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35화 (533/656)

제 535화

“야, 언제는 부담스럽다더니.”

진희가 생긋 웃었다.

“그런데 바텐더님 진짜 잘생겼다.”

“뭐?”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내가 또 언제 이런 데 오겠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바텐더에게 가 버렸다. 진혁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였다.

임진혁은 눈살을 찌푸리고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한 비서님, 지금 저희 별장에 와 있는 바텐더 좀 조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한 비서는 어째서 그런 사항이 필요한지 묻지도 않았다. 그는 진혁이 이런저런 사람을 조사하고자 할 때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새우가 정말 탱탱해요.”

“그렇죠? 제 아내가 골라서 아주 신선한 물건으로만 들여온 겁니다.”

“두 분이 부부세요?”

“예.”

여자 요리사가 눈앞에서 과일을 깎으며 활기차게 말했다.

“보통 파티 전문으로 케이터링 나가는데 말이에요. 3박 4일 동안 섬에서 가족 네 분을 접대하는 일이라니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가 자원했지요.”

“아하하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어머니는 요리사와 어느샌가 친구가 된 듯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좋은 새우를 구별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아들을 잘 결혼시키는 방법까지 대화의 주제는 급물살을 타고 흘러갔다.

“아들 녀석을 그냥 내버려 뒀더니 알아서 제 짝을 찾아왔어요.”

“저희 아들은 여자에는 관심도 없어요.”

“우리 아들놈도 그랬어요. 그런데 자기 일만 열심히 하더니 어느샌가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려오더라고요. 진짜 깜짝 놀랐답니다.”

“하긴, 성인이니까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좋은 선 자리를 내밀어도 싫다 하니 말이에요.”

“요새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좋다고, 부모님이 소개하는 자리는 싫다고 하던데요? 저희 아들도 우리가 가져오는 선 자리는 듣지도 않고 거절했어요.”

“저랑 제 남편도 소개받아서 결혼했는데 아주 잘살고 있어요.”

남자 요리사가 헛기침했다. 그가 집게로 조개를 집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조개도 드셔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요리사는 숙련된 손으로 장갑을 낀 채 새우를 까서 접시에 담아 건네주었다. 게도 새우도 전부 손질해서 건네주니 손 가는 일이 없었다. 편안하게 앉아서 먹기만 하니 배려할 일도, 신경 쓸 일도 없었다. 그저 손님일 뿐이다. 아버지는 이 자리가 마냥 편치는 않은지 계속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 편히 계세요.”

“그래요. 맛있게 드셔 주시면 좋습니다.”

요리사의 말에 아버지가 말했다.

“조개가 비리지도 않고 아주 쫄깃해. 신선하기도 하고.”

“이건 자연산 전복입니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 온 거지요.”

어머니는 전복의 알찬 속살을 집어 들며 행복하게 말했다. 어머니와 임진희는 금방 적응해서 손님 대접을 즐겼다.

“크기는 작지만 탱탱한 게 씹히는 맛부터 다르군요.”

어머니가 아쉬운 눈빛으로 전복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요리사에게 말했다.

“아 참, 내장은 분리하지 말고 주세요. 아내가 전복 내장을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리사가 말했다.

“아, 물론이죠! 여기 새로 드리겠습니다.”

진혁은 부모님의 대화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두 분의 심박 수가 편안한 범주에 있으며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것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밤에 해야 할 테니.’

고용인 등 부외자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바텐더를 주시했다. 진희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바텐더와 시시덕거렸다. 진혁은 이 바텐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료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지 손님하고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임진희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 상황도 마음에 안 들었다.

‘고르고 골라서 보낸 괜찮은 남자들하고는 제대로 대화 한 번 안 하더니, 여기서 왜 이러는 거야.’

미미가 골라서 보낸 두 남자는 충실한 일꾼이 되어 명동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낭만적인 진도는 전혀 나가지 못했다. 진희는 항상 확실하게 공사를 구분했고, 다른 직원들을 존중해 주었다.

그녀는 평판이 좋은 상사였고, 수하의 직원들이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그래서 다른 지점의 직원들도 명동점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진희와 바텐더는 레모네이드의 레시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이드에 쓸 레몬은 항상 미리 데치고 있어요. 레몬에 농약이 얼마나 묻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죠. 껍질까지 함께 내놓는 만큼, 최대한 깨끗한 레몬으로 에이드를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죠! 바로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손님들께 질 좋은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진 빵을 구워드리고 싶어요. 아예 재료를 선정할 때부터 유기농 농업을 하시는 분들의 농장을 찾아간답니다. 다행히 프랜차이즈 본점이나 운영진들도 좋은 재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빵을 구울 때 좋은 재료를 공급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요. 보통 그린 워터 농장에서-”

프랜차이즈 본점과 운영진이라 함은 진혁이와 백진영, 그리고 유일봉과 아버지를 말한다. 진혁이와 이야기할 때는 그냥 ‘너’ 나 ‘아빠’ 그리고 ‘진영 바리스타님’ 등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낯선 사람 앞에서는 가족들을 직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평소에는 나나 아버지를 이렇게 부르지 않았잖아.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건가?’

