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3화
장유향이 물었다.
『저 외국인이 뭐라고 지껄이고 있습니까? 이상한 표정인데요. 설마 진흙 오리 구이가 맛이 없다고 합니까?』
『음.』
진혁은 대답하지 않은 사이에 한 비서가 고저 없이 말했다.
『최고의 오리 구이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돕겠답니다.』
한 비서는 이미 장유향과 임진혁의 기묘한 상하 관계에 익숙해졌다. 그는 젊은이가 노인에게 하대를 하고, 노인이 공경하며 대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장유향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웠다고 합디까?』
그는 당황한 것 같기도 했고, 불만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진혁이 말했다.
『무하마드 왕자는 정직한 미식가다. 자신이 먹은 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
『…그 남자를 신뢰하시는군요.』
『혀를 믿지. 내가 직접 교육시킨 미각이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유향이 말했다.
『변하셨습니다.』
진혁이 한 비서와 무하마드 왕자를 흘깃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나가 있어 주겠나?」
한 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나갔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나한테 자기 요리가 맛있다고 우기는 요리사가 한둘이었는 줄 아나? 지금 저 노인네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군. 이게 아랍 요리가 아니라서 맛없는 게 아니야. 정말로 맛있는 요리는 국경도 초월한다고. 지금 맛있지만 조금 부족해. 그 사실부터 인정하라고 해.」
「자, 조금 후에 암흑실에서 뵙죠.」
「윽.」
무하마드는 신음을 내며 방을 나섰다. 임진혁은 장유향과 단둘이 남았다.
『하아.』
진혁이 무어라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장유향이 먼저 말했다.
『제 요리가 충분치 못했군요.』
『음.』
진혁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흘렀다. 장 노인이 변명처럼 말을 꺼냈다.
『바다 건너에서 온 다양한 향신료, 그리고 감미료들. 지금처럼 다양한 음식을 한상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전에 없었습니다. 바다 건너 나라에서 온 희귀한 과일도 냉동해서 신선한 상태로 도착합니다. 한철밖에 보지 못하던 딸기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서 일 년 내내 볼 수 있지요. 그렇게 기술의 미덕을 보고 혜택을 보았습니다. 뭘로 만들었을지 모를 싸구려 가공식품이 늘어났지요. 그리고 시대가 한 차례 또 바뀌었습니다. 원형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찬양하던 자들이 지금은 옛것으로 돌아가자는 소리를 합디다. 농약을 치지 않고 그대로 키운 작물과 채소가 더 비싼 값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촌스럽단 평을 듣던 제 진흙 오리 구이도 뒤늦게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지요. 오리 본연의 맛에 집중하였던 것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주군께서 변하셨습니다.』
장유향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었다. 길이 있어 흐르는 물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진흙 오리 구이의 맛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태어나신 주군께서 현대의 복잡하고 화려한 맛에 길들어 있으니 저의 오리 구이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꽃은 변치 않고 그저 그 자리에 피어 있을 뿐이지만 나비와 벌은 더 이상 그 꽃에 끌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그는 이러한 태도를 경계했다. 자신이 아니라 남을 탓하기 시작한다면 향상심은 생길 수 없다. 진혁이 인상을 찌푸리자 장유향이 말했다.
『예전이라면 파사인을 비롯한 타국인은 아예 가까이 하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뢰하고 계시는군요.』
진혁이 혀를 찼다.
『장유향!』
『예.』
『강족(羌族)이건 동이족(東夷族)이건 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내 수제자는 어디로 갔나?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국가를, 민족을 고르지는 못하네. 도대체 언제부터 그대가 인종을, 국가를, 민족을 이유로 하여 다른 사람을 차별하게 되었나?』
『하지만 그들은 모두 위대한 중화를 알고 존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양인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모르고-.』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알기로 장유향의 이번 삶은 그다지 평탄치 않았다. 소수민족의 독립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평생 동안 도망치듯이 살아온 삶.
살부의 죄를 저지른 혈도객은 일월신교에 투신한 이후에도 내내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때의 그는 조금 더 너그럽고 여유가 있었다. 자신이 소외당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다른 이방인들에게 너그러웠다.
애초부터 신교 내에서 태어나 신도가 된 자들과 소외당하고 떠돌다가 입교한 자들의 충성심과 신앙심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혈도객은 당시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을 결집하여 무리 짓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러지?’
진혁은 곰곰이 생각했다.
‘한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경계하나?’
일월신교의 신도들은 모두 입교하면서 피를 나누는 형제가 되었다는 의식을 치른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그러한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어쩌면 장유향이 보기에는 입학시험과 같은 통과 의례를 거치지 않은 무하마드가 특별한 혜택을 받아 교육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입시 비리로 학교에 들어온 특별 수강생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겠지.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무하마드 왕자를 선배로 여겨 존중해 주게. 그는 충분히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미식의 길에 있어서는 무하마드 왕자가 앞서있다.
