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40화 (538/656)

제 540화

“그렇군요.”

진혁은 미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유력한 정치인이나 사업가의 건강 상태는 훌륭한 정보가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손을 쓰신다는 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뜻대로 하시되, 절대로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됩니다.”

권력자라면 누구나 꿈꿀 것이다.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에 집착하며 배를 띄워 보냈던 것과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장수. 그것들을 원치 않는 자는 없다.

미미가 진혁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오래 살게 할 수 있을지보다 오히려 진혁이 오래 혼자 살아남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걱정했다.

“당신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능력이 나타날 때마다 더 놀랄 수밖에 없네요.”

“음.”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함부로 힘을 쓰지 않았다.

“영화 속 슈퍼맨은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어디든지 가잖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까?”

“세상 어딘가에서 매초, 매분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일들이 저에게는 그저 안타까운 사건일 뿐이지만 당신에게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겠지요.”

그녀는 이마를 찌푸리며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절벽에서 아기가 떨어지려고 한다면, 그 아기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달려가서 손을 뻗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일이 매초, 매분 일어나고 있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 숨 막힐 거예요. 지치고 힘들어서 외면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하물며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타인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언제 죽을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당신…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요.”

진혁이 묵묵히 눈을 껌뻑였다.

그는 더 이상 그런 일에 동요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현대에서는 물론이며 무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차단하고,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을 듣는다. 그가 관심 있는 이들에 한해서 정보를 수집한다.

멀리 있는 이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는 비서에게 묻는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도 새로웠다.

감정이란 보이지 않아 눈앞에 꺼내어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깊은 마음이 담겨 있어 진혁은 가끔 새삼스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정하고 섬세한 배려는 돌을 녹이는 것처럼 천천히 파고들어 왔다.

쑥스럽고 어색하며 불편하다.

마음이 커질수록 나중에 이 여자가 먼저 죽을 거라는 현실이 더 무겁고 괴롭게 느껴질 것이다.

타인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것은 몇십 년 후에 다가올 현실이다.

그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 지금 당장 행동할 수 있는 문제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정보원을 다각화할 때도 됐지.’

미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 비서 한 사람에게만 의뢰를 맡길 수는 없다.

◈          ◈          ◈

명화흥신소의 소장, 이헌용은 오랜만에 옛 손님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완전히 잊혀진 줄 알았다. 더 이상은 이 남자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 아빠를 찾는 일이라든가 알리바이를 위조하는 일, 그리고 입양아의 부모를 찾기까지 했다. 제과제빵 대회에 대해서 조사하기도 하고 오래된 반지를 찾기도 했다.

몇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후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이헌용은 틈틈이 뉴스를 통해 임진혁의 상황을 확인했다.

강남과 망원, 그리고 명동점 개업. 덧붙여 중국에 오픈한 프랜차이즈 가게 역시 매우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 진출한 빵집 중 고급화 전략을 택한 유일한 가게인데 놀랄 정도로 큰돈을 벌어들였다. 중국에서 위안화를 벌어들여 국위를 선양했다는 평판에 국내의 매출도 늘었다.

‘해와 달’에서 내놓은 공장 빵 역시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을 통해 전국에서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부호의 딸과 결혼하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 기네스북에 올라갈 만한 거대한 케이크를 만들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음식을 개발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이야기.

이헌용은 이 남자의 진짜 모습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러한 소식들이 들려와도 여전히 편견을 버릴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공한 사업가지만 페이스트리 쉐프지만 두 얼굴을 가진 남자, 암흑가의 보스.’

그는 여전히 임진혁의 정체에 대해 굳은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거지. 나 같은 평범한 흥신소장 말고 다른 부하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도대체 뭘 시험하려고 하는 걸까.’

지금도 얼굴을 볼 때마다 발끝부터 부들부들 떨린다.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공포가 떠오른다. 그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니면 익숙해져서 그런지 벌벌 떠는 손을 탁자 아래로 숨길만 한 여유는 있었다.

떨고 있는 이헌용에게 진혁이 질문했다.

“사업을 좀 더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예?”

“지금 적당히 아는 녀석들 쪼아서 정보를 물어오고, 조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죠.”

이헌용은 문득 소름이 쫙 끼쳐와 몸을 떨었다. 누구보다도 신사적이고 친절해 보이지만 이놈은 미친놈이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살기를 뿜는 자가 평범한 척하고 있으니 더 무섭다.

진혁이 단언했다.