그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거슬렸다. 진혁은 팔짱을 끼고서 두 사람을 관찰했다. 임진희는 좋은 식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린 워터 농장에서 수급받는 채소들이 진짜 좋아요. 아쿠아포닉스 농법이라는 건 처음 들어봤는데,”

“국내에 수경재배를 하고 있는 농장이 있다고요?!”

“벌써 몇 년 전부터 하고 있는 걸요. 그런데 생산량에 제한을 두고 있어서 딱 저희 프랜차이즈에만 입점하고 있어요.”

“아, 아쉽네요.”

식재료 이야기를 하는 임진희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임진혁은 턱을 괴고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흐음.”

아버지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그렇게 노려보고 있어?”

“…노려보고 있지는 않았는데요.”

“그럼 여기 새우 좀 먹어 봐라.”

“네.”

아버지는 깐 새우를 집어 접시에 놓아주셨다. 진혁은 새우를 입안에 넣었다.

“이거 맛있네요.”

‘푸드 블록 공장에 해산물을 공급하는 업체도 꽤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뒤지지 않네.’

이 업체 쪽에도 선을 대어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진혁은 요리사를 힐긋 보았다.

요리사가 자체적으로 재료를 공급받은 건지 아니면 별도 업체에 맡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한 비서에게 추가 지시 사항을 남겼다.

“그렇지! 맛있는데 하나도 안 먹고 그러냐. 이것도 좀 먹어 봐.”

이번에는 어머니가 진혁이 앞에 놓여 있는 앞접시에 전복을 놓아주었다.

“새우도 좋은데 전복도 맛있어.”

“알았어요.”

부모님이 경쟁적으로 진혁의 접시 위에 먹을 것들을 올려주기 시작하셨다. 진혁은 별다른 말 없이 먹고 있었다. 하지만 먹을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하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은 더 이상 안 드세요?”

“너는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잖니.”

“맛있는 건데 말이야.”

“배부르시면 그냥 남기셔도 돼요.”

어머니가 본심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데 남기면 아깝잖니.”

요리사가 말했다.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에 조리하셔도 됩니다.”

“그러면 맛이 변할까 봐서요.”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다 먹을게요.”

“양이 꽤 많습니다.”

요리사가 말했다.

“저희가 잘 냉장해서 보관해 둘 테니, 내일 드셔도 좋습니다.”

진혁은 묵묵히 젓가락을 들었다. 위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요리사들은 진혁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워했다.

“아드님이 진짜 잘 드시네요.”

“그것도 엄청 먹음직스럽게 드세요. 속도도 빠르고. 양도 만만치 않은데.”

하지만 새우와 전복,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하자 어머니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얘,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니? 그러다가 괜히 체하면 어떡해.”

“그래, 무리하지 마라. 남기면 되지.”

진혁은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아버지가 음식을 남기라고 하시기도 하네요.”

가난한 시절을 겪으며 절약하며 자란 아버지는 누군가 음식을 남기는 것을 질색했다. 자신이 남기지도 못했다.

밥알 한 톨이라도 남기면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게 시켰다.

“흠, 흠흠.”

아버지가 헛기침하더니 말씀 하셨다.

“그때는 네가 어렸으니까 그렇지. 꼬맹이가 먹기 싫어서 편식하는 거하고, 지금과는 다르지. 네가 지금 먹은 양이 보통 양이냐? 더군다나 해산물인데. 여기가 도시도 아니고, 잘못 먹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진혁이 호언장담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체격도 좋으시고 몸도 좋긴 한데, 지금 거의 12인분은 넘게 드셨어요.”

요리사가 염려했다.

“더 먹을 수도 있는데요.”

“자, 자. 그럼 여기서 정리합시다.”

바텐더와 이야기꽃을 피우던 임진희 역시 이쪽의 분위기를 눈치챘다. 바텐더는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진희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엄마?”

“진혁이가 이걸 다 혼자 먹어서.”

“와, 설마.”

임진희가 혀를 내둘렀다.

“농담이죠?”

“정말인데.”

“그런데 배가 나오지도 않았어? 네 위장은 강철로 되어 있냐?”

그녀는 자연스럽게 진혁의 배에 손을 가져갔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임진희는 진혁의 배를 더듬고 나서 손목을 짚었다. 아예 맥박까지 재어보고 나서 그녀가 선언했다.

“진혁이는 아주 멀쩡합니다. 더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는 것 같네요.”

옆으로 다가온 바텐더가 물었다.

“의사세요?”

“빵집에서 일하기 전에는 간호사였거든요.”

“우와, 그런데 왜 그만두신 거예요?”

가족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임진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빵 굽는 일이 너무 재밌어 보여서요.”

“그래도 공부도 많이 하셨을 텐데, 그렇게 바꾸시는 게 대단하네요. 멋지십니다.”

바텐더는 자연스럽게 임진희에게 명함을 건넸다.

“저희 서울에도 파견 나가니까, 나중에라도 바 케이터링 서비스가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진혁이 그 명함을 낚아챘다.

“필요한 경우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막 명함을 받으려던 임진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쌍둥이 오빠를 바라보았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바텐더는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와 요리사들이 뒷정리를 하고 떠난 후에 진희가 물었다.

“아까 명함은 왜 낚아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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