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70화 (568/656)

제 570화

식당에는 이미 케이크가 차려져 있었다. 홀케이크가 여섯 개나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서 알레한드로가 기막혀하며 물었다.

「아니, 어째서 치즈 케이크를 이렇게 많이 내놓는 거야? 요리사들은 열 명밖에 안 되는데.」

「원래 다 같이 나눠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치즈 케이크.

미미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진혁은 미미에게 수백 개에 달하는 종류의 치즈 케이크를 구워주었다.

오븐에 구워낸 치즈 케이크부터 증기로 쪄낸 치즈 케이크, 머랭을 넣어 구운 일본식 치즈 케이크 그리고 가열하지 않는 레어 치즈 케이크. 스틱 형태로 만든 미니 치즈 케이크 그리고 자그마한 치즈 타르트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치즈 케이크 자체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다. 곁들임에도 변화를 주었다. 새콤달콤한 블루베리와 라즈베리, 딸기나 레몬 등 과일을 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넣기도 했다. 초콜릿이나 쿠키를 넣어 바삭바삭한 맛을 더한 케이크도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어질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 왔다. 미미는 그 어느 치즈 케이크라도 맛있게 먹어 주었다. 하지만 때로는 눈썹을 추켜올리기도 했고, 입을 더 크게 벌리며 웃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만들기 쉬운 음식이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원래 나한테 주려고 가져온 거잖아. 다시 포장해서 집어넣지? 다들 한 조각만 먹어도 되는데 말이지.」

‘왕자님께서 치즈 케이크를 여러 개나 먹고 싶어 하신다고?’

알레한드로와 페드로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 정도 양이라면 절대로 예의상 먹어주는 것이 아니다. 싫어하던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이렇게나 즐기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다.

‘케이크보다 토마토 베이스의 파스타를 더 좋아하셨는데. 내 나폴리탄 파스타도 이렇게까지 좋아하시지는 않았어. 맛있어도 여러 날 계속해서 드실 생각은 없었지. 그런데 저만큼의 치즈 케이크를 혼자서 드시려고 한다니.’

진혁을 만나기 전의 무하마드 왕자는 케이크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좀 전에는 ‘싫어하는 음식도 좋아하게 되었다’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다른 꼬미 쉐프들도 웅성거렸다. 페드로가 천천히 말했다.

「페이스트리 쉐프가 아니라 무어라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임진혁 쉐프님의 초콜릿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러니 치즈 케이크도 맛있겠지요.」

「일단 먹기부터 하게나.」

요리사들은 식탁에 앉았다. 꼬미 쉐프들이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앉으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연회처럼 화려하게 꾸며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놓여 있는 은촛대와 꽃바구니 그리고 레이스 식탁보만 해도 예뻤다.

그들은 이곳에서 식사할 일이 없었다. 카트를 끌고 나와 이 자리에 요리를 차린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손님 대우를 받으며 좌석에 앉을 일은 없었다. 요리사들은 주방에서 따로 식사했고, 고용인들에게는 별도의 식당이 있었다.

「의자부터 달라. 아주 푹신푹신한데.」

「이 은제 포크로 치즈 케이크를 먹게 되다니.」

수군거리는 꼬미 쉐프들과 달리 알레한드로는 자신이 이곳에 손님으로 왔다는 자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전투적으로 포크를 들어 바로 케이크에 꽂았다.

「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거지.」

다른 꼬미 쉐프들도 알레한드로를 따라 케이크에 포크를 갖다 댔다. 케이크는 놀랍도록 부드럽게 잘렸다. 알레한드로는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뭐야, 이거 레어 치즈인 줄 알았는데. 크림치즈인가? 보기와 다르네.’

보통 젖소의 젖과 크림에 점성을 높여주는 물질을 첨가해 부드럽게 만든 것을 통칭해 크림치즈라고 한다.

잘린 치즈가 크림처럼 포크에 달라붙는다. 그는 포크에 묻어있는 치즈를 눈으로 살폈다. 의문이 몽글몽글 솟아올랐으나 억누르고 포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

크림치즈가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은 분명 생 치즈였다. 알레한드로는 리코타 치즈나 블루치즈와 같은 생 치즈를 주로 다루었기에 맛만 보아도 어떻게 만든 건지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치즈는 정체가 불분명했다.

그가 만나본 그 어떤 크림치즈보다도 부드럽고 몽실몽실한데 크림치즈가 아니었다. 크림치즈를 만들려면 유화제나 연화제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크림치즈에서는 그런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신선한 생 치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 치즈라면 이보다는 좀 더 쫄깃한, 씹는 맛이 날 텐데.’

그러나 이 치즈는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강했다. 폭죽처럼 입안에서 터져나가며 강렬한 풍미를 선사했다. 빗줄기에 전신이 젖어가듯, 입안이 온통 치즈의 맛으로 물들었다. 입과 코, 그리고 귀까지 치즈에 흠뻑 젖어버렸다. 치즈 케이크는 부서지듯 녹아내렸다.

