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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45화 (543/656)

제 545화

백진영이 입을 딱 벌렸다. 눈꼬리는 치켜 올라가고 입은 벌어진다. 행복에 겨운 표정 그 자체다. 진영이 말했다.

“우와, 진짜! 고맙다, 야. 가영이가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임진혁의 결혼식 때부터 내년 봄에 하겠다느니, 여름에 한다느니 하면서 점점 더 미루어졌던 결혼이다. 이번에 직접 만든 카페라떼 아트로 청혼을 했다며 백진영은 나름대로 무용담을 떠벌렸다.

“커피 속에 반지를 넣었는데, 금으로 다이아몬드 세팅한 반지 속에 낀 커피 얼룩이 빠지지 않아서 결국 반지 업체까지 가서 빼 달라고 해야 했어.”

“하하.”

“가영이는 커피 향 나는 좋은 반지라고 괜찮다고 해줬지만 말이야.”

“그래,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

“장난은 아니었다고.”

백정흠은 김가영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임진혁의 결혼식장에서 만났을 때,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백진영은 삼촌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한지 오래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정흠은 결국 자신의 뜻을 꺾었다.

“삼촌이 결혼 선물로 이천에 아파트를 사 준다고 하는데 거절했어.”

“왜? 그냥 받지.”

진혁의 말에 백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내 돈으로도 살 수 있거든. 그리고 그게 삼촌 스타일이야. 뭔가 돈으로 해 주면서 자기 말 들으라고 하는 거.”

“흠.”

“이렇게 받으면 사촌 형이나 누나도 말 나올 거고, 애초부터 내가 거절하는 게 속 편해. 그거 없으면 못 사는 입장도 아니고. 증여세도 한두 푼이 아니고.”

임진혁이 웃었다.

“증여세도 같이 내달라고 하면 되지. 백정흠 회장님 돈 많으시니까.”

“진혁이 너라면 받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백정흠 회장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거니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영 씨 의견은 어떤데?”

“그냥 받지 말고 둘이서 조그맣게 시작하자고 하더라.”

임진혁이 킥킥 웃었다.

“그거, 받든 받지 않든 백정흠 회장님은 어차피 내내 참견하고 싶어 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받는 게 나아.”

“…그 상황은 생각 못 해봤는데?”

“결혼을 핑계로 전부터 생각하고 계시던 걸 실천에 옮기시는 걸 수도 있지. 이전에 독립해 나올 때 다투다시피 하고 나온 것 때문에 마음에 걸려 하시는 것 같더라.”

아버지와 백정흠 회장이 이야기 나누던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임진혁의 말에 백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게 진짜 많네.”

“그냥 가영 씨한테 다 맡겨 버리면 안 돼?”

“가영이도 일이 많아서, 혼자서 다 할 수가 없지. 내가 같이 해야지.”

“하하.”

“다른 거 필요 없고 결혼 케이크 무슨 맛으로 먹을지만 고민하고 싶다. 사실 나 너한테 웨딩 케이크 주문하고 싶었거든. 일반 손님인 척 주문서를 끼워 넣으려고 했는데 너 일반 고객 주문은 아예 안 받더라? 너무 바쁠 것 같아서 말을 못 꺼냈는데, 가영이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서 똥줄타고 있었어.”

“형 일인데 당연히 해야지. 미미 씨가 설립하는 학교에 교육 계획안 감수까지 하느라 바빠졌어.”

“자식, 진짜 하는 일이 많기는 많아. 그걸 어떻게 다 챙기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는 건 별로 없어. 그냥 돌아다니면서 빵 굽고 케이크 만들고. 대신 사업적인 면은 한 비서하고 병철이 형이 알아서 하고 있지. 유능한 사람들에게 맡겨두면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어 있어.”

“…너는 어쩌면 그렇게 욕심이 없냐. 그냥 너처럼 태평한 게 성공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들을 신뢰하면서 일을 위임하는 거 말이야. 나도 그렇게 해야겠어.”

“그래, 형도 너무 일을 직접 하려는 경향이 있어. 조금쯤 다른 사람에게 넘겨 보라고. 이천의 도자기 체험 공방 카페 일도 다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백진영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전에 ‘해와 달’ 프랜차이즈의 일환으로 내려고 했던 이천점은 결국 별개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했다. 도자기 체험 공방을 겸한 전문 카페다. 바리스타 교육을 겸해 신선한 원두를 공급받고 맛좋은 커피를 내놓으며 도자기도 만들 수 있게 되어 있다. 덧붙여 직접 사탕 공예까지 해볼 수 있다.

초등학생 나잇대의 어린이들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부진한 매출에 계속 쌓이는 적자 때문에 백진영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진영이 털어놓았다.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 커피 맛도 최고인 데다가 가격도 나쁘지 않은데, 생각만큼 가족 단위로 많이 방문하지는 않아. 도자기 체험하고 맛좋은 커피, 그리고 사탕 제작을 같이 묶어서 하는 게 애초부터 기획 자체를 잘못 잡은 건가 싶다. 결혼 전에 가게를 아예 접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공방이 잘 안 되니까 가영이도 스트레스를 받고, 나도 답답하고.”

백진영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가 망원 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번 돈만으로도 이천의 가게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충분히 메꾸고도 남았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개발한 음료 덕분에 들어오는 인센티브가 세계 전역에서 들어온다. 해와 달 중국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미국과 이탈리아의 지점에서도 추가 수입이 있다.

“해와 달은 너 때문에 잘 되었을 뿐이고 나한테는 능력이 없다 싶어.”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전에 유사한 이야기를 임진희에게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컨설팅을 도왔던 타르트 가게를 떠올리며 말했다.

