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74화 (572/656)

제 574화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네.」

그는 탐정 역시 믿지 않았다. 일을 맡길 때 두 사람을 쓰는 것은 조사의 기본이다. 그는 가능하면 세 명을 쓰고 싶었다. 일월신교에서 조사를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세 팀을 보냈다.

「정말로 독 때문에 죽은 건지 알고 싶군.」

진혁이 속마음을 토로하자 한 비서가 말했다.

「그것 때문이라면 처음부터 제가 직접 알아볼 것을 그랬군요.」

「자네가?」

「제가 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 비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점이 있습니다. 앞서 나간 사립 탐정이 돈을 주면서 조사한다면, 제가 또 요구할 경우에 수상쩍어 보일 것 같군요.」

「의심 사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 주게.」

「음.」

「한 명이 돈을 뿌리면서 접근한다면, 그 반대 방향으로 해.」

정보를 얻는 방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날, 미미는 아침 일찍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그녀는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바로 임진혁이 있는 곳에 왔다. 넓고 깔끔한 이마에 근심 어린 표정이 서렸다.

「밥 앤더슨 씨는 저희 결혼식 때에도 참석했잖아요. 그림도 그려주셨고요. 이렇게 갑자기 떠나신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더군다나 돌아가신 분께서 불행한 사고를 당하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진혁이 물었다.

「비서에게서 들었습니까?」

「네.」

그녀가 눈물을 닦고서 말했다.

「당신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나요? 왜 저희가 상속자로 지명된 거지요?」

미미가 알기로 진혁과 밥 앤더슨은 그저 좋은 친구 관계일 뿐이었다. 친구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까지 불려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진혁은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그대로 구겨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냉철하게 말했다.

「제 비서가 다른 루트로 조사해보도록 하게 시킬게요.」

「알겠습니다.」

「조금 후 뉴욕 경찰을 만날 때 혼자 있으시면 안 되겠어요, 제가 변호사를 부를게요.」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물론이죠. 당연한 일이에요.」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했다. 진혁은 코스 요리를 거절하고 스테이크와 디저트를 따로 주문했다. 와인은 일부러 주문하지 않았고 일반 탄산수를 추가했다.

미디움 레어로 구워진 스테이크는 육즙이 풍부하고 씹는 맛이 살아있었다.

「이렇게 단순한 요리일수록 오히려 더 잘 하기가 어려운데, 잘 구웠군요. 스테이크 소스가 조금 다른데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어요. 향이 다른가?」

임진혁이 무어라 평하기 전에 미미가 먼저 요리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녀는 본디 요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요리사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렇지만 임진혁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변했다. 진혁은 자신이 먹는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다른지 꼼꼼하게 분석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미미도 점차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게 되었다.

「집의 요리사가 하는 스테이크 소스는 육즙을 끓여 후추와 소금만 더한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스파라거스와 양파, 버섯을 같이 끓여서 한 번 더 볶았군요. 그래서 풍미를 더한 겁니다.」

임진혁의 스테이크 소스 분석 이야기를 듣고서 미미가 웃었다.

「집에서 끓이실 수도 있겠어요?」

「원하신다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미미가 눈썹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아니에요, 말만으로도 고마워요.」

5성급 호텔 요리사의 비법 소스다. 보통 한 번 맛본 것만으로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미미는 진혁이 다른 식당의 요리를 재현해 만들어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진혁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하지 않았기에 미미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어제 알게 되었다. 진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식당의 소스를 올린 튀김이 먹고 싶어 요리사에게 부탁했더니 요리사가 어렵다고 거절해서였다.

『회장님, 저는 그 소스를 한 번 먹어봤을 뿐입니다. 분석하는 데만도 몇 달 걸릴 거고,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합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알 수 없고, 비율도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몇 년 동안 개발한 특제 소스겠지. 그걸 한 번 맛보고 다름없이 복제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야.’

미미는 요리사와의 대화를 상기하며 잠시 임진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생색을 내도 좋았을 텐데.’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것저것 쉽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모든 요리사들이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참 생각이 깊은 분이셔.’

미미는 미소 지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 소스는 여기서만 즐길래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리고 바로 웨이터가 카트를 앞세우고 왔다. 그는

「생크림과 말차 그리고 초콜릿을 곁들인 크로플 3종 세트입니다.

크로플은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디저트다. 크루아상 생지를 와플 모양으로 구워냈다. 겉면이 바삭바삭하게 익은 크로플 위에 웨이터가 녹은 초콜릿을 부어 주었다. 깔끔하게 흘러내린 초콜릿 위에는 생크림을 한 스쿱 얹었다. 그리고 옆에 따로 담겨 있던 절인 과일을 하나씩 올렸다.

꿀을 발라 영롱하게 빛나는 블루베리와 잘게 자른 수박,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달콤한 딸기가 눈에 띄었다.

반면에 두 번째 크로플은 조금 더 수수했다. 말차 가루를 섞어 녹색으로 구워낸 말차 크로플 위에 웨이터가 작은 은빛 주전자를 기울여 꿀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체다 치즈와 계핏가루를 뿌렸다.

세 번째 크로플은 아예 반죽 생지에 코코아를 섞은 모양인지 색깔부터 달랐다. 거무스름하니 초콜릿 색깔을 띤 크로플 위에는 메이플 시럽과 슈가 파우더가 올라갔다. 점점이 뿌려진 하얀 가루가 식욕을 돋웠다.

