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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26화 (524/656)

제 526화

‘아니, 왜 당신이 자랑하는데?’

진혁이 눈을 껌뻑였다. 린드버그 박사는 무하마드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몽롱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향기를 따로 피우지 않고서는 이 맛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냄새가 좋으면서 맛도 좋을 리가 없어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특별히 향이 강한 품종을 선정해서 구우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됩니다. 향이 강한 품종의 고구마라면 더 맛이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요리를 하는 와중에 냄새 입자가 더 공기 중으로 퍼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마시는 이 모든 향기 입자들이 전부 그 음식에서 나온 것이니 말입니다. 향을 잃어버린 만큼 맛이 없어야 당연한데, 이렇게까지 맛이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린드버그 박사가 횡설수설하는 말을 듣고서 진혁이 피식 웃었다.

「별 것 아닙니다.」

진혁에게 있어서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미량의 냄새 입자가 정확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공기의 흐름을 약간 틀어주면 된다. 손끝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그 외의 냄새 분자들은 탈출하지 못하고 요리 안에 갇혀서 먹히기를 기다렸다.

‘이게 생각보다 향을 훨씬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긴 하나 보군.’

무하마드 왕자가 생각보다 둔했기 때문에 처음에 가벼운 힌트를 주기 위해서 시작했던 작업이다. 그래서 무하마드 외의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다른 방식으로도 응용해 볼 수 있겠다.’

지금 미미는 몸에 좋다는 약초를 먹는 중이다. 진혁이 따로 구워주는 허브 타르트 말고도 한약 형태로 익모초와 감초, 율무 등 다양한 약초를 달여먹고 있다.

불평을 하지는 않지만 먹을 때마다 보이는 씁쓸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약이 독해 먹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이 능력을 좋은 냄새를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데에만 쓰고 있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 괴로움을 절감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이 잠시 미미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린더브거 박사가 말을 이었다.

「음식을 맛보기 전에 최소한의 향을 맡게 하여 위장을 준비시키고 식욕을 돋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음식 자체의 맛이 떨어지죠. 이 딜레마 때문에 가공 음식을 다루는 화학자들이 계속해서 고민해 왔습니다. 임진혁 쉐프님이 이 밸런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신 건지 꼭 알고 싶군요.」

유감스럽게도 진혁은 그 답을 알려줄 수 없었다. 알려준다고 해도 화학자가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잘 구우면 됩니다.」

「잘?」

「네, 지나치게 오래 구워도 안 되고 짧게 구워도 안 됩니다.」

린드버그 박사는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그 질문을 계속해서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대신 무하마드 왕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하마드 왕자님! 방금 고구마 타르트 말입니다. 드시고서 어떠셨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최고지. 고구마의 달콤한 맛을 포착해서 사진기로 찍은 것처럼, 가장 정확하고도 깊게 표현한 맛이야. 당분간 꿈에 나올 것 같은 음식이라고.」

거듭된 칭찬의 말에 진혁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린드버그 박사가 말했다.

「저도 이걸 처음에 언뜻 보았을 때는 그냥 흔한 피자라고 오해했습니다. 이걸 왜 타르트라고 부르나 싶었죠. 그냥 페이스트리 생지 위에 적당히 치즈와 올리브를 올리고 토마토소스를 올려놓은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냥 토마토보다 색깔이 좀 더 진한 걸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 고구마도 전부 다른 종류였습니다! 퍽퍽한 고구마와 부드러운 고구마, 두 종류를 적절하게 섞어서 다양한 식감을 주려고 하신 노력이 보이더군요. 얌과 스위트 포테이토 두 개를 다 섞으신 거지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미국에서 얌이라고 부르는 작물도 사실 고구마입니다.」

「예?」

진혁도 이번에 디아타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푸드 블록을 만들 당시 수백 종류의 재료를 수입하던 와중에 미국인 쉐프 한 명이 ‘얌’이라며 하얀 고구마를 가져왔다. 진혁은 그게 ‘얌’이 아니라 고구마라고 알려 주었고, 미국인 쉐프는 당황했다.

그 쉐프가 잘못 알고 있을 만도 했다.

백고구마는 실제 미국 시장에서 얌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다. 둘 다 진혁이 알고 있는 대로 ‘고구마’가 맞았다. 하지만 미국의 유통업계에서는 초기에 수입된 자주색 고구마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후 이국적인 속이 단단한 하얀 고구마를 수입해오면서 두 가지 종류의 작물을 분리했다. 이국적인 하얀 고구마는 ‘얌’이라고 이름 붙여 판매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위트 포테이토’란 껍질이 자줏빛이며 속이 노랗고 부드러운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진혁이 약간 실망한 눈빛으로 린드버그를 바라보았다.

린드버그 박사가 당황해서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고구마에 특별한 애착이라도 있으십니까? 모든 메뉴가 고구마로 시작해서 고구마로 끝나는군요. 아,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환상적인 음식은 정말로 처음 봅니다. 여태까지 나온 음식들도 좋았는데, 이 타르트는 따로 구입해서 아내에게도 꼭 맛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진혁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무하마드 왕자가 말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두 종류가 아니라 여덟 종류입니다. 여기 올라와 있는 고구마 조각 모두 다른 품종입니다.」

「예?!」

린드버그 박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알고, 임진혁 쉐프가 압니다.」

진혁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이 린드버그 박사라는 이는 화학적 맛을 설계하고 향기에 대해서 파악하는 데에는 전문가였다. 미각을 어떻게 예민하게 할지에 대해서도 잘 안다.

