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71화 (569/656)

제 571화

「달라고 하면 줄 건가?」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지금이라도 가져오라 하면 될 것이 아닌가?」

「일본에 보냈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가 말했다.

「일본에 프랜차이즈 지점을 열 생각인가? 내가 도와주겠네.」

「이미 공장에서 빵을 생산하는 중입니다.」

「페이스트리 쉐프가 만드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인스턴트 빵인가. 어디서 팔 생각인데?」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S 그룹의 편의점에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씨익 웃었다.

「마키모토 편의점에서도 팔고 싶지 않나?」

진혁이 눈알을 굴렸다. 그는 이번에 일본의 투자처를 알아보며 미미와 상의했다. 2위인 마키모토 그룹을 제외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S 그룹과는 달리 마키모토 그룹에는 흔들릴 때마다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큰손이 이미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익명의 투자자는 마키모토 그룹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다. 그렇기 때문에 일월 제과가 뒤늦게 합류해도 새로운 방향을 내세우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미미 씨도 그 익명의 투자가가 외국 자본일 거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긴 했는데.’

설마 무하마드일 줄 몰랐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지금 무화과 타르트를 먹고 싶어서 투자를 하겠다는 겁니까?」

「아니지, 아니지. S 편의점에서만 독점으로 ‘해와 달’의 빵을 판다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지지.」

「잘 팔릴 것이라고 좋게 봐주시는군요.」

「<해와 달>에서 취급하는 인스턴트 빵들도 먹어 보았네. 다른 빵들과 가격은 비슷하면서 맛은 월등하지. 시장을 파괴하는 외계 교란 종이라고나 할까.」

무하마드가 씨익 웃었다. 진혁이 눈꼬리를 추켜올렸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제가 요청한 대로 요리사가 조리한 식이를 드시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동안 인스턴트 빵을 드셨군요.」

「흠, 흠흠.」

「탄수화물이 많은 빵과 과자보다는 채소와 야채, 과일 등 자연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음식을 간식으로 드시도록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무하마드 왕자가 해맑게 웃었다.

「나는 <해와 달>의 빵을 믿었네. 아무렴, 누가 만들었는데 말이야. 다 건강에 좋은 재료들로 만든 빵이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키모토 그룹과의 합작은 조건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가격보다 맛을 더 우선으로 여긴다는 방침입니다.」

S 편의점과 마키모토 편의점. 두 군데에서 일월 제과의 빵을 전부 취급한다면 일본 전역의 5만여 개 편의점 중 총 4만 개의 편의점에 유통할 수 있다.

또한,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의 의견을 중히 여기니, 함께 일을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사사건건 반대할지도 모를 익명의 투자가가 아니라, 익명의 아군이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진혁이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왕자님, 식이요법을 더 조절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다급하게 양손을 내저었다.

「잠깐! 나는 지금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건강해 본 적이 없네. 지금도 아침과 저녁은 각종 계절 과일과 샐러드만 먹고 있지 않나?」

진혁이 선을 그었다.

「시판하는 제과류에서는 밀가루와 설탕을 다량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 음식을 먹으며 맛이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과류는 주 1회 150g 이내로 제한해 주십시오. 당분간 따로 간식을 드셔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투자자로서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 일본에서 시판할 상품의 샘플을 먹고 의견을 내겠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야말로 가공식품을 완전히 중단하고 단맛과 짠맛, 신맛과 쓴맛, 매운맛과 감칠맛을 민감하게 느껴야 할 때입니다.」

「그냥 빵 못 먹게 하려는 게 아니고?」

「물론입니다.」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데?」

‘살아있는 한 계속 하는 편이 좋죠.’

진혁은 진심을 삼켰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 인내심 없는 미식가는 중간에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간신히 구한 지음을 구슬렸다.

「향기만 맡아도 무슨 맛인지 짐작할 수 있으며, 아홉 개의 뒷맛을 깔끔하게 구별해낼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아니, 잠깐. 지금은 세 가지 맛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잖아?」

「최소한 다섯 가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자님께서 좋아하시는 오케스트라도 악기를 열 개 넘게 쓰는데 말이지요.」

무하마드 왕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치즈케이크 말인데, 자네가 나 먹으라고 가져온-.」

「설탕을 안 썼죠.」

「그렇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류를 책임지고 공수해 주게나.」

「어째서입니까?」

「맛있는 걸 먹자고 하는 미식 훈련인데 정작 그 훈련을 하느라 맛있는 걸 먹지 못하고 있지 않나!」

진혁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이겼습니다. 케이크를 먹고 나서 훈련에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무하마드 왕자가 투덜거렸다.

「내 말이면 모래가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믿어야지, 그렇게 토를 달 줄은 몰랐네. 전부 오랜 시간 동안 성실하게 내 부엌을 지켜온 요리사들이야.」

자신의 통솔력과 지도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무하마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음식을 먹이고 나서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설명했으면 쉬웠을 일입니다.」

「나 때문에 시간만 낭비했구만. 그대가 말한 사람들은 전부 찾았네.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재활 치료 전문 운동처방사와 물리치료사, 그리고 자연주의 식이요법 전문가까지 말이야.」

「예, 제가 그들에게 따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전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진혁이 함께 뛸 생각도 없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온 무하마드 왕자가 신나서 뛰기 시작해서 같이 뛰어준 것이다.

