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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53화 (551/656)

제 553화

진흙 덩어리를 깨면 안에 들어있는 오리 구이가 나온다. 진혁은 손을 들어 진흙을 툭 하고 건드렸다.

겉면에 달라붙어 있던 덩어리가 쩌억하고 갈라지면서 깔끔하게 쪼개졌다. 흙 알갱이 하나 없이 깨끗한 통 오리구이가 드러났다. 윤기 나는 오리 껍질 위에는 갈아낸 통후추가 드문드문 뿌려져 있어 더욱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진흙을 벗기려 칼을 들고 다가온 웨이터가 놀라워했다.

「직접 자르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하하.」

「제가 직접 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할 수는 없겠는데요. 통 오리구이를 잘라 드리려고 했는데, 직접 자르시겠습니까?」

「직접 하겠습니다.」

진혁은 칼을 받아들었다. 날카롭게 손질된 칼날이 조명에 비추어 반짝 빛났다. 그는 숙련된 솜씨로 오리의 뼈를 발라냈다.

「그러고 보면 회장님 부군이 요리를 하신다고 하였지.」

「대단하신데.」

웨이터들은 입술만 달싹여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하지만 진혁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뼈를 발라낸 통통한 살점에 부드러운 껍질을 얹어 미미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미미가 환하게 웃었다.

「진혁 씨도 드세요.」

임진혁은 오리의 날갯죽지를 가져왔다. 끄트머리를 잘라 손질한 날개는 오톨도톨한 껍질째 잘 구워져 있었다. 그는 안쪽에 위치한 뼈들을 놀라운 솜씨로 제거한 다음 부드러운 살점을 미미의 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얇고 길쭉한 살결을 본 미미가 감탄했다.

「맛있겠네요, 잘 먹을게요.」

그는 날개부터 계륵, 그리고 목뼈 사이의 가느다란 살점까지 뼈를 골라내기 까다로운 부위의 살코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릇에 담아주었다. 처음에는 한두 조각이던 오리고기가 그릇에 수북하게 쌓였다. 오리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미미에게 먹일 기세였다. 산처럼 쌓여 점점 더 늘어나는 고기 더미를 보던 미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가가! 가가도 드셔요.」

처음 듣는 호칭이다. 진혁은 중국어로 그렇게 불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교주님’이라고 불린 적은 많다.

진혁이 미소지었다.

「나는 알아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다시 오리고기를 썰어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가슴살과 허벅지살, 남겨둔 목살과 다른 쪽 날개 등 남은 부분을 공평하게 가져갔다. 그는 촉촉하게 익은 오리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으음.」

그때는 그랬다.

먼저 혈도객이 길을 나섰다.

혈교의 잔당을 소탕하는 길이었기에, 그는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살부(殺父)의 죄를 저지른 후 혈도객은 살인을 기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조차도 망설이지 않았다.

혈교의 교인들은 생강시를 만들기 위해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잡아가 죽였다. 평소 살인 청부 임무 따위는 외면하던 그는 그 죄가 크다며 부득이 자원해 파견을 나갔다.

「맙소사! 얘들은 고작 어린애잖아.」

하나 그는 그 ‘살인자들’ 이 고작 10대 소년 소녀에 불과한 것을 깨닫고서 망연자실했다. 어린이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그가 순간 머뭇거리는 동안, 어린 암살자가 표창을 던졌다.

진혁이 튀어나가 표창을 던져 버리고 암살자에게 칼을 던졌다. 그리고 경고했다.

「너 그러다가 칼 맞아 죽는다.」

잔당은 그대로 달아나 숨어버렸고, 세 사람은 다시 지난한 추적을 계속해야 했다. 혈도객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광안마가 옆에서 혀를 찼다.

「쯧쯧, 무능하긴. 이래서야 어디 임무를 맡길 수 있겠나? 스스로 하겠다고 한 임무도 제대로 못 하는데 말이지.」

맞다. 그때는 아직 광안마와 혈도객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티격태격할 때다. 발길을 추적하다가 낯선 발자국을 만났다. 은신 훈련을 받았고 발걸음이 가벼운 암살자들과 달리 꾹꾹 눌러 밟은 노인의 흔적이었다.

혹시 일반인으로 위장한 한패일까 싶어 추적해보니 평범한 거지였다. 한참이나 들오리를 쫓아다니다가 넘어지는 것을 보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보통 사람이 분명했다. 무공을 익힌 자라면 넘어질 때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주요한 부위를 보호하려고 하는 법이다. 하나 그자는 낙법을 쓰기는커녕 걷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체력 자체가 좋지 않은 자였다. 굶주려 있어 고작 들오리에게도 뒤처지는 인생이었다.

진혁은 그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공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나, 혹시 만에 하나 혈교의 일반인 협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 잔악한 혈교의 잔당들이 지나갔는데 살아 있다는 점이 의심스러웠다.

거지는 미리 함정을 파 놓았다. 푸드덕하니 날개를 홰치며 도망가던 들오리는 구덩이에 빠져버렸고, 거지는 의기양양하게 들오리의 목을 꺾었다. 깃털을 하나하나 뽑더니 치덕치덕하니 진흙을 바르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태평하면서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혈교라든가 무림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였다. 마치 예전에 반죽을 하는 아버지처럼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임진혁의 시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혈도객은 느닷없이 은자를 꺼냈다. 다섯 냥이나 되는 거액의 은자를 던지며 거지에게 오리를 빼앗다시피 했다.

