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31화 (529/656)

제 531화

「남해라, 내가 머물기에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기꺼이 가 주도록 하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3박 4일간 드실 수 있는 메뉴를 짜 드리겠습니다.」

가족 여행.

아버지에게 기 수련을 가르칠만한 기회.

부모님과 함께 보낼 단란한 시간.

그는 머리카락 하나 들이밀 틈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하마드 왕자가 급하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남해라고 했잖은가? 내게 내 소유의 크루즈 선이 있네. 일주일이면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어. 셀러브리티를 초대해서 파티를 즐길 수도 있고. 축구 구단 선수들도 아주 좋아하니까, 초청해서 함께 게임을 즐길 수도 있을 거야. 요트 위에서 축구도 할 수 있다고! 대단하지 않은가? 남자라면 당연히-.」

그는 이전에도 소용이 없었던 미끼를 열심히 흔들었다. 진혁은 그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는 공기에 실려 들어오는 소리를 차단하면 된다.

그는 들려오는 말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무하마드 왕자가 신고 있던 브랜드 운동화의 신발 끈을 다시 묶어 주었다.

「이렇게 헐겁게 매면 발이 신발 안쪽에서 움직이면서 물집이 잡힙니다. 그러면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죠. 발이 아파서 신경이 분산되면 미각을 느낄 때 더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그런가?」

무하마드가 눈을 깜빡였다. 매듭까지 확실히 묶어주고 난 다음에 진혁이 말했다.

「자, 일단 달리면서 이야기하시죠.」

그는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무하마드는 서둘러 쫓아오며 외쳤다.

「잠깐, 달리면서 말을 어떻게 해! 말하면 너무 금방 체력이 떨어져서 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단 말이야!」

「계속 하다 보면 늘 겁니다.」

경호원들이 앞뒤로 나란히 따라오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왕자님이 오늘도 즐거워 보이셔서 좋군.’

‘요즘처럼 컨디션이 좋으셨던 때가 없지. 이 생활이 정말로 맘에 맞으시나 봐.’

아직 한 바퀴밖에 돌지 않았는데도 무하마드 왕자는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진혁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어제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나 보군요.」

죽어라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태연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면 약이 오를 수밖에 없다. 무하마드가 시뻘게진 얼굴로 헉헉거리며 항의했다.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 힘들어서 그렇지!」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네.」

「아직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남아 있으시군요.」

무하마드는 욕설처럼 말을 뱉어냈다.

「자네가, 머언저, 마아알을, 시이켰….」

「자, 자. 호흡을 고르게 해야 합니다. 차분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열고, 시선은 저 눈앞에 두시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계속해서 달렸다. 수석 경호원 카심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셨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체력이 좋아지셨어. 다음 건강검진 결과가 기대될 정도야.」

「오늘은 진혁 쉐프님께서 어떤 간식을 주실까요?」

「아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이제 고구마는 끝난 것 같더군.」

「오, 다음 간식도 기대가 되네요.」

무하마드 왕자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렸다. 샤워하고 나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그리고 시계와 전자제품을 바구니에 넣은 다음에 문 앞에 섰다.

「후아.」

무하마드는 이 방을 ‘검은 방’이라고 불렀다. 방문을 열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꼼꼼하게 칠해진 칠흑색 도료는 열린 방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조차 전부 빨아들였다. 빛의 부재(不在) 그 자체다.

왕자가 심호흡했다.

「검은 방은 오늘만 생략하면 안 되나?」

매일같이 들어가면서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똑같은 것을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함께 들어갑니다.」

진혁은 여태까지와 똑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          ◈          ◈

「아무리 함께 들어왔다고는 해도 말이야, 같이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임진혁 쉐프는 인기척이 전혀 없다니까.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냄새가 풍겨오기를 기다리며 무하마드 왕자가 중얼거렸다. 이 또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심박 수가 점점 더 빨라지며, 달릴 때보다 더 높은 수치까지 치솟는다.

「여기 있잖습니까.」

하지만 진혁이 한마디 해 주면 놀라울 정도로 평온해지곤 했다.

「말하지 않으면 없는 것 같다고. 어디 스피커라도 숨겨 놓고 소리만 내는 것 아닌가.」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럴까요?」

그는 아주 잠깐 무하마드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

그것만으로도 안심했는지 심박 수가 훨씬 안정적으로 떨어졌다.

‘왕족으로 곱게 커서 그런가? 병아리처럼 약하단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왕족이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온실 안에서 곱게 자란 화초가 뙤약볕에 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무하마드 왕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전부 이루어지는 세상에 머물러 있었다.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방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함께 들어왔지만 다른 날은 혼자 들여보낼 때도 있었다. 중간중간 심박 수만 체크하다가 너무 높아진다 싶으면 적당히 전음(傳音)을 보낸다. 그러면 알아서 진정되었다.

