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8화 (566/656)

제 568화

알레한드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부터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고 한다.

‘요리사에게 무슨 훈련을 시킨다는 건지.’

그 역시 명문 요리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수업을 들었던 것과 실전은 너무나 달랐다. 그는 처음 들어간 주방 바닥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상사는 고압적이었고 그가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을 쓰레기 취급하며 무시했다. 그리고 알레한드로를 개인적으로 모욕하기까지 했다. 알레한드로는 주방에서 일하려면 모두 그런 부조리를 참고 견뎌야 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연히 선배 요리사인 페드로와 만나게 되어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위생 관념에 신경 쓰지 않는 레스토랑이 있단 말이야? 그러다가 손님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정말로 위험하지.」

페드로는 당장 그 식당을 뛰쳐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청년인 알레한드로를 자신이 헤드 쉐프로 일하고 있는 호텔 식당에 데려왔다.

「여기 내 후배다.」

꼬미 쉐프로 일하게 된 특급 호텔은 이전에 일하던 식당과 차원이 달랐다. 요리 재료의 가격부터 손질하는 사람들의 실력 그리고 손님의 수준.

무엇보다 나가는 요리들의 질 자체가 달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하는구나!’

알레한드로는 페드로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잠을 줄여가며 연습을 했다.

페드로는 그에게 요리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요리란 존재하지 않아.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제일 중요하지.」

「우리 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은 모두 단골들의 취향을 외우고 있지. 처음부터 그렇게 교육시켜야 해.」

그리고 페드로는 아랍의 왕족에게 스카우트를 받으며 알레한드로의 인생에도 두 번째 장이 열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면 이 호텔에 있는 편이 좋아.」

「아직 페드로 요리사님께 배울 점이 많습니다.」

페드로를 따라 아랍에 왔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개인 요리사와 호텔 요리사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려운 손님을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아나갔다.

‘페드로 요리사님처럼 잘하시는 분도 없을 거야.’

무하마드는 엄청나게 까다롭고 예민한 고용주였다. 그는 종종 주방에 방문해 위생을 점검했다.

벌레 한 마리, 쥐 한 마리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요리를 먹을 때에도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채소 요리에 흙 알갱이 하나라도 있으면 크게 화를 냈다.

양파의 경우 부드러운 부분만을 선호했고, 당근은 시칠리아산 둥근 당근만을 즐겼다. 비린내에도 매우 민감했다.

쇠고기나 닭고기, 오리고기나 말고기, 낙타 고기. 그리고 캥거루 고기와 말고기, 토끼 고기. 그 많은 고기들을 사입하는 업자들은 전부 피를 완전히 빼내 이 특별한 VIP 손님에게 따로 보냈다.

간혹 일반 손님용 고기가 섞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럼 무하마드 왕자가 귀신같이 알아내 호통을 쳤다.

그런 실수를 저지른 업체와는 바로 관계를 끊었다. 사입 단계에서 구분해내지 못한 요리사 역시 해고를 당했다.

페드로는 그 까탈스러운 주문들을 전부 어렵지 않게 맞춰내어 오랜 시간 동안 총애를 받았다.

「손님 여러 명을 대하는 것보다, 내가 취향을 알고 있는 단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이 제일 낫지.」

그것이 페드로의 지론이었다. 그는 무하마드 왕자의 혀라면 365일 어느 때라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알레한드로 역시 페드로의 자리가 욕심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게 수그리며 제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사람이 은혜를 알아야지.’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종종 요리대회 우승자 등 화제가 된 새로운 요리사를 만나러 가곤 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신성(新星)의 요리를 맛보았다. 페드로는 그것을 보고서 ‘바람피우러 간다’라고 했다.

「이번 외도는 좀 길지만 말이야, 나한테 돌아오실 거라고. 나만큼 무하마드 왕자님을 잘 아는 요리사가 없거든.」

그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비밀인데, 천둥이 칠 때는 따뜻한 코코아 가루에 우유를 한 스푼 넣은 걸 갖다 드려야 돼.」

「그런 걸 좋아하세요? 단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들었는데.」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어렸을 적에 친어머니를 만나러 가면 코코아에 우유를 타 주셨다고 해. 직접 말이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추억의 음식이군요.」

페드로가 알레한드로를 흘겨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왕비님은 지금도 정정하셔. 자선 재단을 이끄시는 여걸이신데.」

「아.」

「어쨌거나 나는 무하마드 왕자님과 십 년이 넘게 함께해 왔다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에 드시고 싶어 하시는 맑은 닭고기 수프, 근심과 고민이 있는 날에 원하시는 아삭아삭한 채소. 그런 걸 다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놈이 아무리 비위를 잘 맞춘다고 해도 말이지.」

「물론입니다. 페드로 요리사님 같은 분은 어디에도 없지요.」

알레한드로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트레이닝복을 입고 여기에 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침에는 채소와 고기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반죽도 해야 되고 말이야.」

페드로는 검은색 트레이닝복 상하의를 입고 있었다. 알레한드로는 페드로에게 그런 옷이 있는지도 몰랐다.

「여기는 어딥니까?」

「여기서 그렇게 오래 일했는데 이런 운동장이 있는지 몰랐네요.」

왕자의 궁이 넓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축구 경기를 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거대한 운동장이 숲 안쪽에 있는 줄은 몰랐다. 감탄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누군가 보였다.

