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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22화 (520/656)

제 522화

「아직 젊은 애들이니까 같이 하다 보면….」

무하마드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을 덧붙였다. 진혁이 말했다.

「결정하십시오.」

「….」

「스스로 훈련을 받으실 겁니까, 아니면 포기하실 겁니까.」

무하마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임진혁 쉐프는 ‘해와 달’ 베이커리 체인의 수석 쉐프이자 경영자다. 하지만 최근에는 베이커리 카페에 직접 나와 제과제빵을 하는 일이 줄었다. 푸드 블록 사업과, 잦은 출장 때문이다.

그는 김동진이나 유일봉 등 진혁이 직접 키운 제자들이 만든 빵도 먹어 보았다. 분명히 맛있는 빵들이었지만 그때 그 감동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자네는 왜 더 이상 빵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는 거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아내를 치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미미는 건강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진혁도 더 이상 치즈 케이크를 굽지 않았다.

난소와 자궁에 좋다는 쑥과 율무, 당귀 등을 최대한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미니 허브 타르트를 만들었다. 하얀 밀가루와 설탕이 좋지 않다길래 약초를 쌀가루와 함께 반죽해 낸 자그마한 타르트들은 미미 뿐 아니라 미미의 친구이자 수하인 스타일 팀원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미미는 집에 머물면서도 메일과 문자를 사용해 중국 현지의 사업을 돌보았다.

일을 하지 않고 쉬면 더 피곤하다며, 병원에 있던 때조차도 손을 놓지 않았다.

같이 살지 않을 때는 몰랐다. 진혁 역시 바쁘게 사는 편이었으나 미미는 더했다.

하루에 세시간 반을 자면서 사업을 하고 공부를 하며 세계정세를 살핀다. 그 와중에 인재를 유치하고 인맥을 관리해야 한다며 하루에 서너 명은 만났다. 최근에는 조리학원 건물의 완공이 가까워지면서 건축 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일이 많기는 많아. 오늘 저녁에는 돌아가서 익모초와 생강을 넣은 케이크를 구워줘야지.’

미미가 과로하는 것을 본 진혁은 푸드 블록 사업을 민병철에게 떠넘기다시피 했다. 미국의 병언 카페와 이탈리아의 호텔을 관리하던 민병철은 일이 너무 많다며 어시스턴트를 고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진혁은 흔쾌히 허락했고, 병철도 조금 더 편안해 보였다.

사업은 순조롭고, 가정생활도 평안하다.

이제는 조그만 취미 생활을 즐겨도 될 때다.

무하마드 왕자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입을 뗐다.

「신혼 생활을 즐기느라 일을 안 하다니. 한창 나이의 젊은이가.」

진혁은 굳이 사생활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겠네.」

「제 지시를 전적으로 따라주셔야 합니다.」

「알겠어.」

「호위와 아들들을 먼저 물려주십시오.」

「그건 어려워. 같은 방 안에는 있어야 해.」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 밖의 복도에는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          ◈          ◈

카림과 사파위는 눈을 깜빡였다.

「돌아가라고요?」

「그래.」

「원래 한국에서 일 년 정도 계획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들이 같이 있지 않아도 되니 돌아가거라.」

아버지의 말을 충직하게 따르는 차남이 묵묵히 수긍했다. 하지만 장남 카림은 불만이 있었다.

「아까 그 동양인은 대체 뭐길래 저희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겁니까?」

무하마드가 성을 냈다.

「너희가 상관할 바는 아니야. 전용기가 이미 대기하고 있으니, 돌아가거라.」

「….」

사파위가 먼저 방을 떠났다. 카림이 진중하게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속고 계신 겁니다. 저자가 어떤 말을 늘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한국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 일 년이나 머무른다는 건 너무나 큰 일입니다. 익월에 예정된 유가 회의도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낭비하실 시간 따위는 없지 않습니까. 도대체 저 남자에게서 뭘 보신 겁니까? 저희로는 부족합니까?」

아들의 간곡한 말에 무하마드가 찬찬히 대답했다.

「맛있었네.」

「…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맛이 있었어.」

「마약이라도 넣은 거 아닙니까?」

「크, 차라리 그러면 낫지.」

무하마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약 특유의 황홀경과 세상에서 나를 유리하는 감각,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어. 그저 그 맛 자체로 완벽했을 뿐이야. 그런 걸 만들어내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자는 맛의 마술사고, 난 이 자가 만들어내는 음식을 단 한 조각이라도 더 맛보고 싶다.」

「아버지!! 고작 단순한 먹을 것 가지고 이렇게-.」

「고작 먹을 거라니!」

무하마드가 호통을 쳤다.

「미식은 예술이자 삶의 방식이야! 세상을 보는 눈이요 창이다!! 장님들 사이에서 사는 너는 몰라. 희뿌옇게 흐린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선지자께서 오셔서 네 두 눈을 뜨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해봐라. 우물 속에서 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자에게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큰 놀라움이자 충격이겠느냐!」

이 말을 하는 내내 무하마드는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선지자에 대해서 말할 때는 눈앞에 진정한 선지자가 있는 것처럼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상태였다. 독실한 무슬림인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처음 본 카림이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습니까.」

「한 번 빛을 본 자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얼마나 따뜻한지,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알록달록하고 선명한지 알아버리면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어. 그렇다고 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처음부터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맛을 봐 버린 후에는 이미 늦었어… 그 펜로즈 삼각형 케이크는 과연 첼시 갤러리에 전시될 만한 작품이었어.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린다는 일시성과 함께 말이지.」

「…알겠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가시고자 하는 그 길에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너는 자격 요건을 통과하지 못했다.」

카림이 얼떨떨하게 물었다.

