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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37화 (535/656)

제 537화

하지만 진혁의 계획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들은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다.

느지막이 늦잠을 즐긴 아버지가 점심을 먹으며 선언했다.

“오늘은 같이 배를 타고 가족 낚시를 하자꾸나.”

진혁은 바다에서 아버지가 드리우는 낚싯바늘마다 물고기가 달려들도록 힘을 썼다. 낚시가 끝나고 밤에 숙소로 돌아오자, 가족들 모두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혁은 아직 에너지가 있었으나 가족들이 자도록 두었다.

다음 날에는 아예 새벽부터 배를 타고 항해를 했다. 새벽에만 잡을 수 있다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오후에는 다들 지쳐서 잠들어 버렸다. 진혁은 누워 있는 가족들을 깨우려 시도했으나, 다들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님도 진희도 침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도시락을 싸서 섬 주변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진혁은 다람쥐나 사슴 같은 야생동물이 가족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도록 신경을 썼다.

다행히 어머니는 사슴에게 빵 조각을 주기도 하며 좋아하셨다.

그런 시간들은 전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으나 진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무하마드 왕자가 그리울 정도야.’

왕자는 계약서를 쓰고 훈련을 시작했고, 항상 훈련을 받고자 하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진혁의 훈련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하지만 진혁은 가족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가족들과의 시간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 시기는 진기를 모으기 쉬운 자연친화적인 환경이니까. 최소한 운기조식하는 방법 정도는 가르치고 싶었는데.’

자연의 기가 메마르다시피 한 현대에서 기를 쌓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행진이 펼쳐진 가게 내부나 집 안에서 운기조식을 한다면 어느 정도 축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진혁이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진혁은 이 ‘좋은 소식’ 이야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직 저희 둘 다 젊고 일이 바빠서 아이는 늦게 가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맞다, 그랬지.”

“오히려 빨리 낳고 키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난 너희들 나이 때 쌍둥이를 낳았잖니.”

이 이야기가 시작되면 길어질 수도 있다. 진혁은

“먼저 이것부터 보시지요.”

진혁은 간밤에 촬영한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익히 봐왔던 태극권의 동작을 쉽고 느리게 재편성해 진혁이 직접 찍은 것이었다.

“뭐길래 이렇게 느리고 흐느적흐느적 하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묻자 어머니가 말했다.

“여보! 이거 진혁이가 전에 가르쳐 줬던 거네.”

진혁이 차분히 설명했다.

“아버지가 물엿을 만드실 때 느끼셨던 그 감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 동작을 반복하면서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리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버지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양발을 벌리고 두 손을 휘저으면서 물엿을 만들라는 거냐?”

진혁이 황급히 정정했다.

“아닙니다. 그때 그 느낌을 담아서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시면 됩니다.”

어머니가 어설프게 동작을 따라 해 보였다.

“이렇게 말이니?”

이전에 진혁이 몇 번이나 1:1로 동작을 보여 주었기에 이전보다는 조금 나았다.

‘그래도 무가의 5살짜리 애들보다 못한 수준이야.’

그는 성심성의껏 어머니의 동작을 교정해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모친이 어떤 식으로 연습할지 생각해 보니 아찔했다. 그는 동영상을 찍어 놓고 전달하여 알아서 공부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혼자 연습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어요.”

진혁이 걱정스레 말하자 어머니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왜? 그렇게 어려운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알아서 해 볼게. 에어로빅 같고 좋아.”

아버지는 동작은 그럭저럭 따라 했으나, 왼쪽 다리에 지나치게 체중을 싣는 버릇이 있었다.

“항상 양쪽 발에 골고루 힘을 주어야 합니다. 조화가 제일 중요합니다.”

“오른팔을 내밀 때는 오른 다리가, 왼팔을 내밀 때는 왼 다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네.”

반면에 임진희는 기존에 미미와 함께 배운 보람이 있어, 제대로 된 자세를 어찌어찌해냈다.

“이거 전에 하던 것보다 좀 더 어려운 것 같은데? 상급자용이야?”

“아니야. 쉽게 할 수 있게 고친 거야.”

다들 피곤할 텐데도 반발하지 않고 진혁이 하자는 대로 따라 주었다. 진혁이 말했다.

“원래는 영상을 드리고, 집에서 연습할 수 있게 봐 드리려고 했어요. 첫날부터 같이 연습했으면 더 늘었을 텐데 아쉽네요. 집에서 같이 살 때부터 계속 하자고 할 걸 그랬습니다.”

진희가 깔깔깔 웃었다.

“그래, 첫날부터 운동하고 싶어 했지!”

“네가 하고 싶어 했던 게 이거였구나. 내내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있었는데 양보하고 아버지 의견에 따라 줘서 고마워.”

어머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알고 계셨어요?”

“그럼.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지. 예전에 엄마 만나러 왔을 때 새벽까지 샌드위치 만들었잖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어. 주방에도 재료가 넉넉하니 말이야.”

“난 네가 뭔가 빵이라도 같이 만들자고 하는 줄 알았어. 재료도 넉넉하니까 주방에서 새 레시피 개발하자고 하는 줄 알았지. 네가 휴가 나와서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진희가 말했다.

“어흠, 흠. 미안하구나.”

아버지도 거들었다.

“저번처럼 골방에 틀어박혀서 몇 시간 동안 물엿만 만들자고 하는 줄 알았다.”

“아버지, 그때 즐거워하시는 줄 알았어요.”

