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9화
정답은 하나뿐이다. 올리브유를 곁들여 구워낸 소고기 타르타르가 맞다.
하지만 가니쉬로 트러플 향을 넣었는데 두 사람 다 눈치채지 못했다.
세 번째 음식을 먹고 나서, 두 사람이 말했다.
「여기 주게.」
손가락 크기로 구워낸 자그마한 빵.
진혁이 직접 준비한 빵은 크기가 작았다.
기껏해야 성인의 검지 정도 크기다.
흘릴 경우를 대비해서, 그리고 조금씩 먹게 하기 위해 일부러 적은 양만 주었다.
하지만 마리오는 신나게 한입에 빵을 삼켰다.
「이거 맛있다.」
고민도 없고 고뇌도 없다. 빵의 맛을 분해하기 위해 냄새를 맡고 손끝으로 더듬으며 입에 넣기 전에 핥아도 보는 과정 따위가 전부 생략되었다.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가 너무나 뚜렷해서 진혁은 나름대로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었다.
‘다르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로 다르군. 서로 배울 점이 많겠어.’
저절로 혈도객과 광안마가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빵을 먹어버린 마리오가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더 없어? 이것만 먹어서는 모르겠는데.」
「그걸 그렇게 한입에 삼켜 버리니까 모르지. 이거 하나 더 먹어 봐라. 대신 이번엔 천천히 먹어.」
무하마드는 순간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힘을 풀었다. 그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임진혁 쉐프.」
무하마드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는지 진혁을 사부라고 부르지 않았다.
「예?」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는 건가?」
그는 새끼손가락만 한 케이크 조각을 아끼고 아껴서 입안에서 녹여 먹는 중이었다.
「진혁이는 맛에 대해서 평가를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양이 너무 적으면 그 평가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마리오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소량이어야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냥 막 달라고 하면 잘 안 줘요. 내가 이번에 먹을 때 뭔가 뒷맛으로 쌉싸름한 맛이 있었는데, 그거 느껴 보겠다고 더 달라고 하면 잘 줍니다. 웬만하면 주려고 해요.」
「그랬단 말인가.」
진혁이 정정했다.
「아닙니다. 마리오는 덜렁거리는 편이라 씹어 먹어야 할 음식을 삼켜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먹어야 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한 게 아닐까 하고, 이건 씹어 먹는 게 좋다 하고 안내를 했지요.」
마리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그렇다 치고 손님들에게 이건 씹어 드세요. 저건 빨아 드세요. 하고 일일이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진혁이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죠. 그냥 나같이 막 먹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맛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이런 것도 고려해가면서 음식 디자인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지.」
「아닙니다. 많은 양을 계속 먹어가면서 훈련을 할 수는 없습니다. 배가 부르면 미각도, 후각도 둔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콩알만큼 주는 거야? 야,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사이에 이러기냐.」
마리오는 계속해서 졸랐다.
「조금만 더 줘 봐. 그럼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은데」
항상 정중하게 진혁을 대해왔던 무하마드 왕자는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혁이 말했다.
「그래서 무하마드 왕자님 무슨 맛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래, 알 것 같아. 이건 뭔지 어렵지 않았어.」
「그렇다면 제 손바닥에 다시 써 주십시오.」
마리오는 조르고 조른 끝에 결국 한 조각을 더 얻어먹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많이 익숙한 맛인데. 뭔가 엄마 생각이 나. 그런데 무슨 맛이라고 말을 못 하겠어. 과일은 확실히 아닌데…, 마들렌인데 무슨 마들렌인지 모르겠다.」
「…너도 말하지 말고 내 손바닥에 써.」
무하마드 왕자는 ‘유자 마들렌’이라고 적었다. 마들렌에는 보통 레몬이나 레몬, 오렌지 등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을 쓰는 경우가 많다. 조개 모양의 틀에 넣어서 굽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손가락 모양으로 구웠다. 그 특유의 모양을 보면 마들렌이라는 것을 알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리오는 ‘레몬 마들렌’이라고 하였다.
진혁은 일부러 유자를 그리 많이 넣지 않았다. 은은하게 향이 조금 풀릴 만큼만 넣었다. 이전의 무하마드 왕자라면 이 정도로 재료를 사용했을 때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전에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 때 보았을 때보다 확실히 맛을 구별하는 실력이 좋아졌다. 옆에 비교군이 있으니 더욱 그렇다.
마리오 역시 최전선에서 메뉴 개발을 겸하여 요리를 하는 페이스트리 쉐프인 만큼 미각이 둔한 편은 아니다. 무림인들과 비교해 보자면 일류 고수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의 수준은 이미 그 정도를 한참 뛰어넘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미각이 좋았지. 그러니 충분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굳이 표현하자면 절정 고수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도 진혁이 원래 원하던 수준에는 부족했다.
진혁이 창조해내고자 하는 음식은 좀 더 섬세하고 복합적이었다. 오늘은 유자 향이 들어가고 아주 살짝 소금을 넣어, 꿀의 단맛을 강조했다. 극히 미미한 양이었지만 마들렌의 맛을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이 소금 역시 알아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미각이 예민해지는 것보다, 왕자가 늙어 죽는 게 빠를지도 몰라.’
곧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십 년, 이십 년은 순식간에 지난다.