하지만 열 종류의 익힌 고구마를 구분할 정도는 아니다. 선천적으로 감각이 예민하며 훈련을 통해 더 계발한 무하마드에게 비할 수 없는 것이다.

‘무하마드 왕자는 두 개를 놓쳤어. 그래도 저번보다는 낫군.’

아직은 진혁이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오지는 못했다. 고구마 타르트의 반죽은 조리대에서 하지 않았다. 허공섭물을 이용해 반죽을 공중에 띄우고 얇게 펴서 다시 접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무하마드 왕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빵의 반죽을 스테인리스 그릇에서 했는지, 아니면 대리석 조리대에서 했는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여태까지 먹어봤던 여덟 조각의 고구마는 정확히 구분했다.

‘보석 고구마와 일본 얌을 미리 먹어보게 했더라면 제대로 구별했을지도 몰라.’

무하마드 왕자가 낯선 재료를 맛봐도 눈치채기를 바라며, 일부러 기존에 먹던 고구마에서 두 가지를 빼 버렸다.

달콤하고 녹진하기로 유명한 보석 고구마(Jewel sweet potato)와 단단하면서도 담백한 일본 얌(Japanese yam). 두 고구마 모두 흔히 디저트에 쓰이는 품종이다.

진혁은 의도적으로 이번 고구마 훈련에서 가장 흔한 고구마들을 빼버렸다. 그리고 무하마드가 알아채기를 원했다.

진혁이 짧은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린드버그 박사가 말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미각 훈련을 정말로 진지하게 진행하고 계셨군요. 이 정도면 제가 고용하는 맛 감별사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오늘 모신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훈련을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무하마드 왕자님의 미각은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민한 능력에 부유한 환경이 더해, 미각을 주의 깊게 갈고 닦으면 이렇게까지 대단해지실 수 있군요. 저도 맛 감별사들 중에서는 꽤 하는 편입니다만,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우리 맛 감별사들을 보내서 왕자님께 훈련을 받게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입을 열려고 하다가 다물었다. 그는 지금 받고 있는 훈련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함께하는 경호원들 역시 모두 비밀 유지 서약서에 서명한 상태다.

진혁이 먼저 미식 훈련에 대해서 언급하는 건 가능하지만 왕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 ‘나 말고 다른 제자를 또 구하려고 할 셈인가?’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미식에 대해서 배운다는 것 자체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왕자는 레이저 광선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임진혁을 쏘아보았다.

‘이봐, 여기 내가 있다고. 고구마 맛도 제대로 구별해냈어. 거지 같은 달리기 훈련도 제대로 하고 있는데 말이지. 누굴 또 데려오려고 하는 거야? 젊은 애들도 다 필요 없다고 했잖나.’

하지만 임진혁은 그 눈빛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태연하게 물었다.

「그 맛 감별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주로 향수 메이커 지망생 출신이죠. 조향업자들이 귀신같이 후각이 예민하지 않습니까? 코는 예민해서 향을 잘 구별하지만, 조향에는 어려움을 겪는 애들이 있습니다. 그런 애들을 하나둘씩 주워다가 아예 이쪽에서 키우는 거죠.」

진혁이 말했다.

「그렇군요.」

왕자에게는 다행히도 지금 당장 새로운 향수 메이커 지망생을 추천해달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리고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린드버그 박사, 아까 미각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이 몇 가지 더 있다고 했는데. 다른 것도 궁금하군.」

「아! 아주 상식적인 것들입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그리고 자극이 덜한 생활을 하는 거지요. 누구나 알지만 하기 쉽지 않은 것들 말입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예습 복습을 하면 되는 것과 같지요.」

「그것뿐입니까?」

「아 참, 그리고 가공 음식들을 먹지 않는 겁니다. 시판하는 가공된 음식들은, 제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설탕과 감미료가 많이 들어있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먹다 보면 천연 재료들의 담백한 맛을 구분하기 힘듭니다.」

「아….」

무하마드 왕자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린드버그 박사가 진혁에게 물었다.

「그보다 확실히 묻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아까 그 소스, 토마토가 아니더군요. 뭐지요?」

「크랜베리입니다.」

「아! 역시. 새콤달콤하면서 익숙한 맛이었습니다. 크랜베리와 고구마를 함께 먹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치즈와도 잘 어울리더군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무하마드 왕자가 말했다.

「크랜베리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군? 뉴욕의 핫 앤 칠스에서는 배와 크랜베리를 얹은 베이컨 피자를 내놓지. 나쁘지 않아.」

「상업적으로 흔히 쓰는 조합은 아닙니다. 토마토를 훨씬 많이 쓰지요.」

고구마 타르트 이후에 마신 고구마차 역시 호평이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이번에는 어떤 고구마인지 어렵지 않게 맞혔다.

「이건 일반적인 스위트 포테이토 품종이군!」

「맞습니다.」

잎새 조각만 들어있는 얼음보다 훨씬 맞추기 쉬웠다.

린드버그 박사가 돌아간 후, 무하마드 왕자가 진혁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주게. 조향사 지망생이나 와인 소믈리에 지망생들을 데려다가 미식가를 더 키울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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