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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81화 (579/656)

제 581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폐가가 되어 버리니까요. 어차피 관리인을 알아볼 생각이었어요.」

진혁은 중독 센터의 치료 과정이 몇 주 정도 걸릴지 대략 짐작해 보았다. 최소 4주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그가 미미에게 물었다.

「이 중독 치료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텐데요. 관리인이 당장 없어도 괜찮습니까?」

「지금은 피에르 씨가 관리하고 있긴 한데….」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미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쓰러지실 때 옆에 있었잖아요? 그래서인지 밤마다 악몽을 꾸나 봐요. 그래서 다른 숙소를 알아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답니다.」

‘피에르와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후에 피에르 씨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야기를 좀 해보죠.」

미미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휴. 빌은 나이도 많지 않은데 자살을 생각한다니 안타깝네요. 그래도 마음을 바꿔서 센터에 들어가기로 했다니 다행이에요.」

윌리엄 파커는 미미보다 두 살이 많았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설마 센터에서 또 마음을 바꾸지는 않겠지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미미에게도 자신이 빌 파커의 정신을 건드렸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정신계 술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서 좋을 것이 없다.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최악의 경우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써서 호감이 생기게 했다고 의심하는 경우도 생긴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곤경에 처한 인재들을 데리고 와서 은혜를 입혀서 키우는 게 제일 좋다고 하셨어요. 평판이 좋지 않으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관리인 역할을 흔쾌히 맡아줄 거예요.」

「빌 파커의 상황이 벌써 소문났습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이던데요.」

미미가 살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호호. 진혁 씨는 신경 쓰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은 걱정이고, 이용할 사람은 이용한다. 미미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이건 광안마가 하던 방식 그대로인데.’

도박 중독 치료 센터를 다녀왔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비서로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서라는 지위 자체가 개인의 금융 결제부터 전부 관리하는 만큼 신용이 필요하다. 도박이든 알콜이든 약물이든 그 어떤 중독자라도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평판까지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 나오면 일할 수 있도록 제안서를 먼저 보내고 지켜보지요.」

「보니까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순진한 면이 있던걸요. 잘 키우면 될 거예요.」

미미의 눈앞에 접시와 포크가 떠올랐다. 저 혼자 멋대로 빙글 돌아간 수도꼭지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우아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접시와 포크를 감쌌다. 깨끗해진 접시는 알아서 접시 칸으로 돌아갔고 포크 역시 포크함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순수하게 놀라워했다.

「식기 세척기가 필요 없네요. 여하튼 빌 파커의 건은 걱정 마시고 제게 맡겨 주세요.」

◈          ◈          ◈

진혁은 살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일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을 밝히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진실을 토설(吐說)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니 쉬울 수밖에 없다.

현대의 거짓말탐지기가 완벽하게 진실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보다 진혁이 훨씬 유리한 지점에 서 있었다.

「들어오게 하게나.」

한 비서는 첫 번째 용의자를 방으로 안내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자가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섭혼술을 사용하기도 않았다. 예상외의 상황에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았는데….」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들과 모두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

「예?」

그녀는 그대로 무너지듯이 의자에 앉았다. 나이든 여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녹색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들며 희게 센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방금 고백한 자는 가정부 피에르 몽탕이었다. 진혁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왜 죽였습니까?」

「죽이려고 한 게 아니에요! 살리고 싶었습니다. 밥 앤더슨 씨는 제 아들 헨리를 아들처럼 아꼈습니다. 헨리가 밥 씨의 영향을 받아 순수 회화를 전공하겠다고 하면서 더 자랑스러워하셨어요. 따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헨리가 훌륭한 화가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도 하셨단 말이에요.」

그녀가 횡설수설하면서 말했다.

「그러다가 암을 낫게 하는 귀한 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꽤 비쌌는데,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소문해서 그 약을 간신히 얻었어요. 아무 맛도 나지 않고, 해도 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가 자기 어머니도 그 약을 드시고 나았다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진혁은 피에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생전 밥 앤더슨이 이 가정부를 얼마나 아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피에르가 헌신적으로 앤더슨을 돌보던 모습을 떠올렸다.

「왜 그 사실을 진작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찝찝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면 왜 지금 와서 나에게 말하는 겁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요.」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임진혁 쉐프님이 얼마나 다정하고 상냥한 분인지 밥이 여러 차례 얘기했어요.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했지요.」

임진혁은 이 여자를 쳐다보았다.

백진영이라면 여기서 뭐라고 했을지, 임진희라면 어떻게 말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적절한 응답을 찾아냈다.

「내가 아니라 경찰을 찾아가셨어야지요.」

임진혁은 사법권을 갖고 있는 교주가 아니며, 피에르는 교인이 아니다.

그가 지금 진혁을 찾아와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떠들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상했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면, 최소한 법률관계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는가?

딱히 진혁과 친분이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친구가 없던가?’

그녀는 대학을 자퇴한 이후로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 밥 앤더슨이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도 홀로 타운 하우스를 지켰다.

그렇지만 정말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을까?

