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47화 (545/656)

제 547화

케이크를 자르는데 진하고 달콤한 향기가 훅하고 풍겨왔다. 상냥하고 은은한 향기가 아니라, 식충 식물이 곤충을 유혹하듯 농밀하고 끈적한 냄새다. 리처드 베이커 자신이 케이크를 만들었을 때는 이 정도 냄새가 아니었다.

「진혁아, 이거 전에 만들었던 거랑 향이 좀 다른데.」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마리오였다. 그는 짐승 같은 직감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내 것도 좀 빨리 줘 봐.」

브라이언이 중재했다.

「알아서 어련히 주려고, 보채지 좀 말고.」

하지만 침착한 척 말하는 브라이언 역시 코를 벌렁거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케이크를 받은 리처드 베이커는 포크를 처박고 케이크를 헤집었다.

「이건 정말로 대단한데. 전에 내가 만들었던 것보다 더 촉촉하고 부드러워.」

비단 실이 사르륵 풀리듯 케이크가 입안에서 녹아내리며 입천장과 혀, 잇몸에 스며들었다. 녹진녹진하며 부드러운 케이크 시트를 핥아 먹고 나면 절묘하게 배합된 견과류와 말린 베리 그리고 건포도가 하나씩 씹힌다. 아삭하고 쫄깃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아삭함.

「견과류 배합도 최고야.」

「으으으으음.」

마리오가 행복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케이크를 먹어치웠다. 브라이언은 눈을 감고서 여운을 음미하고 있다. 임진혁의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 모습을 본 리처드 베이커는 피식 웃어버렸다.

「맛있네.」

더 이상 말을 덧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온전하며 충족된다.

‘그러니까 직접 맛보지도 않은 다크 후르츠 케이크를 내 발표와 브라이언의 조언만 듣고서 재현해냈다는 말이지.’

레시피를 도둑맞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맛이었다. 이미 같은 맛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의 말을 보내며 경배하고 싶을 정도다.

진혁이 말했다.

「어때, 비슷해?」

「탁월해.」

「최고의 칭찬인데.」

임진혁은 길게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리처드 베이커가 만들었던 최고의 케이크를 더 낫게 만들어서 가져왔을 뿐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 행동이 고마웠다.

리처드 베이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고마워.」

「아 참, 여기 이것도 가져가라고.」

진혁이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리처드 베이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봉투를 열었다.

「이건…!」

임진혁이 만든 선인장 케이크의 레시피였다. 어떻게 해서 블랙 케이크를 촉촉하게 만들었는지 참고 사항이 들어가 있었다. 케이크를 구울 때 사용해야 하는 오븐 팬은 팬 전체에 균일하게 열기를 퍼트릴 수 있는 모양이어야 한다.

케이크 시트를 레이어드할 때, 크림을 바르기 전에 진혁이 만들어낸 특별한 시럽을 바른다. 그리고 케이크를 잠시라도 냉장고에 넣지 말아야 하고, 만든 직후 랩으로 감싼다.

리처드가 이미 알고 있던 팁도 있었고, 처음 보는 것도 있었다.

「보통 설탕 시럽을 발라서 촉촉하게 만들긴 했는데 말이야. 이 시럽은 레시피가 특이한데?」

「진혁이가 만들어낸 ‘물엿 시럽’ 말이지? 이걸 바르면 정말로 놀랄 정도로 케이크가 촉촉해져. 정말 맛 자체가 확 달라진다니까.」

리처드 베이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런 비밀 레시피를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케이시와 멜리사에게 알려줘도 돼.」

사실상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에 리처드가 크게 기뻐했다.

이것은 선인장 케이크보다 더 큰 선물이다. 그가 만든 후르츠 케이크들은 분명히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드라이 후르츠 케이크만이 아니라 다른 케이크에도 이 물엿 시럽을 적용하면 크나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임진혁은 이 레시피를 판매할 수도 있고, 시럽 자체를 팔 수도 있었다. 또는 그저 독점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경쟁 회사의 케이크보다 훨씬 더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이 비법을 굳이 나누어 주려는 마음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양아들과 아내가 독립해 나갔다는 아쉬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안온한 만족감과 기쁨, 고마움과 감사가 서서히 마음을 채웠다. 리처드 베이커가 굳게 다짐했다.

「고마워! 내가 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지.」

「괜찮아.」

진혁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브라이언은 리처드와 진혁의 대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잠깐, 지금 혼자 먹고 있는 거야?」

「진짜 맛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리오는 혼자 몰래몰래 케이크를 주워 먹고 있었다. 그는 벌써 혼자 거대한 선인장 케이크를 절반 이상 먹어치웠다.

「마리오! 진짜 이러기야?」

「왜? 뭐? 리처드는 레시피 받았잖아. 이제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되지.」

「이봐, 이건 나 먹으라고 선물로 가져온 케이크잖아. 그걸 혼자 다 먹어 버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리처드가 항의하는 동안 브라이언도 케이크를 덜어 자신의 접시 위로 가져갔다.

「그렇게 말할 시간에 가져가는 게 더 빨라.」

어린애들처럼 케이크를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진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똑같이 나눠 줄게. 마리오 너는 이따 따로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아니, 아니. 미안해.」

세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디저트 파티를 즐겼다.

「진혁이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아니, 내일 회의하고 중국으로 가.」

「무슨 회의인데?」

「알렉스와 면담.」

알렉스는 미국 내 병원에 진혁이 개발한 레시피로 인스턴트 수프 등을 공급해 왔다. 환자용 유동식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던 회사는 진혁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급성장했다. 알렉스는 임진혁을 은인처럼 모시며 막대한 양의 인센티브를 주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진혁이 화웅제과제빵기계공업의 카페에서 독립해 ‘해와 달’을 차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알겠다.」

「음?」

「환자용 밀키트, 이제 유럽에도 수출하려는 거 아닌가? 회사 덩치도 커졌고, 자금력도 있고. 생산 시설도 풍부하잖아.」

브라이언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진혁이 턱을 괴었다.

