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5화 (563/656)

제 565화

장유향과 무하마드 왕자는 매일 아침 20바퀴를 달렸다. 10바퀴도 많다고 불평하던 무하마드는 장유향을 따라서 쉬지 않고 뛰었다. 처음에는 11바퀴째부터 죽겠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20바퀴를 달리자, 점차 소요 시간이 줄었다.

“장유향 어르신께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시잖아요?”

“그런데?”

“운동장을 20바퀴 달린 후에도 6층 계단을 묵묵히 걸어 올라오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하마드 왕자님도 계단으로 다니고 계십니다.”

한 비서의 보고를 받고서 진혁이 피식 웃었다.

“체력이 많이 좋아졌겠는데.”

“실제 체력은 어떻든 간에,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든 노인이시니까요.”

“어지간한 사람보다 장 씨, 아니 장 어르신이 훨씬 더 건강할걸.”

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황 그룹의 다른 고용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훨씬 낫다고는 들었습니다.”

진혁이 말하는 ‘어지간한 사람’은 평범한 20대가 아니다. 설령 전성기의 국가대표 체육선수라고 해도 무공을 익힌 삼류 잡배를 이길 수는 없다. 이미 내공의 유무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진혁은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오늘도 암흑실에 있는 시간이 늘었나?”

“예, 장 어르신께서 5분을 더 머물겠다고 하자 무하마드 왕자님도 더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대단한데.”

무하마드는 전에는 10분 동안 머무는 것도 힘겨워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암흑실에서 하루 30분의 시간을 보낸다. 장유향이 나타나면서 생긴 변화였다. 진혁이 결론지었다.

“역시 라이벌이 필요했던 거야.”

한 비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날 오후, 진혁이 무하마드 왕자에게 물었다.

「요즘은 장유향, 아니 장 어르신과는 잘 지내고 계십니까.」

「아랍과 동남아시아 쪽 향신료에는 완전히 무지하던데? 내가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지.」

「고가의 향신료까지 직접 가져다주시던데요.」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토마토 페이스트나 오렌지 주스 같은 건 알아서 구할 수 있을 거 아닌가.」

「장 어르신을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지. 임진혁 쉐프가 고마워해야 할 일은 아니야. 이건 그 노인네가 직접 고맙다고 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 자네 두 사람이 진짜 부자 관계라도 되는 것 같지 않나.」

「비슷합니다만.」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단 말인가? 자네는 오리 요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잖아. 결혼식 때 나온 오리 요리, 그것도 거의 다른 쉐프들이 만든 거 아닌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가슴살 샌드위치 정도라면 만든 적이 있습니다.」

「페이스트리 쉐프잖나? 통 오리 구이 따위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말이야.」

「제가 오리 구이 요리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럴 리가. 진흙 오리 구이에 관심이 있었다면 벌써 그 요리를 직접 하고 있었겠지. 그냥 먹어보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야.」

무하마드 왕자가 딱 잘라서 말했다. 진혁이 웃었다.

「음, 오리 요리 관련이 아니고 다른 일로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당연하지.」

무하마드 왕자가 단언했다.

「자네는 취미도 없고, 인간관계도 좁아. 제과제빵에 관련된 사람들 아니면 아는 사람도 없지 않나. 그런데 갑자기 중국의 진흙 오리 구이 전문 요리사와 절친하다고?」

「뒷조사라도 하셨습니까?」

「뒷조사는 무슨! 인터뷰에서 자네가 술술 떠들어댔는데 말이야. 조사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

「아.」

진혁이 고개를 저으며 선을 그었다.

「제가 장 어르신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두 분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군요.」

◈          ◈          ◈

「카다멈과 노란 양파, 그리고 오렌지 주스, 꿀과 버터, 토마토 페이스트를 써 보라고.」

무하마드 왕자는 장유향을 따라다니면서 레시피를 읊었다. 이번에 이야기한 것은 이집트식 오리구이에 넣을 소스였다. 장유향이 짜증을 냈다.

