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7화 (565/656)

제 567화

진혁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으로 응수했다.

「이 질문은 그전에도 하셨고 제가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더 이상 일개 페이스트리 쉐프가 아니었다. 국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을 몇 개나 소유하고 있는 기업가다. 그가 경영하는 가게에서 끊임없이 빵이 팔려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돈이 불어난다.

무하마드 왕자는 이전에는 진혁을 단순한 요리사로 보았다. 요리를 예술의 위치까지 격상시킨다는 점에서 높게 샀지만, 그저 고용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관계를 쌓아왔다. 살아온 환경도, 나이도, 인종도, 문화도 다르다. 그러나 미식(美食)을 추구한다는 점 하나만은 같다. 이미 미식의 끝을 보았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있어,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까지 발을 들이게 해준 은인이다.

무하마드 왕자가 숨을 들이켰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나를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예?」

진혁의 반문에 무하마드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할 때 눈치를 봐. 그게 싫다거나 불편하다는 게 아닐세. 나는 신분과 권력, 돈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건 다 헛소리고, 아무도 평등하지 않아. 똑같이 왕족으로 태어났더라도 능력 여하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듯이 저마다 다르지. 하지만 자네는 달라. 흔히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곳에서 왔고 젊은데도 불구하고 왕족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지.」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미미나 앤더슨이 했던 이야기와 똑같아.’

황미미는 아름답고 부유했다. 더군다나 권력가의 딸이자 손녀이기도 했다.

밥 앤더슨은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며,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반면에 진혁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직 성공하기 전부터 그랬다. 오히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더 개발하여 더 나아지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가족들이 아닌 타인에게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평생 주목받아온 사람들이 오히려 진혁에게 흥미를 느꼈다. 자주 듣던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너무나 뻔해 진혁이 그저 웃었다.

「저는 누군가의 요리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이들에게는 출장 요리를 하지 않나? 나는 그대가 구워주는 빵이 필요해.」

「비행기로 공수하십시오.」

「그리고 자네는 내 피드백을 원하지.」

악마처럼 미소지었다.

「자네가 왜 나에게 미각 훈련을 받도록 제안했는지, 장 어르신을 보면서 깨달았네. 장 어르신은 카심보다도 더 체력이 훌륭하고, 요리의 기본도 다 알고 있지. 하지만 고정관념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그런 제과제빵사들, 요리사들을 평생 만나오면서 지치고 힘들었겠지. 그 와중에 나처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음식을 평등하게 접해 보려고 하는 미식가를 만나게 되니 붙잡고 싶었을 거야!」

장유향이 고집이 세고 고리타분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임진혁이 무하마드 왕자를 데리고 와서 훈련시키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사람, 머리도 좋고 추진력도 있고 미각도 예민한데….’

잘못된 정보로 섣불리 추론하니 엉뚱한 결론을 낸다. 진혁은 굳이 그의 잘못된 생각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저희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무하마드 왕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열흘, 열흘만 있어 주게.」

「어째서 열흘입니까?」

「내 궁궐의 왕실 요리사들에게 자네가 만든 프로그램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네.」

결국, 이것이 본론이다. 진혁이 흥미를 보이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이 교육 방침과 시설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언급하지 않기로 했을 텐데요.」

「그러니 자네가 직접 교육하면 되지 않나.」

단순한 해결책이었다.

「내 요리사들이 이 방법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분명히 여태까지 알고 있던 지평선이 산산이 조각나서 부서져 버릴 거야. 그리고 재료의 본 맛을 끌어내는 방식의 요리를 할 수밖에 없겠지.」

그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를 보였다.

「자! 여기에 차가운 겨우내 기다리던 따스한 봄날의 햇빛, 그리고 그 햇빛의 기운을 담아 자라난 채소가 있네. 똑같은 당근이라고 해도 산지가 어딘지, 그리고 어느 계절에 수확했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 삶을 건지, 구울 건지, 튀길 건지, 볶을 건지, 아니면 찔 건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지.」

무하마드 왕자가 콧김을 뿜으며 외쳤다.

「학교를 세우는 것과도 비슷하지. 지금 자네, 한국에서 학교 법인을 세우고 있지 않나? 그런데 학교 건물을 세우는 것을 먼저 하지 않았어. 먼저 학교의 인재상을 세웠고 그에 맞는 교사와 교수들을 알아봤지.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에 교과서와 커리큘럼, 교재 개발을 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냐고.」

‘이 양반, 조사를 계속 하고 있었군.’

임진혁이 하는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둥 하면서도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전부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나 어머니보다도 더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보도 자료들을 조합하고, 진혁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기사는 전부 황 그룹의 홍보팀을 통해서 내보낸 거니까.’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틀린 추측이 많았다.

