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8화
「고인을 살해한 독이 테트로도톡신입니까?」
벨리 로즈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는 자신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다. 벨리가 단정 지어 말했다.
「다른 정보원이 있으시군요.」
진혁은 그 말에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벨리 로즈가 진혁도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시다시피 테트로도톡신은 생물 독이기 때문에 복어의 내장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복어를 수입하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독을 제거한 상태로 들여오죠. 맨해튼 시내에 복어 전문점이 한 군데 있습니다.」
진혁은 뉴욕이라는 넓은 도시에 복어를 다루는 식당이 한 군데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서울에는 꽤 많은데. 정말로 하나밖에 없나?」
「독을 제거한 복어를 수입해서 내놓는 스시 집은 두어 군데 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물 복어를 수입해 직접 손질하는 요리사는 스즈키 토우 씨밖에 없습니다. 뉴욕에서는 복어를 독물 취급하기 때문에 허가증을 함부로 내주지 않아요. 스즈키 씨는 일본에서도 수십 년 이상 복어를 요리해 왔던 복어 전문 요리사로, 뉴욕에 최초로 복어 요리 전문점을 만들었습니다.」
벨리 로즈가 머쓱하게 말했다.
「제가 미식에 관심이 있어 복어 요리를 먹으러 가 봤거든요. 최소한 저번 달까지는 그랬습니다.」
「그 식당이 음식물 쓰레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데.」
진혁은 오래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복어 독은 신경독이기 때문에 황과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은수저로 감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복어를 내장째 끓여 익혀 말린 다음에 가루로 만들어 독으로 썼다. 사천당문에서는 꼭 죽여야 할 자들에게 사용하곤 했다.
물론 복어의 내장에 독이 있다는 사실은 당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혀끝에 짜릿하게 느껴지는 맛이 궁금하다며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복어 요리를 먹으려 하는 권력자도 있었다. 그래서 한순간의 스릴을 위해 복어 요리를 맛보다가 죽은 명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진혁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쓰레기통이었다.
「식당이 있는 위치가 어디지?」
「맨해튼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죠.」
「그렇다면 노숙자들이 돌아다니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는 일은 없나.」
송대에만 해도 거지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식당에서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었다. 손질하고 남은 복어 내장을 먹고 죽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복어의 난소와 피부, 내장 역시 독극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버리지는 못할 겁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뉴욕의 상황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용인들이 스즈키 씨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까?」
진혁이 알기로 최근 일주일간 알렉산더 그레이를 비롯해 고용인들 전부 멀리 나가지 않았다. 벨리 로즈가 머쓱하게 말했다.
「알렉산더 그레이를 비롯해 다른 세 사람이 복어 요리 식당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조사해 보겠습니다.」
즉 여기까지 알고 있지만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니, 괜찮아.」
「….」
벨리 로즈는 다른 세 사람에 대한 보고를 마저 하였다. 이미 문서로 보고한 것 외에 특별한 사항은 없었다.
「수고했네.」
진혁이 이 탐정에게 더 이상 일을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벨리 로즈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쓸쓸하게 방을 떠났다.
진혁은 혀를 차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탐정은 조금 더 쓸모 있었으면 좋겠군.’
마이클 타카시는 쾌활하게 알렉산더 그레이에 대해서 보고했다.
「그자가 도금 금시계를 주문한 정황이 있습니다.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며 술집 여자에게 뿌리고 다니기도 했고요. 근처의 전당포를 뒤지고 있는데, 아마 고인의 금시계를 바꿔치기하고 팔아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이번에 유산으로 그 시계를 받고 격렬하게 항의했다던데, 아주 쌤통입니다.」
사감 섞인 발언에 진혁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는 탐정이나 조사원이 자신의 감정을 섞지 않고 사실만을 보고하는 편을 선호했다.
「그리고?」
「제임스의 경력을 보면 2년 정도 비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재활 치료를 받았습니다. 고양이에게 쥐를 맡긴 셈이죠.」
진혁이 팔짱을 끼었다. 마이클이 웃으며 말했다.
「유언 내용을 보니 알겠더군요. 밥 앤더슨 씨는 제임스가 포도주를 훔쳐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서 골탕을 먹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후우.」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이클 타카시가 보충해서 말했다.
「밥 앤더슨 씨의 주류 창고는 꽤나 유명하죠. 그 정도 가격의 술들은 소매로는 판매가 불가능하니 경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탐정이 설명해 주었다.
「포도주는 특히나 위조품이 많은 분야입니다. 오래된 포도주의 라벨만 떼어다 새 병에 붙이기도 하고, 이미 마셔버린 포도주의 병과 코르크를 재활용하기도 합니다. 새 포도주를 헌 병에 담는 셈이죠. 위조품이 많은 만큼 가짜를 가려내는 기술도 그만큼 발전했습니다.」
「호오.」
마이클이 낄낄대며 말했다.
「제임스는 지금쯤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설마 자신이 포도주들을 물려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카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임진혁 역시 모르지 않았다.
