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6화
『맛있네.』
그 말 한마디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장유향이 밤을 새우면서 오리를 구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밥 안에 뭔가가 들어 있는데.』
오리 안에는 찐 밥이 들어 있었는데, 드문드문 고깃조각이 씹혔다. 그 고깃조각은 진혁에게 익히 익숙한 맛이었다.
「이건 뭔가? 오리 고기 파편 같은데. 베이컨처럼 만든 거야?」
무하마드 왕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진혁은 알았다.
『파(巴)로군. 오랜만이야.』
얇게 자른 고기를 소금에 절여 그늘에서 말린 것을 ‘파’라고 부른다.
송대에 유행한 이 건육은 보존하기 쉬워 멀리 여행하는 이들이 자주 사 갔다. 고대의 여행용 보존 식량으로 현대의 육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소와 양, 말고기로 만든 ‘파’는 누린내가 심했다.
비교적 누린내가 덜한 오리나 닭 등 가금류의 육포는 값이 더 나갔다. 진혁의 부하들은 진혁을 위해 따로 오리 육포를 만들었다. 지나치게 짠 것을 싫어하는 진혁을 위해서 간장과 소금을 사용해 특별한 양념을 만들었다. 혈도객이 주도적으로 시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광안마는 크게 분노했다. 그는 혈도객에게 일갈했다.
“교주님께서는 애초부터 부하들과 동일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육포는 맛없다고 안 드시지 않나!”
“이 돌대가리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해서 회회(回回)풍 파를 새로 만들어서 교주님 단 한 분만 드시면 어떻게 되겠나. 암살자들이 제일 먼저 목표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나? 왜 그 수많은 왕들이 차갑게 식은 음식을 먹는지는 아느냐고!”
혈도객이 눈알을 굴리며 항의했다.
“교주님은 만독불침이시니 괜찮다.”
“만독불침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릴 셈이냐?! 범이라 할지라도 평소에는 발톱을 숨기다가 진정 싸워야 할 때만 드러내는 법인데!”
“….”
“….”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기 시작했다. 일월신교의 일인지하 권력자 둘이 티격태격하자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당시 그가 직접 나타나 중재했다.
‘당시 내가 어떻게 했더라.’
광안마가 옳았다. 언제나 그 녀석이 옳았다. 하지만 혈도객의 마음 역시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무슨 결론을 내렸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장유향이 임진혁 말고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회(回回)풍 양념이라 이름 지으시고 조원들 모두 그 양념을 한 건육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아아.』
기억났다.
추억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맛을 불러일으켰다. 교주님께서 특별히 명하시어 만들었다는 맛. 상행을 담당하는 교인들 그리고 암살과 비무행을 맡는 무인들 모두 파를 매우 반겼다. 짜고 매우며 시큼하던 육포가 좀 더 담백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이 된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소문이 돌았다.
상하거나 변질되었을 때 알기 쉽도록, 일부러 맛이 강하지 않은 양념을 개발했노라고.
귀한 오리와 닭 육포를 모든 무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한 배려에 덧붙여, 양념까지 신경 써준 너그러움.
교인들은 새로운 교주를 칭송했다.
‘광안마 녀석이 소문을 퍼트렸지.’
그는 그 어떤 일이라도 허투루 넘기는 적이 없었다. 진혁이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하지만 아직은 주군께 바치기에 부족함이 많은 요리입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나 미숙했으니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예?』
『매일 저녁으로 오리 고기만 먹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아.』
장유향이 눈을 깜빡였다.
『저는 평생 먹어 왔는뎁쇼.』
진혁이 천천히 말했다. 그는 부하의 충정을 짓밟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같은 것을 계속 먹게 되면 질리게 되어 있지. 그럼 오히려 익숙해지고 둔감해지기 때문에 더 이상 맛있는 것도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어.』
양념과 향신료, 굽는 방식이 달라도 결국은 오리 구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평생 저녁 식사로 오리 구이만을 먹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진혁이 단호하게 선을 긋자 장유향이 말했다.
『그렇다면 오리 구이는 더 이상 드시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담담한 말 속에서 깊은 슬픔과 좌절감이 느껴졌다. 진혁이 서둘러 말했다.
『당분간, 당분간 말일세.』
『당분간이란 얼마를 말씀하십니까.』
『어…, 두 달? 세 달?』
이 일주일간 오리 구이를 열심히 먹었다. 매일 저녁 비슷한 음식을 먹으니 슬슬 맛이 단조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혁의 말에 장유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수하가 부족하여 크게 폐를 끼쳤습니다. 다음에는 목숨을 걸고 반드시!』
‘아니, 안 그래도 되는데.’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애초에 그는 구이류보다는 디저트나 빵이 더 좋았다.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장유향이 결연하게 무릎을 꿇었다.
『주군의 입맛에 맞는 최고의 오리 구이를 올리겠사오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된장국을 좋아한다. 추억의 요리였다. 다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먹을 때에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진혁이 아욱 두부 된장국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착각하신 어머니께서 두 달 내내 된장국만 차려 내왔다. 텁텁한 된장국의 냄새만 맡아도 질릴 정도였다. 아버지와 진희가 항의한 끝에 순두부와 돼지 김치찌개, 고등어구이를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자주 먹으면 질린다.
