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9화
“당연히 해드리려고 했어요.”
“진혁아, 나도!”
“너는 젊잖아. 좀 기다려 봐.”
“너랑 나랑 동갑이거든?!”
어머니와 진희까지 안마를 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이제 끝!”
“고마워! 진짜 좋다.”
“아휴. 어쩜 이렇게 잘하는지.”
어머니와 진희가 편안한 표정으로 진혁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내와 딸이 안마받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빵을 반죽하면 손힘이 세져서 안마를 잘 하게 되는 법이야.”
“그렇죠, 그렇죠.”
인체와 기혈의 흐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아버지는 갑자기 진혁의 팔뚝을 잡았다.
“앉아 봐라.”
“예?”
그는 아버지가 잡기 직전에 호신강기를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절한 내공과 지속적인 훈련 덕분에 팔의 근육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앉아 봐라. 내가 너 어깨 주물러 주마.”
“전 피곤한데 하나도 없어요. 안 해주셔도 됩니다.”
“진혁아, 그건 네 생각이지. 너처럼 일 많이 하는 애가 어깨가 뭉쳐있지 않을 리가 없어.”
진희가 끼어들었다.
“아버지! 그냥 제가 할게요.”
“아무렴 너보다는 내가 더 힘이 낫지 않겠냐.”
아버지는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열심히 주물럭거리려 했다. 하지만 진혁이 힘을 뺐어도 손에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이거, 이거. 너 어깨 굳은 거 봐라. 완전히 바윗덩어리야.”
“엄마랑 같이 경락 마사지라도 받으러 갈래?”
부모님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잘 모르시는구나.’
부모님에게 자신의 과거, 그리고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림 고수의 육체가 얼마나 강건하며 단단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진혁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포용해주었지만, 현재 그가 일반인들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혁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저는 튼튼하고 강하기 때문에 근육이 뭉치거나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손힘 정도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좀 더 단련하셔야 제대로 안마를 해주실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강건한지 이야기하는 것도, 아버지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는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다시 해 보세요.”
그는 정신을 집중해 아버지의 손 모양에 맞게 근육들이 꿈틀거리도록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자신의 육체를 조정하는 편이 부담이 적다.
“아이구! 여기 아래는 아주 말랑말랑해. 뭉친 데가 하나도 없네. 희한하게 어깨 위쪽만 단단해.”
“어깨 위쪽도 괜찮아요. 아버지께서 풀어주시니까 바로 시원해지네요.”
“그것 봐라, 내가 마사지는 좀 한다니까.”
아버지는 흐뭇해하며 계속해서 진혁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고된 일로 단련되어 뭉툭하니 단단하며 투박한 손길이다. 아버지는 전신의 체중을 실어 내리누르듯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어떤 움직임도 진혁에게는 파리가 어깨 위에 앉는 것처럼 약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등 근육으로 아버지의 손가락을 감싸듯이 살짝 주물러 주었다.
“이거 등을 주무르는데 뭔가 내 손에 힘이 덜 들어가는 거 같은 느낌도 드는데?”
그러나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아들의 등을 문질러 주었다. 아버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여보, 그렇게 힘들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마를 보고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주었다. 아버지의 손바닥이 시뻘게져 있었다. 처음에 단단한 근육을 힘껏 밀어대면서 생긴 자국이다. 진혁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 괜찮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피로가 다 풀린 것 같아요.”
아버지의 손은 힘을 주었던 탓인지 따뜻한 데다가 땀 때문에 축축했다. 아버지가 황급히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럼, 언제든지 부탁해라. 너만 항상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임진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엄마, 아빠. 계속 금식해서 배고프시잖아요. 진혁이가 이 근처 식당 예약해 놓았다고 했는데. 지금 갈까요?”
진희가 한 말에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한 비서가 예약했겠지.”
아버지도 덧붙였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그걸 굳이 소리 내서 말할 필요는 없지.”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한 비서가 예약해주기는 했지만 가게는 제가 골랐습니다.”
아버지가 격려하듯이 말했다.
“그럼, 그럼, 바쁜데 모든 일을 직접 할 필요는 없어. 외주도 주고, 직원에게 일도 시켜야지.”
“그러는 당신은 왜 아직도 반죽은 꼭 직접 해요? 당신이야말로 위임을 할 필요가 있어요.”
어머니가 말하자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우리 손님들도 내가 직접 반죽한 빵을 먹고 싶어서 오는 거고. 내가 직접 아침마다 반죽을 하지 않으면 몸이 뻐근하다고.”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걸음을 빠르게 하며 가는 길을 서둘렀다.
자녀들에게 대화를 들려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목소리가 컸다.
“전에 진혁이랑 일봉이한테는 반죽시켰잖아요. 새로 온 애를 못 믿겠어요?”
“그런 건 아닌데, 아직 내 맛을 못 따라오잖아.”
“그럼 더 가르치면 되죠. 정말 못 따라오면 애를 자르면 되고. 당신이 학교 수업도 나가야 하는 날에 새벽부터 나가서 반죽을 주무르면 너무 힘들잖아요.”
“좋아서 하는 일이라니까.”
“요즘 밤에 코 고는 소리가 얼마나 심해졌는데요. 우리 나이에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진혁이도, 진희도 나름대로 자리 잡았고. 뭐가 급해서 그렇게 잠까지 줄여가면서 일하려고 해요?”
“재밌어서 그렇다니까.”
