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2화 (560/656)

제 562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장유향이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는 편이 좀 더 빠를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진혁이 칼을 받아들었다. 그는 직접 칼을 들어 올려 진흙 덩어리를 반으로 쪼갰다.

장유향과 진혁이 중국어로 대화하는데 무하마드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지역 사람 같은데.’

진혁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지 몰랐다. 그가 한 비서나 강마리오, 동진과 함께 한국어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임진혁과 장유향이 나누는 대화는 무언가 달랐다. 무하마드 역시 어렸을 때 엘리트 교육을 받아 북경어라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 둘이 나누는 말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심한 사투리였다.

‘확실히 친해.’

임진혁은 젊은 남자들 특유의 객기가 없었다. 그리고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른 나이에 성공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벽이 높았다. 그런데 저 장 노인이라는 사람에게는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함께 있을 때 느슨해졌다.

이번에 칼을 달라고 하는 태도 역시 훨씬 편안하고 친근했다.

‘원래 모든 사람에게 벽을 세우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단 말이지.’

진혁하고 친해지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지금 하는 대로 한다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저 장 노인은 도대체 임진혁 쉐프하고 어떻게 친해진 거지.’

그는 자신이 아는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생각했다.

‘이탈리아인 요리사 페드로.’

오랜 기간 동안 무하마드와 함께 해온 페드로는 프라이드가 높았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고, 누구와 만나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요리사라면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요리사들은 다 비슷비슷한 줄 알았는데.’

하지만 임진혁은 무하마드가 상대해온 수많은 요리사들과는 다른 타입의 사람이었다. 조금 알았다고 생각하면 껍질 벗긴 양파처럼 또 새로운 면이 드러난다.

쩌억하고 진흙 껍데기가 갈라지고 큼직한 통오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향초 향이 섞인 기름지고 풍부한 오리 향이 방 아래에 퍼졌다. 무하마드는 절로 코를 벌름거렸다.

실내조명의 빛을 반사해 반들반들하니 껍질이 반짝였다. 분명히 구이가 아니라 찜을 했는데도 베이징 덕 못지않게 껍질이 얇고 바삭해 보였다. 진혁이 새 칼을 집어 들었다.

「무하마드 왕자님은 다리를 좋아하셨지요?」

진혁의 말에 무하마드가 반색했다.

「오, 기억해 주었군.」

그는 방금 전까지의 고뇌를 금방 잊어버렸다. 진혁은 단골 식당에서 손님을 환대하듯 빙긋 웃었다.

「그렇지만 이번 요리는 목과 허벅지 그리고 가슴살과 갈빗살 모두를 골고루 드시는 편이 좋으니 제가 잘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진혁이 한 말은 쉐프가 단골손님에게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즉 편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무하마드가 미간을 좁혔다.

「공부를 위해서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무하마드가 주장했다.

「나는 편식을 하지 않네.」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하마드는 맛있는 음식이라면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에 ‘맛이 없는’ 음식이라면 절대 먹지 않았다.

‘분명히 몰래 돼지고기도 먹어봤을걸.’

그는 규율에 충실하며 계율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진혁은 무하마드와 같은 타입의 사람을 잘 알았다. 제비집 요리를 비롯하여 희귀한 요리를 찾아다니는 무하마드다.

‘그런 그가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하고 세계 모든 곳에서 먹는 돼지고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그 정도의 권력과 욕망을 가졌다면 금기를 어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는 아마도 몰래 먹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찾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오리고기는 닭과 소, 양과 낙타, 말고기와 함께 아랍에서 흔히 먹는 고기다. 그러니 다양하게 조리한 온갖 종류의 오리에 익숙할 것이다.

‘무하마드는 유난히 오리 요리에 까다로운 편이야.’

진혁은 무하마드의 미각을 믿었다.

그런 그라면, 장유향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오리고기 요리에 대해서 평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호오, 나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건가.」

무하마드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은 더 이상 이 진흙 오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광안마 자식은 분명히 한 번 태어났다고 했단 말이지? 그런데 이놈은 다시 태어나고, 태어날 때마다 계속해서 오리 요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온 거야. 사실 그런 건 까먹고 새로운 삶을 사는 편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진혁은 현대가 좋았다.

가족과 함께 본래의 삶을 되찾았다.

사업도 순조롭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인생의 동반자도 얻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지금 이곳 현대에 완전히 적응했다. 하지만 장유향은 그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집착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문화도, 역사도 다른 곳에 내동댕이쳐져 강제로 새로운 삶을 살면서 옛 삶을 그리워했다.

‘추억은 언제나 현실보다 아름답지.’

과거의 기억을 곱씹다 보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는 이 진흙 오리 구이에 계속해서 매달려 왔다. 차라리 이 오리구이 레시피를 기억하지 못했거나, 옛일을 전부 잊어버리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검림은 혈도객을 아꼈다.

그러나 장유향은 또 다른 사람이었다.