진혁이 말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했을 텐데 말이지.』
『진흙 오리 구이를 주군의 입맛에 맞게 구워내고 싶습니다.』
장유향이 망설임이라고는 없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 맛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공부를 하여 개선할 뿐입니다. 그 아랍인이 주군과 어떤 음식을 먹어 왔는지 가볍게 입을 놀리더군요. 주군의 곁에 있기에는 너무나 입이 가벼운 자이니 조심하십시오. 중히 여기실 자는 못 됩니다.』
『…그래도 잡담을 나눌 정도로 친근해졌군.』
『감히 주군의 제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넘치는 자입니다. 다시 고려하시는 것도 좋으실 듯합니다.』
진혁이 키득 웃었다.
『그거 그 녀석이 자네에 대해서 매일 하던 말 아닌가?』
◈ ◈ ◈
재판을 하더라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법이다.
그날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임진혁은 따로 무하마드를 찾아갔다.
「오! 자네가 나를 찾아오다니 별일이군. 최근 장 어르신과 친하게 지내면서 나를 따로 만날 시간은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회담을 미루면서까지 여기에 머물고 있는데 말일세.」
「직접 원해서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여기서 보낸 시간 덕분에 건강 역시 많이 좋아지셨을 텐데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왕족을 대하기에는 건방진 태도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스무 살 이후로 이렇게 건강한 적이 없네. 전부 임진혁 쉐프, 자네 덕분이지.」
무례함을 질책하기보다 순수하게 고마워한다. 무하마드 왕자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진혁이 머쓱하게 말했다.
「스스로 노력하신 덕분입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방문하고 나서 한 달을 버티자, 진혁은 밤에 몰래 들어와 오행진을 설치해 주었다. 쾌적한 수면과 충분한 휴식을 통해 무하마드 왕자는 나날이 몸 상태가 좋아졌다.
「물론이지. 미각을 예민하게 한다고 해서 세상의 진미를 경험할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새까만 방에 집어넣지를 않나, 매일같이 달리기를 시키질 않나. 얼음 조각의 냄새를 맡게끔 시키기도 하고,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했지.」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믿기 어렵지만 아주 즐겁다네.」
무하마드 왕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 누가 왕족에게 이러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겠는가?」
진혁이 질문으로 대답했다.
「영양사와 운동처방사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주지 않습니까?」
황미미의 식사는 맛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영양을 중시하면서도 편식하지 않도록 짜여 있었다. 또한, 하루 일정 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미미의 경우에는 필라테스와 현대무용, 요가와 근력 트레이닝을 번갈아 수행했다. 진혁과 함께하면서 근력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태극권으로 교체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마사지와 명상 일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사업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개인적인 운동과 영양,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부(富)를 갖춘 자라면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전문가를 고용한다고 했다.
그러니 무하마드 왕자처럼 부와 권력이 있는 자가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짜주지만, 맛이 없어서 말이지.」
이유는 오직 하나다. 스스로 돌보지 않는 것이다.
「그랬군요.」
「운동을 조금 하긴 하지만 이 정도 고강도 운동을 하지는 않아. 담당 의사는 관절이 상하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하는데, 근육이 늘면서 확실히 입맛도 좋아지고 미각도 예민해졌지. 건강을 챙기면 음식이 더 맛있어질 줄 알았더라면, 진작 운동부터 할 걸 그랬지! 상상도 못 했네. 전부 자네 덕분일세.」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무하마드 왕자 본인보다도 진혁이 왕자의 몸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폐물과 탁기로 가득 차 있던 몸은 점차 더 깨끗해지며, 굽어 있던 허리는 펴지고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체중이 줄었을뿐더러, 눈빛이 총명해졌다.
「한국에 너무 오래 있었어. 나는 이제 곧 돌아가야 하네.」
진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무하마드 왕자는 단순한 왕족이 아니었다. 그는 고위 관료이자 정치인이며 사업가였다. 이제까지 한국에 있었던 것이 오히려 대단한 일이었다. 그는 중간중간 전용기를 타고 아랍에 오가며 급한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본국을 더 이상 비워둘 수가 없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다가 죽는다면 그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했네.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모두가 말리는 계약서에 서명해서 여기까지 왔지.」
데리고 있는 변호사들은 물론이며 두 아들과 측근들이 전부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 왕자는 결단을 내려서 한국행을 선택했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당근이니 브로콜리니 토마토, 블루베리니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씻어서 내놓기만 했는데도 선명하게 맛이 느껴지다니! 그런 경험은 해본 적이 없어. 이곳에 올 만한 가치가 있었어.」
진혁이 물었다.
「이전과 지금의 미각 차이를 확실히 느끼십니까?」
「물론이지, 이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둔하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라네.」
진혁이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계약 조건은 제가 말한 대로 이루어졌군요.」
무하마드 왕자가 간곡하게 말했다.
「그렇지. 자네가 옳아.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제안하겠네. 부디 나를 따라와서 왕궁에서 페이스트리 쉐프로 일해 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