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38화 (536/656)

제 538화

「무하마드 왕자님.」

몇 시쯤 김포 공항에 도착하는지 알려 주기는 했지만 마중 나오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부인도 와 있지 않은데, 제자가 와 있는 상황이다. 반갑기보다 놀라웠다.

「가족분들이신가? 안녕하시오.」

무하마드 왕자는 나름대로 진혁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영어 인사를 알아듣는 진희가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가 물었다.

“진혁아. 이 분은 누구시니? 사업 때문에 만나는 분이야?”

「부모님과 사부가 아주 많이 닮았군.」

「예, 예.」

무하마드 왕자는 신이 나서 진혁의 부모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서툰 영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진혁의 사업상 상대로 추정되는 외국인 남자의 말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진희가 임진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임진혁은 무하마드 왕자를 바라보고 부모님을 다시 보았다. 해결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비슷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먼저 들어가세요. 진희야, 부탁해.”

“예.”

진혁은 양해를 구하고 무하마드 왕자와 함께 먼저 훈련소로 향했다.

「내 훈련 상황을 점검하고 싶을 것 같아서 보고서를 가지고 직접 왔지.」

무하마드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 열심히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신이 나서 진혁에게 그간의 훈련 이야기를 했다.

「할랄 한식을 이것저것 먹어보았는데 이전에 먹었던 한식과 달랐어. 나쁘지 않았네. 자네는 이런 음식들을 먹고 자라서 훌륭한 미각을 갖게 된 것이 분명해」

「….」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란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진혁은 무하마드의 착각을 굳이 고쳐 주지 않았다.

「매운맛과 짠맛, 단맛과 담백한 맛이 전부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더군. 그렇게 훌륭한 전통음식을 먹고 자랐으니 당연히 미각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어. 앞으로 나도 한식을 조금 더 자주 먹어볼 생각이네.」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의 착각을 정정해 주었다.

「맵고 짜고 단 음식들을 먹으면 점점 더 미각이 둔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미각이 예민할 수 있나?」

「훈련과 단련입니다.」

「이런 훈련 방식은 스스로 깨달아서 자신에게 적용한 건가?」

진혁은 자신이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지 생각해 보았다.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분이 계셨습니다.」

「놀랍군! 나도 그분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야.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네. 어떤 분이었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아쉬운 일일세, 아쉬운 일이야.」

무하마드 왕자는 자신의 진척 정도를 자랑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같이 하니 말이야, 점점 더 미각이 좋아지는 느낌이 있었어. 허브 훈련도 통과했고, 달리기도 빼먹지 않았다네.」

진혁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무하마드 왕자를 다시 보았다.

임 씨 가족들은 훈련이나 단련 같은 것에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얼마나 좋은지 여러 차례 이야기하여야 진혁의 얼굴을 보아 조금 하는 척하는 정도다.

그러던 와중에 이렇게 열성적으로 훈련을 했다고 자랑하는 제자를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하지 않던 칭찬도 하게 되었다. 무하마드 왕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그럼. 달리기 기록도 2초나 단축했다고. 카심도 칭찬을 할 정도였어. 자네, 카심이 얼마나 칭찬에 인색한지 아나? 다른 경호원들을 훈련시킬 때에도 일 년에 한 번 칭찬하면 많이 하는 거라네. 하지만 젊은 애들도 아니고 이 나이에 운동장 여섯 바퀴 달리기 기록을 1초 단축하는 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 주더군! 나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무하마드의 자기 자랑을 듣던 진혁은 문득 깨달았다.

‘설마 지금 이 이야기를 직접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겁니까?」

「당연하지! 그동안 내 훈련 성과가 알고 싶었을 것 아닌가. 3박 4일 내내 내가 얼마나 알차게 살았는지 알아야 바로 다음 단계를 준비하지 않겠어?」

무하마드 왕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날카롭게 무하마드 왕자를 응시했다.

「다음 단계로 갈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야, 정말로 다음 단계라는 게 있었어?」

「당연히 있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암흑의 방 속에서 하루 종일 홀로 보내거나 이런 거라면 사양하겠네.」

「장소와 시간과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훈련의 강도와 관련이 있지요.」

「호기심이 생기는데.」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뭔데 내가 부족하다는 건가.」

「아직 체력도 부족하고, 미각의 예민함도 모자랍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는 이복형제들과 아버지 외에는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진혁 나이 또래의 어린 청년에겐 더욱더 그렇다.