『카다멈은 또 뭔가. 노란 양파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장 어르신께서 아랍의 향신료에 대해서 잘 모르니 가르쳐주신다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내 그럴 줄 알고 이렇게 향신료를 가지고 왔지.」

카다멈.

두구속에 속하는 소두구, 향두구(香荳?)와 생강과의 초과(草果)의 씨앗을 모아 놓은 향신료다.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쓰는 이 향신료는 약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꼬투리가 삐쭉한, 독특한 형태의 씨앗을 올망졸망하니 받아든 장유향이 코를 킁킁거렸다.

『호오, 이건 냄새가 특이하긴 한데. 한약재하고는 또 다른 향이 나는군. 오리 비린내를 잡을 때는 좋을지도 모르겠어. 뭐, 성의를 봐서 한 번쯤은 써 봐 주지.』

「특별한 향이라고 하시면서 다음 요리를 하실 때 써 보겠다고 하시는군요.」

정중하게 한 차례 걸러지는 대화를 보며 한 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통역사란 정말로 극한 직업이군요. 중국어를 못하셔서 다행입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장유향은 투덜거리면서도 새로 받은 향신료를 꼭 시험했다. 엊그제는 정향과 육두구를, 그 전날에는 가람 마살라와 사프란을 시험했다.

즉 오늘 저녁은 카다멈 오리 구이다. 벌써 일주일째 저녁에는 진흙 오리 구이를 먹고 있다. 식당 바깥에서 한 비서가 물었다.

“저는 밖에서 식사를 해도 됩니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카심과 다른 경호원들은 아예 다른 요리를 먹었다. 한 비서가 나가자 저녁 식사로 오리 구이를 먹는 사람은 진혁과 무하마드, 장유향뿐이었다. 진흙 오리 구이를 카트에 올려놓고 끌고 오면서 장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명이 줄었습니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답디까?』

진혁이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어떤 향신료인가?』

『카디움인가 뭔가 하는 겁니다. 생강하고 비슷한데 다른 향이 나서, 배와 대추를 같이 넣어 보았습니다.』

장유향은 더 이상 진혁을 시험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넣건 간에 진혁은 그것을 전부 하나하나 알아맞히었다. 이미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인 것이다.

대신 자신이 무엇과 무엇을 어떤 의도로 넣었는지 낱낱이 밝혔다. 통역사는 무하마드에게 장유향의 말을 통역하여 요리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려 주었다.

「생강과 대추, 배를 함께 곁들여 구워냈다고 합니다.」

「배? 찜을 할 때 고기를 무르게 하려고 배를 넣는 건 봤지만, 구이에 배를 넣었다고? 맛없을 것 같은데.」

무하마드 왕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진혁이 접시를 끌어당기며 포크를 들어 올렸다.

「글쎄, 그것도 모르고 넣지는 않았겠지요. 한 번 먹어보자고요.」

이번에는 겉모습부터 달랐다. 얇고 바삭해 보이는 껍질을 보며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기계식 오븐을 다루는 방법은 완전히 익힌 모양이군.』

『이전에 미숙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임진혁과 장유향은 통역사 앞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역사는 경어와 반말이 뒤섞인 두 사람의 대화를 못 들은 척 가만히 서 있었다.

『흙 가마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일주일 동안 같은 구이 요리를 계속하면서, 장유향은 이곳의 오븐을 훨씬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첫날 내놓은 오리 구이는 날개가 살짝 오버 쿡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수많은 오리를 태우기도 하고 덜 익히기도 하면서, 불길을 제대로 다루게 되었다.

카다멈 오리 구이.

풍기는 향기부터 다르다. 허벅다리와 날개, 그리고 가슴살. 익숙한 향신료의 맛을 기대하고 있었던 무하마드 왕자가 놀라며 말했다.

