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3화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무하마드 왕자의 개인 쉐프이자 왕자궁의 수석 쉐프, 페드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슬슬 내 음식을 그리워하실 때가 되었는데 말이야.」
「쉐프, 지난주에도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 년이 넘게 모셔왔다고. 나보다 더 그분의 입맛을 잘 알고 있는 요리사는 없을 거야. 간혹 새롭고 신선한 맛을 내놓는다고 자신만만하게 입을 터는 놈들이 없진 않았지. 매일같이 스테이크를 먹더라도 피자나 햄버거가 그리울 때가 있잖아? 하지만 삼시 세끼 자극적인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는 없어. 이제 건강하고 몸에도 좋은, 제일 좋아하시는 지중해식 음식으로 돌아오실 때가 되었어.」
「전에도 이런 적이 있으셨습니까?.」
「한두 번이 아니지. 초밥이 좋다며 일본 요리사를 초청해 한동안 스시와 사시미를 즐기신 적도 있다네. 글루텐 프리니, 팔레오 식이라든가 채식, 저탄수 고지방 식이니 등등 다양한 유행을 접목해서 식이를 바꾸어 보신 적도 있어. 하지만 언제나 이 페드로에게로 돌아오셨어.」
「그래도 그때는 기껏해야 일주일에서 이 주 정도였다면서요.」
꼬마 쉐프가 하는 말에 페드로가 한숨을 쉬었다.
「내 알아보니 한식은 중식과 친척이라 찜이니 탕이니, 볶음이니 구이니 하며 종류가 많아. 한국에 가신 김에 현지의 음식을 섭렵하고 계신가 아닌가 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전에 이탈리아에 회의차 4박 5일 출장을 가셨을 때는 현지에 먹어야 할 음식이 너무 많다며 일 년 동안 이탈리아를 돌아다니셨지. 그래도 결국은 나를 소환하셨지만 말이야. 그때도 두 달쯤 걸렸으니까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봄 직해.」
페드로는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만드는 요리를 제일 맛있게 드셔주시는 분은 그분밖에 없으신데 말이야.」
「처음에는 2주 동안이나 새로운 요리를 개발할 시간이 있다고 좋아하셨잖아요?.」
페드로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이번에 새로 만든 크림 칠리 파스타는 전에 좋아하셨던 중식과 파스타를 합쳐본 거야. 그런데 이걸 드시고 피드백을 받아야 더 좋아하시는 맛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지? 그분의 미각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지.」
「카림 왕자님의 측근인 라시드가 말하기를, 이번에 요리를 먹으러 간 것이 아니라 무슨 훈련을 받으러 가신 걸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페드로가 코웃음을 쳤다.
「훈련은 무슨 놈의 훈련! 왕자님께서 지금 그 나이에 무엇을 위해서 훈련이 필요하신가. 십 대 군인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요? 그럼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 ◈ ◈
무하마드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측근들만이 아니었다. 오마르 왕자 역시 어째서 무하마드가 보이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도대체 한국에서 뭘 하고 있길래 이번 유가 조정회의에도 아들을 대신 보낸 거지? 이십여 년간 본인이 꼬박꼬박 참석하더니 말이야.」
「국정 회의에도 카림이 계속 오고 있습니다. 몸이 많이 나빠진 게 아닐까요?.」
「건강이 안 좋다고?.」
「그렇지 않아도 혈압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은 의료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니까, 임진혁 쉐프 핑계를 대고 아예 거기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요.」
측근의 말에 오마르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라시드가 요즘 어떻던가.」
「놀랄 정도로 좋아지셨습니다. 결혼식 이후에는 외출도 종종 하시고, 성적도 올랐습니다. 격투기 수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했고요.」
「서울의 병원으로 검진을 가도 좋겠군.」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래, 임진혁 쉐프에게도 연락을 넣어 봐. 무하마드랑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군.」
◈ ◈ ◈
오마르 왕자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짜고 있는 동안에 무하마드는 달리고 있었다.
「내가… 왜… 달려야 하나.」
그는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런닝화를 착용한 상태였다. 한국의 화려한 터번이나 금실로 수 놓인 예복 같은 것은 집어치운 지 오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는데, 전보다는 체중이 꽤 줄어 있었다.
「그래도 한 달간 15kg 가까이 건강하게 감량하셨지 않습니까?」
「하악, 학.」
무하마드 왕자는 숨이 차서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한 달간 꾸준히 달린 보람이 있어 달리면서 자세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미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체력이 필수입니다.」
진혁은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헉헉대며 지쳐 하는 모습과는 대조되었다.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사람과 속도를 맞춰 걷고 있는데도 여유가 넘쳤다.
「그래도 전보다 빨라졌군요.」
진혁이 느긋하게 말했다.
「후하, 흐, 그렇지?!」
아버지에게 칭찬받은 어린 소년처럼 무하마드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마라톤 대회라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유감스럽지만 이전의 무하마드 왕자님에 비해서 나아졌다는 거지, 일반인보다도 못합니다. 일반인 0.5인분에서 0.7인분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크으윽.」
‘자네의 그 일반인은 대체 어디의 누군가. 기준을 알 수가 없어. 지금 이 정도면 할 만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무하마드 왕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마에는 핏줄이 서고, 콧김을 거칠게 뿜어냈다.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진혁이 장난스레 말했다.
「오늘 저녁은 아보카도를 올린 오픈 파니니를 해볼까요.」
그 소리는 천상의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아주 또렷하게 무하마드의 귀에 박혀 들었다.