한창 달리고 있을 무렵에 더 뛰라고 격려를 받기도 했으며 이전에 미각을 연구하는 식품학자를 초빙해 왔을 때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진혁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계약서 쓸 때 외에는 처음이었다.

「지금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훈련했는데도 아직 부족하단 말인가?」

「뛰기 전에는 걷기를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무하마드 왕자는 조금 전까지 신이 나 있었는데 말 한마디 들었다고 금방 풀이 죽어버렸다.

진혁이 말했다.

「오늘은 소개해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식품과학자? 아니면 나를 대체할 새로운 후보?」

부루퉁하게 던지는 말에 진혁이 그만 웃어버렸다.

「큭, 아닙니다.」

◈          ◈          ◈

손님은 저녁 시간 즈음에 맞추어 찾아왔다.

암흑 속의 훈련을 마치고 지친 무하마드는 손님에게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강 마리오는 이전에 결혼식 때 보았던 아랍 왕족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마리오는 푸드 블록 사업 때문에 아랍에 자주 오갔다. 그러면서 이전보다 아랍 문화와 주요 인물에 대해 훨씬 잘 알게 된 상태였다.

그는 어설픈 아랍어로 인사를 하며 무하마드 왕자를 반겼다.

「오늘 진혁이가 케이크를 구워 준다고 해서 왔는데요. 무슨 맛일지 기대가 되네요.」

「어둠 속에서 먹을 거야.」

진혁이 설명해 주었다. 마리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야? 새로운 놀이라도 하는 거야?」

「놀이는 아니지만 비슷해. 어둠 속에서 음식을 맛보고 어떤 맛인지 알아보는 거지.」

「재미있겠다. 그런데 뭔가 부스러기가 나오지 않는 종류여야겠다. 묻히거나 흘릴 수도 있잖아.」

「흘리기는 어려울걸.」

「이것도 푸드 블록 형태야?」

「그건 먹어 보면 알지.」

진혁은 이 실험을 위해서 세 종류의 저마다 다른 블록을 구워냈다. 무하마드가 말했다.

「잠깐, 흘리거나 묻힐 염려가 없다니. 그렇다면 오늘 먹을 음식은 이전에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푸드 블록 스타일인가? 그럼 마리오 쉐프가 더 유리하지 않나. 푸드 블록 사업을 하면서 레시피에도 관여하고, 더 많이 맛을 봐 왔을 텐데 말일세.」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두 분 모두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맛을 볼 겁니다.」

「흐음.」

「오, 새로운 푸드 블록 시제품이 나온 거야?」

「일단은 두 분 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그리고 겉옷을 벗어서 맡겨 주시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암실에 하루에 두 번이나 들어가다니.」

마리오가 궁금해했다.

「암실? 그곳에 이미 다녀오셨어요?」

「음, 뭐. 그렇긴 하지.」

「그럼 그 안에서 먹을 걸 먹는 건가요? 케이크나 타르트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떠먹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포크로 앵두 같은 걸 뭉개면 입안에서 톡 터지는 식감을 즐길 수가 없을 테고. 어둠 속에서의 독특한 식사법이 있을 것 같은데, 경험을 많이 해보셨나요? 그럼 저한테도 좀 알려 주세요.」

「포크보다는 수저가 낫고, 아무래도….」

마리오는 왕족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없이 쾌활하고 발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무룩해 있던 무하마드 왕자는 마리오의 질문 공세에 이것저것 대답하면서 기운을 조금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진혁은 두 사람을 5분 정도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다. 평범한 일반인이 어둠 속에 들어간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암실에 들어갔다 나온 무하마드는 이제 금방 어둠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암실에 처음 들어가는 마리오에게는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을 주기 위해 처음에는 연한 바람이 살살 불어오게 하여 촉감을 깨운다. 이후에는 냄새를 풍겨 후각을 깨우고, 노크 소리를 들려준 후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예정이었다.

진혁은 오늘 제공할 음식들을 급속 냉동고에서 꺼냈다.

음료수 하나, 메인 요리 역할을 할 푸드 블록 하나, 그리고 디저트 역할을 할 푸드 블록 하나.