그리고 무하마드는 더욱더 늙을 것이며, 미각이 둔해질 것이다.
이 왕족의 노화를 지연시킬 것인가?
아랍의 왕족들은 대대로 장수한다. 그리고 여러 명의 아내와 자식들을 둔다. 그러니 나이가 들며 아랫대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진혁이 무하마드 왕자의 미각이 더 예민해질 수 있도록 모종의 조치를 한다면, 그는 같은 세대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오래 건강하게 살 것이다.
정치적인 세계의 판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건 미미와 의논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세 사람은 어둠 속에서 나왔다. 밝은 식탁에서 진혁은 아까 그들이 먹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알려 주었다.
「그게 옥수수 수염차였다고? 나는 그냥 누룽지 물인 줄 알았어.」
「전에 딱 한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리고 두 번째는 뭐였어? 진짜 맛있더라. 육회 먹고 싶다. 잣 올려서 배하고 새싹 같이 한입 먹으면 아주 그냥.」
마리오는 자신이 틀렸다는 점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행복해했다.
「빵을 잘 굽는 것도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알고는 있었는데, 그것도 네가 만든 거야? 진짜 잘했더라. 쇠고기 질도 좋았고. 다음에 육회도 만들어 주라.」
이것저것 칭찬하면서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마리오를 보며 무하마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네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
「아니, 그런데 왕자님. 진짜 맛있잖아요. 똑같은 계란 프라이라도 진혁이가 하면 달라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계속 먹고 싶어 하게 된다구요. 그런데 진혁아, 아까 마지막 빵은 뭐였어? 마들렌 맞지?」
진혁이 정답을 알려주었다.
「소금을 넣은 유자 마들렌.」
「유자에 소금이라, 진짜 독특하다. 조금 단가 했는데 그냥 설탕 맛인 줄 알았지, 소금을 넣어서 강조한 줄은 전혀 몰랐어. 레몬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프란을 넣어도 괜찮아. 하지만 이번에는 맞추기 쉽게 최대한 흔하고 자주 쓰이는 재료를 골랐지.」
제대로 맞춘 것이 없었는데도 마리오는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맛있게 잘 먹었는데, 또 없어? 우리 저녁 먹자. 배고프다.」
무하마드 왕자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어 했다. 셋이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왕자는 마리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프로 쉐프로 일하면서 미각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나?」
「에이~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왕자님처럼 미식가이신 분들도 있지만, 저처럼 평범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테스트할 때에는 일반인 수준에서 해야죠. 그러니까 진혁이 같은 예민둥이한테 저 같은 친구가 꼭 필요한 겁니다. 하하핫!」
「그런가, 친구로군.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요? 어떤 친구였습니까?」
「왕궁에서 일하는 요리사였지.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마다 꼭 나에게 제일 먼저 갖다 주고는 했어. 지금은 이미….」
「그분은 어떤 요리를 제일 잘 하셨는데요?」
「잉글리시 머핀이었어.」
진혁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잉글리시 머핀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오, 그렇다면 기대하겠네.」
마리오가 돌아가고 나서 무하마드 왕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식 끝나고 나서 나도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는 건가?」
「물론입니다.」
「…그런 건 미리미리 알려 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는 어쩐지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진혁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진혁은 미미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 ◈ ◈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그는 그날 밤에 바로 미미와 의논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던 미미가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으신가요?”
“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큼 키워놨는데 금방 픽 죽어버리면 허무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제가 지나치게 오래 사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왜 이 사람은 다른가요?”
“아, 조금 다릅니다. 미미 씨도, 부모님도 120세 정도까지는 살 겁니다. 그 정도는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요?”
“몇몇 장수 마을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 건가요?”
“무하마드 왕자는 몸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의료에 돈을 지불할만한 능력이 있으니 앞으로 건강 수명이 5년 정도 남았을까. 그리고 15년 정도 침대에 누워서 지냈을 겁니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20년 정도는 더 살았겠죠. 하지만 저는 그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30년 정도 더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무하마드 왕자에게 운기조식을 가르쳐야 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는 이곳에 평생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나름대로 지위도 있습니다. 말이야 이번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저에게 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르지요. 그는 저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지 않은 시간에 본국의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 훈련을 더 받고 나면 돌아갈 사람입니다.”
“직전제자가 아니라 속가제자 같은 느낌이군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문파에 이름을 올리고 정식 제자가 되어 비전을 전수받는 직전제자. 그들이 진짜 제자다.
기초적인 수련을 받고 나서 민간 세상으로 돌아가 살다가 명절 때마다 돌아와 인사를 하는 속가제자.
“비슷하네요.”
“하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다만, 그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된다면 저에게도 알려 주신다면 좋겠어요.”
그녀가 짧게 정리했다.
“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진혁은 미미의 어깨를 살살 주물러 주었다. 추궁과혈을 겸하여 피로를 풀어주는 이 마사지를 받으며 미미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보다 진혁 씨의 그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무슨 능력 말입니까?”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제가 조금 더 욕심이 많았다면 그 능력을 발휘해달라고 부탁드렸을지도 몰라요. 지금 당에 병환을 앓고 계신 분이 있어요. 당장 그분이 언제 돌아가실지 추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힘이 됩니다. 의사가 아니어도 타인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 정밀 검진 없이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