「우오오오오!」
그는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오늘은 향 없이 달콤한 과일들의 맛을 구별하는 작업을 해보죠.」
「크아아아!」
처음에는 하루에 한두 시간만 훈련할 예정이었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얼마든지 한국에서도 본국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복잡했으나, 전용기를 보내어 초대하면서 해결했다. 왕자가 초청해 외국을 방문하게 된 거래 상대들은 나름대로 한국 여행을 즐기며 돌아갔다.
하지만 사흘 정도 그 상태로 훈련을 하자 진혁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습니다.」
「아니, 어째서인가?!.」
「잡념이 너무 많으십니다. 단 48시간이라도 일상생활에서 다른 자극을 전부 차단해야겠습니다. 잡념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그럼.」
「어려우시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제 지시를 따르신다면 새 케이크를 맛보게 해 드리지요.」
진혁은 미끼를 내놓았다.
그것은 새로이 개량한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였다.
이전에 그가 아직 케이크에 대해서 잘 모를 때, 아드레아노 존부의 케이크를 보고 모방해서 만들었던 시작품.
진혁은 전부터 그 케이크를 좀 더 맛있게 만들고 싶었다.
‘소망 베이커리’에 내놓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현재의 자신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카포네 치즈, 크림화된 염소젖 치즈, 그리고 체다 치즈.
그는 세 종류의 치즈를 섞어서 굳혔고, 그 위에는 붉은색 딸기청을 얹었다. 직접 만든 딸기청과 감귤청, 그리고 설탕에 절여 말린 오렌지를 얇게 썰어 얹었다.
저녁 밤, 붉은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노란 태양.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는 햇무리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다.
「하.」
무하마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고작해야 치즈 케이크 아닌가. 나는 치즈 케이크는 본래 좋아하지 않아.」
「정말로 맛있는 음식은 취향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먹어보겠네. 만일 그 케이크가 정말로 맛있다면 내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하지.」
그것은 무하마드의 패배가 예정된 내기였다.
케이크를 맛보고 나서, 왕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걸했다.
「거 훈련 좀 하루 종일 받아도 되지! 이런 걸 먹을 수 있는데 한 달이 대순가, 일 년이라도 훈련을 받겠네.」
막상 체력 증강을 위한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자 하루 종일 우는 소리를 했다. 그러다가도 진혁이 그날의 메뉴에 대해서 알려주면 징징대면서도 열심히 뛴다.
‘마리오를 닮았어. 이 아저씨도 자꾸 보니까 귀여운 것 같기도 하네.’
매일같이 같은 패턴의 대화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경호원들도 긴장을 풀었다.
임진혁이 하는 일은 무하마드와 함께 하루종일 운동을 하거나, 약초를 맛보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방에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갖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종종 진혁의 아내가 방문해 셋이서 함께 티타임을 갖기도 했다.
달려가는 두 사람의 속도에 맞춰 뒤에서 뛰고 있던 수석 경호원 모하메드가 말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우리 왕자님께서 뭘 하시려나 싶었는데 말이지.」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시고 결과가 좋지 않으셨나 봐요.」
「요리는 핑계고 그냥 건강 관리를 하려고 오신 게 분명해.」
「이렇게나 살이 빠지셨으니 마님들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 관리를 하셔야 하는 나이인데 말이에요.」
「살도 빼고 근육도 붙었으니 말이야. 그냥 페이스트리 쉐프인 줄 알았는데, VIP 트레이닝도 겸하고 있는 줄 몰랐어.」
「아미나 마님이 여자 격투기 선수 출신이잖아요. 왕자님께 운동을 같이 하자고 그렇게 졸랐는데 왕자님은 계속 거절하시고. 제일 아끼시는 둘째 마님이 아무리 졸라도 싫다고만 하시더니 말입니다. 운동을 저리도 싫어하시는 무하마드 왕자님이 이렇게나 변하시다니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래, 운동 싫어하는 내 아들 녀석도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야.」
경호원들은 처음에 임진혁을 경계했다. 하지만 진혁을 졸졸 따라다니는 무하마드 왕자가 점차 운동과 식이 조절을 통해 건강해지자 마음을 열었다.
「왕자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우리도 좋지.」
「그러게 말이야.」
운동을 마치고 나면 진혁이 탄산수를 건네주었다.
얼음이 들어가 시원한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며 무하마드가 눈을 감았다.
「이 맛은….」
「아시겠습니까?.」
「잠깐만, 잠깐 기다려봐.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인간의 미뢰는 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입천장과 목구멍을 비롯하여 내장에도 존재하죠. 아시다시피 위에는 글루타민 수용체가 있고, 소장의 표면에도 화학적인 미각 감각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허브의 맛을 물을 통해 향을 증폭시킨 이 탄산수를 마신다면 무엇인지 당연히 아실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면요.」
무하마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한 시간 동안 전력으로 달렸기 때문에 전신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경호원이 다가와 차갑게 적신 수건으로 이마와 등을 닦아주었다.
「레몬그라스 잎일세!」
한참 동안 고심하던 무하마드가 외쳤다.
「아닙니다.」
「그, 그럼 레몬 잎인가?」
「틀렸습니다.」
진혁이 혀를 찼다.
「아직 달리기가 부족한 게 아닐까요. 좀 더 달리고 신체를 피로하게 해야, 혈액 순환이 증진되면서 신체의 감각이 조금 더 활성화될 겁니다.」
「아니, 아니야.」
무하마드가 황급히 말했다.
「이럴 땐 다른 걸 먹어야 좀 더 맛을 잘 구별할 수 있게 된다고. 푹신푹신한 우유 푸딩은 어떨까. 그래야 이 미묘하고도 은은한 맛을 구별할 수 있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