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4화
임진혁이 동요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진희가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을 때도, 미미가 몸이 안 좋다고 했을 때도 그는 놀라지 않고 문병을 와서 일을 처리했다.
「그 장 노인이라는 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니 대뜸 이러한 요구부터 하는 모습이 낯설 수밖에 없다. 미미가 놀라서 물었다.
「오리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칭찬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예.」
황태명은 죽을 때까지 아무런 언질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항주와 다른 몇몇 곳, 그들이 방문했던 곳에 가보라고 했을 뿐이다. 꼭 가야 한다는 어투도 아니었다. 글씨가 새겨진 빵과 마찬가지로 주군을 찾기 위해 안배해두었다며 싱글싱글 농담처럼 던졌다.
그렇기에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며 헛되이 시간을 낭비했다.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다른 루트로 알아낸 오리고기 요리 방법을 전수해 식당을 열었을 수도 있다. 진혁은 ‘혈도객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헛된 기대를 했다가 무너지는 것이 싫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감초였구나.」
「감초요?」
「예, 오리고기 안에 감초를 넣었네요. 옛날에는 무슨 약초인지 몰랐는데 말입니다.」
「아…! 장 노인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이 비결을 전수할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고. 아무에게나 알려 줄 수 없다고요.」
「하지만 총주방장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미미가 자신이 장 노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하지만 일 년 정도 장 노인의 수발을 들면서 따라다니면서 어렵게 배운 거예요. 워낙 엄격한 덕분에 통과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출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각 식당의 총주방장들만 알지, 그 밑의 요리사들은 모를 거예요. 하물며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모르신다고 그러셨거든요. 두 분이 술자리를 하실 때 종종 저를 부르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목을 걸어도 알려줄 수 없다면 농담처럼 주고받으셨어요.」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장 노인이라는 자를 당장 만나고 싶습니다.」
다급해 보이는 그 태도를 보고 미미가 물었다.
「설마…?」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만나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부하이자 친우가 현대에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 진혁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오리고기가 너무 맛있으니 보고 싶다고 해주십시오.」
어안이 벙벙해 지켜보고 있던 황미미는 예전에 읽었던 ‘제갈책의 수첩’에 있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오리고기를 굽는 방법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고지식하고 올곧으며, 항상 한 방향만 보면서 달려가는 자였다. 미미가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녀는 바로 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 건물에서 같은 메뉴를 즐기고 있던 비서는 바로 식사를 중단하고 미미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 노인을 불러 치하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여기로 모셔왔으면 좋겠네요.」
어딘가에 연락을 해본 왕 비서가 곤란한 듯이 말했다.
「그, 아시겠지만 이맘때쯤에는 장 노인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아.」
진혁이 따지듯 물었다.
「어째서 연락이 안 됩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참배한다고 묘지 앞에서 기거하십니다. 핸드폰이나 다른 전자 기기는 전부 본가에 두고 가시는 데다가, 이 시기 즈음에 찾아가면 불같이 호통을 치십니다.」
「그렇네요. 효심이 대단히 깊은 분이시니까.」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말했다.
「어딘지 알려주시면 저 혼자 찾아가겠습니다. 항주에 있습니까?」
「아니요.」
왕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위치는 저희도 모릅니다.」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습니까?」
「알아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왕 비서는 여러 곳에 전화를 하며 동시에 이메일을 보냈다. 보조 비서들 역시 부지런히 연락을 돌렸다.
미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오리고기를 즐겨 볼까요?」
따끈따끈하던 오리는 그새 차갑게 식어있었다. 비서들을 내보낸 후 진혁은 접시에 손을 갖다 댔다. 먹기 좋게 따스해진 고기를 보며 미미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 다시 따뜻해졌네요.」
「입안에 넣기 딱 좋은 온도입니다.」
고춧가루에 버무린 부추와 함께 싸서 입안에 넣자, 고깃점이 쫄깃하게 씹혔다.
로메인 상추를 비롯해 케일부터 당근의 잎까지 온갖 종류의 쌈 채소가 나와 있었다. 진혁은 그중에서도 부추와 양파를 제일 선호했다. 미미는 케일과 로메인 상추, 그리고 명주 잎을 즐겼다. 그녀가 말했다.
「마늘도 잘 어울려요.」
과연 알싸한 마늘을 곁들여 입안에 넣자 아주 좋았다. 오리고기를 전부 먹어갈 무렵, 왕 비서가 지도를 들고 나타났다. 리무진에 설치된 휴대용 프린터를 통해 출력한 지도였다.
「신강의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산 어디라고 합니다. 저희는 산의 입구 위치밖에 모릅니다. 전에 장 노인을 데려다 준 운전수가 여기까지만 태워다 줬다고 하더군요. 워낙 괴팍하고 과묵하신 분이라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 좁힐 수가 없었습니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
광활한 초원과 드높은 산맥이 공존하는 곳이다.
일월신교가 있던 십만 대산 역시 그곳에 있다.
이전에 그는 혼자서 과거 일월신교의 위치를 확인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기도 했다. 급하게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산을 뒤지지 못했다.
