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79화 (577/656)

제 579화

「가짜라고요?」

「NYPD에 직접 확인했어. 큐라레가 아니라 테트로도톡신이야.」

「복어 유통과 테트로도톡신 반입에 대해서 대해서 조사해 오겠습니다.」

한 비서는 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진혁이 한 비서를 말렸다.

「그보다 다른 일을 먼저 해 주게. 마이클 타카시를 직속 해결사로 고용했어. 그러니 그자의 업무 계약서와 연금, 치과 보험 문제를 처리해 줘.」

「정리해서 황 그룹 인사부에 넘기겠습니다. 그리고 복어의 유통과 독물에 대해서 조사해오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자네는 행정 쪽 일을 잘 하지 않나? 그러니 탐정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대표 이사님.」

한 비서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제 잘못입니다. 제대로 조사해 준 줄 알았지요. 대학 때에는 베프였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도 보내는 관계입니다. 식사할 때 분위기도 좋았고 물어봤을 때 흔쾌히 대답해 줘서 믿었습니다. 후, 가짜로 알려줄 바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말 것이지….」

「술자리에서 하는 말을 믿었단 말인가? 허세를 부렸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학창 시절에는 허풍쟁이가 아니었습니다.」

진혁이 혀를 찼다.

「쯧, 사람 보는 눈부터 키우게.」

한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그는 무어라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진혁이 물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저도 밥 앤더슨 씨를 존경했습니다. 그분을 해친 자를 찾는 일을 돕고 싶습니다.」

진혁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아니,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 비서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          ◈          ◈

그날 오후, 아랍에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임 쉐프, 축하하네.」

무하마드 왕자의 축하 말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자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림 전부를 안사람이 갖게 되었다고 들었네.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조건이라며? 그런 조건이라면 나도 들어줄 수 있었는데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배가 아플 정도야!」

「그렇습니까?」

「현대 미술 수집가들이 다들 좌절하고 있다네. 닭은 지붕에 올라가 버렸고, 개들만 마당에 남아서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셈이지! 자, 그럼 그림은 언제부터 전시할 건가? 펜로즈 연작 중 최신작은 여태까지 공개가 안 된 것들도 있을 텐데. 내가 개인적으로 보러 가도 되나?」

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범인이 명확히 밝혀져야 유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

「뭐? 설마 누군가 자네나 자네 부인이 살인자라는 의혹을 제기했나? 누구야, 그런 얼토당토않은 의심을 하는 자가!」

무하마드 왕자가 벌컥 화를 냈다.

「뉴욕 경찰국입니다.」

「아주 몹쓸 놈들이군. 기다려 보게, 내가 윗선을 좀 알아. 내가 그쪽에 적절한 투자를 해 보지. 그럼 바로 용의자에서 풀려나게 될 거야.」

진혁이 정색했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겁니다.」

「내가 투자한다는데 뭐가 문젠가?」

「어쨌든 안 됩니다. 그보다 지금 요리사들은 어떻습니까? 허브 열 종류 정도는 다 구분할 수 있지요?」

무하마드 왕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두 명이야. 페드로랑 알레한드로.」

진혁이 콧잔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다른 놈들은 코가 없답니까?」

「정규 업무를 하면서 훈련을 받는 일이 쉽지는 않지.」

「근성이 썩어빠진 놈들이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내가 잘 가르쳐 보겠네.」

「그렇습니까? 아예 갈아버리고 새로운 애들을 데리고 오죠. 와인 아카데미 출신들이 그렇게 코가 좋다는데.」

「아니야,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될성부른 나무는 새싹부터 푸른 법입니다.」

「그래도 나하고 함께 오랫동안 해온 이들이야. 성실하고 요리도 잘한다네.」

「왕자님의 고용인들이니 뜻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마키모토 그룹과의 협력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입을 떡 하니 벌리며 항의했다.

「자네 자꾸 이런 식으로 사업 얘기만 할 건가? 자꾸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 같네.」

동시에 무하마드의 입술이 말려 올라가 잇몸이 드러났다. 진혁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물었다.

「…그럼,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 사업이 중요하지. 하지만 우리는 맛의 길을 함께 걷는 구도자잖아. 그게 더 중요하지 않나? 사업 파트너는 수백 명이 있지만, 인생에 있어서 식도락이란-.」

이미 수백 번 넘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의 말을 무례하게 끊으며 용건을 말했다.

「마키모토 그룹 측에 제안서를 보냈으니 그쪽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렴, 당연하지. 내가 바로 말하겠네.」

무하마드 왕자와 연락을 마친 후 진혁은 기대하지 않던 연락을 받았다.

「윌리엄 비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

밥 앤더슨의 비서인 윌리엄 파커였다. 제임스나 가정부인 피에르, 또는 알렉산더라면 모를까 이 사람이 제일 먼저 연락해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는 그저 평범한 비서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름 고가의 선물을 받는 동안 현금 5천 달러밖에 못 받았지.’