「그래! 자신이 어떤 요리를 할지 먼저 고르고 나서 재료를 골라서 요리에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네. 내 요리사인 페드로도 그랬지. 먼저 요리를 정한 다음, 그 요리에 맞추어 재료를 골랐어.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아란치니를 할 때는 직접 고른 최고급 토마토에, 치즈 공방에서 공수받은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 그리고 밭에서 직접 기른 완두콩을 골라 올리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네. 같은 밭에서 나더라도 흠집이 난 것들, 크기가 작은 것들, 못생긴 것들은 전부 쓰지 않았지.」

보통 그렇게 한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하마드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자네는 재료를 먼저 골라. 신선한 밀가루를 보고서 그 밀가루로 어떤 빵을 구우면 밀가루의 특성을 제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지. 향이 강한 양파는 별도의 냄비에 삶아서, 다른 냄비에 양파의 향이 배지 않게 해. 향이 담백한 콜리플라워는 별도로 쇠고기 육수를 내서 데치지. 미각이 정말로 예민한 자가 아니라면 자네가 하는 그 배려들을 눈치채지도 못할 걸세.」

그렇다. 스테인리스 보울에서 반죽을 해도, 도자기 보울에서 반죽을 해도 아니면 허공에서 강기로 반죽을 하더라도 그 차이를 눈치채는 이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내놓은 빵은 달랐어. 어째서 똑같은 종류의 빵을 두 가지의 접시에 나누어 내놓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말이지. 모양이 다른 것도 아니고 향도 같은데, 다른 도마에서 반죽했나?」

시각장애인들의 사회. 그곳에 아무리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각품을 내놓아도, 대중들은 즐기지 못한다. 더듬고 만져보면서 촉각으로 느끼겠지만 결코 눈으로는 보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새롭게 개안(開眼)한 자가 있다.

「…다른 도마에서 반죽을 한 건 아닙니다. 다른 그릇에서 반죽했을 뿐입니다.」

분명히 이번 삶에는 오르지 못할 경지라고 생각했다. 나이도 너무 많고, 체력도 낮다. 무공을 익힌 적도 없고 전수해 줄 생각도 없다. 그저 종종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운동을 하도록 격려해주었을 뿐이다.

미각이 조금만 더 예민해지기를 바라며 소중하게 길렀다.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젊은 두 아들보다 나이든 무하마드의 미각이 훨씬 더 민감하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이전에는 단순히 흙내와 잡내를 잡아내는 정도였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이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겠군요.」

진혁이 흘리듯 꺼낸 말에 무하마드 왕자가 놀라서 물었다.

「뭐? 잠깐, 우리 여태까지 친구가 아니었단 말인가?」

「중국의 고사에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혁은 옛 중국의 고사를 짧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 지음을 찾기 위해서 사람한테 이 생고생을 시켰단 말인가?!」

「왕자님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허, 참!」

무하마드 왕자가 탄식했다.

「내 감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을 뿐이야. 정말 좋은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재료의 맛을 살린 요리를 더 선호하게 되었지. 이전에는 풍미가 강하고 독특한 요리들을 즐겼는데 말이야.」

진혁이 질문을 던졌다.

「왕자님, 지금 갑자기 이 두 개의 빵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조로움이라고 생각하네.」

무하마드가 예상외의 답변을 했다.

「장유향 노인과 함께 식사하면서 저녁에는 내내 오리 고기만을 먹었지? 향신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풍부한 지방 맛을 강조한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먹으니 감각이 둔해지더군.」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아침에 빵을 먹을 때 저절로 행복해지는 거야. 갓 구워서 향긋한 향기가 풍기는, 바삭하고도 내부는 촉촉한 빵이지 않나. 원하는 만큼 버터나 잼을 발라 먹을 수도 있지. 나는 원래 블루베리 잼과 당근 잼을 발라 먹었는데 오늘은 그냥 먹어보고 싶더군. 그러니 이쪽 빵에서는 도자기의 향이, 그리고 저쪽 빵에서는 스테인리스의 향이 나더군.」

「그렇습니까.」

진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그가 만드는 음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며 새로운 욕망이 뭉게뭉게 피어 올라왔다.

‘그러면 이제 전부터 생각했던 그 빵을 만들어 볼까?’

일곱 가지의 복합적인 맛이 층층이 숨어있는 빵.

지금의 무하마드 왕자라면 그 모든 맛을 전부 느끼고 평해줄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이 머릿속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서 무하마드 왕자가 미소지었다.

「자, 그래서 오늘부터 친구가 된 임진혁 쉐프. 친구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도 기쁨이 아니겠나? 내 요리사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해도 좋다고 해준다면 더 좋아. 그러나 그냥 놀러 오는 것도 좋네. 내가 손님 대접을 할 수 있게 해주게.」

「아니 페이스트리 쉐프로 일해 달라면서요.」

「거절할 거잖나?」

「거절할 걸 알면서 물어본 겁니까?」

「원래 한 번 거절하면 그다음 제안은 거절하기 어렵잖나. 손님으로 와서, 교육 프로그램도 봐주고, 원하면 주방에서 빵도 좀 굽게. 넉넉하게 구우면 나한테도 나눠 주고.」

「아내도 함께 가도 됩니까?」

「물론이지!」

◈          ◈          ◈

무하마드의 부엌을 담당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헤드 쉐프인 페드로. 그는 이탈리아의 5성급 호텔 출신인 요리사로,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더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파스타와 피자를 비롯해 나폴리 전통 요리가 주 분야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 쉐프가 둘, 그리고 꼬미 쉐프가 여섯 명이나 있었다. 다들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이번에 그 한국 요리사가 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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