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87화 (585/656)

제 587화

「특강 형식으로 실습수업을 진행하시기로 하셨잖아요?」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여동생과 아버지가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만일 자신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실습수업용 교재도 만들어야 하는 줄 몰랐습니다.」

「교재 없이 즉흥적으로 수업하시는 편이 편하실까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생각해 두겠습니다.」

「고마워요. 체육교사도 따로 초빙해서 체력 훈련을 강화할 계획이랍니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로 체력 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정한 필수 수업 시간에 과연 체력 시간을 얼마나 추가할 수 있을까? 미미는 그 시간이 되는지 아니면 안 되는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건 상의해서 조절해 보겠어요.」

「알겠습니다.」

◈          ◈          ◈

왕자의 요리사들은 새벽부터 운동을 하고, 음식을 맛보고, 다시 운동을 했다.

진혁은 그들이 사흘간 요리를 쉬고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건의했다. 무하마드 왕자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동안 외부 케이터링 서비스가 진혁이 요구한 대로 요리하여 가져다주었다. 가공식품이 포함되지 않은 단순한 요리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직접 요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던 요리사들은 막상 도착한 요리를 보고 좌절했다.

「이 허여멀건 한 고기는 닭 안심이군요….」

「일부러 소금이나 후추를 사용하지 않고 삶아낸 닭가슴살입니다.」

양념하지 않은 닭가슴살. 그리고 분리해 삶아낸 달걀흰자와 노른자, 닭 육수로 소금을 넣지 않고 끓인 맹맹한 맑은 수프가 첫 끼니였다.

단백질 위주로 향신료와 조미료 없이 익혀진 음식을 먹으며 요리사들이 괴로워했다.

「이건 요리가 아닙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요리가 아닙니다. 맛을 더 잘 알기 위한 테스트 코스입니다. 자, 지금 닭고기를 먹으면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달린 덕분에 그다지 식욕이 없었다. 양념이 되어 있지 않은 탓도 있어 페드로는 깨작깨작 닭고기를 뜯어 먹었다.

반면에 아직 젊은 알레한드로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씹지도 않고 안심을 바로 삼켰다.

「이거 양이 모자라는데요.」

「그렇게 먹는 게 아닙니다. 천천히 향을 느끼면서, 고기의 결이 입안에서 풀어지도록 씹어서 드시길.」

진혁은 요리를 맛보면서 식감과 촉감, 그리고 향을 분리해서 느껴 보도록 권유했다. 이미 다 먹어버린 알레한드로가 눈알을 굴렸다.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먹어야 합니까?」

「제대로 향을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그는 이 음식들이 과연 자신이 주문한 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똑같은 음식을 소량 맛보았다. 꼬마 요리사 중 한 명이 조그만 목소리로 불평했다.

「닭고기에서 비린내가 나는데.」

진혁은 그 혼잣말을 귀신같이 알아듣고서 바로 대답해 주었다.

「특정 유전자 배열을 가진 이들은 이 닭 비린내에 더 민감합니다. 지금 이 닭은 보아하니 냉동했던 닭을 다시 녹인 건데, 신선한 닭을 잡아서 바로 요리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은 잡내를 잡을 때 어떤 방식을 쓰십니까?」

요리사들이 저마다 이야기했다.

「전날부터 우유에 담가놓습니다.」

「물이 끓을 때 요리용 와인을 넣으면 되는데.」

「후추와 칠리를 넣어 수비드를 하면 됩니다.」

「허브를 넣는 편이 좋죠. 닭고기와는 딜이나 레몬이 어울립니다.」

「처음부터 신선한 닭을 쓰죠.」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진혁이 희미하게 웃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향을 강하게 가미하여 비린내를 가리는 방법을 쓰지요. 아시다시피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면 진한 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진혁은 이전에 푸드 블록을 만들면서 익혔던 다양한 지식을 선보였다. 알레한드로가 질문했다.

「페이스트리 쉐프인데 재료의 성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으신 거 같습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치킨 파이를 굽습니다.」

그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꼬미 쉐프가 눈을 깜빡였다.

「아.」

「요리를 중심으로 하신다고 해도 베이킹은 하시지요?」

「네.」

「그런 겁니다.」

수업을 듣고 난 후에는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았다. 새벽에는 야외에서 달렸으나 오전 중에는 중동의 햇볕이 너무나 뜨거워 밖에서 운동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흐르는 외부 체육관을 대여해, 다 함께 자동차로 이동했다.

요리사들이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하는 한 시간 동안 진혁은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귀염둥이 강마리오입니다.”

평소에는 밝고 화려한 원색의 상의를 즐겨 입었던 마리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저는 사과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빵 후기 영상인 줄 알았다. 진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옛날 댓글들을 확인했다.

“무슨 일이지?”

그가 댓글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마리오는 부리부리한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해와 달>의 북미 프랜차이즈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직원할인은 신메뉴 중 1개밖에 안 됩니다. 저는 전부 제 돈을 주고 사 먹고 있습니다!”