한화로는 5, 6백여만 원밖에 되지 않는 돈이다. 마이클 타카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는 한 달 월급 가량을 보너스로 받았다. 유언이 발표될 당시에 꽤나 화내는 것처럼 보였다.

빌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그냥 빌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래, 빌.」

진혁은 오른 손바닥을 폈다. 그는 도박중독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특히 눈앞의 남자처럼 자신과 아무런 관련 없는 자라면 더하다.

「혹시 새로 비서를 채용하실 계획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 제 이력서입니다.」

훌륭한 학력과 경력이다. 자식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신랑감으로 맞이하고 싶어 할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 사실을 알고 있었다.

‘10만 달러의 빚이 있는 도박중독자, 윌리엄 파커.’

진혁은 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금발, 푸른 눈. 영화배우처럼 멀끔한 외모에 누구나 호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은 썩어있는 밤과도 같다. 진혁이 물었다.

「고인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는 빌에게 소액의 현금만을 남겼다.

한 푼도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굳이 5천 달러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분이셨습니다.」

정중하게 거리감을 두는 대답을 들으며 진혁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죠. 유언을 발표하는 날, 5천 달러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당신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때도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빌이 싱글싱글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분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예술가적인 기질이 있고 고집이 셌죠. 제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 사람은 확실히 챙기는 분이시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죠.」

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금 더 오래 살아계셨다면 좋았을 겁니다.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쩌겠습니까. 괜한 기대를 한 제 잘못이지, 밥 앤더슨 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는 후련해 보였다.

「밥 앤더슨 씨께서 만일 자신이 죽게 된다면 임진혁 씨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비서가 필요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진혁은 물끄러미 빌을 바라보았다. 그는 타르트 가게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사람들에게 사술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죽은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굳이 금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빌 파커는 어리둥절하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어-.」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빌에게 다가가,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빌 파커의 눈동자에 총기가 사라졌다. 그는 죽은 생선처럼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진혁이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빌 파커. 네가 밥 앤더슨을 죽였나?」

「아닙니다.」

빌 파커가 고개를 저었다.

「누가 밥 앤더슨을 죽였나?」

「모릅니다.」

그가 꼭두각시처럼 멍하니 대답했다. 진혁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밥 앤더슨이 죽던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3층 서재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용 처리와 택스 리턴 관련 서류 중 영수증이 빠진 것이 있어 전화를 걸고 있었죠. 그리고 갑자기 911 사이렌이 울려서 바깥 어디에 사고가 났나 했습니다. 그런데 911이 저택으로 들어와 문 앞에 주차하고 사람들이 몰려오더군요. 올 것이 왔구나 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설명해 보게.」

「피에르와 밥 앤더슨 씨는 식당에 있었습니다. 밥 앤더슨 씨는 스스로 수프를 마시기도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상 피에르가 수프를 떠먹여 드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하며 얼굴이 파래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피에르가 신고를 했다고 하고요.」

「제임스는 어디에 있었나?」

「원래 저와 같이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1층 부엌에 내려가서 커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피에르가 바빠서 직접 타 왔다고 했습니다. 제 것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경관은 피에르가 신고했을 당시 제임스와 빌이 내내 같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임스에게 물어봐야겠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숨긴 것일까?

진혁은 다른 사항들을 묻기 시작했다.

「복어를 먹어본 적이 있나?」

「모릅니다.」

「정제된 테트로도톡신을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테트로도톡신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나?」

「없습니다.」

진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네는 정말 아는 게 없군.」

어쨌거나 이 자는 범인이 아니었다. 진혁은 용의자 목록에서 빌을 지웠다. 그리고 사건과는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일을 묻기로 했다.

‘미미도 궁금해했지.’

「밥 앤더슨이 왜 하필 5천 달러를 유산으로 남겼지?」

「밥 앤더슨 씨는 전부터 저에게 도박 중독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치료를 받을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대출을 받을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막대한 빚을 갚는 것이 불가능하니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섭혼술에 포섭된 대상자는 아무것도 숨기지 못한다.

「밥 앤더슨 씨는 제 자살 계획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살고 싶어도 더 못 사는데 무슨 아까운 짓이냐며 화를 냈습니다. 건강은 해결할 수 없어도 돈은 해결할 수 있다며,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당장 돈이 있어 빚을 갚아도 도박하는 버릇을 못 고치면 말짱 헛수고가 되니, 일단 도박하는 버릇부터 고쳐 보자고 했습니다.」

진혁에게 있어 밥 앤더슨은 단순한 사람이었다. 고집이 세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며 예술에 집착하는 늙은이였다.

「뉴저지에 있는 도박 중독 치료 센터의 입회금이 5천 달러입니다. 밥 앤더슨 씨가 저에게 추천해 준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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