유명한 미식 평론가가 한 말이 있다.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음악이 들려옵니다.」

그때 그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 이 치즈 케이크는 그를 완전히 다른 세상에 데려다 놓았다. 천둥이 때리는 것과도 같은 북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때렸다. 전율이 전신에 흐르며 손끝이 떨린다. 이것이 바로 그가 여태까지 개발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닿지 못한 수준에 있는 치즈였다. 너무나 맛있다.

「크으윽.」

알레한드로는 세상에 감사했다. 기쁨과 감사와 희망이 북소리처럼 둥둥둥둥둥둥 계속해서 울렸다. 그는 방금 전까지 왜 임진혁을 비난했는지 잊었다. 이 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데 있어서 달리기를 왜 해야 하는지 따졌던 것을 잊었다.

부모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드로 헤드 쉐프님, 저를 이곳에 데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하마드 왕자님, 임진혁 쉐프를 여기에 데리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이곳, 여기에 와 있어 이 치즈 케이크를 맛볼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혀와 입술, 잇몸과 손발이 있어 감사합니다.

감동에 가득 차 있던 그는 점차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꼬미 쉐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맛있다.」

「천재들은 기벽이 있다고들 하잖아. 케이크를 이 정도 구울 수 있으니까 왕자님을 달리게 할 수 있는 거구만.」

알레한드로가 눈을 부라렸다.

「너희들!」

그가 꼬미 쉐프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걸 그냥 맛있다고 하는 건 이 치즈 케이크에 대한 모독이야!」

「예?」

「아니, 맛있는 걸 맛있다고 했을 뿐입니다만….」

꼬미 쉐프들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알레한드로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지금 이 치즈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나? 거기 너, 너는 알아야지. 너는 나랑 같이 치즈를 만들었잖아! 코티지 치즈 만들면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하냐?」

「어, 유청 걸러낼 때 제대로 하라고 하셨죠.」

「그게 아니잖아!」

「…어, 생크림을 같이 넣어야 맛이 풍부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알레한드로는 꼬미 쉐프를 야단치며 화를 냈다. 그러다가 페드로 헤드 쉐프를 힐끔 바라보았다. 헤드 쉐프 역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이 케이크가 얼마나 환상적이면서도 완벽한 음식인지 아는 사람은 나하고 페드로 쉐프밖에 없는 거야.’

아는 만큼 보인다.

꼬미 쉐프들은 그저 맛있는 케이크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그들은 수많은 쉐프들을 견뎌 왔다. 몇십여 년간 어떤 헤드 쉐프가 오더라도 그 자리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던 이들이다. 현실에 안주하며 지시에만 따라왔다.

치즈 브레드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해 왔던 두 사람만이 이 케이크의 가치를 알고 있다.

알레한드로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야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다 드셨습니까?」

임진혁의 목소리였다. 그는 달리기를 하라고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그 옆의 무하마드 왕자는 말없이 네 조각째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흔적 없이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꼬미 쉐프들의 접시들 또한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자그마한 치즈 덩어리 하나도 없이, 포크조차 깨끗했다. 모두 접시까지 핥아 먹은 것이 분명하다.

알레한드로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졌습니다.」

「지다니, 뭘. 특별히 승부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치즈 케이크를 먹고 달리자고 한 거지.」

무하마드 왕자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임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하마드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바로 왕자가 말했다.

「알랭! 아까 자네가 만든 치즈 브레드를 가지고 온다고 하지 않았나? 어디 가져와 봐.」

‘제 이름은 알랭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알레한드로는 감히 그 말을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가 만든 치즈 브레드는 감히 이 케이크와 비교할 수가 없다. 분필과 빵을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

「그, 어, 음. 치즈 브레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연구해서 맛있게 만들었다며? 지금 가져와 보지그래.」

뒤늦게 정신이 들어 대화를 알아들은 페드로가 외쳤다.

「아직 부족합니다! 저희가 다시, 어, 음, 열심히 연구해서 더 맛있는 빵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그때 가져오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물었다.

「그럼 간식도 먹었고. 이제 달릴 준비가 되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알레한드로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페드로와 알레한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왕궁요리사들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장을 달렸다.

무하마드 왕자는 그곳에 합류하지 않았다. 대신 요리사들이 뛰는 것을 바라보며 진혁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치즈 케이크는 전과 다른데?」

그 말에 진혁이 물었다.

「어떤 점이 다릅니까.」

「다른 재료를 전부 빼버리고 치즈 자체에만 힘을 주었어.」

진혁이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하마드 왕자가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 치즈 케이크를 구울 때마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넣지 않았나? 이번에는 무화과를 넣으려고 할 줄 알았어. 이번에 아주 질 좋은 무화과가 들어왔다고 장 노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거든.」

「그렇습니까?」

「그럼 자네 역시 받았을 거 아닌가? 좋은 재료가 있으면 써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

「무화과는 따로 무화과 타르트로 구웠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는 갖다 주지 않았나?」

「무화과 타르트도 좋아하시는지 몰랐는데요. 치즈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셔서 치즈 케이크만 가져왔습니다만.」

무하마드 왕자가 코를 벌렁거렸다.

「무화과! 무화과는 생으로 먹어도 달지 않나? 그냥 먹어도 꿀이 흐르는 것처럼 달콤한데. 타르트로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느닷없는 무화과 예찬에 진혁이 피식 웃었다.

「드시고 싶으시면 그냥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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