욕설과 초성으로 도배된 질문 글이 주르르륵 올라갔다. 뒷광고니 뭐니, 정말이냐며 따지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리오는 힐끔힐끔 댓글을 보다가 아예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양팔을 벌리며 극적으로 외쳤다.

“제가 제 혀를 걸고 솔직히 말하는데 여기 빵이 진짜 맛있습니다! 한번 먹어보면 다른 데 빵을 먹을 수가 없어요. 무슨 마약이라도 넣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돈데요. 제가 만드는 빵이 맛없는 게 아닙니다. 제가 나름대로 세계 대회에서 입상도 해봤다고요. 빵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대표이사인 진혁이가 만든 빵이 너무 맛있거든요.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제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어요. 빵의 세계에 게임 레벨을 적용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최고 레벨에 최상의 장비를 갖추고 스킬까지 만땅 찍은 수준에서 이상하게 플레이까지 무지무지하게 잘하는 거죠. 너무 잘해서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수준이라고 할까요?”

마리오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줄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실시간 채팅 창이 더러웠다. 악플러들이 마리오에게 빵 리뷰가 진심인지 아닌지 따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마리오의 팬들이 늘어났는지 시청자들의 질문이 점차 한 가지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가 제일 맛있는데?”

“해와 달에서 지금 팔고 있는 빵이냐?”

“얘 처음에 하꼬일 땐 지 빵이 세계 최고니 어쩌느니 하더니 겸손 떠네. 그런데도 돈을 안 받았다고?”

종종 태클을 거는 사람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는 무슨 빵이 제일 맛있는지 묻는 질문이 대다수였다.

시청자들은 인생 최고의 빵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질문했다. 실시간 채팅창을 보고서 진혁은 이 유튜브 영상이 생방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강마리오는 꾸준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왔다. 대회 준비 과정도 공유했고, 우승한 후의 소감도 방송했다.

유능한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초청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고,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빵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했다.

나름 성공한 유튜버로서 파리와 서울에서의 일상 브이로그도 꼬박꼬박 올렸다. 프랑스어와 한국어, 두 가지로 해 왔기에 양쪽 나라 모두에 팬이 있었다.

진혁 역시 종종 강마리오의 채널을 확인해 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과할 수 없다’라고 말할만한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어, 제일 맛있는 빵이요? 말하기가 어려운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역시…, 그때 그 빵이죠.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우승한 문제의 그 무지갯빛 케이크입니다. 그게 단순히 이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맛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어요. 사랑에 대한 철학을 맛 속에 담았는데 초콜릿과 라즈베리가 어우러지며 우유 크림과 함께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게 아주 사랑이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마리오는 자신이 먹었던 가장 맛있는 빵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케이크 좀 만들어서 팔아 달라고 아무리 애걸해도 진혁이 놈은 팔아 주지도 않고…, 그게 좀 손이 많이 가는 케이크기는 합니다. 그런데 진짜 맛있거든요. 재료도 온갖 것이 다 들어가요. 하….”

강마리오는 제스처가 풍부했다. 프랑스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말할 때마다 양팔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우리가 사실 동갑이거든요? 친구예요. 그런데 친구가 빵 좀 만들어 달라는데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진혁아, 보고 있냐?”

눈물이 강마리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말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아래쪽 크림이랑 빵 시트가 혀 위에서 촤르륵 녹는 게 아주 다른 케이크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니까요. 저 가끔 그 케이크 꿈도 꿔요.”

눈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마리오는 말하면서 침을 주륵 흘렀다. 실시간 채팅 창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외치기 시작했다.

“더러워!”

“마리오니뮤ㅠㅠㅠㅠ제바루ㅠㅠㅠㅠㅠㅠㅠ거울 좀 보고 오세요”

“저렇게 침 흘릴 정도로 맛있냐”

“진짜ㄷㄷㄷㄷ맛있나보다 나도 먹고 싶어”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한 비서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물었다.

“지금 강마리오가 유튜브에서 사과하지는 않겠다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만.”

진혁이 말을 꺼내자 한 비서가 바로 대답했다.

“유튜브에서 뒷광고 논란이 있습니다.”

“뒷광고가 뭡니까?”

“광고임을 밝히지 않고서 광고를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제품과 함께 수수료를 받거나 제품을 제공받고 나서, 광고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광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옥빵상제의 채널과 강마리오 님의 채널이 ‘해와 달’에서 돈을 받고서 리뷰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다시 조사해서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요리사들이 돌아왔다. 체육관에서 달리고 온 요리사들은 저마다 샤워를 하고 암흑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향신료 중 허브의 특성에 집중했다. 비슷비슷한 허브와 과일을 구별하면서 꼬미 쉐프 중 한 명이 한숨을 쉬었다.

「캐모마일과 사과는 향이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래서 캐모마일은 사과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사과는 캐모마일을 대체할 수 있고요.」

진혁이 짧게 설명했다.

「향기를 느끼는 감각기의 수준은 모든 인간들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느꼈던 향기를 다시 구분 지어서 그룹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다릅니다. 어떤 향기인지 이미 알고 있지만, 기억 속에서 그것을 찾아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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