웨이터가 당부했다.

「눅눅해질 수 있으니 바로 드십시오.」

크로플을 보며 진혁이 한마디 했다.

「최근에는 이런 식으로 바삭바삭하게 부풀려 구워낸 와플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요.」

미미가 웃었다.

「저는 체다 치즈를 얹은 것보다 생크림을 얹은 게 마음에 들어요.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잘 어울리겠는데요?」

진혁이 크로플 한 조각을 잘라 먹으며 말했다.

「생크림이 닿는 순간부터 바로 눅눅해지는군요. 테이크아웃으로 팔려면 따로 담아서 배달해야 합니다. 편의점에서 유통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군요.」

「생크림이 없어도 맛있는데요?」

그녀가 웃었다.

「메이플 시럽을 바른 것도 괜찮구요. 초콜릿이나 말차 크로플은 그대로 먹어도 나쁘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그럼 그것도 고려해 보지요.」

진혁은 이에 대해서 유키코와 의논할 셈이었다. 그녀가 좀 더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빵과자를 개발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키모토 편의점과 S 편의점, 두 군데에 동시에 납품하려면 그만큼 보관하기도 쉽고 먹기도 쉬우면서 관리하기 용이한, 맛있는 제품이어야겠지. 크로플이 딱 적당한 것 같은데.’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달라붙어 새로운 옷을 골라 주고 간단한 메이크업까지 해 주었다.

「유언 발표를 듣는 자리라면 좀 더 점잖은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이 좋겠어요.」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가 따로 부탁했다.

「넥타이부터 커프스 핀까지 모두 무채색으로 해 줘요.」

의관을 정제하고 나오자, 문 앞에 백발의 신사가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동양인 노인이었다.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미미가 소개했다.

「월리 왕은 저희 집안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미국 내 법률관계를 책임져온 변호사입니다.」

월리 왕은 희게 센 눈썹을 추켜올리며 진혁에게 인사를 했다.

「유언에 대해서 아시는 사항이 있습니까.」

「예.」

리무진을 타고 유언 발표장으로 이동하며 진혁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밥 앤더슨은 자신의 그림 전부를 미미에게 증여할 계획이었습니다.」

「맙소사, 저에게요?! 왜요?!」

미미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월리 왕 역시 놀란 눈치였다.

「대신 미미 씨는 그 그림을 개인 소유의 미술관에서 공개하며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혁은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미미가 물었다.

「결혼식 때 짧게 얘기하면서 들었어요. 앤더슨 씨는 원래 그림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그림을 봤으면 좋겠다고요.」

「그는 내내 어머니가 만들었던 수프를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 수프를 만들어 주었더니 황미미 씨에게 그림을 선물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진혁이 짧게 설명했다. 미미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어울리는 미술관을 새로 지어야겠네요.」

월리 왕은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말했다.

「현행 미국의 상속법에서는 그림을 시장가로 계산해 과세합니다. 밥 앤더슨의 그림이라면 한 점 한 점이 전부 수백만 달러에 달하니, 그 비용만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상속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월리 왕이 말했다.

「가장 최근에 고가의 미술품 컬렉션을 상속받은 헬레나 크림슨의 경우, 미술품이 20억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7억 달러의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미술품의 절반 이상을 팔아 상속세를 냈지요.」

월리 왕이 진혁을 보며 물었다.

「고인께서 유언장을 작성하신 것을 정확히 보셨습니까? 그림 전부를 황미미 아가씨께 물려주려고 하신 것이 맞습니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밥 앤더슨의 허락 하에 유언장을 작성하는 과정에 입회했다. 그는 세 명의 변호사를 불러와 한 명은 유언장을 쓰게 했고 두 명은 증인으로 세웠다.

「변호사를 증인으로 세우다니.」

월리 왕이 혀를 내둘렀다.

「보통 고용인을 증인으로 하는데, 특이하군요.」

「고용인 역시 소액을 상속받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군요.」

피상속인은 증인이 될 수 없다. 세 사람은 밥 앤더슨의 저택에 도착했다. 진혁이 미미를 에스코트하며 내렸다.

「이쪽입니다.」

이전에 여러 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던 진혁이 길을 안내했다.

◈          ◈          ◈

그때 한국에 있던 장유향은 팔짱을 끼고서 눈앞에 있는 돌 가마를 살폈다. 진혁의 지시로 새로 만들어진 가마였다. 그는 통역사에게 물었다.

『이 가마가 내 것인가?』

『예, 마음껏 쓰셔도 좋다고 합니다. 혹시 마음에 차지 않으시면 다시 만들어도 괜찮다고 하시고요.』

통역사가 손짓 발짓을 곁들여 설명했다. 임진혁은 장유향이 기계식 오븐을 다루며 애를 먹어왔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가영에게 부탁해, 도자기 가마를 주로 만들어 오던 명인에게 연락했다.

국내에서 흙 가마와 돌 가마를 직접 수제 제작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김가영의 스승이 항상 가마를 맡겨 오던 사람은 그야말로 명인 중의 명인이었다.

다행히 명인이 도자기용 가마만이 아니라 요리용 가마 역시 만들어본 경험이 풍부해, 장유향이 원하는 대로 오리 구이용 돌 가마를 만들 수 있었다.

『주군께서 내게 가마를 만들어 주시다니.』

장유향은 눈을 깜빡이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역시 내 오리 구이가 최고로 맘에 드셨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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