내일 아침은 저희가 요리하겠습니다.」
「예?」
「이번에 가르쳐 주신 지식을 바탕으로 저와 페드로 쉐프님이 신메뉴를 만들었습니다. 기대하시죠.」
진혁이 싱긋 웃으며 거절했다.
「새벽 비행기로 떠날 거라서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