「내가 준 걸 그대로 쓰지는 않았군? 아랍식 오리 구이를 맛보게 될 줄 알았는데.」

『저 젊은이가 뭐라고 하나?』

『향신료를 그대로 쓰지 않아서 놀라셨다고 합니다.』

『아무렴 내가 그냥 할 줄 알고?』

장유향은 다른 사람이 준 조미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낮부터 소량씩 덜어낸 조미료를 닭가슴살이나 오리 가슴살에 발라서 시험해 보았다. 차로 맛보기도 하고, 밥에 넣어 쪄 보기도 했다. 몇 시간 동안 실험을 거친 끝에 자신만의 새로운 요리법을 고안해 냈다.

『주는 대로 요리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주, 아니 임진혁 쉐프님의 입맛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라고.』

임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내 입맛이 어떤데?』

『지나치게 맵거나 짠 것, 과도하게 단 것 등 자극적인 음식을 싫어하십니다. 그렇다고 담백한 것을 즐기시는 것도 아닙니다. 복합적인 식감에 풍부한 향이 지나치게 진하지 않으며 풍미가 있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선호하시지 않습니까?』

『…호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지.’

일월신교의 수련생 시절에는 먹을 것을 따질 수도 없었다. 당장 생존이 위급한 상황에서 무엇을 먹을지는 고를 수 없다. 그때는 벌레부터 이름 모를 잡초까지, 아무거나 먹으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지고의 위치에 오른 후에는 고급 요리를 먹게 되었다.

하나 당시 고급 요리란 귀한 향신료와 조미료, 식물성 기름을 아낌없이 사용해 요리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당시 그의 식성에는 맞지 않았다.

닭과 오리에 토끼 그리고 돼지. 소와 낙타 그리고 말고기, 그 고기도 진혁이 원래 알던 것과는 맛이 달랐다. 고기는 질기고 지방이 부족하며 뼈가 단단했다. 익힌 사료를 먹여 한꺼번에 키우는 현대의 소와는 육질부터 다른 것이다.

대신 그는 이전에 모르던 음식들을 주로 먹었다. 온갖 색과 향을 지닌 버섯과 죽순을 즐겼다.

식물성 기름은 놀랄 만큼 다양했다. 참기름과 살구 기름, 생선을 짜내 만든 기름 등 종류가 많았다. 하지만 다량의 곡물 씨앗을 사용해 극히 소량의 기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기름을 많이 쓰는 튀김 요리는 사치품이었다. 그는 튀김 요리를 먹을 수 있었지만 사양했다.

굽거나 찌거나 지지는 요리들이 많았고, 쇠고기와 양고기는 비린내가 날 때가 많았으나 향신료에는 제한이 있었다. 당시 고추는 아직 중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시거나 짠 음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계속해서 담백한 음식들을 찾아왔다. 사탕수수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고, 단맛은 꿀이나 과일에서 얻을 수 있었다.

「카다멈은 이번에 처음 써보는가?」

『아랍의 향신료는 송대 때부터 중화에 전래되어 왔지.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쓰지 않았던 거지, 처음 겪는 건 아니야.』

새로운 오리 요리를 맛본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두구와 생강, 그리고 대추와 배라. 이 조합도 나쁘지는 않아.」

피로 회복에 좋은 약재를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풍미가 생겼다. 진혁에게는 이국적인 향미로 느껴졌지만, 무하마드 왕자에게는 달랐다.

「아주 입안에서 살살 녹는군! 찜도 아니고 구이를 이 정도 맛까지 끌어올리다니. 카다멈의 맛도 잘 어울려!」

그는 혀를 내두르며 장유향을 칭찬했다.

『불 조절을 절묘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카다멈이 오리 살 속까지 진하게 파고들었다며 기뻐하고 계십니다.』

무하마드에게 칭찬의 말을 들어도 장유향은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의견이었다.

그는 임진혁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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