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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64화 (562/656)

제 564화

무하마드 왕자는 다음날 바로 중국어 통역사를 데리고 왔다. 중국의 50여 개 방언에 능통하다는 통역사는 싹싹하게 끼어들어 장유향의 말을 전달해 주었다.

「이봐, 어르신. 이런 완전한 암흑 속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 아닌가.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면 다 잘 될 거야.」

그는 암흑의 방에서도 느긋해 보였다. 오히려 자신이 선배인 양 장유향을 열심히 가르쳐 주려고 했다.

물론 장유향은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은 젊은이 같으니라고! 지금 누가 두려워한다는 건가. 이 장유향, 무한의 암흑 속에서도 버텨냈단 말일세. 오히려 자네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진혁은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 중간에 끼어있는 통역사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쿠션 언어를 사용해 정중하고 친절하게 외국어를 번역해 주었다.

「어르신께서 지금 자신은 괜찮으시다며 왕자님은 어떠신지 염려해 주고 계십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나는 당연히 괜찮지. 지금 몇 개월째 이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데! 노인이 달리기를 조금 잘 한다고 해도 암흑 속에 있으면 무서울 수밖에 없지. 나도 처음에 여기에 들어왔는데 얼마나 불편했는데. 거, 무서우면 등 뒤의 벽에 좀 기대도 좋다고 얘기해 줘.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벽이 있으면 심리적으로 나아지는 면이 있다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팁이지만 지금 말해 줘야겠어. 괜히 송장 치우는 것보다 낫지!」

통역사는 정중하게 요점만을 전달했다.

『왕자님께서는 장 어르신께서 원하신다면 등 뒤의 벽에 기댈 경우 좀 더 편안해지실 것이라고 권유하고 계십니다.』

장유향이 통역사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함정 같은 소리! 왜 갑자기 벽 뒤에 기댈 것을 권유하는 거야! 내가 그런 말을 들을 것 같나. 더군다나 나처럼 늙은 자가 벽이니 등받이니 아무 데나 기대면 허리의 힘이 약해지네. 결국은 굽어 버리게 되지! 달리기도 서툰 주제에 지금처럼 살다가는 금방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버릴 거야.』

통역사가 말했다.

「잘 알았으나 섣불리 등을 기대다가는 곧은 자세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그건 맞는 말이야. 왕족이라면 왕족답게 그에 걸맞은 자세를 해야 하지. 언제나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해. 설령 다른 사람이 아무도 보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야. 이 노인이 무식하게 운동만 한 게 아닌가 보군. 좋은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다니, 나름대로 품위가 있는 자야.」

통역사는 날카로운 말들 사이에서 좋은 말만을 걸러 전달했다.

『왕자님께서는 바른 자세를 중시하는 장 어르신께 품위가 있다고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감히 누가 누구를 평가하려는지 모르겠군! 어둠 속에서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주제에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건넬 처지라고 생각하다니. 그 오만함과 건방진 모습이-.』

카심과 진혁은 외부에서 적외선 카메라와 오디오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희미한 페퍼민트 향을 풍겨낸 지 오래지만 두 사람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떠드느라 급급했다.

진혁은 두 사람 모두에게 실망했다. 그가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암흑 속에서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 주변을 살피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언제까지 대화에 집중할 겁니까? 지금 풍기는 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는 중국어와 영어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제서야 장유향과 무하마드 왕자, 두 사람 모두가 조용해졌다.

통역사가 진혁에게 감사하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정말로 암흑에 완전히 적응한 건가? 그럼 시간을 좀 늘려도 되나?’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의 상태를 살폈다. 이전보다는 느리지만, 여전히 심박수가 빠르다. 그렇지만 김동진이나 강마리오와 함께 있을 때보다 월등하게 나아졌다.

「암흑실에 있는 시간을 더 늘리죠.」

진혁의 제안에 무하마드가 질겁했다.

「아닙니다!」

「지금은 느끼고 있습니까?」

「민트 향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전보다 오히려 수준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장유향도 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어디선가 상쾌한 치약 향기가 납니다.』

『치약이라.』

지금 이 상황에서는 무하마드 왕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수많은 음식과 온갖 향신료를 접해왔을뿐더러 미리 이 방에서 여러 냄새를 경험했다.

반면에 장유향은 후각과 미각이 더 예민했으나 다양한 향신료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느껴본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귀신같이 알아냈다.

◈          ◈          ◈

암흑실에서의 첫 경험 후 무하마드는 나름대로 장 노인을 다시 평가했다.

「지금 장 노인은 저걸 바로 맞춘 건가? 암흑실에 처음 들어오면 두려움 때문에 어떤 냄새가 풍겨오는지는 알아맞히기 어려운데 말이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후각과 미각도 저 둔해지는데 대단해. 과연 요리사야.」

장유향 역시 무하마드에 대해서 언급했다.

『젊은이가 코가 좋아. 밭에 보내서 버섯이라도 찾게 하면 좋겠어.』

진혁은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매일 같이 지내다 보면 사이가 좋아지겠어.”