“조금 더 인력풀을 늘리십시오. 경호를 할 수 있는 인력을 따로 고용해서 제가 말하는 사람들 곁에 붙여 주십시오.”

“아니, 그런….”

악마가 투자하겠다는 금액은 적지 않았다. 열 몇 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난 후에 명화흥신소가 세 들어 있는 낡은 사무실을 처분하고 깔끔한 새 빌딩으로 옮겨 가도 될 정도였다. 이헌용은 놀라서 임진혁을 다시 살펴보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편견을 버리고 본 임진혁은 온화하고 친절해 보였다.

살기 같은 것은 전혀 없이 그저 평범하게 잘생긴 청년일 뿐이다.

이전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어. 사람이 변했나.’

명화흥신소의 소장 이헌용은 눈을 깜빡거렸다.

전에 느꼈던 그 살기는 한두 명을 죽인 살인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열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자가 분명했다. 이자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무서운 점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지위를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직업상 연쇄살인범이나 강도, 방화범들을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 자처럼 소름 끼치고 무서운 자는 없었다.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처럼, 자신 외의 다른 인간들은 그저 먹잇감으로만 보는 자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바뀌었어.’

결혼을 했기 때문일까?

분명히 재산을 노린 결혼이고, 아내가 빠른 시일 내에 죽어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하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사랑이 사람을 바꾸나?’

두려움 속에서도 의문과 호기심이 뭉클뭉클 피어올라 이헌용을 자극했다.

임진혁이 말했다.

“여태까지 일을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뿌듯함과 기쁨, 그리고 신뢰가 치솟았다. 이헌용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렴, 백 명을 죽이면 어떻고 천 명을 죽이면 어떤가. 이자는 이헌용을 죽일 듯이 협박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냥개인지 알고 계신 게야.’

그는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성공의 정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헌용은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보였다.

고작 반지 하나 찾아오는 등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까지 성심성의껏 성의를 보였다.

누구에게나 회색 경계에 머물러 있는 일들을 처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법률을 어기는 것도 아니나 시키는 일이란 언제든지 버섯처럼 솟아나는 법이다. 그러니 적당히 손발이 필요할 것이다.

최소한 부려야 할 수단으로 써먹을 동안에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밤중에 찾아와 목을 베지도 않으리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감이 솟아올라 차고 넘쳤다. 안구가 촉촉해지며 동공이 확장된다.

이 악마에게서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최소한 당분간은 죽을 일이 없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헌용은 감격에 겨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맨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 뭐, 그러시지요.”

진혁은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한 후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          ◈          ◈

명화흥신소를 나오며,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적당히 쓸만한 똘마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정신이 조금 이상한지도 모른다.

‘차라리 외부 경호 업체를 선별해서 키우는 게 나았으려나?’

하지만 그는 조직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구성원을 직접 면접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기존 조직에서 인원을 해고하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그는 소망 베이커리와 명동점 그리고 망원점, 강남점 부근에 사설 경호원이 항시 머무르기를 원했다.

특히 진희와 부모님이 일하는 곳은 더욱더 그렇다.

미미가 특별히 신경 써서 두 명의 경호원을 보내 놓았지만, 그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인원수로는 모자라. 조금 더 많이 있어야지.’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

편의점 직원이나 단골손님, 인근 가게의 주인 등으로 위장하면 될 것이다.

미미는 할아버지가 직접 교육시킨 경호원들을 꽤나 신뢰하는 눈치였지만, 진혁은 인원이 더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강도나 위협만이 아니라 블랙 컨슈머가 있어도 능숙한 경호원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으면 진희나 부모님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은 건물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자동차에 올라탔다.

“임진혁 CEO님, 다음 미팅까지 30분 남았습니다.”

한 비서가 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다.

이다음에는 카를로비바리 쉐프 나이프 업체와의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에도 모델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고 합니다. 동일한 조건을 내밀며 30장의 새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사진 감독은 데이비드 영으로, 최근 패션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꼭 새 사진을 찍어야 하나? 그렇게 많이?”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 비서가 말했다.

“이번에 사진 촬영에 협조한다면 중국과 미국의 지점에도 할인된 가격으로 쉐프 나이프를 공급할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명동점과 강남점, 망원 본점 그리고 소망 베이커리에서도 나이프에 대해서는 아주 호평입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학교에도 할인가로 공급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줘.”

“이번에 가셔서 직접 이야기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첼시 갤러리의 발표 그리고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 이후 CEO님 몸값이 더 올라갔거든요. 지금 다른 나이프 회사에서도 모델 제안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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