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1화 (559/656)

제 561화

몇 바퀴나 달렸을까.

평소라면 열 바퀴면 끝났을 훈련이다. 하지만 장유향은 열 바퀴를 다 달린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무하마드는 장유향이 계속 달리는 것을 보았다.

‘뭐야, 멈추지 않는 건가? 노인인데 이 정도로 지치지도 않는 건가?’

무하마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따라 달렸다.

열한 바퀴, 열두 바퀴, 그리고 열세 바퀴.

「하악, 하악, 하악.」

장유향은 계속해서 달렸고 무하마드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서로를 의식하면서 발을 맞춘다.

속도를 맞추어 곁에서 함께 달리던 카심이 속삭였다.

「임진혁 쉐프님, 두 분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딱 좋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경험도 필요하죠.」

카심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봐도 무리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동안 계속 훈련해 왔으니 이 정도로는 쉽게 지치지 않을 겁니다.」

무하마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호흡이 엉키고 숨이 막힌다. 이쯤 되면 그는 보통 달리기를 멈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바로 앞에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등이 보였다.

‘이 등을 제치고 싶다.’

심장은 계속해서 맥동하며 전신에 혈액을 보낸다. 보통 이 정도 달리면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왕족이라는 자존심.

왕족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

진혁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아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그저 달릴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침 달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달려도 머릿속이 텅 비는 일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등은 아무리 달려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하악, 하악.」

질투심, 시기심,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처음에는 이 사람이 진혁의 가족이나 친척이라고 믿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러니 인사를 하고 호의적인 분위기로 지내볼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진혁을 존경하고 경애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지금 아시아,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서 미식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임진혁 쉐프밖에 없어.’

그러니 오직 그 한 사람만을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무하마드가 여태까지 홀로 외로이 걸어가던 길.

미식.

맛있는 음식을 보고 냄새 맡고 느끼며 씹고 뜯고 핥으며 맛보아 즐기는 일.

그는 그 길을 혼자서 걸어왔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맛볼 기세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물고기부터 새, 곤충과 짐승. 각피부터 고기, 그리고 내장. 식물의 껍질과 꽃, 뿌리와 줄기. 잎과 열매.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갔다.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방문했다. 특급 호텔의 루프탑 바부터 이름 모를 동남아시아 시골의 맛집까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다.

그 모든 다양한 재료와 요리 방식을 경험했다.

더 이상 미식을 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답은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야. 나 자신에게 있었지.’

나무에 송이송이 열려 있는 바나나를 떠올려 보자.

농익은 바나나는 익힐 필요도, 요리할 필요도 없다.

지나치게 물러지기 전에 최고로 달 때 그저 먹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바나나를 먹는 ‘나 자신’은 어떤가.

나는 다른 맛보다 단맛을 더 원하는가? 아니면 살짝 매운맛이 감도는 것이 더 나은가?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한 입 먹을 때에 톡 터지는 식감이 더 좋은가?

농후한 향을 즐기는가, 아니면 옅은 향 그리고 깊은 맛을 원하는가.

당장 바나나 하나만을 고를 때에도 품종에 따라 이토록 많은 것이 달라진다.

진혁은 그런 것들을 직접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이전에도 어떤 요리사가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한 적이 있었어.’

파울로. 그는 이탈리아의 요리사였다. 각종 채소와 음식 재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려고 하였다. 거의 드레싱을 치지 않고 소금과 후추, 올리브유만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제철 채소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려 했다.

그때 무하마드는 파울로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제철 채소가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을 그저 접시 위에 올려놓을 뿐이라면, 요리사의 역할은 대체 무엇인가.

무지렁이 농부라도 채소를 씻어서 접시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훌륭한 요리사라면 마땅히 식재료를 가공하고 맛을 더하여, 더 맛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임진혁 쉐프는 나에게 진정한 미식의 길에 대해서 알려 주었지.’

아주 조그마한 조각의 향신료 잎사귀를 물에 담가 얼린다. 그리고 그 얼음의 끄트머리를 핥아, 어떤 허브인지 맞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가혹한 조건이다. 온도가 낮을 때에는 맛을 느끼기가 더 어렵다. 그렇기에 아이스크림에는 더 많은 설탕이 들어가고, 아이스티에도 다량의 당분을 넣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대로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혀끝에는 그저 차가운 얼음 맛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심술궂게 굴려고 어려운 조건을 내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훈련을 소화하면서 무하마드는 점차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이 가뿐했다. 달리고 나면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 즐거웠다.

그리고 음식들이 맛있었다.

진혁이 만든 음식은 당연히 맛있었다. 다른 어떤 음식을 가져와도 그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날이 훈련을 계속하면서 다른 음식을 느끼는 방식 자체도 달라졌다.