「저기 누군가 옵니다. 코치인가?」

「스포츠 코치치고는 체격이 너무 작고 뚱뚱하지 않아?」

요리사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세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페드로! 오랜만이야.」

활기에 가득 차 있는 무하마드가 앞서 걷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는 확실히 체중이 나가지만, 이전의 그에 비한다면 놀랄 정도로 살이 빠졌다.

페드로는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페드로?」

「아,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하하하하! 어때, 내가 건강해 보이지 않나?」

「…건강해 보이십니다.」

‘살을 얼마나 뺀 거지? 30kg은 넘게 빠지신 것 같은데.’

턱살이 없어지고 늘어져 있던 살이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얼굴 생김새가 크게 바뀌었다. 거북목과 안쪽으로 틀어져 있던 자세 또한 달라졌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허리를 편 것만으로도 키가 5cm는 더 커 보인다.

새로 맞춘 것으로 보이는 트레이닝복 또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명히 여태까지 입던 옷보다 작았다. 두 사이즈는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건강식을 요리할 때에는 안 드셨는데…저 남자자, 사실은 건강식의 달인인가? 분명히 페이스트리 쉐프라고 들었는데. 빵이 건강한 음식일 수 있나?」

페드로가 눈알을 굴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크게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동양의 사찰 음식에 흥미가 생기셨나? 이 정도로 살을 빼려면 식이를 바꾸지 않고서는 무리일 텐데.」

피부색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무하마드 왕자가 외부에 나갈 때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따라다니면서 화장을 했다. 피부가 창백하고 눈 밑이 누렇게 떠 있었기 때문에 건강해 보이는 낯빛으로 꾸며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생기있는 구릿빛 피부였다. 화장품 같은 것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자, 먼저 소개부터 하겠네. 페드로는 두 번째지?」

「안녕하십니까.」

「이전에도 말했지만, 페드로는 정말 이탈리아 요리의 대가야. 특히 그 파스타와 리조또는 신의 솜씨라고 할 만하지.」

무하마드 왕자가 자랑스럽게 페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임진혁 쉐프는, 미식에 대해서는 천재라고 할만해. 내가 특별히 부탁드려서 모셔왔네. 이분과 함께 미식 트레이닝을 하면, 자네들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거야.」

「미식 트레이닝이요?」

「그게 대체 뭡니까?」

다른 요리사들이 물어보는 동안 알레한드로는 페드로를 흘깃 바라보았다. 페드로가 침을 삼키며 목젖이 꿀렁하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요리사.’

지금 페드로를 비롯한, 왕궁의 요리사들 수준이 낮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무하마드 왕자가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음식을 먹을 때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야. 일단 식당 인테리어부터 시작했네. 한 달이면 끝날 거야. 주방 인테리어도 손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건 훈련이 끝난 후에 페드로와 의논하도록 하지.」

알레한드로가 물었다.

「그런데 저희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진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이 운동장을 달리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를 달려요? 왜요?」

「미식 트레이닝에 왜 달리기가 포함되는데요?」

「건강한 몸, 훌륭한 체력이 있어야 진정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걸세! 걱정하지 말게나, 나도 같이 뛸 테니까.」

무하마드 왕자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석 보디가드 카심이 스톱워치를 들어 올려 보였다.

「자, 그럼 날 따라오게!」

무하마드 왕자가 앞서서 뛰기 시작했다. 마라톤 선수처럼 안정된 자세였다.

‘왕자님께서 뛰고 계시잖아?!’

왕족은 위엄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다급한 일이 있어도 뛰지 않는다. 항상 느긋하고 여유 있게 걷는다. 알레한드로는 무하마드 왕자가 달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뭐 하나, 알레한드로! 왕자님께서 뛰시는데!」

페드로가 뒤뚱뒤뚱 따라 뛰기 시작했다. 불룩 나온 배가 출렁인다. 그 뒤로 다른 요리사들이 따라서 뛰었다.

「아니 페드로, 나보다도 더 못 뛰네.」

「헉, 헉.」

페드로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간신히 한 바퀴를 달리고 나자 온몸이 땀에 젖었다. 등과 허리, 그리고 다리까지 젖어 감촉이 기분 나쁘다. 양손으로 무릎을 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페드로에게 무하마드가 말했다.

「페드로, 이렇게 체력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네.」

옆에서는 그 한국인 쉐프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체력이 나쁘군요.」

「아니, 요리사의 미덕은, 잘 달리는, 게 아니고-.」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뛰어야 하는 걸세.」

무하마드 왕자가 손을 내밀어 페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바퀴만 더 뛰지.」

페드로는 공기 속에 나온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옆에서 임진혁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최소한 다섯 바퀴는 뛰어야 합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물었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안 좋은 게 아닌가?」

「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알레한드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의 무하마드 왕자는 까다롭기는 했어도 제정신이었는데. 미친 건가?’

하지만 지금은 요리사들을 모아서 갑자기 달리기를 시켰다. 꼭 사이비 종교에 감화된 신도처럼 임진혁을 믿고 따른다.

「저기….」

헤드 쉐프는 선장과도 같다. 주방에서 모두가 헤드 쉐프를 믿고 따르려면 권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출렁거리는 배를 안고서 숨을 몰아쉬는 페드로에게 이미 그 권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찐 중년 남자일 뿐이다.

다른 꼬마 요리사들이 페드로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요리사에게 도대체 달리기가 왜 필요합니까?」

페드로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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