세 종류의 음식들을 맛보고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할지 기대되었다.

그는 직접 접시를 들고서 암흑의 방으로 향했다.

「계십니까.」

「당연히 안에 있지, 그럼 우리가 어딜 가겠나? 갈 데가 없잖아. 보이지도 않는다구.」

무하마드 왕자가 핀잔부터 주었다. 마리오와 함께 있어도 불안했던 모양인지 심박 수가 꽤 높은 상태였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하하.」

마리오가 말했다.

「진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이상한 기분이야. 우리가 여기에 한 1, 2분 있었나?」

「5분 정도 있었어. 자, 여기 빨대를 꽂은 컵이 있으니 받아 봐.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마리오와 무하마드는 각자 컵을 받았다. 시각적인 자극 없이 손에 감겨오는 차가운 감촉은 평소보다 더욱더 선명했다.

“윽.”

마리오는 빨대에 얼굴을 갖다 대다가 콧구멍을 찔릴 뻔했다. 반면에 무하마드 왕자는 능숙하게 빨대를 입에 가져갔다.

「이건… 설탕이나 감미료 종류는 없군. 차 종류로 보이는데.」

왕자는 능숙하게 하나씩 소거하면서 정답에 가까워졌다. 반면에 마리오는 생각나는 것을 아무거나 대충 던졌다.

「고소한데? 이거 숭늉이나 누룽지 같은 건가? 그런데 그런 한국 음식은 왕자님이 못 맞출 거 아냐.」

나름대로 추측하는 모습을 보며 진혁이 말했다.

「음료수를 다 마셨으면 이 물을 마셔. 입을 헹구고 나면 내 손바닥에 글씨로 정답을 써 주고. 그러면 메인 요리를 줄 테니까.」

물을 받아든 무하마드가 말했다.

「좋아, 물도 다 마셨네.」

「그러면 대답해 보시지요.」

무하마드 왕자는 ‘보리차’라고 썼다. 안타깝게도 틀렸다.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왕자는 보지 못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물을 주고 두 번째 메뉴인 고기를 주었다.

무하마드는 작은 접시 위에 올려진 고기에 코를 갖다 대고 신중히 살폈다.

「흐으음.」

진한 올리브유 향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리오는 뒤늦게 진혁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 주었다.

‘결명자차’

안타깝게도 둘 다 틀렸다. 진혁은 마리오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난 마리오 역시 고기를 받았다. 그는 고민도 없이 소량의 고기를 그대로 꿀떡 삼켜 버렸다.

「아, 맛있다.」

마리오가 행복하게 말했다.

「쫄깃쫄깃하고 아주 부드러워. 이 고기가 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돼지고기는 아니겠네. 왕자님은 할랄 음식을 드셔야 하니까.」

「마리오, 왜 왕자님과 네가 같은 음식을 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헐?!」

물론 두 사람에게 준 것은 동일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맛에만 집중하기를 원했다. 옆 사람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무엇을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진혁은 놀라는 마리오를 보며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이상한 추측 하려고 하지 말고 맛 자체를 느껴 봐.」

「부드럽고 촉촉해. 뭔진 몰라도 진짜 질이 좋은 고기다.」

「자, 어떤 음식인지 그리고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겠다면 생각나는 대로 제 손바닥에 써 주십시오.」

왕자는 진혁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 주었다. 그는 ‘올리브유와 후추를 곁들인 소고기 타르타르’라고 썼다.

반면에 마리오는 글씨를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진짜 무슨 고기지. 닭고기는 아니고 붉은 고기 계열인데.」

「조용히 하고 너도 손바닥에 써 줘.」

마리오는 ‘소고기 육회’라고 적었다. 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회와 타르타르는 유사하지만 다르다. 두 사람 다 틀렸지만, 마리오가 더 어긋나 있다.

익히 알고 있었으나 확실히 무하마드 쪽이 더 미각이 예민했다.

「자, 그럼 다시 물을 드리겠습니다.」

마리오가 입맛을 다셨다.

「디저트가 기대된다.」

하지만 마리오는 미식 자체를 즐겼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의 경험도 즐기고 있었고, 부담감이 없었다. 반면에 무하마드 왕자는 불쌍할 정도로 잔뜩 긴장해 있었다. 심박 수가 빨랐고,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