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42화 (540/656)

제 542화

그 뒷모습을 보며 한 비서가 한마디 했다.

“저런 모습을 오마르 왕자님이나 다른 분들이 보시면 정말로 놀라실 겁니다.”

“하하.”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바로 오후 촬영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훈련소에서 촬영 스튜디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진혁이 준비된 쉐프 복으로 갈아입고서 메이크업을 받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년에도 만났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진혁을 반겼다. 그는 이번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피부가 백옥 같아요. 눈썹만 조금 다듬고, 컨투어링만 조금 하면 되겠어요. 입술도 색을 칠하는 편이 오히려 탁해 보인다니까.」

「….」

진혁은 묵묵히 화장을 받으며 미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떠올렸다.

‘그 사람들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이 사람들도 시끄럽군. 그냥 직업적인 특성인가?’

그는 특정 직업군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커버해야 할 잡티도 전혀 없고, 아기 피부 같아서 뭔가 올리기가 더 두려울 정도라니까요.」

「그렇지, 그렇지.」

「일 년 만에 보는 거니까 피부가 좀 더 나빠지셨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변한 게 하나도 없는지.」

단순히 진혁이 피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별히 피부관리를 하시는 편이세요? 어떤 메이커를 주로 쓰세요?」

이 질문 역시 늘 받았다.

「하는 건 없습니다.」

무공을 수련하는 외에 특별히 화장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혀를 찼다.

「식생활이나 운동은 어떻게 하세요?」

「특별히 신경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 참, 요즘은 오전마다 10km씩 달리고 있군요.」

「역시~! 생활 습관이 제일 중요한가 봐.」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폭포처럼 칭찬을 계속했다. 진혁이 질릴 정도였다.

「다 되었으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앗, 헤어 마무리하셔야 해요. 잠시만요!」

머리 모양까지 세팅하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바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감독이 진혁을 반겼다.

「시나리오는 읽어 보셨지요?」

「예.」

전날 받은 대본에는 딱히 대사가 없었다.

화산이 폭발하고 파도가 휘몰아치며 폭풍이 다가온다.

그리고 진혁은 카를로비바리 사의 나이프로 조리를 하면 된다.

특별히 연기를 할 필요도 없이, 일상적이고도 평화로운 표정.

CFX 배경 효과를 만드는 이들이 고생할 따름이지, 진혁이 할 일은 크게 없었다.

“진혁 씨에게 전혀 연기를 기대하지 않고서 만든 대본이에요.”

황미미가 말했던 대로였다.

“왜 이런 대본을 주면서 내가 연기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요. 평상시에 내내 하던 일이라도,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긴장하게 되거든요.”

“그래요?”

진혁은 어디서도 요리를 하면서 긴장해본 적이 없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는 물론이요, 그 어떤 제과제빵 경연에서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미미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연기하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보러 오시면 깜짝 놀라서 더 굳어지기도 하고 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일월신교의 무림인들도 그랬다. 멀쩡하니 훈련하다가도 진혁이 어떻게 하고 있나 보러 가면 갑자기 각목을 허공에 날리거나 헛발질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런 일도 있었지.’

헤어 세팅까지 마치고 나선 진혁을 보며 스튜디오에 있던 이들이 술렁거렸다.

「나이프 모델이 아니라, 패션모델로 나서도 되겠는데요?」

「키만 해도 웬만한 모델 찜쪄먹겠는데.」

스태프들이 수군거렸다.

「자, 자. 집중하세요.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감독은 초짜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임진혁 쉐프님!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평소대로, 빵을 만드는 것처럼 하세요.」

하지만 감독의 지시가 무색하게도 진혁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편 등과 쭉 뻗은 어깨.

반죽을 바라보는 눈빛.

칼을 다듬는 손길.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태도다.

‘이번 시나리오가 너무 쉬워.’

배경이 녹색 스크린일 뿐이다. 눈앞에는 조리대 역할을 할 대리석 탁자가 있고, 나무 도마가 있다.

진혁은 그 위에서 우아하게 칼질을 시작했다.

이후 특수효과로 추가되어 휘몰아쳐 오를 태풍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특별히 연기한다는 생각도 없다.

반죽하고 칼로 자른다. 날카로운 칼로 고기를 다듬고 손질한다. 칼을 다시 씻고 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컷!」

원테이크로 촬영이 끝났다.

-삑삑

“이야, 깔끔한데요. 회장님 보내주시면 좋아하시겠습니다.”

미미에게 보내주기 위해 내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한 비서가 촬영 중단 버튼을 눌렀다.

반면에 촬영장에 있던 다른 스태프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진혁의 연기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영 감독이 제일 크게 놀란 것처럼 보였다.

「맙소사. 대단합니다!!」

데이비드 영은 손뼉을 치며 진혁에게 다가왔다.

「아니, 임진혁 쉐프님. 어찌 이렇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합니까? 다른 요리사님들과도 작업해 봤는데 환경이 바뀌면 다들 손부터 굳던데요.」

진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안 그런데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이번 촬영본도 괜찮았지만 한 번 더 찍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찍으면 찍을수록 더 좋은 영상이 나오게 됨다.」

한 비서가 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어제 협의한 바로는, 감독님이 만족하시는 영상 한 편이 아니었습니까?」

한 비서가 따지고 드는 사이에 진혁이 인사를 했다.