제임스가 포도주 창고의 술을 이미 마셔버리고 다른 싸구려 술로 채워놓았다면 어떨까?
이미 일 년 정도 전부터 밥 앤더슨은 전혀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의사가 엄격하게 금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실 수는 없어도 그는 자신의 자랑인 포도주 창고에 종종 내려가 포도주병을 보며 흡족해했다. 개중 몇 병을 골라 진혁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완전히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다음부터는 거의 포도주 창고에 내려가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밥을 안아서 계단을 내려가지 않는 한 그는 창고까지 갈 수 없었다.
‘나하고 한 번 갔지.’
한 달 전의 일이다. 밥 앤더슨은 진혁에게 창고를 보여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굳이 거절하는 임진혁에게 자신을 업어 달라고 졸랐다.
‘수프를 부탁하기 전이니, 유언장을 고쳐 쓰기 며칠 전이었는데 말이지.’
밥 앤더슨은 계단을 내려갈 때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포도주 창고에 도착해서 둘러보았을 때는 그다지 기분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진혁은 밥에게 왜 그런지 묻지 않았다.
‘술을 볼 수는 있어도 마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아서 기분이 나빠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밥 앤더슨은 그때 포도주병들을 보면서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코르크의 모양이나 술의 향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만이 몰래 표시해두었던 무언가를 보고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병들어 있던 사이에 신뢰하던 비서가 고급 포도주를 몰래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그를 불러내 야단칠 것이다. 도난 신고를 하고 감옥 신세를 지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밥 앤더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진실이더라도, 거짓이더라도 상관없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어떻게 보면 천재적인 방법이었다.
만일 제임스가 술을 훔치거나 하지 않았다면 그저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에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혁은 유언이 발표되었을 때 제임스의 표정을 보았다.
그는 기뻐한다기보다는 당혹하고 곤란해했다. 진혁 말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절망과 함께 후회가 아주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다.
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로 심술궂은 노인네야.’
제임스는 평생 후회할 것이다.
자신이 몰래 술을 훔쳐 마시지 않았더라면 수십만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포도주 창고의 관리는 진혁이 맡고 있는 탓에 빠른 시일 내에 술병들을 빼내야 한다.
그러니 제임스는 시간을 끌면서 이 상황을 얼렁뚱땅 얼버무릴 수도 없다.
포도주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위조품을 경매에 내놓아야 한다. 어느 쪽도 제임스에게 있어서 편한 길은 아니었다.
‘발목을 잡아 줘야지.’
밥 앤더슨의 유언은 벌써 널리 알려졌다.
유언이 발표되기만을 기다리며 앤더슨의 그림을 노리고 있던 이들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미미 역시 무하마드 왕자를 비롯해 수많은 유화 수집가들의 제안을 받았다. 또한, 타운하우스를 탐내는 자들이 진혁의 비서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니 이미 내로라하는 포도주 수집가들이 제임스에게 연락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했는데. 좀도둑 친척과는 거리를 두고, 술을 훔치는 아랫사람은 애초에 술 창고에 접근할 수 없게 했어야지.」
진혁이 혀를 찼다. 그는 오랫동안 많은 수의 아랫사람을 다스려 왔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밥은 훌륭한 화가였을지는 몰라도 좋은 윗사람은 아니었다. 제대로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자라고 해도 도둑을 고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 도둑질을 저질렀을 때,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죽고 난 후에 유산을 주면서 엿을 먹이려고 하기보다 생전에 제대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처벌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마이클 타카시가 말했다.
「고인은 성격이 강하지만 정이 많은 분이셨죠.」
「밥 앤더슨을 아나?」
「아, 제가 단골로 가는 펍에 종종 오셨습니다. 화끈하게 손님들 전부에게 술을 사기도 했죠.」
그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도 몇 번 얻어먹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밥 씨는 그렇게 못된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밥 앤더슨 씨는 조카도, 비서도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들이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시계와 포도주는 큰 선물이 되었을 겁니다. 선물이 아니라 분통 터지는 일과 후회가 되어버린 건,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죠. 자업자득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명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사람들이 지난 일주일간 뭘 했는지는 알고 있나?」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평소 때와 다르지 않게 저택 안에서만 생활했더군요.」
마이클 타카시가 가져온 부검 결과는 진혁이 경찰에게 물어보았던 것과 동일했다. 임진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꽤 쓸만한데.」
「물론입니다. 3천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죠, 당연히 돈값은 해야죠.」
「프리랜서 말고 소속되어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대우에 따라 다르죠. 전 비쌉니다.」
마이클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대우에 따라서 생각해 보지요.」
◈ ◈ ◈
직원이 한 명 더 늘었다는 말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한 비서가 눈알을 굴렸다.
「탐정을 정식으로 고용하셨다고요?」
「쓸만할 것 같아서.」
「저도 부검 보고서를 가져왔는데요.」
「자네가 가져온 건 가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