「무슨 자격 요건 말입니까? 지금 한국에 와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무하마드는 장남 카림까지 돌려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경호원들과 비서진이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어느 회의에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이십 년 이상 충실하게 무하마드를 지켜왔던 수석 경호원이 잠시 머뭇거렸다. 무하마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복도 밖에서 기다리게나.」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던 진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이제 시작할까요.」

「…알겠네.」

무하마드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보낸 서류는 최전방의 군대에 입대하는 신병이 서명할 법한 동의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개인 변호사와 함께 서류를 검토했다. 변호사는 이 얼토당토않은 동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

이 서류대로라면 무하마드 왕자가 감금된 후 고립되어 죽더라도 임진혁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가의 일원으로서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항목이다.

‘당장 시작하자마자 암흑 속에 홀로 고립될지도 모르지.’

그는 최종 서명을 하기 전에 진혁과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청년이 과거 납치 사건에 대해 알 리는 없어.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하고서, 이 조항이라도 빼도록 하자.’

무하마드 왕자는 계약서의 다른 부분은 제쳐 두고, ‘온전한 암흑 속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에 대해서 항의했다.

「아까도 말했지 않나, 이것만은 바꿔 보자고.」

그러자 진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신체 전반적으로 감각이 너무 둔합니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살아있는 게 미각과 후각인데 말입니다.」

임진혁은 냉장 시설을 향해 걸어갔다.

온갖 재료가 채워져 있는 업소용 냉동고를 열자 음습한 한기가 방 안을 한순간 휘감았다.

일반 냉동고가 아니라 고급 급속 냉동고다.

무하마드 왕자가 눈을 깜빡거리며 지켜보는 동안 진혁은 냉동고에서 투명한 아크릴판을 꺼냈다.

흔한 얼음 얼리기 용 틀이었다. 구형 형태로 얼음을 얼려, 칵테일용으로도 많이 쓴다. 그 안에 있는 든 얼음에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얼음 아닌가?」

진혁이 물끄러미 무하마드 왕자를 응시했다. 무하마드 왕자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 시선이 마치 ‘너에게 눈이 있기는 하냐?’라는 말을 하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십시오.」

「뭘 말인가?」

무하마드는 얼굴을 숙여 하얀 도자기 접시 위 얼음을 노려보았다.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얼음 안쪽에 희미한 녹색 그림자가 보였다. 각도에 따라서 새끼손가락 손톱 정도의 크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언뜻 보면 그저 얼음 속에 진 그림자 같기도 했다. 무하마드 왕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허브! 이 안에 있는 건 허브인가?」

「그렇습니다. 잎 조각이지요. 어느 허브인지 아실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조그만 조각인데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눈썹이 모이며 얼굴이 찡그려진다.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실망감을 표현하고는 했다. 불만이 있을 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썹을 일그러뜨리거나 입술을 어그러뜨린다.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왕자님은 용기가 없으시군요.」

「무슨 용기 말인가?」

「그저 보기만 하실 셈입니까?」

「!」

무하마드 왕자는 황급히 얼음에 손을 뻗었다. 맨손이 얼음에 닿자 살얼음이 올라오듯 전신이 오싹했다. 척추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용 냉장고에서 얼어 있던 얼음이 아니다. 영하의 냉동실에서 급속도로 얼어, 오랜 기간 동안 냉동해둔 물건이다.

「으, 차가워!」

아주 잠시 갖다 댔을 뿐인데도 손끝이 붉게 변했다. 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 얼음과 저 얼음의 차이를 알겠습니까?」

어떻게든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무하마드는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다. 얼음을 코끝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눈을 얼음에 닿을 듯 말 듯 갖다 대고 허브의 모양을 살펴보려고도 했다.

하다못해 잎의 전체 모양만이라도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혁에게 잎의 모양을 알려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왕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미식가로서의 자존심, 임진혁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열망, 열등감과 욕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그럼 자네는? 자네는 지금 이 얼음이 무슨 맛인지 알 수 있나?」

「물론입니다.」

「직접 넣었기 때문에 아는 거겠지?」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눈으로 보고도 알 수 있고 혀로 얼음의 맛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무하마드는 사람을 볼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단언한다는 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거다.

이 남자는 진짜다. 설령 수하의 요리사를 시켜 허브 잎을 자잘하게 잘라내 얼음을 굳혀 실험해도 알아낼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

무하마드가 항의했다.

「그럼 자네도 맞혀 보게! 눈 감고서 말이야. 뭐가 뭔지 나에게 알려 줘.」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진혁은 무하마드가 기존에 골랐던 얼음을 따로 뺐다.

그는 남은 얼음을 하나씩 하나씩 맛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건 바질입니다.」

그러면 무하마드가 그 아래쪽에 적혀 있는 표기를 확인했다.

「허!」

그 어느 것도 틀리는 일이 없었다. 때로는 맛조차 보지 않고 맞추었다.

「잎맥의 모양을 보면 세이지가 분명하군요.」

마술사의 신기 같았다.

「아니, 이럴 수가.」

무하마드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승복했다.

‘이 자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알았어, 다시 해 보겠어.」

무하마드 왕자는 얼음에 코끝을 갖다 댔다.

혀끝으로 핥아 보려 했으나, 혀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느껴지는 냉기에 멈칫했다. 혀가 닿자마자 얼어붙을 것 같아 소름이 쫙 끼쳤다.

‘이 허브가 대체 뭐지.’

하지만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맛을 보아도 혹은 만져 보아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몇십 분 동안이나 발버둥 친 끝에 무하마드가 힘겹게 말했다.

「…전혀 모르겠네.」

「잘하셨습니다.」

「뭐?」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진혁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하하.」

무하마드는 그만 웃어버렸다.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가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해방감 가득한 웃음이었다.

미각으로는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로 완전히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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