장유향이 단숨에 말을 뱉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응?』
『썩어빠진 현대의 음식에, 사치에 길들여진 자입니다. 달리기 20바퀴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무능합니다. 자신의 육체를 관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을 선배로 모실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에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내 말을 거부하는 건가?』
광안마라면 모를까 이 녀석은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네 네 하던 녀석이다. 이런 식으로 거부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진혁이 팔짱을 끼고 장유향을 내려다보았다. 장유향이 억울해하며 말했다.
『현대인들이 게으르다, 게으르다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주군의 제자라면 최소한의 기준은 통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기준은-.』
『검은 옷을 입기 위해서 훈련을 한다면 최소한 하급 무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주군께서 제자로 들이기로 결심하셨다면 제가 그 결단에 대해서 무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격은 갖추어야겠습니다.』
진혁이 말을 잃었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무하마드는 무공을 익히는 제자가 아닐세.』
『요리사니까 더욱더 체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요리를 해봐서 압니다. 무쇠솥을 지고 산길을 뛰어다닐 수도 있어야 하고, 갑자기 요리사를 습격하려고 하는 멧돼지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이,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야.』
『멀리선가 오리 구이 냄새가 풍겨올 때 다가올 호랑이와 늑대도 물리칠 수 있어야죠.』
『지금 농담하는 거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우 40대로 보이던데 운동장 15바퀴도 못 돈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그건 그렇지.』
진혁도 동의했다.
『요즘 애들은 체력이 너무 없어.』
『저한테 요리 배우러 오는 애들도 제가 체력부터 다시 훈련시킨다고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야. 내가 디저트 가게를 개업했는데 잘 안 되어 도움을 청하는 점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 점주 부부가 기본부터 안 되어 있더군. 체력 단련부터 시키니까 정신을 좀 차리는 것 같더라.』
일반인이란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이상한 이름의 타르트 가게를 개업한 그 부부는 특히 더 그랬다. 거제도라는 섬까지 가서 만난 자들이 무능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초반에 달리기를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정신을 건드렸다. 세뇌당하여 자신의 의지를 잃은 이들은 꼭두각시처럼 열심히 운동했고, 연습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세뇌’ 자체가 문제가 되어 큰돈을 잃고 말았다.
당시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던 진혁은 이후 정신 제압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남자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선배로 모실 수는 없다고요.』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그때 그 부부와는 달랐다. 한 번 시킨 일은 훌륭하게 해냈다. 언제나 향상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며 자신의 말을 지켰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른 법이지. 무하마드는 원래 한 바퀴도 못 달리던 인간이야. 노력한 끝에 그 정도로 잘 달리게 됐다고.』
하지만 그 말은 장유향을 더 화나게 했다.
『주군께서 지금 유치원생을 훈련시킬 정도의 수준은 아니십니다! 감히 주군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다니 정말로 몹쓸 인간이로군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유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대고서 말했다.
『그만.』
목소리의 톤부터 달랐다. 여태처럼 농담하듯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예!』
장유향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자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아니오.』
『내가 선배로 모시라고 하였는데 모시지 않을 이유가 있나.』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니오.』
『더이상 내 말을 존중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데.』
『오해십니다!』
『그럼, 저 남자를 지켜보게. 광안마 녀석하고도 결국에는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나?』
타이르듯이 말하자 장유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응?』
『주군 앞에서 사이가 좋은 척 한 것입니다.』
진혁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어쨌든. 그럼 지금도 그렇게 해 봐.』
『그렇게 하겠습니다.』
꼬장꼬장하고 고집도 센 장유향이 문밖으로 나갔다. 진혁은 식탁에 반 이상 남아 있는 오리 구이를 흘깃 보았다. 식사하던 한 비서와 무하마드 왕자 그리고 장유향을 한꺼번에 내보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역시 페이스트리 쉐프였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고개 숙이고 나간 장유향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단순하고 다혈질인 그 녀석의 기를 죽여줄 필요는 있었어.’
겉으로 보기에는 정정한 노인일 뿐이다. 하지만 도토리만큼이라곤 해도 단전에 내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당해낼 수 없다. 장유향과 시시비비를 다투다가 그가 힘 조절을 잘못하면 무하마드 왕자는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
진혁은 남아있는 오리 구이를 잘라, 자신의 접시로 가져왔다. 그리고 오리 구이를 뼈째 씹어 삼켰다.
『맛있어, 잘 만들었어.』
그리고 만든 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칭찬을 했다.
『그때 그 맛 그대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