「흐음, 그런 이야기일까?」

「모르지, 들어봐야 알지.」

세 사람은 끊임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첫 영업을 마치고 먹을거리를 사 들고 온 멜리사와 케이시까지 합류해, 수다를 떨었다.

「이전에도 보았지? 내 아내인 멜리사, 그리고 양아들인 케이시.」

「반갑습니다.」

「여기는 브라이언, 진혁 그리고 식충이.」

멜리사가 브라이언에게 인사하는 사이 케이시가 놀라서 물었다.

「설마 식충이가 진짜 이름이에요?」

「마리오 강이라고 합니다!.」

「아, 그….」

「그? 그?? 도대체 내 얘기를 뭐라고 한 거야, 리처드.」

「하하하하.」

시끌벅적한 모임은 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진혁은 너무 늦기 전에 양해를 구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숙소는 방 두 개와 서재가 딸린 스위트룸이다.

서재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던 미미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땠어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진혁은 친구의 양아들이 독립하는 날, 자신이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함께 출장을 나온 미미가 조언하여 방문을 계획했다.

케이크를 만들기로 한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

「선인장 케이크를 아주 좋아하더군요.」

「잘됐네요.」

「물엿 레시피는 아내와 아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유하지 않겠다고 하던데요.」

미미가 살짝 웃었다.

「어차피 필수적인 재료를 ‘해와 달’을 통해서 구입해야 하니까요, 설령 레시피를 유출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예요.」

냉정한 말에 진혁이 미소지었다.

‘이런 면까지 할아버지를 똑 닮았군.’

「그렇습니다.」

그녀는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내일 만나실 알렉스, 이 사람도 최근에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밀키트 생산량을 늘리려고 하는데, 이 시점에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건 아마도 새 레시피를 요청하면서 동시에 계약 조건을 변경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새로운 레시피를 요청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래서 진혁 씨가 추가적으로 알고 있으셔야 할 사항은….」

미미가 말하는 정보를 듣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도움이 되겠군요, 고마워요.」

「뭘요, 당연한 일이에요.」

◈          ◈          ◈

다음날, 진혁은 이른 조식 식사를 마치고 회의 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는 진혁이 묵고 있는 호텔의 회의실이었기에 따로 차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자네 덕분에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어, 항상 감사하고 있네.」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후, CEO 알렉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퇴원한 환자 고객들이 아우성이야. 그래서 밀키트를 가정에 공급하기 위해 유통망을 정비하는 중이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는 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질환이 있는 이들’만을 위한 수프이지 않나? 그렇지만 사실 이 덜 짜고 건강에 좋은 수프를 먹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도 많아. 아버지나 어머니, 연인이 마시던 수프를 한 입 먹어봤는데 너무나 맛있다며 판매해 달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래서 아예 유통망을 재정비하면서,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밀키트를 개발하면 어떨까 하였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미미가 예상한 범위 내였다.

알렉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반조리 형태였으면 좋겠네. 지금까지는 달걀가루를 포함해 단순히 끓는 물만 넣으면 완전하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이었잖나.」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이것도 미미가 이야기해준 범위 내였다.

「달걀 이론 때문이군요.」

달걀 이론.

1940년대 초반, 최초로 발매된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비스킷 믹스나 파이 믹스는 성공적으로 판매되었지만, 끓인 물만 넣으면 케이크가 만들어지는 이 상품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제과제빵 회사에서는 어째서 아무도 이 상품을 원치 않는지 연구하다가, 달걀 이론을 찾아냈다.

파이나 비스킷과 달리 케이크는 보통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다.

그 누구도 ‘성의 없이 끓는 물만 달랑 부어’ 만들어진 케이크를 기념일에 내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받은 신제품 개발팀은 기존 키트에 복잡한 과정을 한 단계 추가했다.

바로 신선한 달걀과 우유를 직접 집어넣는 단계였다.

그리고 케이크 믹스의 판매량은 치솟았다.

「오, 달걀 이론을 알고 있군? 그럼 설명할 필요가 없겠네.」

알렉스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는 안도하며 말했다.

「마케팅이나 경영 전공이 아닌 이상 아는 경우가 드문데 말이지.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는 이들은 좀 더 성의 있는 음식을 원해. 그러니 조리 과정의 30% 정도는 좀 더 손이 가는 키트로 만들면 좋겠네.」

진혁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새 음식 개발에 앞서, 혹시 한국 수출에 관심이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만.」

「한국 수출? 아시아 쪽에는 지금 계획이 없었는데….」

「저희 회사에서도 이 밀키트를 수입하고자 합니다. 병원 쪽에 유통할 예정입니다.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수입을 하고자 하는데, 조건에 대해서는 이 서류를 참조해주시면 됩니다.」

진혁이 서류 봉투를 꺼내어 건네자 알렉스가 놀라서 말했다.

「아시아 쪽 진출도 생각하고는 있었네. 하지만 지금은 미국 국내 시장의 주문량도 간신히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야.」

「아니면 이건 어떻습니까? 아시아에 수출할 분량은 한국에 공장을 지어 직접 생산하는 겁니다. 최근 저희 회사가 빵 공장에서 다량의 인스턴트 빵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옆의 부지가 꽤 넓습니다.」

「잠깐, 잠깐. 갑자기 너무 큰 이야기가 나오는데.」

알렉스가 손을 내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