한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제 눈에는 완전히 앙숙으로 보입니다. 통역사분이 중간에서 재치있게 제 역할을 하시기는 하더군요.”

“칼을 드는 것도 아니고, 주먹질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사내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사이가 좋은 거지.”

한 비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대표이사님의 고견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출발하십니까?”

진혁은 사업의 세부적인 사항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음식 메뉴의 개발과 전체적인 방향에 대한 최종 결정만을 내렸다. 때로는 부족한 정보를 안고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전부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진혁은 두 사람의 제자를 남겨두고 훈련소에서 출발했다. 강남의 특급 호텔 비즈니스 미팅 룸에서 알렉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식과 인스턴트 음식 회사 브랜드 <다정한 마음>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회의다.

「알렉스! 어서 오십시오. 한국은 어떻습니까.」

알렉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날씨가 조금 춥지만 아주 좋습니다.」

때때로 견문이 부족한 미국인의 경우, 미국 외의 다른 국가들은 미개한 개발도상국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이미 여러 차례 한국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 알렉스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스와 함께 일하는 이사진들은 아시아 진출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출장에는 그 이사진 중 한 명이 함께 왔다.

「이쪽은 재무 담당 이사 케런스입니다.」

알렉스는 임진혁을 믿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사진들을 설득해서 이 자리에 왔다. 케런스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알렉스는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내에 병원식을 수출한다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향후 3년 이내의 자금 계획은….」

「모회사에서 10억의 자금을 투입하여….」

권리와 인센티브, 그리고 수익 배분에 관한 이야기 역시 오갔다. 알렉스와는 미리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서로 동의하였다. 이번 회의는 재무 이사 케런스를 위하여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재무 이사와 알렉스 모두 만족스러워하며 회의가 끝났다.

접대를 위한 식사까지 마치고, 진혁은 바로 두 사람을 배웅했다. 옆의 회의실에서 예약해 둔 화상 회의를 할 시간이었다.

유키코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지금 ‘일월제과(日月製菓)’ 도쿄지사의 영상 회의실에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진혁 쉐프님.”

“유키코 씨. 지금 상황은 어땠습니까?”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리모컨으로 바로 화면을 띄웠다. 원형 그래프와 막대 그래프가 줄줄이 스크린을 장식했다.

“현지의 일본 기업과 협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에 존재하는 편의점의 수는 총 5만여 개에 달한다. 유키코의 제안으로 진혁은 본사가 있는 일본의 S그룹과 협력하기로 했다. 미미의 도움을 받아 소개받아, 개중 전국에 2만여 개의 편의점 지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모그룹과 협력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일월제과의 시제품을 맛보고 나서 수긍했습니다. S사의 자체 제작한 빵보다 원가율도 낮고 더 촉촉하면서 부드러운 빵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공장 설비는?”

“첫 시제품 유통을 한 후에 매출 성과가 일정 이상 나온 경우에 대여해주겠다고 합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들은 성공이 확실시되기 전에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키코는 이번에 합작에 동의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보고가 끝나고 나서 진혁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지셨어요. 도쿄 지사에서 근무하니까 주 3회는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있어서 좋아요. 부모님께서도 손자 손녀를 자주 만나서 좋아하신답니다.”

“잘 됐군요.”

그녀는 안부를 전하고 나서 다시 일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 방향을 바꿔서 정말 다행이에요. 키무라 유통과 직접적으로 연계하는 것보다, S사와 합작하는 편이 훨씬 좋아요. 유통 채널도 다양하고 풍부할뿐더러 우리 측에서 초반에 공장을 건설해야 하는 부담도 덜하구요.”

유키코가 발랄하게 말했다. 그녀는 가족 이야기를 할 때보다 회사일 이야기를 할 때 더 생기있어 보였다. 그녀가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말했다.

“이건 전략기획팀에서 내놓은 제안이 아니지요? 임진혁 쉐프님이 직접 꺼낸 거죠?”

“…맞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1인 가구를 위한 인스턴트 식품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어요. 자국 회사의 신토불이 음식을 먹자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구요. 이 시점에 외국계 회사가 들어간다는 건 리스크가 커요. 독자적인 지부를 설립하여 홀로 진출하기보다 S사의 손을 빌리는 편이 훨씬 낫지요.”

그녀는 뿌듯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초기 자본금 투자 비율을 높이면서 S사의 발언권을 제한한 건 이후에 S사에서 손 벌리려는 걸 제한하려고 한 거지요?”

“주도권 싸움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테니까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과거 그가 소교주가 되었을 때, 그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사사건건 참견했다. 그래서 그자들을 전부 때려눕혔다. 하지만 무공에 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다. 그 이후 광안마는 그를 앉혀놓고 어느 파벌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신경 써야 하는지 꼼꼼하게 가르쳤다.

상단이 가져오는 경제적인 이권. 그 이권을 어떻게 분배할지부터 시작이었다.

“경영 수업을 따로 받지도 않으셨는데 정말로 대단하세요.”

“옛날에 비슷한 일을 조금 했거든요.”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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