무하마드 왕자가 어깨를 폈다.

「그래도 내가 달리는 모습은 꽤 멋있지 않았나? 내가 뛰니까 아무도 머뭇거리지 않았어.」

「같이 따라 뛰고서 나중에 불평을 말했죠.」

「아니, 내 요리사들이 나보다 더 체력이 나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고된 업무 특성상 별도로 운동할만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지요.」

「누구보다도 더 건강을 챙겨야 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지.」

「의사들이 자기 건강을 챙기지 못하는 것처럼, 요리사들도 자기 먹을 것을 챙기기 어려운가 봅니다.」

「하하하!」

진혁은 자신이 말한 것을 지켰다. 그는 페드로와 알레한드로를 포함한 요리사들을 불러들여, 미식 훈련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전원이 반드시 참석하기를 원했으나 진혁은 선택권을 주었다.

「…미각 트레이닝을 통해서 무하마드 왕자님 역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셨습니다. 이만한 허브 조각 하나만 있어도 향만 맡고서 어떤 것인지 바로 구분하실 수 있지요. 원하시는 분은 트레이닝에 참석하시고, 원치 않으시는 분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만일 하지 않으면 해고당합니까?」

무하마드가 눈알을 굴리는데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요리사분들이 발전하는 동안 뒤처지게 되겠지요.」

페드로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무하마드 왕자님은 어렸을 적부터 탁월하게 민감하셔서 세계의 미식을 즐기셨지요. 그런 왕자님의 미각이 지금 더 예민해지셨다면,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온 요리로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왕자님 수준의 미각에 맞는 요리를 만들려면 저도 그 수준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리에 맞는 말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바보는 아니군.’

페드로도 알레한드로도 자신이 원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일하기 싫어하는 소에게 억지로 멍에를 두르고 끌고 가보았자 진창에 빠질 뿐이다.

‘한국의 훈련소에서는 내가 최종적으로 식재료들을 거르고 요리하는 것을 감독했지. 하지만 지금 이 왕궁에서 나오는 요리가 달라진 미각에 적합할지는 모르는 일이야.’

무하마드 왕자는 전용기 안에서 미리 준비한 냉동식을 해동한 기내식을 먹었다. 그리고 은박지의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며 불평을 했다.

한국에 올 때는 불만 없이 먹을 수 있었던 냉동식이지만 지금은 먹을 수 없다.

앞으로 그가 먹을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이제까지 그가 먹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진혁은 일부러 무하마드 왕자에게 그 사실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

맛있는 것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사람에게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페드로 쉐프가 자랑하는 파스타도 더 이상 그 맛이 안 날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무하마드의 요리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진혁에게 있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제 간신히 혀의 수준을 간당간당하게 올려놓았는데 자극적인 가공 음식들을 먹어 둔감해진다면 곤란하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이 훈련에는 거액의 비용이 들지만, 무하마드 왕자님께서 호의로 부담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요리사들 전부가 웅성거렸다.

「감사합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말했다.

「혹시 폐소공포증이나,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나?」

「예? 그런 건 없는데요.」

「전원 괜찮나?」

「예!」

암흑실은 아직 건설 중이었다.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면서도, 특정한 냄새를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다른 냄새가 방 안에 배지 않도록 수준 높은 환기 시설 역시 필요했다.

「그러면 달리기와 식단부터 시작할 거야. 내가 할 수 있었으니 자네들도 할 수 있네.」

「예!」

「살도 빠지고 건강도 좋아질 거야. 내 혈압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네.」

「식단은 어떻게 합니까?」

「어디 보자, 지금까지는 자네들끼리 재료를 제공받아서 요리해 먹었지?」

「예.」

진혁이 설명했다.

「따로 식단 레시피를 드릴 테니 그대로 만들어 드시면 됩니다. 재료들은 별도로 공수해드릴 예정입니다.」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는데 한 비서가 들어왔다.

“임진혁 쉐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강연 중이었다. 그런데도 비서가 들어왔다면 정말로 급한 일이다.

“잠시만요.”

진혁이 왕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따라나섰다. 진혁이 방문을 닫을 때까지도 왕자는 계속해서 이 미각 훈련의 우수성 그리고 자연 식단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          ◈          ◈

한 비서가 속삭였다.

“밥 앤더슨 씨가 사망했습니다.”

임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예, 어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고인의 유언장을 발표하는 자리에 임진혁 쉐프님과 황미미 회장님을 초청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출발하는 전용기를 타신다면 늦지 않게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나와 미미 씨, 둘 다 참석해야 한다고?”

“예. 만일 두 분께서 참석하지 못한다면 유언장 발표를 미뤄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전원 참석해야 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산을 상속받을 사람이 우리 말고도 또 있나 보지?”

“먼 친척 두 명과 비서가 있습니다.”

“그렇군.”

“가실 계획입니까?”

임진혁은 이미 무하마드 왕자와 함께 열흘간 왕궁에 머물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친구와의 약속이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은 단기 고용 계약이었다.

지금 떠난다면 그 약속을 어겨야 한다.

“가긴 가야지.”

“그럼 참석한다고 회신할까요?”

“열흘 후에 참석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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