‘아버지가 산에 계시다라….’
임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장 노인은 소수민족입니까?」
「예, 한족이 아니에요.」
「…고생을 많이 했겠군요.」
「그래도 할아버지를 만나고 난 후에는 평탄한 인생을 사셨어요.」
「마땅히 그래야죠.」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여기에 가봐야겠습니다.」
이후에는 함께 ‘해와 달’의 중국 지점을 돌아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일정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바로 비행기를 수배할게요.」
미미도 왕 비서도 평소 조바심이라곤 없이 부처처럼 여유 부리던 진혁이 서두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미미의 지시에 왕 비서가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 밖에 대기한 차량을 타시면 됩니다.」
「그럼 미미 씨는….」
둘이 같이 타고 온 리무진을 혼자서 타고 가 버리면 미미가 혼자 여기에 남는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왕 비서가 다른 차를 불러 줄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사실은 차에 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공항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방금 알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 진실인지 아닌지 바로 확인하고 싶었다.
신강까지 가는 비행기는 전용기가 아니었다. 왕 비서가 최대한 빨리 뜨는 비행기를 수배했기 때문이다. 그는 좁은 비행기 좌석에 구겨 앉아 창밖을 응시했다.
구름바다는 흔들림 없이 도도하게 펼쳐져 있었다. 풍랑에 흔들리는 조각배처럼 작은 인간의 마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몇 년 동안이나 몰랐다. 며칠 정도는 길지 않아.’
광안마, 아니 황태명에 대한 유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얼마든지 진혁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 처음에 자신이 알게 된 시점에 함께 왔을 수도 있다. 죽기 전에 언제라도 언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꽁꽁 숨기고 가 버렸다.
심지어 진혁이 노골적으로 혈도객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도 모른 척하고 넘겼다.
‘구렁이 백 마리는 삼킨 놈.’
그는 죽은 사람을 욕했다.
◈ ◈ ◈
두 번째로 오는 위구르 공항이다.
이번에도 누군가 그를 데리러 나와 있었다. 예전에 혼자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플랜카드를 흔드는 남자는 빠릿빠릿하고 유능해 보였다. 미미의 부하다웠다.
「산 입구까지 바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차량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식사는 하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차내에서 도시락을 드셔도 좋습니다.」
「괜찮네.」
목적지까지는 한두 시간 정도 걸렸다. 멀지 않았다. 몇백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기다려왔던 세월을 생각하면 정말로 길지 않다.
매번 장 노인을 데려다주었다는 운전기사가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이 시기에 장 씨를 찾아가려고 시도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도대체 산속 어디에 계신지, 아무도 찾지를 못했어요. 산길 초입에 자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거기에 계신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찾으러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렴, 당연히 있지요! 장 노인이야 워낙 중요하신 분 아닙니까. 급하게 찾을 일이 수도 없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검다. 노련한 심마니들을 데려다가 아무리 산을 타도 머리카락 한 올 나오지 않고 말이죠! 어디서 다치거나 죽은 건 아닌가 걱정을 했다고요. 심지어 구급대원들이 출동해서 24시간 동안 찾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도 못 찾았단 말입니까?」
「찾기는 찾았지요. 수색 대원들이 돌아다니니까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서, 산을 시끄럽게 했다고 호통치시는 겁니다.」
「대원들이 찾아낸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나오신 거군요. 그 위치는 어딘지 아십니까?」
「아유, 그것도 산 입구 근처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도통 어디에 계셨는지 알 수가 없는 거지요. 산 입구는 몇 번이나 수색을 했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있을 만한 데가 전혀 없고 두더지도 아닌데 어디 가서 숨으셨는지 알 수 없는 일임다.」
「짐작 가는 데가 있군요.」
기사는 진혁을 내려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언제 데리러 오면 되겠습니까?」
진혁은 자신이 여기에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짧게 대답했다.
「다른 차를 부를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설마 맨몸으로 산에 올라가시려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이 계절에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큽니다.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등산한 사람들도 조난당하면 찾기가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걱정하는 거구요.」
스타일리스트가 빼 입혀 준 명품 양복에 정장 구두, 그리고 금시계까지 차고 있다. 어디를 봐도 산에 올라갈 만한 복장은 아니었다. 조난당하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차림새다.
「괜찮습니다.」
운전기사가 염려하자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장 노인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가십시오.」
자동차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 진혁은 산기슭에 섰다. 무성하게 빼곡하니 자란 나무가 잎새로 무거워진 가지를 드리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세월의 흐름을 겪어 허리가 굵어진 아름드리나무가 몇백, 몇천 그루나 서로 얽히고설키며 자라나고 있다.
새어 들어오는 햇빛 사이로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울렸다. 조그맣게 졸졸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흐르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잎사귀의 소리까지, 이곳은 생명 그 자체였다.
부르릉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떠나고 난 후 진혁은 산길에 서서 그대로 기감을 퍼트렸다.
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새, 다람쥐와 들개, 이름 모를 동물들까지.
나이 든 인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찾았다.’
진혁은 바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