‘오늘은 생각보다 좀 더 불안해하는데?’

무하마드 왕자는 모르고 있지만, 진혁은 진기를 조금 보냈다. 그렇다면 벌써 진정되어 지금 흘러들어오고 있는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늘따라 코가 둔해졌나?’

진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달라진 것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강렬한 쑥 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는 점을 빼면 달라진 것은 없다.

‘어디 보자. 입고 있는 옷과 신발도 그대로인데 말이야.’

진혁이 특별히 지시하여 제작한 의복은 내의처럼 감촉이 부드러웠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옷이다. 세탁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도록 했다. 향기가 있는 섬유유연제를 금지하여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게 세탁하도록 했다. 신발 역시 발에 꼭 맞는 슬리퍼로, 아무것도 신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방 안에는 벽에 붙어 있는 의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 의자도 무하마드 왕자의 엉덩이와 허리 굴곡에 맞추어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서 있는 것보다 오히려 편하다.

오늘 달리기를 할 때 상태도 좋았고, 아침의 식사량도 나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다.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으니, 심리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높다.

진혁이 물었다.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무하마드 왕자는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혁은 다시 질문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왕자가 힘겹게 말했다.

「남해에 간다며!」

「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진혁이 말했다.

「한 달 동안 밀착 교육을 했으니 이제 며칠 정도는 혼자서 운동을 하며 미각 훈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프로그램은 전부 짜두었습니다.」

「크루즈 선과 축구 선수들도 불러 줄 수 있다니까, 나도 같이 가자고!」

솔직하고 진솔한 제안이라기보다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았다. 오마르 왕자라면 진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계산한 다음에 사업적인 이득이 되는 제안을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진심이었다.

진혁이 물었다.

「…왜 같이 가고 싶으신 겁니까?」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진혁이 있는 쪽이 아니었다.

‘미각에 비해서 청각은 확실히 둔한 편이군.’

음식을 맛보려면 미각과 후각, 그리고 시각이 제일 중요하지만, 청각과 촉각 역시 필요하다.

진혁은 머릿속에서 가벼운 청각 훈련 계획 커리큘럼을 추가했다.

「지금 내 미각이 충분히 예민해지지 않아서 실망한 게 아닌가?」

「음.」

진혁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속도가 느려서 내가 실망했나?’

다른 비교군이 없었다.

무하마드 왕자의 미각이 예민해지는 속도가 빠른지 어떤지 진혁은 알지 못했다.

다만 무하마드 왕자가 늙어 죽기 전에, 그리고 더 감각이 둔해지기 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사실 한 달이 아니라 일 년, 이 년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이 일은 일이 아니라 취미였다.

낚시를 하면서 물고기가 빨리 낚이지 않는다며 조급해하는 낚시꾼은 없다. 낚시하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진혁은 급하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에 잠긴 사이, 무하마드 왕자는 자신의 가설을 멋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해 핑계를 대고 떠난 다음에 교육을 그만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남해 쪽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던데, 그렇다면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나.」

느닷없는 논리의 비약에 진혁이 황당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아니, 잠깐만. 한국의 지리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지 몰랐는데요. 그리고 그런 건 또 언제 조사하셨습니까?」

「자네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지 않나. 임진혁 쉐프 자네가 만들어오는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을 위한 입맛이야. 이번에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에서는 세계 각국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초빙하면서 국제적인 맛을 내는 데 힘썼지. 하지만 그 근본은 한국 요리에 있다고 보네. 간간이 잊을 만하면 사용하는 한국의 허브도 그렇고 말이야.」

「음, 쑥과 미나리, 달래. 깻잎. 녹색 채소들은 건강에도 좋고 맛도 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송이버섯이나 당근, 감자나 고구마처럼 범용적이고 국제적인 재료들은 아니지 않나? 자네는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야.」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자네 입맛도 한국 입맛이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러니 내가 한국 음식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맛의 길을 새롭게 인도하는 스승의 뒤를 따라가려면 말이야.」

「….」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계속해서 한국식 식사를 하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자네가 진정 탐구하는 맛의 길이 아닌가. 나는 자네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고 싶다네. 그리고 이번 가족 여행이 바로 자네의 삶, 맛에 대한 철학을 함께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네.」

「음….」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가족분들에게는 내가 직접 양해를 구하겠네. 남해에서의 여행이 끝나면 답례로 임 씨 가족분들을 초대하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나 미국의 뉴욕, 그리고 카리브해의 섬. 어디로 와도 상관없다네. 가족분들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모시지.」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군요. 의논한 다음 알려주겠습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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