진혁은 피에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자연스러웠다. 뺨을 흘러 타고 내리며 턱 끝까지 굴러가는 눈물방울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올 이유가 없단 말이지.’

그는 종종 환희당에서 하는 기녀의 연기 훈련을 구했다. 환희당의 당주는 꼬마 기녀들에게 고관대작이나 명문정파의 요인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연기를 훈련시켰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연기부터 활짝 웃으며 기쁨을 선보이는 연기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진혁은 진정 느끼는 감정과 억지로 만들어낸 감정을 표현할 때 근육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억지로 우는 모습을 표현할 때에는 안와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떨린다. 먼저 얼굴을 찡그린 다음에 눈물샘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실제로 울 때는 얼굴 전체의 근육이 동시에 일그러진다.

피에르가 울먹이며 다시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다. 그 모습에서 진혁은 예전에 보았던 연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진혁이 가볍게 손을 뻗었다.

피에르 몽탕은 순간 의식을 잃었다. 깊은 늪 속으로 한없이 추락하듯,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잠겨 들었다.

끝없이 어두워 검기만 한 늪이나 마찬가지다.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꿈이었다.

손발이 완전히 묶여 있는데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로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라고 있다.

다만 눈앞에 오직 한 쌍의 눈동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

인간의 것 같지 않은, 악마와도 같은 그 눈빛이 꿰뚫듯이 질문했다.

「왜 나에게 와서 살인을 고백했습니까?」

「제임스가 경찰에 가짜 단서를 줘야 한다고 했어요….」

「제임스와 무슨 관계입니까?」

「연인 관계입니다.」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피에르는 40대 초반이었다. 그녀는 고생을 많이 해서 아주머니라기보다 할머니처럼 보였다. 희게 세어버린 머리와 굳은살이 박힌 손을 힐긋 바라보았다.

반면에 제임스는 훨씬 젊었다. 아마 15세 이상 연하일 것이다.

「언제부터요?」

「얼마 안 됐습니다.」

「누가 먼저 고백했습니까?」

「제임스가요.」

진혁은 두 사람의 연애 사정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가 왜 피에르를 선택해서 유혹했는지는 알고 싶었다. 이번 사건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제임스도 한 번 불러와야겠는데.’

그는 사건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다른 질문을 이어나갔다.

「누가 계획을 세웠습니까?」

진혁은 한때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어 일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암살자를 시켜서 적을 죽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살인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암살자에게 있는가, 아니면 살인 교사범에게 있는가?

임진혁은 누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웠는지가 궁금했다.

「밥 앤더슨을 죽이고 싶었습니까?」

「예.」

「왜요?」

「그자가 제 그림 아이디어를 훔쳐갔습니다.」

「어떤 아이디어입니까.」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그저 몽롱하게 진실을 꾸역꾸역 토해낼 뿐이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아이디어요.」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펜로즈 삼각형 말입니까?」

「구체적인 도형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그 시작은 제 아이디어였다고요. 그는 제 아이디어를 훔쳐서 성공했는데 저에게 아무것도 보상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시간도 주지 않았어요. 나는 감옥 같은 곳에 갇혀서 내 청춘을 낭비해 버렸어요. 이제 다시는 붓을 쥘 수 없을 거라고요.」

피에르가 불그죽죽하니 한 어린 원망을 토해냈다. 진혁이 혀를 찼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수프에 무엇을 넣었습니까?」

「제임스에게 받은 가루를 넣었어요.」

「그게 뭔지 알고 있었습니까?」

「아니요.」

피에르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빨리 잠드는 약이라고 했어요.」

그녀는 연인을 옹호했다.

「제임스가 일부러 죽이려고 한 건 아니에요.」

‘바보인가?’

천하제일의 바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진혁은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피에르를 보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섭혼술에 걸려 있는 가정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밥이 점점 더 예민해졌어요. 제임스가 서재에 설치해둔 녹음기를 치워야 하는데, 밥이 서재를 떠나려고 하질 않아서 곤란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진혁이 피에르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살인자라면 헨리 역시 유산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니에요. 제임스가 이렇게 호의로 약을 준 경우에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했어요.」

「…암에 좋다는 약을 넣었다고 저에게 고백하는 대가로 무엇을 받기로 했습니까?」

「12만 달러요.」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아, 그냥 죽여버릴까.’

진혁은 손날로 피에르의 목을 내리쳤다.

◈          ◈          ◈

그는 기절한 피에르를 옆방 침실로 옮겼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임스 씨,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오시지 않았더군요.」

「아! 임진혁 쉐프님. 안녕하십니까.」

제임스는 유들유들하게 전화를 받았다.

「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포도주 거래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비워야 했습니다.」

진혁와 미미를 비롯해 다른 이들 모두가 주요 참고인 상태였다.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뉴욕시를 벗어날 수 없다.

‘빌이 뉴저지로 출발하기 전에 범인을 경찰에 넘겨줘야겠군.’

진혁이 덫을 놓았다.

「포도주를 제가 전부 구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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