‘이 녀석은 그 녀석이 아니야.’

순진하고 진혁만을 따르던 그 청년은 이제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노인은 이제 나이를 먹었다. 다른 삶을 살았고, 고난을 겪었다. 검림과 관계없는 시간을 그토록 오래 겪었는데도 아직도 쓸데없이 단단했다.

진혁은 그 껍데기를 깨부수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수단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 오리 고기 구이를 개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오리 구이를 개량하는 데에 있어서 진혁이 적극적으로 활약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장유향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존재였다.

‘나에게 인정받은 오리 구이를, 내가 다시 바꾸어 준다. 그건 아니지.’

요리 개량을 하는 자가 반드시 임진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오리구이의 수준을 평가할만한 이는 필요하다.

‘무하마드 왕자는 세계 곳곳의 모든 오리 요리를 전부 먹어보았어. 찜, 탕, 구이, 튀김을 가리지 않아. 그 어느 것도 최고급 오리 요리니까, 조언하기에는 충분하지.’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가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 무하마드 왕자는 장유향을 경계하고 있지. 그러니 더 신경 써서 정확한 평가를 할 거야.’

경계하고 있다고 해서 맛있는 것을 맛없다고 하거나, 맛없는 걸 맛있다고 할만한 인물은 아니다.

“으음.”

진혁은 오리 고기를 씹었다. 촉촉한 살코기에는 약초의 향이 짙게 배어있다. 이전에 먹었을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잘 익었다. 쉽게 퍽퍽해질 수 있는 가슴살 역시 부드럽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          ◈          ◈

장유향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여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안 먹고 나만 보는 거야?』

그는 진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눈짓 하나도 놓치지 않을세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야 수없이 많이 먹어본 음식 아닙니까.』

『그래도 내가 잘라준 건 처음 먹지 않나?』

진혁이 훈계하자 장유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예.』

그는 오리고기를 한 점 떼어 입에 넣었다.

‘보기에는 잘 됐는데.’

이곳의 오븐은 사용하기 편했다. 하지만 원래 사용하던 불가마와 달라서 생각보다 화력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아주 고온으로 오랜 시간 익히고 말았는데, 의외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주 잘 구워졌는데요.』

그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최고다.

‘주군께서도 만족하실 만한 맛이다.’

그리고 터번 쓴 외국인이 입을 열었다.

「건강식인가?」

「비슷합니다.」

「고기는 아주 잘 익었네! 누린내도 없이 잘 양념한 고기인데, 너무 단순해. 이 고기의 맛 자체를 살리려는 컨셉인가, 싶기도 한데. 넣은 향초들도 일관성이 없고. 할머니의 구식 요리 느낌을 낸 건가?」

신랄한 평가에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 고기를 꽤 맛있게 먹었다. 미미 역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냥 추억 보정이었던 건가?’

고급 식당에서 내놓는 단 한 가지의 요리.

다른 사람들은 이 요리가 고급이기 때문에 더 높게 평가했던 걸까?

진흙 오리 구이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유명하고 비싸기 때문에 잘 팔리고 있었던 걸까.

몇 가지 의문이 소용돌이치며 진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흐음….」

무하마드의 신랄한 평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가정식이라면 꽤 높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식당에서 팔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진혁은 저도 모르게 장유향을 변호했다.

「진흙 오리 구이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항주의 특산물입니다.」

「대대로 전해 내려와서 그런가 보군.」

무하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후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소매를 털었다.

「이 노인이 왜 미식의 길을 훈련받아야 하는지 아주 잘 이해했네.」

「예?」

「자신이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온 요리가 맛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면 도저히 그대로 살 수는 없겠지.」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그가 장유향을 흘깃 바라보았다. 진혁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저 노인이 자네를 만난 거야.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 오던 오리 구이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아니, 그게.」

진혁이 황당해하는 동안 무하마드 왕자가 자기 멋대로 가설을 전개했다.

「그래서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조른 게 아닌가? 이 오리 구이를 더 맛있게 만들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고. 그리고 자네는 거절하지 못하고 노인을 데리고 온 거지.」

무하마드 왕자는 오리고기의 모든 부위를 한 번씩 맛본 후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가 말했다.

「요리를 하지 않고 그냥 굽기만 해도 맛있는 오리고기야. 그렇지만 요리사라면 더 나은 요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겠나?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 향상심이라면 나도 응원한다네.」

「….」

「나보다 달리기를 더 잘하는 점은 이해가 안 되지만 말이야. 요리사는 체력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고, 저분이 평생 불 앞에서 냄비를 다루어 왔다면 그럴 법도 하지.」

무하마드 왕자는 질투심도, 시기심도 전부 초월해버린 듯한 눈빛으로 장유향을 바라보았다.

「어떤 향초로 양념하는 것이 제일 좋을지 나도 고민해 보겠네.」

진혁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아, 뭐, 네.」

「저 노인분도 그걸 바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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