「다 끝났으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앗, 그래도 조금만 더-.」

「수고하셨습니다.」

진혁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세팅한 머리에 붙어 있는 왁스까지 깨끗하게 씻고 나왔다.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가 안타까워했다.

「아주 잘 어울리셨는데 아까워요~!」

「자연스러운 편이라 그냥 돌아가셔도 될 텐데요!」

한 비서가 말했다.

“메시지 확인하셨습니까? 회장님께서 화장하신 모습도 아주 잘 어울린다고 좋아하시는데요.”

“그래? 그러면 나중에 미미 씨의 메이크업 팀원들에게 부탁하면 되지.”

그는 피부 위에 불필요한 유분과 분가루가 얹혀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한 비서와 임진혁은 기다리고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운전기사가 운전하며 말했다.

“한 비서님이 오늘 촬영은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니, 한 시간은 더 일찍 끝났네요.”

“다음이 <해리 & 호프만>의 회의였나?”

“예. 작년에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 대회 우승하시고 바로 계약서 쓰셨잖습니까.”

“비슷한 시기에 계약해서 그렇군.”

“예, 갱신 시기가 같지요.”

<해리 & 호프만>에서의 회의 역시 별다른 문제 없이 흘러갔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지점에도 조리화와 조리복을 받기로 했다.

「이게 새로 나온 마스크입니까?」

입과 코에 바싹 붙는 형태의 마스크가 아니라, 턱받이처럼 넓게 입과 코 전체를 감싸는 형태였다. 목과 귀에 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는 모양이다.

「예, 최근 들어 위생상의 문제로 오픈 키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시는 경우가 늘었지요. 이 새로운 형태의 마스크는 주방에서 일하시는 쉐프님들이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침과 비말이 음식에 뿌려지지 않도록 최적의 각도를 유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군요. 이건 아예 따로 주문하고 싶습니다.」

「주문이라니요! 이건 저희가 따로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위생을 중시해 새로 출시된 마스크는 이전에 사용하던 마스크보다 확실히 편했다. 하지만 재질이 다른 만큼 무게가 있었다.

「이건 가격이 조금 나갑니다. 그리고 세탁을 할 수는 없고 이 투명한 부분만 교체해서 쓰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체하시는 것보다 새것을 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한 번에 1주일 정도 사용합니까?」

「신체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만큼, 더러워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 마스크를 다량 주문하고 난 후에는 새로운 형식의 조리모를 구경했다.

「이 조리모는 끈으로 묶는 방식입니다. 깔끔하지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이 끈은 지나치게 긴 것 같습니다. 늘어지면 어딘가에 걸리거나 잡아 당겨질 수도 있겠군요.」

「원하시는 길이로 자르실 수 있습니다.」

「그럼 나쁘지는 않겠군요.」

조리복 역시 다양하고 새로운 디자인이 가득했다. 카페의 바리스타를 연상케 하는 커피색 에이프런이 곁들여진 모양부터, 호텔의 웨이터들이 주로 입을법한 검은색 바지와 흰색 셔츠까지 폭이 넓었다.

진혁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기본적인 흰색 조리복을 골랐다.

「저는 이게 좋겠습니다.」

「역시 보는 눈이 좋으십니다. 올해 영국 왕실에서도 채택한 디자인입니다.」

그는 조리화도 가장 기본적인 검은색 장화 형태의 신발을 선택했다. 자신만 착용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진희 역시 입을 거라고 생각하면 품질이 좋고 입기 쉬운 것으로 고르게 된다.

<해리 & 호프만>은 카를로비바리와 달리 CF 촬영은 계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다양한 조리복과 조리모, 조리화를 착용하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야 했다.

「30벌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담당자의 말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몇 벌을 촬영해도 상관없습니다. 촬영 시간은 3시간 이내로 부탁드립니다.」

「열 벌을 갈아입고 다시 모자를 쓰고 신발을 갈아신고 하는 데에 두세 시간은 훌쩍 걸릴 텐데요…….」

하루, 3시간 이내에 촬영할 수 있는 분량은 많지 않다. 진혁이 웃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걱정을 하셨습니다.」

「옷 갈아입는 속도가 빠르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한 시간 정도만 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모델일 뿐만 아니라 고객이기도 했다.

「이번에 중국의 ‘해와 달’ 지점에도 해리 & 호프만의 조리복과 조리모를 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스크까지 포함하면 꽤 많은 양의 주문이지요.」

곤란해하는 담당자 옆에서 사진 감독이 말했다.

「임진혁 쉐프님과 직원분들께서는 평소에 해리 & 호프만의 조리복을 입고 근무하시지요? 그렇다면 그 모습을 추가로 촬영하는 건 어떻습니까?」

진혁이 처음부터 단호하게 잘랐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사진 감독은 신이 나서 말했다.

「예. 이번에는 아예 기본 조리복을 메인으로 밀고, 다른 조리복들은 별도의 의상 모델을 고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대신 이 조리복을 입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카를로비바리에서 원했던 것과 비슷한데 좀 달라.’

진혁은 제과제빵을 하는데 촬영 때문에 방해받아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는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가게에서 촬영을 한다면 제가 원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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