“이번에 황철우 씨 만나고 와서부터 그렇잖아요. 뭔가 속상한 이야기라도 들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어머니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휴가 얻어서 남해 가서 놀았으면 좋겠는데, 학기 중에는 시간이 안 난다고 하고. 막상 방학도 하고 나서는 가게 일 때문에 자리를 못 비운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직원이 셋이나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더 부지런히 일해야지.”
“배하고 별장을 선물 받으면 뭘 해요? 우리가 거기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데.”
“은퇴하면 같이 가기로 했잖아.”
“십 년은 넘게 남았잖아요. 그럼 그동안 배하고 별장을 그대로 썩힐 거예요?”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진혁과 임진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굳어있었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고, 아버지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진혁은 한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구려호텔 수석 쉐프 황철우에 대해서 알아봐 줘.」
「스카우트하시려고요?」
「아니.」
임진희는 진혁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너 지금 철우 아저씨를 조사하는 거야?”
“아버지한테 보증이라도 서달라고 했나 싶어서.”
“설마 그러시려고. 아저씨가 아빠랑 얼마나 친한데. 전에는 너 취업 자리 알아봐 주겠다고 하기도 했잖아.”
진혁은 그걸 호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내가 알아서 취업했지. 그리고 쓸만한 인재가 보일 때 스카우트해가려고 하는 건 호의가 아니야. 그냥 인재 발굴이지.”
“그나저나 아빠가 요새 일을 너무 많이 하고 계시다니 걱정이네. 이번에 건강 검진을 하길 잘했다.”
“이제는 1년마다 한 번씩 무조건 받게 해드릴 거야.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여름 되면 바로 체크하도록 하자.”
“아, 내가 달력에 적어 두기는 했어.”
“한 비서님이 챙겨 줄 거야.”
“그 비서님 월급 좀 올려 줘라…. 너무 일이랑 관계없는 거 막 시키는 거 아니야?”
“원래 개인 잡무를 포괄해서 담당하는 비서야. 기업 쪽 일을 같이 해서 일이 많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퇴근은 꼬박꼬박 자기 집으로 해.”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
“인센티브도 크고.”
한 비서가 예약해둔 식당은 정통 그리스 식당이었다.
“깔라마리라고? 그거 뭔가 신 음료수 아니냐?”
요리 이름을 듣고서 아버지가 물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그건 깔라만시고요.”
“….”
부모님은 노골적으로 다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을 뿐이다. 임진희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혁에게 속삭였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뭘?”
진혁이 눈을 껌뻑거리며 멀뚱하니 대답하자 그녀가 가슴을 쳤다.
“됐다,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였지.”
임진희는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말꼬리를 텄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따뜻하게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인터넷 검색해 보면 동그랗게 튀김옷을 입힌 오징어링 같은 게 나오는데? 지중해 쪽에서 유명한 음식이래.”
“오징어가 아니라 한치라는데.”
“똑같이 생긴 것 같아.”
“한치는 지느러미가 마름모꼴이고, 오징어는 좀 더 삼각형 같은 모양이야. 등 쪽 얼룩의 패턴도 다르고, 오징어는 한치보다 다리가 더 길기도 하고.”
“여기 이 짧은 건?”
“그건 다리가 아니라 촉수야.”
“헤에.”
“저번에 푸드 블록 만들 때 못 먹어봤던가?”
“이런 걸 보긴 했는데, 그냥 다 오징어인 줄 알았어.”
“오징어가 탱탱하고 쫄깃한 데에 비해서 한치는 훨씬 더 살성이 부드러워. 오징어보다 더 잡기도 힘들고 어획량도 많지 않으니, 구하기가 어렵지.”
칼라마리 접시를 든 쉐프가 나타나 진혁에게 인사를 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디너 코스의 첫 번째 애피타이저는 칼라마리입니다. 그리스식 한치 튀김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바삭바삭해 보이는 얇은 튀김옷이 입혀진 한치를 보고서 어머니가 말했다.
“진짜 오징어 같네. 이 하얀 소스는 돈가스 소스인가?”
“레몬즙과 꿀, 마요네즈를 넣은 아이올리 소스입니다. 깔라마리와 잘 어울리는 지중해식 소스죠. 마늘과 레몬즙의 새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특색입니다. 여기에 튀김을 찍어 드시면 됩니다.”
요리사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진혁이 말했다.
“어머니가 드시고 싶다던 그리스 요리인데 어떠세요?”
어머니가 빙긋 웃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산목아파트 앞 분식집에서 파는 오징어링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그건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잖아요. 그래도 맛은 다를걸요.”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흠, 흠흠.”
“여보,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는 깔라마리 튀김을 하나 포크에 꽂은 채 내밀었다. 언제 찍었는지 하얗고 몽글몽글한 아이올리 소스도 듬뿍 바른 채였다.
“여보, 이거 먹어.”
“어머.”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살짝 벌렸다. 한치 튀김은 어머니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임진희가 입을 딱 벌린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임진혁에게 소곤거렸다.
“대체 우리는 뭘 걱정한 거냐.”
“그러게….”
아버지가 회를 좋아하실 때, 어머니는 좀 더 물컹거리고 식감이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셨다.
그러니 지금 이 한치 튀김도 아주 좋아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그 취향을 아주 잘 알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거, 느이 어머니가 이번에 휴가를 좀 가고 싶다는데. 시간이 맞으면 너희들도 같이 가면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