“형, 그거 마케팅 방식 말인데. 가족 대상이 아니라 학교 대상으로 하면 어때?”

“학교?”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체험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는 거지. 직업 훈련의 일환으로 말이야.”

백진영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가족이 아니라 학교를 대상으로 영업하라….”

“가족들은 한두 팀 오면 끝이잖아. 그렇지만 학교는 일단 단위 자체가 대단위인 데다가, 알려지면 다른 학교들이 우르르 오니까. 훨씬 편하지. 지금 한 번에 15명 이상 학습할 수 있잖아?”

“40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어.”

“4인 가족 열 명을 모집하는 것보다 학교 하나를 섭외하는 게 훨씬 쉽고. 우리 학교 개교하면 일단 걔네들부터 데리고 갈게.”

“야! 너네 학교 개교는 도대체 언제 하는데.”

“내년 말? 생각보다 처리할 일이 많대. 건물도 그때쯤 완공되고. 허가도 받고, 교사와 학생도 모집해야 하고.”

그것도 미미가 유능한 부하들을 갈고 갈아서 이루어진 성과다. 하지만 학교 법인의 설립이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는 백진영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학교 설립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닌가 보네.”

임진혁이 말했다.

“형,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웨딩 케이크든 아니면 이천 공방 카페든. 우리는 친구잖아.”

백진영이 피식 웃었다.

“너야말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얘기해 줘. 언제든지 달려간다.”

백진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임진혁은 그를 배웅했다.

“고마워!”

◈          ◈          ◈

그날 오후, 세 사람이 암흑의 방에 들어갔다.

미리 약속했던 대로 두 명의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진혁이 특별히 초청한 두 명의 게스트. 김도을과 김동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사람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이 암흑의 방 속에서 음식을 맛보면 아무런 편견 없이 진정한 맛의 기쁨을 알 수 있다네.」

무하마드 왕자에게는 확실히 리더의 기질이 있었다. 전에 마리오와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리고 앳되어 보이는 동진과 도을 앞에서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당 맥박 횟수도 그리 빨라지지 않았고,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초보 두 명을 인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가?’

동진은 어둠 속에서 3분 정도 머무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아, 여기서 맛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니. 미각이 진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네요. 그런데 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르겠는데요.」

반면에 도을은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잔뜩 들떴다.

“이 암흑 방 말인데 방송으로 내보내면 재밌겠다. 사람들이 카메라가 꺼졌다고 생각할 텐데, 아니다. 완전히 시꺼먼 걸 내보내고 오디오만 입히는 것보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서 어둠 속에서 아등바등하는걸 보여주는 게 좋겠어요!”

“백진영 바리스타님이 알고 싶지 않을 이야기.”

“그게 뭐야.”

임진혁이 바깥에서 스피커로 끼어들었다.

「일단 오늘의 샘플부터 맛을 보시죠.」

「당연하지! 기다리고 있었다네.」

오늘 진혁이 내놓은 음식은 신선한 무화과를 사용한 타르트였다.

말랑말랑하고 달고 맛있는 무화과는 그린 워터 팜에서 특별히 골라서 보내준 것이었다. 동진이나 도을이의 수준을 배려하여 별다른 추가 재료를 넣지 않았다.

「물러지는 것이 마치 스타 애플 같기도 한데.」

스타 애플(Star Apple)은 인도의 과일로, 밋밋하고 물렁물렁한 질감이 무화과와 비슷하나 맛은 다르다. 무하마드야말로 세계의 모든 과일을 빼놓지 않고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후보에서 제해 갔다.

「두리안이라고 하기에는 그 특유의 향기가 없고 말이지.」

“이거 뭔지 모르겠지만 맛있다. 망고인가? 달고 부드러운 게 딱 망고 느낌인데.”

도을의 의견을 듣고서 김동진이 말했다.

“망고는 아닌 것 같아. 익숙한데 뭔지 잘 모르겠네…. 패션프루트?”

“동진이 형, 이거 패션프루트는 아니지. 그건 새콤달콤한 맛이 나잖아!”

저마다 타르트의 맛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품평했다. 유일하게 정답을 맞힌 사람은 여느 때처럼 무하마드밖에 없었다. 암흑의 방에서 나온 후에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금일 맛보았던 타르트에 대해서 여느 때처럼 뛰어난 식견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과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은 무화과밖에 생각할 수 없었지.」

「시각적인 정보 없이 그것만으로 맛을 알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김동진은 놀라고 충격받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에 김도을은 태평하게 말했다.

“진혁이 형, 이거 나중에 방송할 때 이야기해도 돼?”

“안 돼.”

“아깝다. 재밌어할 텐데.”

도을은 진혁이 안 된다고 하면 더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지면서 김동진이 진혁에게 말했다.

“솔직히 형이 미각을 훈련시킨다고 했을 때 그런 걸 왜 하나,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까 무하마드 왕자님인가? 그분이 하시는 말씀 들으니까 별별 생각이 다 나더라.”

“어떤?”

“나야말로 프로 쉐프인데, 미식가보다 더 후각과 미각이 둔하다는 생각이 들어. 형이 전부터 나한테 미각을 갈고 닦아라, 라고 한 이유가 뭔지 알 거 같아. 음식들이 어떤 맛인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야 새로운 빵도 더 잘 구상할 수 있겠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개운한 듯한 표정으로 김동진이 말했다.

“건강에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으려면, 좀 더 많은 식재료를 먹어보고 알아야 할 것 같아. 아까 무하마드 왕자님이 늘어놓는 과일들 중 내가 실제로 먹어보고 다뤄본 과일들이 열 개도 안 되더라고.”

“그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됐다.”

“고마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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