사과 한 조각, 오이 한 조각을 먹어도 그 맛이 얼마나 풍부한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 요리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농부가 정성 들여 기른, 갓 딴 채소. 그 신선한 과일의 맛은 가공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입안에서 과즙을 흘리며 톡 터트리는 토마토와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오이, 그리고 사각거리는 참외.

‘과일들을 얇게 썰어내어 함께 접시에 내놓는 것도 요리가 맞아.’

그것도 아주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요리다. 어떤 색깔과 식감을 어느 정도 양으로 분배할지 확신이 필요하다.

볶고 찌고 삶고 굽고 튀겨 요리할 때에는 예상 가능한 범주가 있다. 음식의 맛을 변화시키며 내가 손을 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샐러드는 무엇을 어떤 것과 함께 먹더라도 맛있게 기획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다.

요리를 배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무하마드는 점차 요리사가 무엇을 느끼는지 공감하고 있었다. 미각이 예민해져가면서, 이제까지 맛있게 느꼈던 가공음식들을 불쾌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치즈나 생야채, 고기라면 여전히 즐겼다.

그러나 합성 감미료를 넣은 싸구려 햄이나 소시지 등은 즐길 수 없었다. 항상 찝찝하고 애매한 뒷맛이 남았다.

그의 변화는 미각에만 그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품종이 다른 고구마들이 얼마나 다른 맛을 낼 수 있는지 배웠다. 그러자 고구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고구마의 역사와 기원, 재배 방식, 나라별로 주로 재배하는 품종, 그리고 어느 품종이 어떤 맛을 내는가.

주로 요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 지식에 대한 욕구는 비단 고구마에만 그치지 않았다. 무하마드는 더 많은 정보를 원했다.

‘더, 더 알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먹으면서 느끼고 싶다.’

마치 한 자루의 검과도 같이 자신을 날카롭게 갈고 닦아, 세상을 저미어 느끼고 맛본다.

몸이 건강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자 여태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맛들을 전부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극한의 달콤함과, 담담한 맛.

지식까지 더해지자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임진혁이 다른 꼬마 요리사들을 데려와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진혁은 자신보다도 더 민감한 미각을 갖고 있는 자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가야 미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을 예민하게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세상에 이런 요리사는 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지식을 다른 후배들에게도 전수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에게 알려주더라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축하하고 응원해야 할 일이다. 진혁 말고도 다른 요리사들이 더 뛰어난 미각으로 더 많은 요리를 개발해낼 테니 말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들이 늘어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먹기만 하면 된다. 무하마드는 기쁜 마음으로 꼬마 요리사들의 성장을 격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장유향이라는 노인은 무언가 달랐다.

‘임진혁 쉐프는 가족 말고는 아끼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무하마드는 눈치가 빨랐다. 네 명의 어머니와 십수 명의 형제를 두고서 왕궁에서 자란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 어린 시절 그는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의 총애를 다투며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어째서인지 지금 그때 생각이 났다.

‘분명히 내가 원하지 않으면 새로운 학생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말이지.’

유일한 수제자로서 미식의 길을 걷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나 나이든 노인이 당당한 라이벌로서 눈앞에 나타났다. 더 화나는 일은 이 어르신이 자신보다 훨씬 잘 달린다는 점이었다.

‘건강한 몸이어야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있다고 했지.’

무하마드 자신은 이 장 씨 할아버지보다 이십 년, 아니 삼십 년은 더 젊었다.

‘이 노인한테 벌써부터 질 수는 없어.’

요리사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정치가이자 사업가인 무하마드보다 더 맛에 대해서 해박할 것이다. 요리재료에 대해서도 더 알 것이며, 진혁과도 더 친할 것이다.

유일한 제자에서 이제 두 번째 제자가 될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헐떡거리는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머리가 새하얘진다. 왜 달리는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에 달하자,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숨쉬기가 편해졌다. 무하마드 왕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무 무리하면 관절에 좋지 않습니다.」

분명히 같이 뛰었는지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는 임진혁, 그리고 카심이 서 있었다. 장유향 노인 역시 말짱했다.

오직 무하마드 왕자만이 지쳐있었다.

「…하아, 하아.」

숨이 편해졌어도 여전히 목이 메었다. 무하마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혁은 그 어깨를 툭 두드려 주고서 앞섰다.

「오늘은 점심에 진흙 오리 구이를 먹을 겁니다.」

각자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나서 그들은 식당에 모였다. 무하마드가 물었다.

「오늘 점심은 미스터 장이 요리하신 겁니까?」

「예.」

무하마드는 그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유향이 없었다면 진혁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중국의 진흙 오리 구이를 먹어 보았을 때도 그리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이 거대한 고치처럼 생긴 흙덩어리가 그리 맛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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