「이건 우리가 사겠다.」

거지는 감사의 말을 뱉고서 사라졌다. 광안마가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 은자 하나면 오리구이를 다섯 개는 사겠다!.」

그는 자기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처럼 아까워했다. 활동비를 책정하고 혈도객에게 돈을 준 사람이 광안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혁이 말했다.

「일단 산 거니 구워 보지. 알아서 할 수 있나?」

「제가 어떻게 하는지 압니다.」

혈도객은 오리를 마저 진흙으로 감싸 흙에 묻었다. 그리고 그 위에 크게 불을 피웠다. 화르륵 솟아오르는 불줄기를 보며 광안마가 탄식했다.

「돌대가리! 지금 우리가 여기에 왜 있는지는 기억하고 있는 거냐.」

「미끼 노릇 좀 해 보려는 거야.」

「멋대로 혼자 결정하지 마!」

놀랍게도 혈도객의 방법이 먹혀들었다.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고 혈교의 잔당들이 찾아왔고, 고문 끝에 남은 녀석들의 위치도 파악했다. 혈도객은 이번에는 칼을 휘두르면서 망설이지 않았다.

원래 진혁은 그곳에서 오리고기를 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외부인의 손이 닿은 음식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풀이 죽어 있던 혈도객이 있었다.

「주군, 이건 저만 알고 있는 비법으로 구운 겁니다. 아주 맛있을 거라고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요.」

광안마는 옆에서 계속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결과가 좋았지만 다음엔 좋지 않을 거다, 돈은 왜 그렇게 많이 썼냐, 등등 잔소리였다.

「주군께서 꼭 드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혈도객은 오리고기를 내밀며 진혁에게 먹어 보기를 권했다. 진혁은 머리에 꽂고 있던 은침을 뽑아 오리고기를 찔러 보았다. 독은 들어있지 않았다.

「….」

해맑은 표정으로 먹기를 권하던 혈도객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서 바닥에 이마를 댔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주군!」

그는 백배사죄하며 칼을 꺼냈다.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사죄 좀 그만해!」

살부의 죄책감을 면했나 싶었는데,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대뜸 칼을 꺼내 들었다. 진혁은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됐고 앉아서 오리고기나 먹자. 너만이 할 수 있는 양념을 해서 구웠다며.」

「주군! 은혜에 감읍하나이다!」

「일어나! 그리고 손 씻고 와. 흙 묻었다.」

오리고기는 정말로 맛있었다. 지방이 적고 질긴 들오리고기인데도 적절하게 넣은 약초 덕분인지 고기가 부드러워졌다.

「이거 먹을만한데.」

온갖 호화로운 산해진미를 먹어본 진혁이 맛있다고 할 정도면 꽤 괜찮은 정도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광안마 역시 불평하지 않았다.

「돌멩이에게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혈도객은 신이 나서 오리고기 레시피에 대해서 떠들었다. 가출해서 세상을 떠돌다가 우연히 한 거지 노인에게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넣는 비밀 약초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거, 참 비싸게 구네! 어디 가서 숙수로 개업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광안마가 투덜거렸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주군께서 알고 싶어 하신다면 알려드리리다. 하지만 저놈에게는….」

「됐다, 됐어! 나도 알고 싶지 않아!」

오리고기를 씹자 과거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그때 말실수를 했었지.’

다리 고기가 쫄깃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다리 살을 뜯으며 콜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두 놈이 콜라가 무엇이냐며 당장 찾아오겠다고 날뛰었다.

여기에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았다.

검은 음료라며 각종 한약을 달인 시꺼먼 음료를 가져오기도 했다. 파사(페르시아)에서 가져왔다며 설탕을 넣어 진하고 씁쓸한 블랙커피를 구해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 있는 광안마도 콜라를 구해오는 데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예견된 실패였다.

‘아예 입밖에도 꺼내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는 당시 유능한 부하들이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헛되이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혈도객도, 광안마도 진혁에게 콜라를 선물해주고 싶어 했다. 무언가에 관심이 없는 교주가 특정한 음료를 거론하며 마시고 싶어 한다는 일 자체가 전대미문의 일이었던 것이다.

우습고도 허망하고, 웃기면서도 슬펐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존경했으며 자신이 부하들을 어찌나 아꼈는지, 그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리고기는 쫄깃하고 연하면서도 과거에 먹었던 그 맛 그대로였다. 오리고기를 한 입 더 씹자 기시감이 확연했다.

지금이라도 왼쪽에는 혈도객이, 오른쪽에는 광안마가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이대로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경공으로 돌아가다 보면 십만 대산이 있고, 교도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다.

「가가, 괜찮으세요?」

진혁은 눈을 깜빡였다.

이 오리고기는 북경 오리구이보다 껍질이 연했다. 살은 부드러우나 기름이 쪽 빠져 씹는 맛이 덜했다. 과거 들오리는 살이 질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오리고기의 종류 ? 집오리와 들오리 ? 라는 점을 제외하면 과거 먹었던 그 오리고기 요리와 완전히 맛이 똑같다.

그리고 혈도객은 마지막까지 광안마에게 오리를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총주방장은 언제부터 여기서 오리 요리를 했습니까?」

진혁이 진지하게 물었다. 미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주방장은 최근에 새로 고용한 인물이에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죠. 여기의 오리를 조리하는 요리 방법은 누가 전수한 겁니까?」

「아! 장 노인을 말씀하시는군요. 할아버지하고 절친한 친구분이세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식당 전체를 관할하고 계셨어요. 지금은 이곳에만 머무르시는 게 아니라, 항주의 오리 식당 전체를 돌보시기 때문에 바쁘시답니다.」

‘광안마, 이 썩을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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