진혁이 섭섭해하며 말했다. 아버지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처음에야 아들이랑 같이 하니 재미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몇 개월 치 물엿을 둘이서 한꺼번에 만들려는 줄 몰랐지 뭐냐. 다 만들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이 힘들지 뭐야. 그래서 이왕 휴가 온 거, 그렇게 힘들게 뭘 할 거면 첫날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하고 싶었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흘겨보았다.

“네 아버지는 글쎄 나흘 내내 물엿만 만들까 봐 걱정하셨단다.”

“이렇게 같이 태극권을 하고 싶었던 거면, 그냥 태극권을 하자고 말을 하지. 이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진혁은 아버지가 하고 싶은 것, 어머니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이 양보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족들 다 같이 진혁을 일 중독자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진혁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전부 제과제빵과 관련된 것일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무시당하고 있는 줄 알았다.

‘진혁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첫날부터 하면 4일 내내 그것만 할 테니 나중에 같이 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은 진혁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흘 내내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태극권 수련을 하고 싶었지.’

그는 마음을 추슬렀다. 가족들은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오해했다.

그리고 진혁 역시 같은 실수를 하였다. 가족들이 태극권 수련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믿었다. 오자마자 진혁이 하자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았다. 이렇게 좋은 걸 알려주다니 너무 좋다며 신나서 기쁘게 수련을 할 줄 알았다.

“아닙니다. 배도 타고 싶어 하고, 하이킹도 하고 싶어 하셨으니까요.”

“그래. 배려해줘서 고맙다.”

‘생각해보면 무하마드 왕자도 처음부터 수련을 즐겨 하지는 않았지.’

왕자는 달리기를 하며 발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굳은살이 박히는 와중에, 초반에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며 의사를 표현했다.

자신이 동의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점차 달리기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감각이 예민해지는 효과를 보게 되자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부모님과 진희는 이 태극권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는 거야.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면 나와 함께 매일 하고 싶어 하시겠지.’

“아버지, 이렇게 수련을 한 번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지 않으세요?”

“뭐, 찌뿌둥하지는 않지?”

아버지가 머쓱하게 말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태극권을 수련하면 몸의 기운이 깨끗해지고 혈액 순환도 활발해지면서 탁기가 사라져서….”

진희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하하! 웃긴다. 진짜 지리산에서 도 닦다가 온 것처럼 말하네.”

진혁은 순간적으로 지금 말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진혁이가 아직 진희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봐요.’

‘그래, 안 했나 보네.’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느낀 임진희가 물었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갑자기 다들 왜 이렇게 진지해.”

‘지금 이야기하는 게 제일 낫겠다.’

임진혁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말이야….”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두 번째로 이야기를 듣는 부모님은 간간이 질문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을 깜빡거렸다. 고동색 눈동자가 촉촉해지며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그저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달이 높이 뜨고 별이 반짝거리는 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자 벌써 동이 터올 무렵이 되었다.

아침에 배가 데리러 오면,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앞서 걸어 나갔다. 전날 미리 짐을 챙겨 둔 덕분에 정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임진희는 진혁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명함 낚아챈 건 용서해 줄게.”

“음.”

“네가 아주 보수적이고 고루한 꼰대가 된 이유는 알았어.”

“뭐?”

“반작용 같은 거잖아. 워낙 부도덕하게 살았으니까 여기서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가?”

“지금 네가 다른 나라에서 오래 있다가 왔으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게 적당한 건지 기준을 모르잖아. 그러니까 무조건 아버지를 따라 하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보수적으로 느껴졌나 봐.”

“그런가.”

배에 타고 육지로 가자 운전사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차량에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에 타고 서울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진희는 계속해서 이야기하였다.

“내 친구가 일본에 취업했잖아. 오 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애가 되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 한국 길도 낯설고 말도 어색하고, 사소한 습관 같은 것도 많이 바뀌었거든. 그런데 너는 어땠겠어. 지금 다른 문화권에서 오래 있다가 왔으니까, 너도 여기에서 어떤 게 일상적인 건지 많이 헷갈렸을 거야. 너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 진짜 이상했어. 멀쩡하던 애가 저능아가 되어서 온 줄 알았다니까. 눈치도 빨라지고 배려심도 깊어졌는데 갑자기 코드 안 꽂고 컴퓨터 켜려고 하다가 안 켜진다고 하고. 무슨 산골짝에서 몇십 년 살다가 온 할아버지처럼 굴었잖아.”

그 이야기의 본질은 전부 ‘네가 달라도 괜찮다’라는 것이었다.

네가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경험을 한다면 누구나 바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괜찮다.

그 이야기는 기본 리듬이 여러 마디로 변주되는 클래식 음악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되풀이되었다.

“장 쉐프님만 봐도 알지. 똑똑하고 친절한 분인데, 사회적인 예절 개념이 우리랑 조금 달라. 처음에 더우니까 얼음물을 챙겨 주려고 했는데 그게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고 하더라고?”

“맞아. 음료수는 무조건 따뜻한 거로 마셔야 하지. 찬물을 내놓는다는 건 나랑 싸우자! 이런 얘기잖아.”

‘한국에 파견되어 오면서 한국의 문화와 풍습도 공부하지 않고 왔군.’

진혁은 머릿속으로 장 쉐프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매겼다.

“그래. 우린 그걸 몰랐지. 그러니까 네가 이만큼이나 적응한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야.”

진희는 몇 번이나 진혁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거짓말 같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안타까워하면서 슬퍼하고 공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했다.

“…고맙다.”

“내가 미안하지. 진작 좀 얘기해 주지! 그러면 내가 풀코스로 상식을 알려 줬을 텐데.”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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